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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6-04-11 조회수757 추천수5 반대(0) 신고
2006년 4월 11일 성주간 화요일

 

 

제1독서 이사야 49,1-6

 

복음 요한 13,21-33.36-38

 

 

어제 저녁, 어떤 분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혹시 신부님이세요? 저는 신부님을 잘 아는 신자인데요... 질문이 있어서 이렇게 전화를 드렸습니다. 제가 부활판공 문제집을 풀다가 모르는 문제가 있어서 그래요. 그 답 좀 가르쳐 주십시오.”

저는 부활판공 문제집이라는 소리에 이렇게 대답을 했지요.

“그 문제집은 다 푼 뒤에 본당에 제출하는 것이 아닌가요? 그렇다면 제가 그 답을 가르쳐 드리면 안 되지요. 자매님, 부활을 맞이한 뒤에 다시 전화를 걸어주시면 제가 그때 답을 드리도록 할께요.”

하지만 그 자매님은 막무가내입니다.

“신부님, 자연에 대한 남다른 사랑을 가지고 주위의 모든 것들, 즉 태양, 불, 물, 새들, 동물들을 바라보며 태양의 찬가를 만든 성인은 누구입니까? 이것이 문제거든요. 이 문제 답만 맞추면 다 맞추어요. 그런데 제가 아무리 뒤져봐도 이 문제의 답을 찾을 수가 없네요.”

저는 다시 말씀드렸지요.

“자매님, 제가 답을 알아도 가르쳐 드릴 수 없어요. 힌트를 달라고 하시면 모를까, 본당 제출용을 제가 어떻게 답을 가르쳐 드립니까?” 이 말에 그 자매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저희 반장님께서 그러시더라구여. 신부님들이 모든 답을 아시는 것은 아니라고요. 신부님도 답을 모르시는군요. 모르시면 모르신다고 솔직히 말씀하세요. 제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말하지 않을께요.”

순간적으로 화가 났습니다. 솔직히 위 문제의 답이 ‘프란치스코 성인’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런데 사람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면서 말씀하시는 그 자매님이 순간적으로 미워지더군요.

아무튼 그 자매님과의 전화 통화가 끝난 뒤에 좋지 않은 기분을 가지고 있던 중 문득 이러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자존심이 상했을 때 과연 어떻게 하셨는가?’

그렇게 당신의 신분에 대해서 직접 말씀을 해주셨고 당신의 수난과 죽음에 대해서도 세 차례에 걸쳐 말씀을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이상한 말만 해대는 제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답답하셨을까요? 그리고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시고도 얼마나 기분이 안 좋으실까요? 제대로 살라고, 그래서 당신께서 가장 힘주어서 말씀하신 사랑을 실천하면서 살라고 십자가의 고통과 죽음을 직접 당신 몸으로 겪으셨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자기 편한 대로만 그리고 내게 이득이 되는 것만을 추구하면서 사는 것은 아닐까요?

가장 자존심이 상했을 분은 바로 주님이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자존심이 상하실 때,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으로 그냥 침묵하고 계셨습니다. 내가 자존심이 상했다고 화를 간직하고 있었지만, 사실 이런 모습들에 더 큰 자존심 상하셨던 분은 바로 주님이 아닐까요?

주님,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주님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지 맙시다.



 
피해야 할 사람(김정하, '슬로우 석세스(Success)' 중에서)


 

 

새로 일을 시작할 때
부정적인 의견만 내놓고 남에게도 그런 것을
강요하는 사람이야말로 피해야 할 사람들이다.

의외로 안 된다는 타령의 주인공은 가까운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나의 경우 90% 이상이 가까운 사람들에 의해
제동이 걸렸다. 만약 그들이 하자는 대로 했다면 오늘의
나는 존재하지 않았다. 자신이 책임지지도 못하면서
안 된다는 의식을 퍼뜨리는 사람은 날카로운 흉기나
마찬가지다. 대부분 이런 일들이 '사랑'이라는
명분하에, '아낀다'는 미명하에 공공연히
발생하고 있음을 유의해야하겠다.

♬시편15(16)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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