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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232
작성자김명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9-08-26 조회수351 추천수4 반대(0) 신고

오늘의 묵상입니다.[연중 제 21주간 수요일]

<너희는 예언자들을 살해한 자들의 자손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3,27-32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27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겉은 아름답게 보이지만, 속은 죽은 이들의 뼈와 온갖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차 있는 회칠한 무덤 같기 때문이다. 28 이처럼 너희도 겉은 다른 사람들에게 의인으로 보이지만, 속은 위선과 불법으로 가득하다.

29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예언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묘를 꾸미면서, 30 ‘우리가 조상들 시대에 살았더라면 예언자들을 죽이는 일에 가담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고 말하기 때문이다. 31 그렇게 하여 너희는 예언자들을 살해한 자들의 자손임을 스스로 증언한다. 32 그러니 너희 조상들이 시작한 짓을 마저 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지난 토요일 복음부터 주간 복음으로 선정된 마태 23장은 오늘 복음을 끝으로 중도에서 끝나므로 미처 마무리를 못하고 23장은 끝나고 있습니다. 한 장소에서 행하신 말씀은 그날 선포하신 말씀의 전체 맥락 속에서 묵상하여야 바른 묵상을 할 수 있으나 매일매일 선정된 당일 복음만 가지고는 그 의미를 제대로 묵상하는데 는 한계가 있으므로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고 숲을 논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이 들곤 합니다. 하여 오늘은 마태 23장의 전체의 의미를 묵상하고 있습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를 비난하신 이유에 대하여는 높은 자리에 앉자서 대접받기만 좋아한다고 하셨습니다. 사실 우리도 입으로는 세상 어느 성인 못지않은 성인이 될 수 있습니다. 입으로는 원수도 사랑하고 불쌍한 이웃을 내 자신처럼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천하지 못하므로 성인들과 차이가 있습니다. 이런 사실을 인정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부족함을 알기 때문에 자신을 드러내 보이지 않고 늘 겸손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입으로만 사는 사람들은 온갖 치장으로 남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하고 높은 자리에 앉자서 대접만 받으려고 할 것이고 이런 사람들을 총칭하여 율법학자로, 이들을 추종하는 사람들을 바리사이들로 말씀하신 것으로 묵상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생각하시기에는 한치 앞도 보지 못하는 참으로 보잘 것 없는 지식으로 민중들 위에 군림하므로 가소롭기 그지없었을 것입니다. 실정이 이러하므로 제자들에게 당부하신 말씀은 자신을 낮춰서 섬기는 사람이 되라고 당부하셨으며 다른 사람과 차별적인 대우를 받는 그 어떤 호칭도 가져서는 안 된다고 하시며 심지어는 선생 칭호도 받아서는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모두는 동등한 형제이므로 그 어떤 차별적인 지위나 신분상 우월적인 호칭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양들의 세계에서는 그 어떤 지위나 직책도 없으나 우리 인간 사회에는 무수히 많은 지위와 신분적 호칭이 있으며 이런 지위와 신분적 호칭은 태초부터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이런 지위와 호칭이 존재하는 것은 지배의 산물이므로 이런 지배가 존재하는 한, 하늘 나라는 불가능하므로 지위나 신분으로 대접을 받아서는 안 되며 그러기 위해서는 그 어떤 지위나 신분상의 호칭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입니다. 이를 강조하기 위해서 아버지도 한 분이신 아버지만 아버지이시므로 그 누구도 아버지로 부르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마리아와 형제들이 찾아 온 소식을 듣고도 누가 내 어머니며 형제들이냐고 제자들에게 물었던 것으로도 묵상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순종으로 대표되는 지금 우리 교계제도와는 달라도 이렇게 다른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말씀과 교회 현실이 이처럼 다르기 때문에 종교개혁 이전에는 일반인들은 성경을 접하지 못하게 하였던 것 같습니다. 복음을 매일 접하는 지금도 말씀과 다른 교회 현실에는 침묵하고 있으므로 세상 일에는 더욱 더 침묵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율법학자들은 하느님의 뜻과는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으므로 그들에게 저주에 가까운 비난을 하고 계시며 이들이야 말로 하늘 나라를 건설함에 있어서 가장 장애가 되는 사람들로 선포하고 계십니다. 높은 자리만 차지하고 앉자서 대접만 받고 있는 자들이 되지 말라는 말씀이므로 수직사회를 철저하게 배척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섬겨야 할 분은 오직 하느님 한 분임에도 우리는 지위로, 신분으로 사람을 섬기고 있으므로 하느님의 뜻과 다른 사람들의 지시도 따라야 하므로 하느님을 제대로 섬길 수 없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지위나 신분으로 사람을 평가하여 대접하는 사람들이 있으므로 대접받는 사람들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대접하는 사람들도 하늘 나라 건설에 역행하는 자들이고 이들이 바로 바리사이들이며 이들의 특성은 기회만 있으면 자신도 그렇게 대접 받으려고 할 것이므로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동일선상에서 비난하고 계십니다.

지금 우리는 어느 특정 지위에 있거나 어느 특정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부도덕한 사람들로 비난하는 경우가 많이 있지만 우리들 자신이 그 자리에 있다면 우리 역시 그들과 똑같은 사람이 될 수밖에 없으므로 율법학자가 따로 있고 바리사이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또 모두가 그렇게 되기 위해서 자리를 놓고 그토록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학자와 이들을 추종하는 바리사이들의 행위를 구체적으로 열거하며 불행선언 일곱 가지를 선포하셨으며 오늘 복음은 어제에 이어 여섯 번째와 일곱 번째의 불행선언을 하고 계십니다. 오늘 복음 선정에서 제외된 이하 말씀에서 예수님은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를 아예 '독사의 자식들'이라 하였습니다. 가소로운 지식으로 치장하여 군중들 위에 군림하며 착취를 일삼는 자들을 그토록 저주하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어제 마지막 말씀인 "겉은 다른 사람들에게 의인으로 보이지만, 속은 위선과 불법으로 가득하다." 는 말씀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제발 위선자처럼 겉과 속이 다른 표리부동한 사람이 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모두는 다 위선자이지만 그중에서도 높은 자리에 앉자있는 사람이 더 위선자라는 말씀으로 묵상하고 있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며 느낀 점은 사람 못된 자들이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아랫사람으로부터 존경 받는 사람은 도태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높이 올라갈 때는 성취감을 느끼겠지만 그만큼 추락의 고통도 더 크므로 이런 자들은 장차 더 큰 불행을 맞이할 것입니다. 돈 많은 재벌들은 그 많은 재산을 남겨두고 억울해서 어떻게 하느님을 뵈려 갈 수 있을까요? 이를 극복하지 못하므로 더 큰 고통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불행선언 일곱 가지를 하나로 요약하면 위선적인 행위를 하지 마라는 말씀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위선은 그나마 선 자체는 의식하고 있지만 지금 우리 사회는 이런 위선마저도 실종되고 오직 힘으로 밀어붙이는 막가파식으로 나아가고 있으므로 위선을 비난하는 것조차 사치로 느껴집니다. 선 그자체이신 예수님은 갈수록 우리와 멀어지고 있으므로 선을 찬미하는 세상이 되지 않고서는 "정녕 나를 다시는 보지 못할 것이다.”하신 23장의 마지막 말씀으로 오늘 묵상을 마무리합니다.  

대자대비하신 아빠 하느님!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은 위선자가 되지 말라고 하셨으나
위선자가 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참담한 현실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을 개선하려는 저희들의 힘이 너무 미약하여
주님의 가르침이 공허하게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저희 모두가 주님의 가르침으로 한 마음이 되어
주님이 바라셨던 하늘 나라에서 살 수 있도록
부디, 성령으로 하나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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