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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69 ) 소금 단상
작성자유정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6-04-11 조회수612 추천수5 반대(0) 신고

 

29년전 친정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나서 삼우제까지 지내고 서울로 오는 나에게 어머니는 일러주셨다.

집에 들어가서 바로 소금 뿌리거라!

그때 두살박이 아들아이가 우두를 맞은지 얼마 안되어 초상 치루는 내내 심하게 앓는걸 보신 어머니는 아마 외손자가 걱정이 되셨나 보았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어쩔 수 없다 치고 어린 외손자가 부정을 타서 혹시라도 병이 더 깊어지지 않을까 생각하셨을까!

그리고 항상 초상집에 다녀 집에 들어갈 때는 먼저 화장실부터 들어갔다 나오라는둥, 소금을 현관에 뿌리라는 둥, 종교가 없는 어머니는 다소 미신같은걸 믿는지도 모르겠다. 모두가 자식의 안위를 염려하는 마음이었다.

 

소금에는 참 명칭도 많다.

천일염, 정제염, 꽃소금, 기계염, 염화칼슘. 염화마그네슘, 공업용 소금.

미용소금도 있다고 한다.

맛자지 소금도 있고, 반신욕 입욕소금, 사우나용 소금.

그런가 하면 구운 소금도 있다.

 

아주 옛날 물물교환을 하던 시절쯤 어느 지역에선 소금이 화폐의 기준이 되었다는 말을 들은것 같다. 너무 흔해 대수롭지 않은듯 한 소금의 위상을 높여준 것은 성경말씀이다.

빛과 소금같은 존재가 되라고, 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아무 쓸모가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 짠 소금을 조금만 먹으라고, 많이 먹으면 건강을 해친다고 야단들이다.

그래도 성경말씀이 아니라도 모든 음식에 간이 안맞으면 맛이 없고 메스꺼우니 소금의 존재는 분명 중요함에 틀림없다.

 

그러면서도 소금은 박대를 받아온 것인가.

왜 재수없는 손님이 다녀가면 문간에 소금을 뿌리는지,

어린아이가 오줌을 싸면 키를 쓰고 남의 집에 가서 소금 얻어 오라 하는지,

왜 어머니는 초상집에 다녀오면 소금을 뿌리라 하는지.

그건 어쩌면 박대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역설적으로 소금이 그만큼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의미인지도 모를 일이다.

 

얼마전 퀴즈 프로를 보고 있자니 어느 나라 화학자가 어떤 물질에서 독가스를 추출하는 방법을  만들어 냈는데 그 물질이 무어냐고 묻고 있었다. 그런데 답이 천만뜻밖에도 소금이라고 해서 놀랐다.

그 중요한 소금에서 사람을 대량 학살할 수 있는 독가스를 만들어낸다?

언젠가 인공조미료를 만들 때 청산가리가 들어간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

청산가리라면 극약이 아닌가?

그 독극물이 조미료를 만들때 들어간다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무언가 그 물질이 중요한 촉매제가 된다거나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일 것이지만 이번 소금 문제만 해도 그랬다.

어떻게 소금에서 독가스를 만들어낼까!

 

그러면서 깨달은 게 있다.

이 세상엔 절대적인 진리가 없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것이 치명적인 해가 될 수도 있다는 건 그만큼 세상 일은 복잡하고도 이중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

나는 어떤 사람에겐 한없이 좋은 사람이 되었다가도 또 다른 사람들에겐 그리 좋은 사람이 못되는 현실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때로는 아주 선한 모습으로 때로는 악한 모습으로 비쳐지기도 하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게 갈릴 수도 있는 현실을 모르는 채, 지금껏 아둥바둥 남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너무 좋은 쪽으로만 비추려고 속을 끓이며 살아온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금에서 독가스를 추출한다는 얘기를 듣고 나서 나는 생각을 고쳐 먹었다.

어차피 세상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으로 살아갈 수는 없는 거라고,

어느 한쪽에 나쁜 모습으로 비추어진다 하더라도 그런걸 너무 의식하지 말고 맘 편하게 인정해 가면서 살자고,

그러고 나니 한결 마음이 편해지는 것이었다.

소금이 준 교훈이었다.

 

소금에 관한 시 한 편을 소개합니다.

 

염전(鹽田)에서

<버려진 뻘밭에서 열병을 앓다가 각이 진 인고의 자세로 부활하는 몸이여!> 로 소금을 형상화한 이 시를 난 참 좋아합니다. 소금이 너무 힘들게 느껴지지요. 그런데 작열하는 태양열에 열병을 앓으며 졸을대로 졸아붙어 힘들게 힘들게 각이 진 몸으로 다시 태어난 소금은 그 몸을 또다시 녹여 간을 맞춰주니 얼마나 얼마나 가엾고 불쌍하고 고마운 존재인지요. 그러면서도 짠기운으로 버티자고 다짐을 하니 말입니다.

 

 

 

 

 

 

거친 파도를

가로막을  제방(堤防)도 없이

버려진 뻘밭에서

남모르게 열병을 앓다

각(角)이 진 인고(忍苦)의 자세로

부활하는 몸이여.

 

어느 뉘 아린 뜻이

물보라로 넘치는가

간조(干潮)의 내안(內岸)은

안개에 싸였는데

끈끈한  적의(敵意)을 안고

재우치는 태풍을.

 

젊음이 난파당한

떼죽음의 모래톱에

이마를 맑게 씻고

물빛 연한 시간을 열면

비탈진 목숨의 혼(魂)이

물살에 어린다.

 

어기찬 노역(勞役)의 끝

밧줄을 휘감아도

세월은 어찌하여

술이 괴듯 괴는가

깨어진 등피(燈皮)를 닦고

짠 기운으로 버티자.

   (임홍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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