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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저 사람이 어떻게' - [유광수신부님의 복음북상]
작성자정복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6-05-04 조회수527 추천수2 반대(0) 신고

<저 사람이 어떻게>(요한6,52-59)

 

"저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줄 수 있단 말인가?"하며, 유다인들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졌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

 

                                 * * * * * * *

 

예수님은 계속해서 생명의 빵을 말씀하신다. 그러나 유다인들은 그 말을 알아 듣지 못하고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줄 수 있단 말인가?"하며 이상하게 생각한다.

 

우리는 유다인들의 태도에서 몇 가지 묵상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생명의 빵에 대한 설명을 알아듣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지금까지 계속해서 여러 번 설명해주셨지만 못 알아듣기는 여전하다.


나는 알아들었는가? 무엇이 생명의 빵이고 그 생명의 빵을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를 알아들었는가? 아마도 이 생명의 빵을 알아들은 사람은 오늘날에도 많지 않을 것이다. 정말로 알아들었다면 썩어 없어질 빵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이 생명의 빵을 얻으려고 힘써야 할 것이다.

 

생명을 얻게 해주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사실 우리가 먹는 것은 생명을 얻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우리가 먹는 빵은 생명의 빵이 아니라 결국은 죽어가게 하는 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질적인 빵이 마치 우리를 영원히 살게 하는 생명의 빵인 양 착각 속에 생명의 빵을 얻으려고 하기보다는 썩어 없어질 빵을 얻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는 점이다.
 
둘째, 유다인들이 못 알아듣고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줄 수 있단 말인가? 하고 질문을 던지듯이 못 알아 들었으면 우리도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 세상에 질문을 던지는 존재는 인간 뿐이다. 다른 동물들은 질문을 하지 않는다. 그냥 주어진 대로 본능대로 살아간다. 그러나 인간은 그렇지 않다. 질문을 던져야 발전한다.

 

질문하지 않으면 발전하지 않고 성숙하지 못한다. 모르면 자주 질문을 던지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나는 올바르게 가고 있는가? 내가 하는 말은 진리인가? 나는 올바르게 생각하는가? 지금 나는 어디까지 왔는가?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행복은 무엇인가? 왜 예수님은 생명의 빵에 대해서 그렇게 오랫동안 설명해주시는가? 어떻게 자기 살을 먹으라고 줄 수 있는가?  하느님은 어떤 분이신가? 어떻게 사는 것이 의미있는 삶인가? 등 우리는 질문을 던지면서 살아야 하고 그 대답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아무 질문을 하지 않고 산다는 것은 동물과 같은 삶이다. 질문을 하지 않는 사람은 발전하지 못한다.


질문을 하다보면 답을 쉽게 찾을 수도 있지만 아무리 찾아도 답을 찾을 수 없을 때도 있다.아무리 노력해도 알아듣지 못할 때가 있다. 이럴 때 거기에서 멈출 수도 있고 그것을 계기로 한 단계 더 약진할 수도 있다.

 

유다인들은 지금 자기들의 한계에 다 달았다. 이제 여기에서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떠나가 바릴 수도 있고 못 알아 들었지만 계속해서 알아들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으로 갈라질 것이다.

 

셋째, 생명의 빵은 영적인 것이다. 그러나 유다인들은 육적인 관점에서 이해하려고 하였고 육의 단계를 뛰어넘지 못하였다. 육의 세계와 영의 세계와는 전혀 다른 세계이다. 육은 육이요, 영은 영이다.

 

육의 세계를 뛰어넘지 못하면 아무리 영의 세계를 설명해주어도 알아듣지 못한다. 복음을 보면 이런 상황이 몇 군데 나온다. 니고데모도 예수님이 "누구든지 위로부터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 라고 했을 때 "이미 늙은 사람이 어떻게 또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 뱃속에 다시 들어갔다가 태어날 수야 없지 않습니까?"라고 물었다. 예수님이 대답하셨다.

 

"육에서 난 것은 육이고, 영에서 태어난 것은 영이다."
이것은 믿음의 문제이지 지식의 문제가 아니다. 믿음은 육의 세계를 초월하는 것이다. 뛰어넘는 것이다. 이 단계를 뛰어넘지 못하면 우리는 결코 생명의 빵을 알아듣지 못할 것이다.

 

넷째, 예수님의 모든 말씀은 비유이고 상징적인 것이다. 비유를 알아듣지 못하고 말 그대로 알아들으려고 할 때 본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아듣지 못한다. 오늘 복음에서 살과 피를 먹으라고 하니까 어떻게 먹으란 말인가? 하는 의문은 누구나 든다.

 

아니 우리가 식인종이란 말인가? 살과 피를 먹고 마시라니? 그러나 여기서 살과 피란 육신의 살과 피가 아니라 당신의 말씀이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1,14)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말씀은 곧 예수님의 살이요 피이다. 말씀을 먹지 않고서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없다는 말씀이다. 그 상징적인 의미를 알아듣지 못하고 말 그대로 알아들으니까 못 알아 듣는 것이다.

 

이처럼 복음은 모두 비유이고 특히 요한 복음은 상징적인 것이기 때문에 알아들으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듣고 배우지 않으면 알아듣지 못한다.

 

다섯 번째, 우리가 못 알아 듣는다고 해서 이 가르침을 포기해서도 안되고 예수님을 떠나가서도 안 된다. 우리는 이 말씀을 끝가지 알아 들으려고 노력해야 하고 알아듣지 못하면 그대로 받아드려야 한다. 이 가르침은 알아들어도 되고 알아 듣지 못해도 되는 가르침이 아니다. 이 말씀은 영원히 사느냐 죽느냐 하는 문제이다.

 

아무리 알아 듣기 어려워도 반드시 알아들어야 할 말씀이 있고 포기해도 되는 것이 있다. 높은 산에 오르려는 사람은 아무리 힘들어도 정상에까지 오르려고 노력해야 올라간다. 힘들다고 올라가지 않으면 결코 올라 가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영적인 생활은 죽을 때까지 올라가도 다 못 올라가는 것이다. 끊임없이 높은 곳을 향하여 올라가는 것 그것이 영성생활이다. 

                                          -유광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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