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 보이지 않는 눈동자 ◆
작성자김혜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6-04-18 조회수688 추천수6 반대(0) 신고

 

 

 

   어느 날 아침에,

전날 책상 속에 넣어둔 반 아이들의 도화지가 몽땅 없어진 사건이 발생하였다.

선생님이 들어 오시자 아이들은 도화지  도난사건을 신이 나서 떠들어댔다.

선생님은 묵묵히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를 듣고 계시더니 조용한 음성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얘들아, 그렇게들 떠든다고 없어진 도화지가 하늘에서 떨어지겠니?

 모두들 제 자리에 앉아서 눈을 감고 있어라."

 

선생님의 말씀이 어찌나 고요하고 엄숙했던지

우리 모두 쥐죽은 듯, 조용히 제자리에 앉아서 눈을 감고 있었다.

선생님은 말씀을 계속하셨다.

 

"너희들은 지금 눈을 감고 있다.

너희들 중에는 도화지를 가져간 사람이 있지만, 다른 친구들이 부끄러워

고백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너희들은 도화지 몇 장 잃어버린 것이 아까워서 슬픈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보다는 한반에서 다정히 지내는 친구를 믿을 수 없다는 슬픔이 더 크리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도화지를 가져간 사람은 또 그만한 사정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누구든지 한 번은 실수를 한다.

우리는 신이 아니고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도 어려서 친구의 연필을 훔쳐 쓴 적이 있다.

한두 번의 도둑질은 우리의 인생에서 누구나 경험하는 일이다.

우리들은 도화지를 가져간 사람을 용서하기로 하자.

자 모두들 그렇게 할 수 있겠지?"

 

우리들은 그때 눈을 감은채 모두들 '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면" 하고 선생님은 또 말씀을 이으셨다.

 

"모두들 눈을 떠라,

그리고 내가 종이 쪽지를 나누어 줄 터이니 거기에 자기 이름을 쓰고

도화지를 가져간 사람은 '+'를, 잃어버린 사람은 '-'를 쓰고

잃어버린 장수를 표시하여라."

 

그 다음날 아침,

우리가 교실에 들어가 우리들의 책상을 열었을 때

우리 모두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리들의 책상 속에는 잃어버린 도화지가 다시 곱게 있었기 때문이었다.

선생님은 도화지 사건에 대해서 일체 말하지 않도록 당부하셨기 때문에

우리들은 다른 날과 같이 그림 지도를 받으며 도화지 사건을

망각 속에 묻어 버렸다.

 

그리고 여러 날이 흘러갔다.

우리들의 그림 실력이 날로 좋아진다고 선생님은 기뻐하셨고

그중에서도 석이의 그림은 항상 선생님의 칭찬거리였다.

 

교내 미술전람회가 열리는 날이 다가왔다.

그날은 우리 반의 미술실력을 평가받는 날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날 아침 우리들은 기쁨과 슬픔을 반쪽씩 맛보아야 했다.

아니 어쩌면 기쁨은 슬픔 속에 가려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고 말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조회시간에 담임 선생님은 이렇게 발표하셨다.

 

"오늘 열린 교내 미술대회에서 우리 반의 석이가 특등을 차지했다."

"아! 신난다."

우리들은 환호성을 쳤다.

"이놈들!"

그러나 선생님의 불호령이 고막을 무섭게 울려왔다.

"그래 너희들은 석이의 특등은 기뻐할 줄 알면서 석이가 오늘 결석을 했는지 않했는지는 생각도 않느냐?

 

그제야 우리는 석이의 자리를 보았다.

그자리는 텅 빈채였다.

선생님은 말씀을 계속하셨다.

 

"집안이 가난하고 몸이 많이 아픈 석이는 병원에 갈 돈이 없었다.

그애는 때로 도화지를 사오지도 못했다.

지난번에 너희들이 잃어버린 도화지는 석이가 가져간 것이었다.

그런데 석이가 가져간 도화지는 쉰 다섯 장이었고,

너희들이 잃어버렸다는 도화지는 모두 일흔 두 장이나 되었다.

석이는 일흔 두 장을 너희에게 갚았다.

그러나 너희들은..

석이의 회개하는 마음에서

열 일곱장의 도화지를 훔친 것이다."

 

그날 이후 석이의 모습은 다시는 교실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삼십 여년이 넘는 오늘까지 석이의 환영은..

내가 정직한 생활에서 벗어나려 할 때마다,

내 가슴속에 살아나서

나의 영혼을 지키는 성령의 눈빛이 되어 있었다.

 

- 이 수필은 심재기(沈在箕) 교수님이 쓰신 것입니다.

  회개하는 마음을 훔치는 잘못을 저지른 이 이야기의 여운이 제게도

  오래 남아 있었기에 오늘 다시 꺼내 보았습니다 -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