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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 제1독서(사도22,3-16)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19-01-25 조회수1,421 추천수0 반대(0) 신고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 제1독서(사도22,3-16) 

 

 

 



사도행전의 이방인 선교를 다룬 후반부(사도11,19-28,29)는 선교 무대의 주인공베드로가 아니라 바오로이다.

후반부의 첫째 부분(11,19-21,16)이방인 선교의 중심지 안티오키아 선교세 차례에 걸친 바오로의 선교 여행 다룬다.

 1차 선교 여행(13,3-14,28)과 2차 선교 여행(15,36-18,22)사이에 열렸던 예루살렘 회의(15,1-35)는 서로 다른 관습과 문화를 지닌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때, 공동체 구성원들이 겪게 되는 피할 수 없는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지켜야 할 원칙을 제시한다.

 

2차 선교 여행 때에 아테네 아레오파고스 법정에서 바오로가 한 설교(17,16-34)는 그리스도교 복음을 다른 문화권 안에 심을 때 필요한 전략을 가르쳐 주고,

3차 선교 여행(18,23-21,16)을 끝내면서 밀레포스 해안가에서 에페소 원로들에게 한 고별 설교(20,17-38)는 이상적 선교사의 삶을 묘사한다.

 

후반부 둘째 부분(21,17-28,29)은 유다인들과 로마인들의 박해 앞에서 교회를 변호하고 보호하는 호교론이다.

예루살렘을 방문했다가 뜻하지 않게 유다교 율법과 관습을 무시했다는 오해를 받고 성전에서 체포된 바오로는, 유다 최고 의회 앞에서 그리고 로마의 고관들 앞에서 자신의 입장을 변호한다.(21-24장)

 

오늘 독서 사도행전 22장 3-16절은 히브리말로 유다 최고 의회 앞에서 그리스도의 복음 전파 때문에 성전에서 체포된 자신을 해명하는 이야기다.

이것은 그리스도와 교회를 박해하던 자신이 어떻게 회심을 했는지 밝히는 사도행전 9장 1-22절의 내용과 거의 동일하다. 갈라디아서 1장 11-24절도 참조바란다.

 

"사울을 주님께 돌아오게 하는 길은, 오직 그를 말에서 거꾸러트리는 길밖에 없었다."  플래너리 오코너(Flannery O'Conner)라는 사람이 사울의 회심 사건을 보면서 한 말이다.

사울은 스테파노 부제의 순교의 현장에 있었고 그의 죽임에 동조하고 있었다. "그 증인들은 겉옷을 벗어 사울이라는 젊은이의 발 앞에 두었다." (사도7,58)

"사울은 스테파노를 죽이는 일에 찬동하고 있었다." (사도8,1)

"사울은 교회를 없애 버리려고 집집마다 들어가 남자든 여자든 끌어다가 감옥에 넘겼다." (사도8,3)

 

"사울은 여전히 주님의 제자들을 향하여 살기를 내뿜으며 대사제에게 가서 다마스쿠스에 있는  회당들에 보내는 서한을 청하였다. 새로운 길을 따르는 이들을 찾아내기만 하면  남자든 여자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고 오겠다는 것이었다." (사도9,1-2)

 

스테파노 부제의 순교가 예루살렘 교회 공동체를 뿌리째 흔드는 박해로 이어졌지만, 그 박해는 도리어 교회를 견고하고 굳건하게 세우는 역할을 하였고, 예루살렘에만 머물렀던 복음이 유대와 사마리아까지 퍼지게 하면서, 복음이 온 세계로 뻗어나게 하는 시발점이 되었다.

그런데 스테파노의 순교의 현장에 있던 사울이 스테파노의 피의 순교의 댓가 때문인지 몰라도,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방인들을 위한 위대한 복음 선교사로 탄생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다마스쿠스에서 18km 떨어진 곳(현재 지명 코갑)에서 사울은 극적인 회심을 하게 된다. 사울이 말을 타고 가는데, 하늘에서 비추는 강렬하고 큰 빛에 의해 낙마한다. 요즈음 말로하면 교통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그래서 시리아 정교회에서는 이를 기념하여 2001년도에 교회를 건축했는데, "바오로 낙마 교회" 혹은 "바오로 회심 교회" 라고 부른다.

 

사울은 하늘로부터 음성을 듣는다.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

"주님, 주님은 누구십니까?"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자렛 사람 예수다."
"주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일어나 다마스쿠스로 들어가거라. 장차 네가 하도록 결정되어 있는  모든  일에 관하여 거기에서 누가 너에게 일러 줄 것이다." (사도22,7-11참조)

 

사울은 그 눈부신 빛 때문에 앞을 볼 수가 없어, 함께 가던 이들의 손에 이끌려 다마스쿠스로 들어갔고(사도22,11 : 9,8), 사흘동안 앞을 보지 못한 채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다. (사도9,9)

사울은 눈을 떴지만 앞을 볼 수가 없는 상태가 사흘 동안 계속 되었는데, 이것은 그 당시의 사울의 영적인 상태 분명하게 보여주는 표현이다.

 

그가 율법과 예언서에 정통했으나, 구약의 율법과 예언서에 약속된 메시아가 그리스도 예수라는 사실을 모르고, 도리어 그리스도교를 박해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아마도 사울은 사흘간의 영적 암야인 "어둔 밤"을 통해, 자신이 가진  메시아에 관한 성경의 지식과 말씀을, 자신이 박해하고 있는 그리스도 예수께로 포커스를 맞추고 정향하는 단식 피정을 한 것이다.

 

그 사흘 간의 단식 피정 중에, 진리의 성령께서는 사울의 이성에 은총의 빛을 비추어 주어, 모든 혼돈을 깔끔히 정리하게 해 주셨을 것이다. 이제 사울은 사흘 후에, 하나니아즈라는 예언과 치유의 은사를 받은 봉사자를 만나 안수받고, 눈에서 비늘같은 것이 떨어지면서 다시 보게 된다.

하나니아스는 이렇게 말한다.

"사울 형제, 당신이 다시 보고 성령으로 충만해지도록 주님께서 곧 당신이  이리 오는 길에 나타나신 예수님께서 나를 보내셨습니다." (사도9,17)

그리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죄사함의 세례를 받게된다. 사울의 회심은 복음 전파의 흐름과 그리스도교의 역사를 바꾸어 놓은 전환점이 된다.

그의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뜨거운 사랑과 열정은 복음을 소아시아로, 그리고 로마까지 확산시키는 기폭제가 되었다. 하느님께서는 마음을 먹으시면 못하실 일이 없으시다. 불가능이 없으시다.

 

그러니까 우리 앞에 펼쳐지는 모든 일들,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서 일어나는 일들을 인내롭게 지켜 볼 필요가 있다. 그들 안에서 그리고 그들 뒤에서 어떤 영들이 역사하는지를 보아야 한다.

특히 어둡고 부정적으로 보이는 일들 속에서도 절망하거나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된다. 게속 기도하고 하느님의 뜻을 찾으며 때를 기다려야 한다.

 

시간들 두고 일이 되어가는 과정들과 열매들을 보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섭리와 안배가 읽혀진다. 악은 결코 선을, 거짓은 결코 진리를, 사탄과 그 졸개들은 결코 하느님을 이기지 못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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