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연중 제24주일 회개와 용서
작성자원근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0-09-14 조회수351 추천수2 반대(0) 신고


연중 제24주일 회개와 용서



    많은 군중이 예수님과 함께 길을 가는데,
    오, 나의 예수님,
    저는 신앙생활을 통해
    자신의 만족만을 찾았습니다.

    이제 오로지 당신만을 사랑하기를 갈망합니다.
    하지만 저는 약합니다.
    당신께서 제게 사랑을
    이룰 수 있는 힘을 주셔야 합니다.
    제가 당신을 사랑할 수 있게 하시고,
    그 이외에는 어떤 것도 바라지 않게 해주십시오.

 

 

    ★ “회개와 용서” ★ 예수께서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 허덕이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삶 에 대한 기쁜 소식 즉 복음을 전하시자, 예수님 주변에 병자와 죄인 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께서 죄인들과 함께 어울린다는 사실을 못마땅해 합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죄인들과 어울리시는 이유를 명백하게 밝히십니다.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보다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는 것을 하늘에서는 더 기뻐할 것이다."(루가15,7) 하느님께서 죄인들의 회개를 원하시기 때문에 예수께서 그들을 회개 하도록 인도하시기 위해 가까이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아울러, 예수께서는 탕자의 비유를 통해서 하느님 아버지의 한없이 자비로우신 마음을 설명하시면서 우리를 회개로 초대하십니다. 둘째 아들이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거지 신세가 되었지만 아버지는 그 아들을 도와주지 않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갔을 때 따뜻하게 맞아 주었습니다. 이 말씀에는 하느님께서 아무리 자비로우신 분이라 하더라도 본인이 스스로 회개하여 아버지께 돌아가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뜻이 숨겨 있는 것입니다. 한 가지 더 알아야 할 것은 형제에게 자비로운 사람이 되라는 말씀 입니다. 둘째 아들을 환대하시는 아버지의 처사에 불만을 품은 첫째 아들에게 건네는 아버지의 말씀이 바로 그 점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모두 네 것이 아니냐? 그런데 네 동생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 왔으니 잃었던 사람을 되찾은 셈이다. 그러니 이 기쁜 날을 어떻게 즐기지 않겠느냐?" (루가15,31-32) 사람들은 누군가 잘못한 일이 있을 때 즉시 처벌하기를 원하고, 다시는 잘못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하곤 합니다. 그런데 그 잘못한 사람이 자기 자신일 경우에 그렇게 처벌하라고 얘기하는 사람은 거의 볼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도 회개의 기회를 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신도 회개하고 형제에게도 회개할 기회를 주는 한 주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1
    이 야 기 깨어진 독 값

    작년 가을 김장철이 다가왔을 무렵의 일이다. 어떤 지게꾼이 김장독을 지고 건물 옥상까지 오르다 좁은 계단에서 떨어져 큰 부상을 입었다. 아마도 어두운 좁은 계단인 데다가 영양 실조로 시력이 흐려지고 다리가 떨려서 발을 헛디딘 모양이었다. 피투성이가 되어 병원에 실려 온 그 지게꾼은 동맥이 끊어져 있었고, 출혈성 쇼크로 빈사 상태에 빠져 있었다. 나는 의사의 입장에서 최선을 다해 동맥을 잇고 근육과 피부를 꿰매어 응급치료를 했다. 치료를 마치고 수술실 밖으로 나오는데 웬 남루한 차림의 아주머니가 뛰어 들어와 나를 붙들고 말했다. “어떻게 해서든지 금년엔 김장을 담그려고 겨우 독 값을 마련했는데, 독이 깨졌다니 독 값은 어떻게 해요?” 처음에 지게꾼의 아내인 줄 알았던 나는 그 말을 듣고 어리둥절해졌다. 지게꾼의 입장에서는 분명히 큰 재난이고, 병원 측으로선 이런 경우 치료비는 대개 인정상 받지 못하고 끝내야 했다. 그런데 지금 이 아주머니의 머릿속은 깨어진 독만으로 가득 차있는 모양이었다. 내가 말했다. “아주머니 사정도 딱하긴 하지만 저 환자의 형편도 말이 아니군요. 겨우 목숨을 건진 셈인데 하루벌이 하는 사람이 돈이 있겠어요?” 아주머니는 그제야 정신이 든 듯 진정 미안하다는 표정을 짓고 말 없이 돌아갔다. 환자가 의식을 찾은 뒤에 집을 알아보니 충청도 어느 시골이었다. 그는 식구들과 헤어져 서울로 올라와 남대문 노무자 숙소에 거처를 정한 지 한 달도 채 안되었다는 것이었다. 며칠 뒤 환자의 동생이 나타나 간병을 하게 되고, 환자는 한 열흘쯤 치료를 받고 나서 시골로 내려가게 되었다. 그런데 막상 떠난다는 날짜가 되어도 동생은 여비를 못 구했는지 퇴원을 하루 이틀 미루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독주인 아주머니가 느닷없이 병원에 찾아왔다. “의사 선생님, 얼마 안 되지만 환자 치료비에 보태주세요. 금년에는 꼭 김장을 담그려고 했는데 이렇게 됐으니 김장은 내년부터 담그기로 하고 김장을 담그려고 모아 둔 돈을 여기 가져왔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모습은 성스럽기까지 했고, 그 음성은 두고두고 내 귀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작은 이야기] 중에서)
    [복음생각] : 탕자처럼 방황할 때도 오늘 복음을 묵상하다가 노랫말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자주 흥얼대던 '탕자처럼'이란 제목의 복음성가 가락이 떠올랐습니다. "탕자처럼 방황할 때도 애타게 기다리는/부드러운 주님의 음성이 내 맘을 녹이 셨네 / 오! 주님, 나 이제 갑니다. 날 받아 주소서/이제는 주님만 위하여 이 몸을 바치리다." 당신께로 발길을 돌릴 때마다 단 한 번도 내치지 않으셨던 그분은 진정 자비의 주님이셨습니다. 당신께 하소연할 때마다 조용히 제 눈에서 눈물을 닦아 주시던 분, 따뜻하게 감싸 안아 주시던 그분은 진정 연민의 주님이셨습니다. 제가 아무리 못할 짓을 했어도 기다려 주셨던 주님, 제가 아무리 거스르는 짓을 했어도 눈감아 주셨던 그분은 진정 인내의 주님이셨습니다. 이런 사랑의 주님을 두고 너무도 자주 한눈을 팔고, 딴 길을 갔었던 지난날들을 다시 한 번 뉘우칩니다. "오! 주님, 나 이제 갑니다. 날 받아 주소서" 하고 외치면서 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작은아들이 보였던 행동은 인간으로서 도저히 해서는 안될 행동, 어처구니없는 행동, 한마디로 막가는 행동이었습니다. 이 세상 그 어떤 사회에서도 '유산'이란 부친이 세상을 떠난 후에 고려하는 것이 기본 도리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작은 아들은 아직 아버지가 멀쩡히 살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 몫의 유산을 챙겨 아버지를 떠나갑니다. 이 말은 이제 '당신은 당신, 나는 나'란 말과도 같습니다. 결국 남남이 되었다는 말, 부자간 인연을 끊었다는 말과도 일맥상통 합니다. 작은 아들이 떠나간 후 남은 아버지가 느꼈던 심정은 어떤 심정이었겠습니까? '참담함'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짐'이었겠지요. 완전히 '맛이 간' 작은 아들이었기에 챙겨 온 거금도 순식간에 사라 지고 말았습니다. 수중에 땡 전 한 푼 남지 않게 되었을 때야 작은 아들은 자신이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는지 자각합니다. 타향에서 알거지가 된 작은 아들은 너무도 배가 고픈 나머지 돼지들 이나 먹는 '짬 밥'으로 겨우겨우 연명하게 됩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최악의 상황, 인생의 가장 밑바닥에서 작은 아들은 아버지를 떠올립니다. 아버지의 따뜻한 품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부끄럼을 무릅쓰고 아버지께로 발길을 돌립니다. 회개 과정에서 우리 자신의 잘못에 대한 철저한 반성도 매우 중요 합니다. 앞으로는 정말 정도(正道)를 걸어야겠다는 굳은 결심도 중요 합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한없이 자비로우신 아버지께로 우리 얼굴을 돌리는 일'입니다. 진정 수치스럽고 면목 없는 일이겠지만 아버지 집으로 발길을 돌려야겠다고 결심하는 일이 야말로 회개의 가장 본질적 요소입니다. 회개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향해 얼굴을 돌리는 일이 아니라 태초부터 주의 깊게 우리를 바라보고 계시는 그분을 향해 우리 얼굴을 돌리는 일입니다. 그분의 자비로운 눈길에 우리 시선을 맞추는 일입니다. 세상으로 향했던 우리 얼굴, 악에 기울었던 우리 마음을 다시 한 번 아버지 쪽으로 돌리는 일이 바로 회개의 핵심입니다. 둘째 아들이 아버지께로 돌아가고자 했던 일차 목표는 다분히 표면 적인 것이었습니다. "여기 그대로 있다가는 굶어 죽는 것은 시간문제이겠구나. 아버지 집에는 먹을 것이 좀 많았던가? 빨리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서 종으로라도 지내면서 우선 이 지긋지긋 한 배고픔에서 벗어나자"며 아버지 집으로 발길을 돌립니다. 정확하게 구분하자면 이때까지 작은 아들은 회개의 순간에 도달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언제 작은 아들의 회개가 시작되었습니까? 집으로 돌아온 자신을 대하는 아버지의 모습-이제나 저 제나 작은 아들이 돌아올까 목을 쭉 빼고 기다리다가 멀리서 작은 아들이 힘 없이 돌아오는 모습을 확인한 아버지가 맨발로 뛰어나오는 모습을 보고 둘째 아들은 회개를 시작합니다. 이렇게 참된 회개는 우리가 정확한 하느님 모습, 자비 충만한 하느님 아버지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비로소 시작됩니다. 결국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하심, 선하심으로 인해 우리는 회개를 시작합니다. 이 은총의 가을,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 가득한 눈길에 우리 시선을 고정시키는 은혜로운 나날 되길 바랍니다. -까따꿈바 묵상-

    ................................ 기 도 주님, 아무리 잘못한 일이 있다 하더라도 회개하기를 포기하지는 말게 하소서. 저희 죄가 간악하고 교활하지만 하느님의 자비가 더 크시기에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간 탕자를 생각하며 하느님 아버지께 돌아가나이다. 주님, 한없이 자비로우신 아버지의 품을 벗어나지 않도록 이끌어 주소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