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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 [유광수신부님의 복음묵상]
작성자정복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6-04-21 조회수537 추천수7 반대(0) 신고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마르 16, 9-15)

오늘 복음은 세 번이나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직접 본 사람들이 제자들에게 이야기 해주었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세 번 다 믿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전해 주고 있다.


같은 내용을 그것도 같은 사람이 아닌 모두 다 다른 사람들이, 다른 장소에서 세 번이나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본 사람들이 번갈아 가며 이야기 해주었다는 것은 사건의 중요성을 이야기 한다.

 

그리고 사실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삼 세 번이라는 말이 있듯이 다짐하는 말이며 틀림없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을 제자들이 믿으려 하지 않았다는 것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받아들이기가 얼마나 어려웠었던가를 이야기 해준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한편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믿지 않았다는 제자들의 불 신앙을 강조하는 것이다.

사실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한번도 우리 눈으로 확인된 바가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 당시 제자들에게 있어서는 더욱 그러했으리라. 우리는 복음을 통해서 그나마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그것을 우리 신앙으로 고백하고 있지만 그 당시 제자들은 자기들과 함께 생활하셨던 분이 자기들이 보는 앞에서 불행하게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을 분명히 보았는데 그분이 다시 살아나셨다는 이야기는 아무리 들어도 믿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부활 신앙은 이성적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것이다. 부활은 오직 신앙으로만 이해되고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부활은 이성의 세계를 초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이 세상의 삶을 초월하는 또 다른 세계이기 때문이다.


부활은 믿음의 세계이지 이성의 세계가 아니다. 그래서 복음은 그들이 세 번이나 부활하신 것을 본 사람들이 이야기 해주었으나 그들은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 말도 믿지 않았다.","믿지 않았던 것이다."고 믿음이 없음을 지적하셨다.


왜 이들은 믿지 못하였는가?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았기 때문인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을 전해주는 이들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기 때문인가? 그것은 아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부활하셨고, 또 세 번 다 다른 사람들이 전해주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지 않는 이유는 "마음이 완고하여"라고 전해 주고 있다. 즉 믿지 못하는 원인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 내부에 있었다.


마음이 완고하다는 말은 무엇인가? 마음이 완고하다는 것은 받아들이지 않는 마음이다. 닫혀진 마음이다. 거부하는 마음이다. 받아들일 여유가 없는 마음이다. 마음이 굳어 있는 마음이다. 외면하는 마음이다. 물 한 방울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돌 같은 마음이다. 그러나 스폰지에 떨어지면 그대로 다 스며든다. 즉 완고한 마음이란 돌같이 굳어 있는 딱딱한 마음이다.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완고한 마음은 최대의 걸림돌이다. 특히 영성 생활을 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완고한 마음은 가장 커다란 적이다. 왜냐하면 영성생활이란 성령을 따라 사는 삶이며 성령을 따라 살려며는 완전히 수용적인 자세이어야 하고 성령의 역사하심에 민감해야 하기 때문이다.

 

완고한 마음은 자기 혼자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고 하는 마음이다. 즉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마음이다. 아니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는 마음이다. 자기 스스로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교만한 사람이다.


영성생활을 하는 사람이 가져야할 마음은 부드러운 마음, 가나한 마음 어린이와 같은 마음,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마음, 도움을 청하는 마음, 구걸하는 마음, 수용하는 마음이다.


내가 완고한 마음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복음을 보면 예수님의 부활을 보고 전하는 사람과 그 말을 듣고도 믿지 않는 완고한 마음을 가진 제자들의 차이가 어떤 것인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즉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을 본 마리아 막달레나와 제자들 두 사람은 복음을 전하였는데 비해 믿지 않은 제자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막달레나 마리아는 슬퍼하며 울고 있는 곳으로 찾아가 소식을 전하였지만 그들은 믿지 않았다. 시골로 가던 두 사람도 돌아와서 다른 제자들에게 이 소식을 전했으나 다른 제자들은 믿지 않았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삶의 자세가 무척 역동적인데 반해 마음이 완고하여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은 정지된 상태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복음을 전하고 있지만 마음이 완고한 사람들은 복음을 전하기는커녕 슬퍼하며 울고 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삶의 변화가 있었지만 마음이 완고한 사람들은 복음을 듣고도 아무런 변화가 없다.


부활한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마음 안에 커다란 기쁨과 힘이 솟구치고 있지만 마음이 완고하여 믿지 않는 사람들은 복음을 듣고도 아무런 충동을 느끼지 못한다. 기쁨이 없다. 예수님의 부활로 온 세상이 변화되고 있고 새로운 삶이 시작되지만 마음이 완고하여 믿지 않는사람들은 예전이나 예수님이 부활하신 이후에나 아무런 삶의 변화가 없다.


내 마음에서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열정이 일어나는가?

내 마음에 어떤 힘이 솟구치는가? 복음을 들으면 어떤 느낌이 전달되는가? 그렇다면 예수님과 더불어 그 사람도 부활한 사람이다.

 

그러나 아무런 변화 없이, 충동없이, 기쁨없이,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열정도 없이 살아가고 있다면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완고한 나의 마음 때문이다.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의 완고한 마음이 개방되지 않는 한, 부드러워지지 않는 한, 받아들이려고 노력하지 않는 한 나는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하지 못할 것이며 복음 선포자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하느님이 우리 인간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이다.

그러나 내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아무리 위대한 선물이라도 내 것이 될 수 없다. 부활이 선물이 될 수 있는 것은 받아들이는 이의 몫이다.


그것은 일상적인 우리 생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매일 예수님은 우리에게 부활의 선물을 주신다.

그러나 내가 믿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나는 부활할 수 없다.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믿음이 성장할 수 있다.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변화될 수 있다.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온유한 마음, 부드러운 마음을 지닐 수 있다.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부활 할 수 있다.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영적인 감각을 지닐 수 있다.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는 관대한 사람이 될 수 있다.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매일 말씀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말씀에서 얻는다.

믿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의 완고함이 오늘도 중풍병자처럼 무디어진 모습으로 살아가게 하지는 않는지?

 

마음이 완고하여 도무지 믿으려 하지 않는 제자들의 마음이 오늘 나의 마음은 아닌지 우리 마음을 들여다 보자. 
                                         

                                                      -유광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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