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1.27.연중 3 주일 - 양주 올리베따노 이영근신부
작성자송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9-01-27 조회수1,576 추천수0 반대(0) 신고

 

 

루카 1, 1-4, 4, 14-21(연중 3 주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 6백년 전경에 이스라엘은 암흑기였습니다. 네브가드네사르에 의해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백성들은 바빌론으로 유배되어 있던 시대였습니다. 그들의 유배는 단지 나라를 잃은 것만이 아니라 그들 삶의 지주가 되었던 율법과 성전과 사제를 모두 잃어버린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던 중 기원전 538년 페르시아 왕 키루스의 칙령에 의해 유다인들은 이스라엘로 귀향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율법에 충실했던 사제 에즈라와 왕의 술 시종관이었던 느헤미아에 의해 성전재건과 종교개혁이 단행되었습니다.

 오늘 <1독서>는 성전이 재건되고, 사제 에즈라에 의해 모세의 율법서가 읽혀지고, 그들이 율법을 통하여 하느님께로 돌아오는 감격스런 장면입니다. 이처럼, 모세의 율법이 구약시대의 민족공동체의 구심점이었다면, 신약시대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느님 백성의 구심점이 됩니다. 곧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게 되고,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게 됩니다.

 오늘 <2독서>는 바로 이러한 사실을 말해줍니다.

몸은 하나이지만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고, 몸에 딸린 지체는 많지만 그 모두가 한 몸을 이루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도 그러합니다.”(1코린 12,12)

 

 우리가 지체로서 한 몸을 이루게 되었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그 어떤 차별이 없는 한 형제임을 말합니다. 곧 성령께서는 각자가 고유한 가치를 가지면서도 하나를 이루어 일치를 이루는 풍요로움을 주셨습니다. 곧 서로의 다름은 잘못되었거나 틀렸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차이를 드러낼 뿐이며, 오히려 상호보완과 풍요로움을 말해줍니다. 그것은 마치 눈과 손이 서로 필요 없다고 할 수 없듯이,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각자의 지체들을 각각의 용도에 맞게 한 몸 안에 만들어 놓으셨음을 의미합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의 몸인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에 걸맞은 품성을 유지해야 할 일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이루는 데는 중요한 두 가지 기둥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매일 드리는 미사성제의 말씀의 전례성찬의 전례에서 드러나는 바와 같이, 바로 하느님의 말씀그리스도의 몸(성체), 곧 교회입니다.

 오늘 <1독서><복음>말씀의 선포를, <2독서>그리스도의 몸을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복음>은 말씀의 성취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1독서><느헤미아서>에서는 말한다.

백성은 모두 울법서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느헤 8,3)

 

 이는 하느님의 말씀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잘 말해줍니다. 곧 하느님의 백성은 하느님 말씀으로부터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말합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지체입니다.”(1코린 12,27)

 

 이처럼, 우리는 이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서 이루어졌다.”(루카 4,21)

 

 그렇다면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선포하신 이 성경 말씀은 무엇인가? 그것은 메시아에 대한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렸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 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루카 4,18-19)

 

 이는 오실 메시아,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될 메시아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서 이루어졌다.”(루카 4,21)고 하자, 달리 말해 당신이 바로 이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그분이라고 하자, 나자렛 사람들은 그분을 거부하고 맞서 돌아섰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왜 수님께서 배척하게 되는지 그 이유를 다음 주일에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오늘 이 자리에서

예수님께서는 선포하시는 이 은혜로운 해가 듣는 가운데 이루어졌는지요?

 

 오늘<루카복음> 전체를 통해 일관된 구원의 오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나자렛 성전에서,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서 이루어졌다.”(루카 4, 20)고 선언하시지만, 사실, 그보다 앞서 주님의 천사는 목동들에게 예수님이 탄생하셨을 때,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다.”(루카 2,11)고 선언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자캐오에게 오늘 이집에 구원이 내렸다.”(루카 19,9) 하시고, 십자가에서 도둑에게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루카 23,43) 라고 선언하십니다. 오늘이 바로 구원의 날입니다. 우리에게도 바로 오늘이 구원의 날입니다.

 우리는 오늘이라는 이 시간을 하느님 면전에서 대면해야 할 일입니다. 구원의 때로 말입니다. 프란치스코 교종께서는 <복음의 기쁨>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시간은 하느님의 전령입니다.”(171)

 시편작가는 말합니다.

 오늘 너희가 그분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면!

 너희는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시편 95,7-8)

 

 

다음검색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