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야곱의 우물』- 부활은 회개를 위한 새로운 시각을 준다
작성자조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06-04-18 조회수837 추천수13 반대(0) 신고
     
    부활 팔일축제 내 화요일-부활은 회개를 위한 새로운 시각을 준다  
    
    
    [요한 20,11­-18]
    
    
    (필자가 묵상한 구절을 중심으로 싣습니다.)
    
    
    그때에 천사들이 마리아에게 “여인아, 왜 우느냐?” 하고 묻자, 마리아가 
    그들에게 대답하였다.“누가 저의 주님을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 뒤로 돌아선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다. 
    
    그러나 예수님이신 줄은 몰랐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여인아,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 하고 물으셨다.
    마리아는 그분을 정원지기로 생각하고, “선생님, 선생님께서 그분을 옮겨가셨으면 어디에 모셨는지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모셔가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야!” 하고 부르셨다. 마리아는 돌아서서 히브리 말로 “라뿌니!” 하고 불렀다. 이는 ‘스승님!’이라는 뜻이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 내 형제들에게 가서, ‘나는 내 아버지시며 너희의 아버지신 분, 내 하느님이시며 너희의 하느님이신 분께 올라간다’하고 전하여라.”
    마리아 막달레나는 제자들에게 가서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 하면서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하신 이 말씀을 전하였다.
    
    ※『야곱의 우물』冊에 나오는 《매일성서묵상》내용입니다.※
    
     
                          - 문호영 신부(예수의 성모관상수도원) - 
    
    
    우리는 오늘 부활 팔일 축제 3일째를 맞습니다. 우리는 부활 ‘기쁜 부활’
    이라고 말하고‘알렐루야! 이날이 주님께서 마련하신 날. 이날을 기뻐하며 
    춤들을 추자, 알렐루야!’라고 노래하면서 부활을 축하하고 기뻐합니다. 
    
    그런데 부활의 기쁨과 감격만을 생각하다 보면 이제는 마치 모든 것이 다 끝나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완성된 상태가 된 것으로 착각할 수도 있습니다.
    부활은 일차적으로 하느님의 승리이지 우리의 승리는 아닙니다. 우리는 부활의 영광, 부활의 승리를 이룩하신 하느님의 그 승리 와 영광에 참여할 뿐입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셨다고 해서 우리 구원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아직도 구원의 길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구원의 완성을 바라보며 부활하신 예수님을 계속해서 새로운 모습, 새로운 방법으로 만나야 되고 그런 여정을 가야 됩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님을 누구보다도 사랑했습니다. 막달레나는 예수님을 만난 이후 예수님의 모습, 예수님의 얼굴, 또 예수님의 채취를 잠시도 잊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막달레가 무덤에 가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뵙고도 전혀 알아보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굉장히 빛나는 모습의 예수님도 아니고, 또 모습이 아주 달라진 그러한 예수님도 아닌데도 말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본 것은 예수께서 마리아를 부르실 때였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마리아야!’라는 그 소리를 듣고 비로소 눈이 열립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바라보았을 때 그 눈은 새로운 차원의 눈이었습니다.
    우리가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또 마리아처럼 새롭게 만나기 위해서는 부활하시기 전에 가졌던 그런 시각이 아닌 새로운 시각이 요구됩니다.
    이 새로운 시각은 새로운 회개를 뜻합니다. 우리가 사순절에는 사순절의 회개를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것을 부활의 회개로 바뀌어야 합니다.
    부활의 회개로! 이것이 오늘 제1독서가 베드로 사도를 통해 우리에게 전하는 말씀입니다.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저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여러분의 죄를 용서받으십시오. 그러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
    
    HAPPY EASTER !!!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본 것은 예수께서 마리아를 부르실 때
    였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마리아야!’라는 그 소리를 듣고 
    비로소 눈이 열립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바라보았을 때 그 눈은 새로운 차원의 눈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야!라고 부르셨던 그 음성으로...
    오늘 여기 모인 우리들도 부르고 계시는데 들리시나요↗
    

    우리가 응답을 하지 않을 뿐이겠지요... 이름만 불러주셔도 이렇게 새로운 차원의 눈이 열리는데... 그분이 저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는 것을 깨달아 보십시오! 영안(靈眼)이 뜨이지 않을 수 없답니다. 세상이 다르게 보입니다...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은 참 情스러븐 것 같습니다. 더구나 세례명까지 덧붙여 불러주면 얼마나 좋겠어요..*^^* 특히 녀자들은 결혼을 하고나면 누구의 엄마로 불리게 되니까... 이름이 불리워질 경우가 거의 없는 것 같아요..그래서 성인댁에서는 아이디를 이름과 세례명을 붙여서 만들어보았습니다.
    저는 무명 순교자들을 기리는 마음에서, 또 이름없이 일하기 위해서 [無 名]이라고 만들었습니다. 어느날, 순교성인댁을 맡아 주실 분이 오시면 [영숙 안나]라고 바꿀 것입니다.
    얼마전에서부터, 회사에서 만나는 소련 사람들의 이름을 물어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만날 때마다 이름을 불러주니..너무나 좋아하는군요. 자신의 이름을 잊어버리지 않고 기억해준다는 것이 좋을 것이고, 이름을 불 러줌으로써 마음의 벽이 허물어지더군요.빨리 친해지는 것 같았어요.
    
    “우리가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또 마리아처럼 새롭게 
    만나기 위해서는 부활하시기 전에 가졌던 그런 시각이 
    아닌 새로운 시각이 요구됩니다.”
    
    
    저는 오늘 새로운 시각이라는 말을 곱씹어봤습니다...
    밥데기로만 지내다가 직장이라는 곳을 나가게 되니 비로소 미국이란
    나라에 대해서 실감나게 느끼게 되더군요.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것들로 벌써 많은 것들을 겪어냈답니다. ^ ^
    
    어느 날인가는... Anndy라는 젊은 친구가 우리 시간대로 이동을 해왔습니다. 그 때 마침, 출퇴근 시간을 갑자기 엄격하게 체크하고 있던 때라서 동네조카처럼 느껴지기에 (제 별명이 동네이모,동네고모니까요*^^*) 시간들을 자세히 일러주었습니다.
    하하, 퇴근 시간쯤에 이상한 현상이 눈에 보이는 것입니다... 앤디라는 눔이 동료들과 무슨 이야기를 하는데~모두 저를 쳐다보는 것입니다. 저는 그 때까지 왜 그런지도 모르고, 퇴근해서 남편에게 이차저차해서 이런 일이 있었다고 이야기를 하니...
    남편 왈!... 그것은 보스가 이야기 해줘야 되는 것이지, 내가 해줘야 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살던 한국에서는 그것이 바로 情이고, 인간관계인데... 아니, 이 땅에서는 이야기들도 그렇게 구분되어져야 하는 것인지요.. 내가 해야 될 이야기가 있고, 하지 말아야 될 이야기가 있다는거예요.
    작업 공정에서도 많은 일들이 세분화 되어 구분이 되어져 있답니다... 네가 할 일과 내가 할 일이 딱딱 구분되어져서, 서로가 오버할 수가 없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저처럼 인간적인 따닷함으로 미리 챙겨주는 스타일은 적응이 잘 안되는 것입니다.
    제가 여기 도착했을 때. 남편은 첫번째로 신신당부하기를! '상대방이 말하지 않으면 절대로 이 쪽에서 먼저 묻는 것이 아니다!' 라는 것입니다. 그 공식이 얼마나 많은 곳에 대입되는지 모르겠어요.
    직장 동료가 결근을 했어두...다음날, 묻지를 말라는 것입니다. 사생활에 관해서는 절대로 먼저 묻는 것이 아니며, 집으로 찾아가겠 다는 둥, 그런 이야기는 하면 안되는 것이라네요. 상대방이 청할 때 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하, 저는 그것도 모르고, 벌써 일을 하나 저질러 놨습니다. 저보다 두 살 어린 Mary를 친구로 만들어서 이 봄에 집을 방문하기로 해놨거든요. 남편은 혼자서 가라는 것입니다...^ ^
    아무튼, 한국에 살 때와는 많은 것들이 다릅니다. 사람을 사귀게되면 집도 방문하고, 그 집 수저가 몇개인가, 우리 집 수저는 몇개인가를 조잘거리며 살았던 그 시절이 참말로 그립습니다.
    한국에서는 안방 마님의 팔자(?)가 제일 좋은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 땅은 능력있는 여자가 제일 좋은 팔짜입니다. ^ ^ 같은 아파트에 사는 한국인이 있어도 모두가 일을 하기 때문에 만날래야 만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고들의 전환이 필요한지 모르겠습니다. 어느 때는 당황스럽고, 어느 때는 짜증도 나고, 어느 때는 합리적!! 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리 살다보니 편한점도 많습니다.
    상처를 주고 받게되는 일들이... 서로에게 지대한 관심에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겠지요... 서로가 깊이 알려고 하지 않으니, 상처를 주고 받을 일도 적겠지요..
    만약 제가 예전의 생각들을 고집하고 산다면... 저는 이 땅에서 빨리 적응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묵상글에서 말씀하시는 새로운 시각으로 변화되지 않으면, 우리는 묵은 생활들을 청산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이 새로운 시각은 새로운 회개를 뜻합니다. 
    우리가 사순절에는 사순절의 회개를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것을 부활의 회개로 바뀌어야 합니다.”
    
    
    맞습니다. 회개가 아니고서야 어찌 변화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회개하는 마음은 눈물이 촉촉한 마음입니다. 성령을 받은 마음입니다.
    
    성령을 받은 이는... 자그마한 현상에서도 금새 금새 깨달음이 옵니다. 깨달음이라는 체험만큼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것이 있을까요...
    신앙은 체험하지 않으면... 단 한마디의 말도, 단 한 줄의 메모도 전할 수가 없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제자들에게 가서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 
    하면서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하신 이 말씀을 전하였다. 
    
    
    우리들도 전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끊임없이 부활을 체험하는 우리들이 되기를 두 손 모읍니다.
    마리아 막달레나처럼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라고 
    전하며 사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래봅니다...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저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여러분의 죄를 용서받으십시오.
    그러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아멘]
    
    
    우선 제 자신이 먼저 회개를 해야겠습니다.
    성령을 선물로 받고 싶거든요. 그러면 모든 
    일을 잘 해낼 수 있겠지요. 힘이 드는 요즘입니다...
    내일 다시 뵙겠습니다. 샬롬, 샬롬, 샬롬~!!!
    
    
    
    
    
    소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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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re><FONT color=black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b>부활 팔일축제 내 화요일-부활은 회개를 위한 새로운 시각을 준다</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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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요한 20,11­-18]</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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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가 묵상한 구절을 중심으로 싣습니다.)
    <pre><FONT color=black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
    그때에 천사들이 마리아에게 “여인아, 왜 우느냐?” 하고 묻자, 마리아가 
    그들에게 대답하였다.“누가 저의 주님을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 뒤로 돌아선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다. 
    <br>
    그러나 예수님이신 줄은 몰랐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여인아,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 하고 물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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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리아는 그분을 정원지기로 생각하고, 
    “선생님, 선생님께서 그분을 옮겨가셨으면 어디에 모셨는지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모셔가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br>
    예수님께서 “마리아야!” 하고 부르셨다. 
    마리아는 돌아서서 히브리 말로 “라뿌니!” 
    하고 불렀다. 이는 ‘스승님!’이라는 뜻이다. 
    <br>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 
    내 형제들에게 가서, ‘나는 내 아버지시며 너희의 아버지신 분, 
    내 하느님이시며 너희의 하느님이신 분께 올라간다’하고 전하여라.” 
    <br>
    마리아 막달레나는 제자들에게 가서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 
    하면서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하신 이 말씀을 전하였다. 
    <pre><FONT color=black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b>
    ※『야곱의 우물』冊에 나오는 《매일성서묵상》내용입니다.※
    <pre><FONT color=black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 
                          - 문호영 신부(예수의 성모관상수도원) -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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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오늘 부활 팔일 축제 3일째를 맞습니다. 우리는 부활 ‘기쁜 부활’
    이라고 말하고‘알렐루야! 이날이 주님께서 마련하신 날. 이날을 기뻐하며 
    춤들을 추자, 알렐루야!’라고 노래하면서 부활을 축하하고 기뻐합니다. 
    <br>
    그런데 부활의 기쁨과 감격만을 생각하다 보면 이제는 마치 모든 것이 다 
    끝나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완성된 상태가 된 것으로 착각할 수도 
    있습니다.
    <br>
    부활은 일차적으로 하느님의 승리이지 우리의 승리는 아닙니다. 
    우리는 부활의 영광, 부활의 승리를 이룩하신 하느님의 그 승리
    와 영광에 참여할 뿐입니다. 
    <br>
    예수께서 부활하셨다고 해서 우리 구원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아직도 구원의 길에 있습니다. 
    <br>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구원의 완성을 바라보며 부활하신 예수님을 
    계속해서 새로운 모습, 새로운 방법으로 만나야 되고 그런 여정을 
    가야 됩니다. 
    <br>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님을 누구보다도 사랑했습니다. 
    막달레나는 예수님을 만난 이후 예수님의 모습, 예수님의 얼굴, 
    또 예수님의 채취를 잠시도 잊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br>
    그런데 그런 막달레가 무덤에 가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뵙고도 
    전혀 알아보지 못합니다. 
    <br>
    예수님이 굉장히 빛나는 모습의 예수님도 아니고, 또 모습이 
    아주 달라진 그러한 예수님도 아닌데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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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본 것은 예수께서 마리아를 부르실 때였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마리아야!’라는 그 소리를 듣고 비로소 눈이 
    열립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바라보았을 
    때 그 눈은 새로운 차원의 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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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또 마리아처럼 새롭게 만나기 위해서는 
    부활하시기 전에 가졌던 그런 시각이 아닌 새로운 시각이 요구됩니다. 
    <br>
    이 새로운 시각은 새로운 회개를 뜻합니다. 우리가 사순절에는 사순절의 
    회개를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것을 부활의 회개로 바뀌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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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활의 회개로! 
    이것이 오늘 제1독서가 베드로 사도를 통해 우리에게 전하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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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저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여러분의 죄를 용서받으십시오. 그러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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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본 것은 예수께서 마리아를 부르실 때
    였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마리아야!’라는 그 소리를 듣고 
    비로소 눈이 열립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바라보았을 때 그 눈은 새로운 차원의 눈이었습니다.”</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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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께서 ‘마리아야!라고 부르셨던 그 음성으로...
    오늘 여기 모인 우리들도 부르고 계시는데 들리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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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r>
    우리가 응답을 하지 않을 뿐이겠지요...
    이름만 불러주셔도 이렇게 새로운 차원의 눈이 열리는데...
    그분이 저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는 것을 깨달아 보십시오!
    영안(靈眼)이 뜨이지 않을 수 없답니다. 세상이 다르게 보입니다...
    <br>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은 참 情스러븐 것 같습니다.
    더구나 세례명까지 덧붙여 불러주면 얼마나 좋겠어요..*^^*
    특히 녀자들은 결혼을 하고나면 누구의 엄마로 불리게 되니까...
    이름이 불리워질 경우가 거의 없는 것 같아요..그래서 성인댁에서는
    아이디를 이름과 세례명을 붙여서 만들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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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무명 순교자들을 기리는 마음에서, 또 이름없이 일하기 위해서 
    [無 名]이라고 만들었습니다. 어느날, 순교성인댁을 맡아 주실 분이
    오시면 [영숙 안나]라고 바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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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전에서부터,
    회사에서 만나는 소련 사람들의 이름을 물어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만날 때마다 이름을 불러주니..너무나 좋아하는군요. 자신의
    이름을 잊어버리지 않고 기억해준다는 것이 좋을 것이고, 이름을 불
    러줌으로써 마음의 벽이 허물어지더군요.빨리 친해지는 것 같았어요.
    <pre><FONT color=brown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b>
    “우리가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또 마리아처럼 새롭게 
    만나기 위해서는 부활하시기 전에 가졌던 그런 시각이 
    아닌 새로운 시각이 요구됩니다.”</b>
    <pre><FONT color=#005e77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저는 오늘 <b>새로운 시각</b>이라는 말을 곱씹어봤습니다...
    밥데기로만 지내다가 직장이라는 곳을 나가게 되니 비로소 미국이란
    나라에 대해서 실감나게 느끼게 되더군요.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것들로 벌써 많은 것들을 겪어냈답니다. ^ ^
    <br>
    어느 날인가는...
    Anndy라는 젊은 친구가 우리 시간대로 이동을 해왔습니다.
    그 때 마침, 출퇴근 시간을 갑자기 엄격하게 체크하고 있던 때라서
    동네조카처럼 느껴지기에 (제 별명이 동네이모,동네고모니까요*^^*)
    시간들을 자세히 일러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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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하, 퇴근 시간쯤에 이상한 현상이 눈에 보이는 것입니다...
    앤디라는 눔이 동료들과 무슨 이야기를 하는데~모두 저를 쳐다보는
    것입니다. 저는 그 때까지 왜 그런지도 모르고, 퇴근해서 남편에게
    이차저차해서 이런 일이 있었다고 이야기를 하니...
    <br>
    남편 왈!...
    그것은 보스가 이야기 해줘야 되는 것이지, 
    내가 해줘야 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br>
    내가 살던 한국에서는 그것이 바로 情이고, 인간관계인데...
    아니, 이 땅에서는 이야기들도 그렇게 구분되어져야 하는 것인지요..
    내가 해야 될 이야기가 있고, 하지 말아야 될 이야기가 있다는거예요.
    <br>
    작업 공정에서도 많은 일들이 세분화 되어 구분이 되어져 있답니다...
    네가 할 일과 내가 할 일이 딱딱 구분되어져서, 서로가 오버할 수가
    없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저처럼 인간적인 따닷함으로 미리 
    챙겨주는 스타일은 적응이 잘 안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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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여기 도착했을 때. 남편은 첫번째로 신신당부하기를!
    '상대방이 말하지 않으면 절대로 이 쪽에서 먼저 묻는 것이 아니다!'
    라는 것입니다. 그 공식이 얼마나 많은 곳에 대입되는지 모르겠어요. 
    <br>
    직장 동료가 결근을 했어두...다음날, 묻지를 말라는 것입니다.
    사생활에 관해서는 절대로 먼저 묻는 것이 아니며, 집으로 찾아가겠
    다는 둥, 그런 이야기는 하면 안되는 것이라네요. 상대방이 청할 때
    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br>
    하하, 저는 그것도 모르고, 벌써 일을 하나 저질러 놨습니다.
    저보다 두 살 어린 Mary를 친구로 만들어서 이 봄에 집을 방문하기로
    해놨거든요. 남편은 혼자서 가라는 것입니다...^ ^
    <br>
    아무튼, 한국에 살 때와는 많은 것들이 다릅니다. 사람을 사귀게되면
    집도 방문하고, 그 집 수저가 몇개인가, 우리 집 수저는 몇개인가를
    조잘거리며 살았던 그 시절이 참말로 그립습니다.
    <br>
    한국에서는 안방 마님의 팔자(?)가 제일 좋은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 땅은 능력있는 여자가 제일 좋은 팔짜입니다. ^ ^ 같은 아파트에 
    사는 한국인이 있어도 모두가 일을 하기 때문에 만날래야 만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br>
    얼마나 많은 사고들의 전환이 필요한지 모르겠습니다.
    어느 때는 당황스럽고, 어느 때는 짜증도 나고, 어느 때는 합리적!!
    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리 살다보니 편한점도 많습니다.
    <br>
    상처를 주고 받게되는 일들이...
    서로에게 지대한 관심에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겠지요...
    서로가 깊이 알려고 하지 않으니, 상처를 주고 받을 일도 적겠지요..
    <br>
    만약 제가 예전의 생각들을 고집하고 산다면...
    저는 이 땅에서 빨리 적응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묵상글에서 말씀하시는 새로운 시각으로 변화되지
    않으면, 우리는 묵은 생활들을 청산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pre><FONT color=brown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b>
    “이 새로운 시각은 새로운 회개를 뜻합니다. 
    우리가 사순절에는 사순절의 회개를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것을 부활의 회개로 바뀌어야 합니다.”</b>
    <pre><FONT color=#005e77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맞습니다. 회개가 아니고서야 어찌 변화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회개하는 마음은 눈물이 촉촉한 마음입니다. 성령을 받은 마음입니다.
    <br>
    성령을 받은 이는...
    자그마한 현상에서도 금새 금새 깨달음이 옵니다.
    깨달음이라는 체험만큼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것이 있을까요...
    <br>
    신앙은 체험하지 않으면...
    단 한마디의 말도, 단 한 줄의 메모도 전할 수가 없습니다.
    <pre><FONT color=red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b>
    마리아 막달레나는 제자들에게 가서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 
    하면서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하신 이 말씀을 전하였다. </b>
    <pre><FONT color=#005e77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우리들도 전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끊임없이 부활을 체험하는 우리들이 되기를 두 손 모읍니다.
    마리아 막달레나처럼 <b>“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b>라고 
    전하며 사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래봅니다...
    <pre><FONT color=brown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b>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저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여러분의 죄를 용서받으십시오.
    그러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아멘]</b>
    <pre><FONT color=#005e77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우선 제 자신이 먼저 회개를 해야겠습니다.
    성령을 선물로 받고 싶거든요. 그러면 모든 
    일을 잘 해낼 수 있겠지요. 힘이 드는 요즘입니다...
    내일 다시 뵙겠습니다. 샬롬, 샬롬, 샬롬~!!!
    <pre><FONT color=005e77 face=돋음체 style="FONT-SIZE: 9pt">
    <A href="http://cafe.daum.net/Coreansanctus" target=bl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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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rpcode=Coreansanctus&imgType=logo&time=11272535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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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r>
    <UL>103위 한국순교성인</A></UL></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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