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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너희들이 인간이냐?
작성자양승국 쪽지 캡슐 작성일2006-04-14 조회수1,013 추천수18 반대(0) 신고
4월 14일 주님 수난 성 금요일-요한 18장 1-19장 42절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너희들이 인간이냐?>


큰 수술을 마친 후 절대안정이란 팻말을 달고 일주일 가까이 중환자실에 계셨던 한 신부님께서 일반병실로 빠져나오신 다음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똑바로 누워있는 것 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며칠간이 정말 끔찍했지만,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잘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고통이 얼마나 혹독한 것이었는지 조금은 알 수 있었기에 감사합니다.”


십자가형, 인간이 만들어낸 여러 가지 처형방법 가운데 가장 끔찍한 것이었습니다. 로마제국에서는 탈영병, 살인자, 폭동가, 혁명가, 강도 등 죄질이 가장 악한 사람들에게 내려지던 최고형이었습니다.


본격적인 십자가 형벌이 시작되기 전, 보통 병사들은 죄수를 낮은 기둥에 묶습니다. 사형집행에 앞서 채찍질을 시작합니다. 가죽채찍이나 끝에 작은 납 구슬을 단 채찍이 주로 사용되었는데, 채찍은 사형수들의 등, 가슴, 머리, 배를 향해 내리쳤습니다. 단 한 번의 채찍질로도 피부는 터지고 파열되었습니다. 몇 차례의 채찍질만으로도 온 몸은 피투성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십자가형에 처해지는 죄수는 먼저 가로로 된 나무에 어깨와 양손을 고정시킵니다. 그리고 빌라도의 총독관저에서 갈바리아 언덕까지 약 600미터 가량 되는 거리를 걸어 올라가야 했습니다. 채찍을 든 병사들은 죄수가 딴 짓 하지 못하도록 눈에 불을 켜고 따라갔으며, 군중들은 길가에 나와 구경을 하곤 했습니다.


사형 집행장에 도착한 죄수는 미리 세어져있는 세로 기둥에 끌어올려져 양손과 발이 끈으로 묶입니다. 그리고는 양손과 발에 긴 못을 단단히 박습니다. 손과 발은 예민한 부위인 만큼 못 박힘으로 인한 사형수의 고통은 상상할 수조차 없을 만큼 극심한 것이었습니다. 손과 발에 못이 들어와 박히는 순간, 얼마나 통증이 심했던지 사형수들이 내지르는 비명은 하늘을 찌를 듯 했습니다.


육체적인 통증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지만, 예수님께서 느끼셨던 정신적 고통은 더 큰 것이었습니다. 십자가형을 집행한 병사들은 예수님께서 걸치셨던 통으로 짠 속옷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심지를 뽑았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십자가 밑에는 어머니 마리아와 세심히 예수님을 뒷바라지해주었던 사랑하던 여 제자들도 서있었습니다. 참으로 난감한 순간이 흘러갔습니다.


십자가형에 처해진 사람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고통은 갈증이라고 합니다. 수없이 흘린 피와 땀으로 기진맥진해진 예수님께서 “목마르다”고 외치시니 병사들이 하는 행동을 보십시오.


짐승들도 입대지 않는 시어빠진 포도주를 해면에 적십니다. 그것을 막대기 끝에 끼워 예수님 입에 갖다 댑니다. 지나다니는 개에게도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너희들이 인간이냐?’ 말이 절로 나옵니다.


요한 수난기를 천천히 읽다보니 정말 가증스런 유다인들의 만행이 손에 잡힐 듯 잘 묘사되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총독 빌라도에게 데려왔을 때, 빌라도는 예수님에게서 아무런 죄목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잔악하기로 유명했던 빌라도였지만, 아무런 죄도 없는 사람에게 사형을 언도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예수님을 풀어주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유다인들은 집요하게 빌라도를 물고 늘어졌습니다. 처음에는 제발 십자가형에 처해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아부성이 짙은 말까지 던져가면서 말입니다. 말이 먹혀들지 않자 유다인들은 또 다른 술수를 꾸밉니다. 정치적인 고발이 아니라 종교적인 고발로 방향을 바꿉니다. 그것도 여의치 않자 협박까지 서슴없이 감행합니다.


“그 사람을 풀어주면 총독께서는 황제의 친구가 아니오.”


할 수 없이 빌라도는 예수님에게 채찍을 가할 것을 명합니다. 이루 다 셀 수도 없이 많은 채찍질에 몸도 제대로 가눌 수 없게 된 예수님, 조롱의 표시로 가시관에다 홍포까지 걸친 예수님을 유다인들 앞에 내세우며 빌라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자, 이 사람이오.”


이 정도 했으면 군중들 마음이 풀어졌겠지 하고 빌라도가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습니다. 군중들은 더욱 길길이 뛰며 외쳤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어떻게 해서든 예수님을 풀어줄 방도를 찾았던 빌라도였지만 마침내 집요한 유다인들 앞에 백기를 들고 맙니다.


오늘 주님 수난 성금요일을 맞아 수난복음을 읽고 또 읽어보았습니다. 정녕 통탄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께서 다른 누구도 아닌 그토록 애지중지하셨던 동족들로부터 인정사정없는 뭇매를 맞고 있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자신이 빚어 만드신 피조물인 한 인간으로부터 사형선고를 받고 있습니다.


참으로 큰 신비이며 큰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복종하시다니요.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이토록 무능하시다니요. 이토록 맥없이, 이토록 무력하게 고개를 떨어트리시다니요.


인간의 머리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신비의 십자가 앞에 오늘 저 역시 무릎을 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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