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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빵의 임금과 행복의 빵 [예수의 형제회라고 부르기는 민망하다]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3-04-15 조회수352 추천수0 반대(0) 신고

군중은 거기에 예수님도 계시지 않고 제자들도 없는 것을 알고서, 그 배들에 나누어 타고 예수님을 찾아 카파르나움으로 갔다. “라삐, 언제 이곳에 오셨습니까?” 하고 물었다.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람의 아들을 인정하셨기 때문이다.”그들이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  <요한 6, 22 -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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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은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라삐, 언제 이곳에 오셨습니까” 하자 예수님께서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하시고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며 가르침을 주십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 대답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천명을 먹이신 기적'을 보고 [그들이 와서 당신을 억지로 모셔다가 임금으로 삼으려 한다는 것을 아시고, 혼자서 다시 산으로 물러가셨다] 했습니다.사람들의 생각과 예수님의 생각은 많이 다르다는 것을 금새 알게 됩니다.  군중의 생각은 예수님께서 강력한 통치자로 나서 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것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생각을 올바로 잡아주시기 위해, 그들을 피하여 잠시 산으로 물러가셨다가 제자들과는 따로 떨어져서 제자들과 다시 만났는데, 군중은 그 곳에까지 찾아 와서는 예수님을 억지로 자기네들의 임금으로 모시려고 한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생각하고 있는지가 드러나 보여 줍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그 당시에 발호했던 여러 '구제자'들 중의 또다른 한 사람으로 여겼다는 의미가 됩니다. '구제자'들은 자칭 세상의 메시아들로 말하고 있었지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메시아'이신 '구원자'이셨던 것이 그들의 생각하고는 서로 많은 간격이 있었다 할 것입니다. 사람은 스스로 수도하여 구제자가 될 수 있었던게 당시의 시대-상이었습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자비롭게 대하라며 그 가르침을 세상에 전한 이들이 구제자들이었습니다. 지금 당대에서도 가난한 사람들을 측은히 여기면서 구제 사업을 하는 이같은 구제자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그러나 사람의 영혼 구원은 구제사업과는 엄밀하게 차이가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가난한 이들을 불쌍히 여겨 먹을 빵(양식)을 주게하는 일이 구제자들의 일이었습니다군중은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행하신 오천명을 먹이신 기적에 대해서도 단순히 당시에, 구제사업을 하고 있었던 구제자들의 한 가지 일로만 여겼던 것이었습니다. 

세속적인 구제사업은 하느님의 구원사업과 많이 다릅니다. 사람의 영혼 구원과 상관없이 일용할 빵을 배불리 먹게 해 주는 구제 사업은 세속적으로('하느님 없이')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 없이' 영혼 구원은 먹을 빵의 구제 사업만으로는 이루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오병이어의 기적은 '하느님 없이' 행하여진 구제 사업이 아니었습니다. 

오늘 날에도 먹을 빵을 계속해서 마련해 주는 구제사업만을 가지고, '하느님의 구원사업이다' 하며 생각하는 예수님의 공동체가 있다면, 이 역시도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와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 빵을 위해서 예수님을 찾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께서도 오천명을  굶주림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하지만 이것이 하느님의 구원 사업의 전부가 아닌 것입니다. 사람이기에 배고픔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일은 당연히 자비로운 일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기에만 머무르는 것은 구제사업일 뿐이지, 구원사업은 결코 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빵의 기적'에는 '하느님 없이'가 아니었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을 욕되게 하는 구원사업은 구원사업이 아니고 구제사업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느님 없는 구제사업은 사람들이 스스로 수덕하여 얼마든지 행할 수 있습니다. 허나 영혼 구원은 '하느님 없이' 이루지 못합니다.구제사업은 있지만, 구원사업이 없는 예수님의 공동체는 '예수의 형제회'라고 부르기는 민망하다 할 것입니다.

구제사업은 사업체에 불과합니다.'예수의 형제회'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형제들이 예수님의 길을 따르지 않고, 삯꾼들을 모집하여 그들에게 예수님의 어린양들을 맡기고 자신들은 육적인 감흥에만 열중한다면 '하느님의 구원사업'에서 떨어져 나간 세속 기업체에 불과합니다. 거기에는 악에 의한 고통과 죄에 의한 죽음이 있을 뿐입니다. 

[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  하셨습니다.예수님의 형제들이 '예수님의 어린양들'(버려진 양들)을 돌보지 않고 삯꾼들에게 형제들의 자리와 몫을 넘겨주는 일은 '사랑을 빌미로 하는 수용소'에 지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찾는 것도 '빵의 예수'를 찾는 것입니다. 버려진 이들의 '악에 의한 고통과 죄에 의한 죽음'에서 예수님을 찾아 이들을 구원해 내지 못합니다. '하느님 없이' 빵을 주는 일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마땅히 해야 할 어떤 일들까지,  삯꾼에게 넘겨줌으로써 밥과 이불과 기저귀로 학대하는 일은, 버려진 이들에게 내려준 '주님의 은총으로' 그들 모두가 악과 죄를 행하는 것('하느님 없이')이기 때문입니다. 

버려진 이들은 예수님의 어린양들입니다. '버려진 이들의 구원'을 위해 무엇을 마련해 주어야 할까요.  예수님의 공동체는 <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줄 것이다>하셨습니다.모두의 구원을 위해서 예수님을 힘써 찾아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은 깊이 살펴야 하는 것입니다.

'저 군중'과 같이 '빵의 임금'으로 예수님을 찾는 것만이 예수님의 제자들이 오직 해야 할 일은 아닙니다.군중들 가운데는 12사도들 외에 예수님의 많은 제자들이 있었습니다.그들은 '빵의 임금'을 찾아 다녔습니다. 지금 시대의 여기서도 '빵의 임금'을 찾아 다니는 그와같은 '예수의 형제회'가 있습니다. 

하느님의 구원사업에서 예수님은 빵의 임금이 아닙니다.예수님의 모든 말씀의 가르침을 믿고 그 믿는 바를 실천하는 순종이 '예수님 따름'의 진정한 '예수의 형제회'입니다.버려진 이들에게 내려진 주님의 은총으로 그들을 악의 고통과 죄의 죽음에서 해방시켜 주는 평화와 생명의 행복한 이 하느님의 구원사업인 것입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곧, 예수님을 믿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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