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더 이상 붙들지 마라 ("회장님" 이란 호칭)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06-04-18 조회수946 추천수14 반대(0) 신고

4월 18일 부활팔일 축제 내 (화)요일 (요한 20, 11-18)

 

 "마리아는 무덤밖에 서서 울고 있었다." (11절)

 

제가 남편과 사별하고 울고 서 있던 상황이 떠올랐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일 두 가지는 첫째는 아이들이 힘들어 하고 방황하는 것으로, 아버지의 힘이 그렇게 대단한 것인지 몰랐었습니다. 두 번째로 힘이 들었던 것은 대화의 상대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평소에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늘 의논하고 함께 결정했던 일들을 혼자서 결정해 나아가야 하는 것도 힘이 들었지만, 대화를 통한 정서적인 지지가 없어진 것도 아주 힘이 들었습니다.

 

아무튼 그 시절엔 끝없이 파도가 밀려 오는 상황으로 느껴졌습니다. 제가 두 발로 파도를 밀쳐내며 나아가는데 한 발이라도 밀쳐내지 않으면 파도에 침몰 당할 것 같 같았습니다. 제게 주어진 임무가 힘겹고, 한 순간도 방심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저는 남편의 투병중에도 함께 해오던 것이었지만, 매일미사와 성체조배하는 것을 제일 우선 순위로 두었습니다. 심지어는 고등학생이 된 막내의 도시락을 새벽 4 시에 일어나서 싸놓고 성당에 다녔습니다. 

 

남편과 함께 운영하던 유치원도 자신감이 없어져, 저녁에는 대학원에 다니던 시절이라 새벽에 미사를 가고 기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막내는 성격이 태평하고 책임감이 부족해서인지 알람시계를 맞추어 놓고 가도 또 다시 잠들고 지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막내를 지각시키지 않으려면 학교에 안가는 날은 오후미사를 다녀야 될까? 그무렵 저희 본당에서는 평일미사에도 반주를 하라는 신부님의 말씀이 있어서 평일 미사 반주를 혼자서 하게 되었습니다. 1년에 새벽미사가 없는 날 외에는 거의 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해오던 터라 본당 신부님께 이 말씀을 드려보아도 막내 스스로 하도록 해야하지 않겠느냐고 하셔서 순종하는 마음으로 반주를 하고 있었습니다.  

 

막내가 야간 자율학습도 하지 않고 친구와 놀러 다니는 등 어려움을 겪게 되어 담임 선생님과의 면담에서, "공부를 못 하는 아이들보다 지각하는 아이들이 더 안좋다." 라는 말씀도 원인이 되었지만, 놀러 다니는 친구들과 떨어뜨려 놓고 새롭게 시작할 기회를 주기 위해  전학을 시키고 이사를 했습니다. 집을 비워 놓고 전세를 얻어서 막내가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귀양살이를 다녀온 것입니다.

 

8학군으로 이사를 갔기 때문에 남들은 교육열이 높아서 이사를 간것으로 오해하는 분들도 계셨을 것입니다. 자식에 관한 이야기들이기 때문에 속속들이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저를 많이 도와주신 자매님께서 "누가 제가 그런 속을 썩으며 살아가고 있는지 알겠느냐?" 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소심한 면이 있어서 더 속을 끓인 면도 있습니다.

 

 "'누가 저의 주님을 꺼내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 뒤로 돌아선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다." (13-14절)    

 

오늘 강론 말씀에서 "'뒤로 돌아선다' 는 것은 회개와 회심을 말하는 것으로서 머리뿐만 아니라 온 몸으로 예수님을 믿는다는 의미가 있으며, 마리아 막달레나가 동굴을 벗어났듯이 나 자신을 동굴에 가두어 놓고 있는 것을 벗어나야 한다." 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저는 제가 울고 서 있던 곳에서 벗어나기 위해 부족하지만 나름대로 끊임 없이 주님을 찾았습니다. 제 믿음과 정성이 부족해서 완전히 뒤로 돌아서지 못해서인지 예수님을 뜨겁게 만나지는 못했지만 앞으로 점점 더 뚜렷하게 예수님을 만나뵙게 되리라 믿습니다. 마리아도 처음에는 예수님을 정원지기인 줄 알고 있었다가 나중에 예수님을 알았듯이 제게도 차츰 주님을 알아보게 해주시리라 믿습니다.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 내 형제들에게 가서, '나는 내 아버지시며 너희의 아버지이신 분, 내 하느님이시며 너희의 하느님이신 분께 올라간다.' 하고 전하여라."(17절)

 

신부님으로부터 "마리아가 부활하신 주님을 체험한 후에는 예수님께 대한 집착을 버리고, 스승이신 예수님께 대한 더 숭고한 사랑을 드리게 되었다." 는 말씀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일설에 의하면 마리아는 예수님을 붙들고 있는 것, 소유하려는 집착에서 벗어나, 깊은 관상의 단계에까지 올라가 주님을 찬미하는 기쁨을 누렸다고 합니다. 

 

돌이켜보면 남편에 대한 사랑도 집착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사랑이란 이름 밑에 깔려 있는 의존성과 집착을 봅니다. 자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 당신 자녀이니 마음대로 하십시오." 라고 맡기기 보다 제가 생각하는 대로 꽉 움켜쥐고, 놓지 않고 집착을 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속썩인다며 가슴을 쓸어내리고, 불면증에 시달리기도 하고 "왜 나에게만 이렇게 힘들게 아이들을 맡겨놓고 갔느냐" 고 부르짖으며 울기도 하였습니다.

 

재물에 대한 것도 많이 놓은 것 같지만 아직도 붙들고 있는 것이 가끔 들어납니다. 제가 너무 순진(?)했던 일이 생각납니다. 지금 목동 근교에서 살고 있는데 목동 아파트가 생겼던 초창기에 본당 신부님께서 강론 시간에 집이 없는 사람이 많은데 집 두채를 갖는 것은 죄악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목동 아파트를 살 수 있었지만, 하느님께 죄를 짓지 말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사지 않았습니다. 불편하지만 유치원에 사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사택도 유치원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목동 아파트 값이 어마어마하게 올랐다는 소식을 들을 때,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것을 보면 버려야 할 것을 붙들고 있음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사람에 대한 집착도 만만치 않습니다. 얼른 성찰하고 의지적으로 놓는 연습을 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자유로움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를 느끼고 깨닫게 해 주시기 때문에, 은총으로 비교적 자유롭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입니다.

 

어제 영어 성서공부를 지도해 주시던 선생님께서 "오늘 하루 교만하지 않을 수 있는 은총을 매일 매일 청해야한다. 내가 본당에서 10 년 전에 총회장을 하고 기도회 회장 등등을 하면서 "회장님" 이란 칭호가 귀에 익었던 모양이다. 이런 직책을 다 놓은 지금, 어느 날 40대인 한 자매님이 "형제님" 이라고 부르는 소리에 기분이 썩 좋지 않아지는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묵상하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매일 그날 하루 교만하지 않을 수 있는 은총을 청해야 한다." 라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붙들고 있는 것이 무엇이지 성찰해 보고 매일 매일 주님께 놓을 수 있는 은총을 청하면서, 그토록 주님께서 제게 주시고자 하신 자유로움안에서 평화를 누려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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