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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삶 - 2013.4.14 부활 제3주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3-04-14 조회수352 추천수2 반대(0) 신고

2013.4.14 부활 제3주일

 

사도5,27ㄴ-32.40ㄴ-41 1요한5,11-14 요한21,1-19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삶

 

 


첩첩산중의 삶입니다.

하루하루가 오르내려야 할 산입니다.

진실로 믿는 이들의 삶이 그러합니다.

 


농사와 우리의 삶은 어찌도 이리 흡사한지요.

저절로 맨 땅에 농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매해 거름을 주어야, 끊임없이 땅에 거름을 투입해야 좋은 땅에 좋은 수확이듯

우리의 삶도 매일 끊임없이 거름과 같은 음식과 더불어
영적 자양분도 섭취해야 좋은 삶에 좋은 삶의 열매라는 것입니다.

요즘 배 밭에 널려있는 비료부대를 보며
새삼 깨닫는 너무나 자명한 삶의 진리입니다.


얼마 전 흥미진진한 소설 같은 미국의 16대 대통령,

‘링컨’의 자서전에 대한 서평 중 감동적인 내용의 일부를 인용합니다.

 

-그는 독학으로 변호사가 되기 전 뱃사공, 점원, 장사꾼, 우체국장, 측량기사였다.
성장기에 그는 매순간 오늘 보다는 나은 내일을 꿈꿨고
그것이 평생 삶을 대하는 태도가 됐다.
그는 정계에도
대통령이 아니라 진정으로 존경받는 사람이 되겠다는 야망을 품고 나왔다.
자기가 있어서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사회가 되기를 꿈꾸었다.
대통령이라는 권력의 정점을 향해 달려가면서도
적어도 다른 사람의 눈에는 이 같은 소신이 흔들린 적이 없었다.
…그는 하루아침에 세상을 바꿀 수 있으리라고 믿지 않았다.
명백한 악이라도 이미 있는 것은 없애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느려 터졌다.
그가 재임 중 가장 많이 받은 비난은 ‘우유부단하다’는 것이었다.-
서평을 쓴 이가 본의 아니게 가장 중요한 것을 잊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바로 링컨의 하느님 믿음입니다.

백악관을 기도실로 만든 링컨입니다.

이런 기도와 믿음이 있었기에
링컨은 꿈꾸는 삶, 노력하는 삶, 기다리는 삶에 항구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이런 삶이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삶이자 우리를 향상시키는 삶입니다.

 

 

첫째, 꿈꾸는 삶입니다.

 

주님의 제자들처럼, 링컨처럼 꿈꾸는 삶이,
주님을 꿈꾸는 삶이 아름답고 주님을 영광스럽게 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체험할 때 꿈꾸는 삶이요 내적변화입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시간,
우리 모두 주님을 만나면서 주님을 꿈꾸는 시간입니다.

수도원 주차장 성 요셉 상 옆 만개한 산수유 꽃들이 흡사 꿈꾸는 나무 같습니다. 부활의 봄을 만나 활짝 노란 꿈으로 피어난 산수유 꽃처럼
우리도 부활하신 주님을 만날 때, 체험할 때 활짝 꿈으로 피어납니다.

부활하신 주님 체험과 더불어 자연스럽게 뒤따르는 내적변화요 치유입니다.

 

우리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날 자리는 평범한 일상의 지금 여기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부활하신 주님의 발현이 참 의미심장합니다.
제자들이 고기를 잡지 못해 실의에 빠져 있는 평범한 삶의 현장에 소리 없이
개입하십니다.

바로 제자들의 좌절의 현장을 물끄러미 바라보신 주님의 개입입니다.

 

“얘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

 

참 다정하고 자애롭게 느껴지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우리의 실의와 좌절 그 삶의 자리 역시
바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자리임을 깨닫습니다.

예수님의 자연스런 개입으로 고기를 그물에 가득 잡아 올리자 순간 눈이 열려
‘주님이십니다.’ 주님을 알아 고백하는 주님의 애제자요

겉옷을 두른 채 호수로 뛰어든 베드로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과의 결정적 만남으로 활짝 주님의 꿈으로 피어난 제자들입니다.

 

“와서 아침을 먹어라.”

 

제자들을 식탁에 초대하신 똑같은 주님께서
당신 미사식탁에 초대하시어 당신을 깊이 체험하도록 하십니다.

 

둘째, 노력하는 삶입니다.

 

끊임없이 노력하는 삶이 아름답고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합니다.

막연히 노력하는 삶이 아니라 고백과 실천으로 이루어진 노력하는 삶입니다.
제자들과 식탁을 함께 하신 예수님은
수제자인 베드로의 사랑고백을 받아 냅니다.

베드로뿐 아니라 미사에 참석한 우리 모두를 향한,
평생 화두로 삼아야 할 부활하신 주님의 단도직입적 물음입니다.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는 세 번의 연속된 물음에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세 번을 겸손히 대답합니다.


바로 위 질문은 링컨이 남북 전쟁 후 그의 임종 직전에 받은 질문입니다.

 


“당신은 예수님을 사랑합니까?(Do you love Jesus?)”
라는 질문에 서슴없이,

 

“게티스버그에서 나는 내 자신을 그리스도께 맡겼습니다.
이제 나는 진실로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사랑합니다!(I do love Jesus!)’.”

 

고백만으론 부족합니다.
실천을 통해 고백의 완성입니다.

 

당신께 사랑을 고백하는 베드로에게
‘내 양들을 돌보아라.’
‘나를 따라라.’
주님은 두 실천지침을 주십니다.

 

베드로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고백에 따른 실천내용입니다.

주님의 양들인 형제들을 돌보아야(care)하고

주님을 따라야(follow)하는 우리들입니다.


바로 오늘 1독서에서 베드로의 고백과 실천이 일치되고 있음을 봅니다.

 

“사람에게 순종하는 것보다 하느님께 순종하는 것이 더욱 마땅합니다.”

 

담대히 믿음을 고백하면서 주님의 부활을 증언하는 베드로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욕을 당할 수 있는 자격을 인정받았음을
기뻐하는 베드로를 위시한 사도들의 모습에서
고백과 실천이 하나로 완성됨을 봅니다.

 

.
셋째, 기다리는 삶입니다.

 

끝까지 기다리는 삶이 아름답습니다.

끝까지 기다리며 견디는 자가 승리합니다.

날마다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는 삶 있어 가능한 기다리는 삶입니다.

 

.
오늘 요한이 본 환시가 찬미의 모범입니다.

하느님의 백성들이, 천사들이,
그리고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와 바다에 있는 모든 피조물이
하느님과 어린양이신 부활하신 예수님을 찬미합니다.

 

“어좌에 앉아 계신 분과 어린양께
찬미와 영예와 영광과 권세가 영원무궁하길 빕니다.”

 

네 생물은 찬미에 ‘아멘!’ 화답하고 원로들은 엎드려 경배합니다.

우리 역시 이 거룩한 미사시간
모든 천상영혼들과 천사들, 그리고 세상 모든 피조물과 함께
어좌에 계신 하느님과 어린양이신 부활하신 주님께
찬미와 감사의 미사를 봉헌합니다.

매일 끊임없이 계속되는 찬미와 감사의 기도와 삶이
항구한 기다림의 원천임을 깨닫습니다.

 

링컨 역시 찬미의 사람이었습니다.

워싱턴의 링컨기념관에는 링컨 대통령이 보던 성경책이 보관되어 있고
그 성경에는 유난히 손때가 묻고 헤진 페이지가 있습니다.

‘주님을 찾았더니 내게 응답하시고
 온갖 두려움에서 나를 구하셨네(시편 34편 5절).’

그는 남북전쟁을 치르면서 이 구절을 읽고 또 읽으며
하나님이 응답해 주시고 모든 두려움에서 건져 주신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언제나 시편을 묵상하면서 찬미와 감사의 삶을 살았던 링컨임이 분명합니다.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삶은 간단합니다.

 


꿈꾸는 삶입니다.

노력하는 삶입니다.

기다리는 삶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체험할 때 꿈꾸는 삶에 내적변화입니다.

주님을 고백하고 실천할 때 항구히 노력하는 삶입니다.

끊임없는 찬미와 감사의 삶 있어 기다림에 항구할 수 있습니다.

 


활하신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 은총으로

우리 모두 꿈꾸는 삶, 노력하는 삶, 기다리는 삶에 항구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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