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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2주간 수요일 제1독서를 묵상하며(히브리 7:11 -19)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19-01-23 조회수1,148 추천수0 반대(0) 신고

 

 

  연중 제2주간 수요일 제1독서를 묵상하며~~~~

 

히브리서 7:11 -19

11 이스라엘 백성은 레위의 사제 제도를 바탕으로 하고 율법을 받았는데 만일 그 사제 제도로 완전해질 수 있었다면 아론의 계통이 아니라 멜기세덱의 계통인 또 다른 사제를 세울 필요가 어디 있었겠습니까? 12 사제 제도가 변하면 율법도 변하게 마련입니다. 13 우리가 이야기하는 그분은 레위 지파 아닌 다른 지파에 속한 분이고 그 지파사람으로서 일찌기 제단 일을 시중든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14 우리 주님께서 유다 지파에서 나오신 것은 명백합니다. 그런데 모세가 이 지파를 사제직에 관련시켜 말한 일은 한번도 없습니다. 15 멜기세덱과 같이 다른 계통의 사제가 나타나셨으니 일은 더욱 명백해졌습니다. 16 그분이 사제가 되신 것은 인간의 율법의 규정을 따라 되신 것이 아니고 불멸의 생명의 힘을 따라 되신 것입니다. 17 그렇기 때문에 성서에 '너는 멜기세덱의 사제 직분을 잇는 영원한 사제다'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18 전에 있던 율법의 규정은 무력하고 무익했기 때문에 폐기되었습니다. 19 율법은 아무것도 완전하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더 좋은 희망을 주셨고 우리는 그 희망을 안고 하느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입니다. 아멘

 

성경이 이렇게 율법과 은혜를 딱 떠올려놓고 율법을 계속해서 폭격하고... 그런 모양대로 진행되어가고 있죠? 사람들이 그런 것에 대해서 별로 관심을 두지 않으니까 그냥 어떡해서든지 인간들의 어떤 자존심을 챙기고 가치관을 챙기기위해서 이 말씀을 어떻게 우리의 삶에 대입해서... 우리인간은 괜찮은 존재다.. 라고 증명할 것인가에 천착을 하다보니까 성경말씀을 올바르게 이해를 못하는 거예요.

여기 보시면 아론의 제사장 아론을 따르는 제사장이 있고 멜기세댁을 따르는 제사장이 있다 얘기하죠? 아론을 따르는 이 제사장들은 사람들을 온전하게 죄에서 건질 수 없고 멜기세댁을 따르는 제사장이 진짜 제사장이라 그래요. 그러면 진짜 제사장이 있고 이 세상에 육적 또 다른 제사장들이 있어요. 그러면 이 제사장들은 뭘 설명하기 위한 모형일까요? 진짜 제사장을 설명하기위한 모형이에요 그죠? 실체가 둘 일 수는 없어요. 하늘에 비행기가 지나가면 땅에 비행기 그림자가 같이 지나가죠 그죠? 둘 다 실체는 아니에요. 둘 중에 하나는 가짜란 말이에요.

 

창세기에서 빛과 어둠이 공존하고 위의 물과 아래의 물이 여전히 있고 물과 뭍이 존재하는데 아직 완전히 완성된 게 아니에요. 그런데도 하느님이 일부러 각 날의 밑에 보기좋다 보기좋다고 얘기하시는 건... 창조는 내가 원하는 대로 만든다 라는 뜻이에요. 내가 완료한다는 그런 의미란 말입니다.

묵시에서 일어난 완료의 세계예요 한번에~ 그러니까 수직이에요 수직 묵시의 세계는. 그러니까 한 번에 완료되어서 영원한 현재만 있다라고 하는 게 거기에 멈춰서서 움직이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한 번에 완료된 그 세계에서.... 수직으로 쌓여있는 이 묵시가 그림자를 드리워서 수평으로 쭉 펼쳐지는 걸 역사라고 그러는 거예요. 그러니까 멜기세댁의 예수 그리스도라는 대제사장이 계시고 ...그 밑에 아론을 따르는 이 분을 설명하는 모형들이 있단 말이에요. 역사 속에서 이게 역사 속 제사장들이죠?

그런데 이 역사 속 제사장들에 의해서 하느님이 율법을 주시면서 제사를 주시면서 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하면 죄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이걸 물론 몸만 깨끗이한다 그러죠 성경에서 이거는. 완전한 죄의 해방을 얘기하는게 아니에요 모형이니까. 그 제사와 율법지킴을 통해서 죄에서 깨끗해지는 어떤 정결해지는 그러한 의식을 주심으로 말미암아 지금 이 대제사장이 하실 일을 지금 설명하는 거란 말이에요. 그런데 진짜 실체가 왔다라는 건 이건 가짜다 라는 거죠 그죠? 이건 가짜다 라는 거란 말이죠. 그러니까 이게 율법이고 이게 은혜란 말예요

 

그러면 은혜의 실체가 왔을 때 이 모형이 율법이 폐해지는 게 맞죠? 히브리서 11장으로 가보세요. 바로 뒤에 로 넘어가서. 히브리서 11:1-3절입니다. 1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을 보증해 주고 볼 수 없는 것들을 확증해 줍니다. 2 옛 사람들도 이 믿음으로 하느님의 인정을 받았던 것입니다. 3 우리는 믿음이 있으므로 이 세상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창조되었다는 것, 곧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에서 나왔다는 것을 압니다.

이 말은 보이는 것에서 만들어진 게 아니란 말이에요. 왜냐면 밖에 거를 인정하는 건.... 나는 무용지물이고 이거는 완전히 나를 속수무책으로 그 보이지 않는 어떤 세계에 의해 장악이 된다는 걸.....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걸 인정하려고 하지않아요. 그래서 죄인들은 보이는 것에서 보이는 것으로 모든 걸 이해하려고 한단 말예요. 그래서 보이는 것이 어떻게 보이는 않는 것에서 오니? 보이는 것은 보이는 것에서 시작된거야가 진화론이잖아요 유물론이란 말예요 그것이~

 

그런데 이 보이는게 보이지 않는 것에서 시작이 됐다라고. 이게 무슨 말이냐면 다른 곳에서는 예수로 말미암아 예수로 비롯되어 예수를 위하여 창조됐다 그러죠 만물이.. 그럼 보이지 않는 게 뭐예요? 예수잖아요. 그럼 보이지 않는 예수가 이 땅에 지금 보이는 것으로 이렇게 창조가 됐다라는 건 뭐예요. 모든 만물이 예수를 설명한다는 뜻이에요 모든 만물이 예수를 설명하고 있는데.... 그걸 예수로 이해하지 못하고 보이는 것으로 이해를 하려고 하다보면 '야 우리가 깨끗해지고 우리가 어떤 좋은 나라에 일원이 되는데에 어떻게 보이지 않는 신으로만 그 나라 일원이 될 수 있니? 우리가 보이는 뭘 해야지~' 로 자꾸 가는 거죠. 이걸 율법이라 그래요.

 

 

시나이산에서 율법이 한번 주어졌을 때, 왜 시나이산 꼭대기로 데리고 올라갔을까요? 하느님이 모세에게 율법을 줄 때 산 아래서 주면 안돼요? 어디서 준들 무슨 상관이에요? 모세를 산꼭대기로 데리고 올라가서 그 밑을 구름으로 가리죠. 그러면 지금 산 위에 하느님과 예수를 모형하는 모세가 대화를 하고 있고 그리고 거기서 이 역사를 다스리는 법이 주어져요. 율법으로 이스라엘이 움직여졌으니까 구름 밑에 세상이 있는데 그걸 역사라고 그래요. 그런데 이 역사가 구름위에서 일어나는 일을 포착을 못해요. 이걸 말씀이라 그래요. 묵시라고도 하고. 그러니까 못 올라오게 하는 거예요. 못 올라오게 하는게 뭐냐면 우리 하느님이 결벽증이 있어서가 아니라 니들은 죽었다 깨나도 이걸 못 알아먹는단 뜻이에요.

 

하느님 앞에서 모든 게 없음인데. 뭘 오든지 말든지 무슨 상관이야 하느님이. 아이구 더러워라 오지마라 이거예요? 못 알아보는 거예요. 못 알아보는데 그 구름 위에서 하느님과 하느님의 아들의 창세전 언약이 일어나는 거랑 똑같은 거죠. 그걸 율법으로 이 구름 밑으로 내려오니까 ....이제 이게 율법으로 왜냐면 이 제한된 이성을 가진 인간들에겐 보이는 걸로 설명해 줘야 되니까~ 보이는 율법으로 내려오는 거예요. 이 말씀이. 창세전 언약이.

내려와서 이스라엘이 끌려간다라는 건.... 창세전 언약.... 묵시의 세계에 의해 이 역사가 장악되어 끌려가는거예요. 그래서 구름이 움직이면 이스라엘이 움직이는 거란 말입니다. 묵시 역사는 .....묵시에 의해 움직여지는 거란 말이죠. 그니까 이 묵시가 이해되어지는 사람은... 이 역사속에서 예수를 발견하지 여기에 가치를 두지 않는단 말예요. 그런데 이런 것들을 이해를 못해요. 사람들이 그래서 눈과 귀가 열리지 않으면 못 알아먹는다는 뜻이에요

 

이 세상에서 알고가야 할 건 하느님과 하느님 나라 그리고 왜 우리는 하느님의 은혜로만 구원을 받아야 하는 가에 관한 거만 알고가면 돼요. 그러면 하느님 나라에 가면 하느님이 그냥 새로 바꿔주는 거예요. 바꿔주면 거기서 모든 존재가 동일한 것을 누리며 사는 거예요. 여기에서 여러분이 뭘 업적을 행하고 공로를 행하고 많이 뭘 배우고 깨닫고 가는 것 만큼 그 위에서 어떤 차별있는 삶을 사는 게 아니라 여러분은 이미 완료되어 있다니까요 거기에? 완료되어 있는 사람들이 내려와서 여기에서 또 뭘 막 해가지구 야 이미 여기는 완료되어 있었는데 내려와서 그냥 깻박을 치는 바람에 다시 올라갔을 때는?... 이런 게 아니라니까요?

영원은 중간에 역사를 사이에 두고 끊어지는 게 아니에요~ 영원은 지속되는 거예요. 수직이라니깐요? 완성돼 있는 곳에,,, 거기에서 잠깐 다른 차원의 세계에,,, 이렇게 거기에 존재하면서 여기에 내려와 있는거란 말이에요. 이 독한 인간들이 어찌 그걸 알아 먹겠습니까...ㅎㅎ 그래서 여기에 있는 여러분들은 '왜 어떻게 해서 이렇게 없음이어야 되는 이 세상에서... 이렇게 없음에 불과한 우리가 어떻게 거기에서 이렇게 있음이 된거지?...' 를 배우는 거지 여기에서 여러분이 분간을 하고 뭔가를 더 많이 깨닫고 이게 아니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마지막에 하나만 알고 가면돼요. '당신의 나라 임하실 때 당신이 저 기억해 주지 않으면 저는 그냥 강돕니다 지옥에서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이것 하나 알고 가면 되는 거예요 성경을 통해서 뭘 대단하게 여러가지를 이렇게, 굉장히 여기 목사가 이 성경 하나 갖고 어떻게 사람들을 장악할 수 있는지를 아세요? 이게 너무 어려워서 그래요. 그러니까 이거를 열심히 공부해 갖구 평생 사람들 주눅들게 할 수 있어요. 그거만큼 어려워요.

그런데  이 전체를 여러분이 다 몰라도 돼요. 아니 그럼.. 요한묵시록은 AD 90년에 씌였는데 그 전에 초대교회때 90년 되기 전에 죽은 사람들은 요한묵시록 못보고 죽었을 거 아니에요? 편지가 90년에 씌여졌으니까.

그럼 그거 못보고 죽은 사람은 아~ 이만큼 못깨닫고 가갖구 진짜.... 바오로가 이거 보구 죽었어요? 사도바오로는 요한묵시록 못보고 죽었어요. 이걸 여러분이 얼마나 많이 이해하는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많은 설교와 말씀 성경을 통하여 한가지 알고가면 된다니깐요? 하느님은 누구고 나는 누군가! 그런데 무슨 성경지식을 갖고 이렇게 뻐기냐구요   

역사는 그냥 묵시인 예수를 하느님을 설명하는 거예요. 그러면 그 설명을... 눈과 귀가 열린 사람만 잘 알아먹구 근데 고~통스러워요. 왜냐면 그 눈과 귀가 열렸을 그 때에는 너무 잠시지만 (늘 열려있지도 않잖아요. ~ ? ) 눈과 귀가 열렸을 때는 하늘의 사람으로 내려다 보기때문에 '..이런 세상이 있나...뭐 이런 인생이 다 있냐...' 라구 

 

보세요. 아담과 하와에게 언약이 주어지죠. 창세기 315절에서 여인의 후손으로 너희는 이제 구원받을거야~ 그게 노아에서 어떻게 설명되냐면 하느님이 그냥 똑같은 인간 그 엄청난 일을 겪고도 술먹고 금방 옷 다 벗고 응? 후덕증이 있었나? 벗긴 왜 벗어 그럴 수 밖에 없는 그 인간을 그냥 선택했어요. 이게 온~~ 세상 중에 노아만 그죠? ~~ 세상 중에 노아를 선택하자 나머지 노아 밖의 모든 존재가 '유기' 된 자로 그냥 결정이 나는 거예요 그쵸?  

노아에서 다시 아브라함의 언약으로 내려오면 아브라함이 전부 우상이나 섬기고 뭐 이러고 있는데 아브라함은 그중에서 또 우상을 만들어 제공하던 놈인데 하느님이 찾아가서 택하니까 아브라함 밖의 모든 자들이 다 또 유기로 그냥 결정이 나는 거예요. 근데 여기는 인제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쪼끔 줄어들어요. 이제 설명하는 거예요 하느님은요. 그 다음에 모세로 오면 이게 하나의 법 그 율법 안에 있는 자는 이스라엘. 율법 밖에 있는 자들은 외인이에요. 그래서 율법을 어기면 죽는 거예요 그죠? 하나의 법으로.

이게 다윗으로 오면 다윗언약으로 오면 왕 제사장 예언자 직분이 하나로 통합되죠 다윗때에는 응? '한 인물' 로 통합이 돼요. 다윗의 편은 살고 사울의 편은 죽어요. 그럼 왕과 제사장 예언자 이 전체 세가지 역할을 한 몸에 갖고 오신 분이 누구다? 예수!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멜기세댁의 반차를 쫓은 그 대제사장이 유다지파에서 왔단 말이에요. 유다지파는 다윗이었단 말이에요. 다윗은 예수를 모형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의 편은 살고 사울의 편은 죽어요. 그런데 사울이 뭐냐면 성경에 보면 사울을 항상 창을 쥔 자라고 설명을 하죠 그죠? 한문에서 스스로 자기 손으로 창을 쥔 자라는 의미가 어떤 단어겠어요.'자아'(自我)!  '()' 자가 뭐예요. '[]' 변에 창 '[]' 자예요. '자아' 가 뭐예요? 내 스스로 내 손으로 창을 들고 나를 지킬려고 하는 게 '자아' 에요. '자아' 가 가장 무거워요.

 

베드로가 물 위를 걷다가 예수를 바라봤을 땐 떴지만 '자아'를 바라볼 때 가라앉죠? (뭐 누구는 이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게 눈꺼풀이라 그러는데)눈꺼풀이 아니라 '자아' 예요. 내가 나를 지키려고 하면 그만큼 삶이 무거워요. 그게 짐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거를. 그래서 땅은 계속 빠질 수 밖에 없어요. 그걸 지옥이라 그래요.

그런데 예수께 맡기는 거예요. 내 모습 이대로. 그럼 예수가 시궁창에 처박기도 했다가 다시 끌어내기도 했다가 또 멋진 옷을 입히기도 했다가 다시 처박기도 했다가 하면서 우리에게 교훈하시는.. 깨달음을 주세요. 왜 너희는 쓰레기이며... 왜 예수라는 옷을 입지 않으면 살 수 없는지를 예수가 가르쳐주신단 말이에요. 그게 눈과 귀가 열린 성도예요.  

 

오늘날은 보세요. 이 묵시 위를 못보니까 전부 이 묵시 아래의 역사속에서 뭔가 인간들이 눈에 보이는 걸로 자꾸 확인을 할라 그래요. 개혁하자 변화하자 성숙하자.. 이런걸루. 이렇게 개혁 개혁하는.. 그런 것이 어떻게 결말이 나는지요. 그런 인간들이 어떻게 실체가 오는지 그리고 인간시대 나왔던 그 불쌍한 아이들만 다 모아 가지고 어린아이들만 모아서 그렇게 구제하고 돕고 재산 다 털어서 그리고 늘 청빈하게 차만 마시던 그 분이 얼마 전에 보니까 고아 애들 모아서...애들을 수십년간 성폭행을 해갖고 남자를요. 그 멋진 ㅈㄹ님께서. 여러분 인간의 성숙이라는 게 어떤 한 면이 이렇게 부각된다 그래서 성숙이라고 사람들이 착각하는데 그 사람의 실체가 그거에요. 모든 인간이 그래요.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들이 안되는 것들을 누군가가 이렇게 멋지게 해 내면 고거 하나를 보구~ 아니 청계천 빈민들과 함께 감옥까지 가면서 그 빈민들의 권익을 위해 투쟁 했던 응? 두레마을 모 아저씨는 어떻게 지금은 그 강남 응? 강부자 ㅎㅎ 어떻게 그들의 머리 뉴라이트의 총수가 됐을까요? 뭘한 거에요? 도대체가.. 그 전에 했던 건 뭐고 지금은 뭐냐구요. 뭐가 성숙이에요? 그 분은 청계천의 그 사람들과 함께 그렇게 어려운 시절에 감옥에 갔다는 거 때문에 뜬 사람이거든요? 뜨고 나니까 마음 달라진 거에요? 사람이 이렇게 미련해요. 눈에 보이는 몇 가지 갖고... 거기에 자기를 투영시켜서. 야 인간의 자존심을 이렇게 높여줘서 참 고맙다. 그리고 그걸 존경이라는 것으로 표현을 하는것 뿐이죠.

 

그 실체를 알아라는게 성경이지 그런 걸 그렇게 본받아서 그렇게 되라는 게 성경이 아니에요. 물론 하느님이 그렇게 쓰는 사람들이 있겠죠. 그러면 그렇게 열심히 하느님이 끌고 가시는 삶이.. 그런 사람은 진짜 그 아무런 원망도 불평도 없이 하느님이 이렇게 살게 하시니까 이렇게 살지 이러고 가겠어요? ~만의 말씀이에요.

사람 믿지마세요. 예수를 붙드시라니깐요. 여러분이 이 세상에서 본받고 존경할 이는 단 한 분도 없어요. 누구를 존경하실 거에요? 누구를 본 받으실겁니까? 내가 누구를 본받고 싶다라는 건 우리 인간들이 도달해야 할 목표지점에 어떤 이들이 자기들의 힘으로 먼저 가 있다라는 걸 그리고 갈 수 있다라는 걸 기대하는 건데 .. 천만에 말씀이에요. 그래서 성경에 나오는 그런 수많은 인물들의 보기 싫은 면들을 하느님이 일부러 기록해 놓은 거에요

아니 바오로와 바르나바, 바오로와 베드로사도가 일을 하면서도 그렇게 쌈박질을 하고 했던 거를 하느님이 일부러 기록하는 거에요. 아니 그까짓거 뭐 밥먹다가 쪼금 일찍 일어나고 도망가기도 하고 뭐. 쪽 팔릴 수도 있는 거지. 그런데 그걸 사람들 앞에다 대놓고 그냥... 아니 여러분 그거 진짜 잘하는 겁니까? 그러니까 그런 것들을 자꾸 인간들의 도덕과 윤리로 이런 걸 가지고 판단을 하지 마시란 말이에요. 그 속에서 예수를 발견하라고 하느님이 우리에게 성경을 주셨지,

 

그러니까 그리스도교 이천 년 역사가 진짜 성경을 올바로 보고 예수를 올바로 깨달은 이들의 그 깨달음이나 책이나 이런 거는 거의 안 나와 있고 인간적으로 어떤 업적들을 많이 이루어내고 뭐 이런 사람들의 책들만 다 남아 있으니까 볼 책이 없는 거 있죠 여러분. 진짜 올바로 제대로 복음을 아는 이들은 어떤 책을 불경을 읽어도 은혜받아요. 그런데 내가 보기엔 아직 준비들이 안돼 있어요. 그러니까 설교를 '올바로' 그냥 '열심히' 듣구 그 실력을 먼저 키우래니깐요?

오늘 말씀에 있는 것처럼 이 역사는 그냥 그저 보이지 않는 예수만을 그려냅니다 잊지 마시고. 그래서 이렇게 히브리서 기자가 그냥~ 계속 반복하고 반복해서 '야 이 세상 제사장 아니야 이 세상 율법 아니야 이 세상의 그 시은좌? 그거 다 아무 것도 아니야. 멜기세댁의 반차인 대제사장 예수야 예수의 피야 제물의 피 아니야 예수님이 지성소 연거야 지성소는 하늘보좌야'

이렇게 모형과 실체를 계~속 비교하면서 이야기를 해주는 그 이유를 한번 곰곰히 생각해 보셔요. 그리고 성경을 다시한번 읽어 보시라니까요? 어떻게 달리 보일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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