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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455) 순삼씨 말씀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6-04-05 조회수553 추천수8 반대(0) 신고

2005년4월5일 사순 제5주간 월요일 성 빈첸시오 페레르 사제 기념 허용 ㅡ 다니엘3,14-20.91-92.95;요한8,31-42ㅡ

 

      순삼씨 말씀

                    이순의

 

 

오늘의 복음서는 진리에 대하여 말씀하시고 계신다. 즉 진리란 예수님의 말씀이다 라는 정의를 강조하고 계신다. 예수님의 말씀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주님의 제자가 되고, 진리를 깨닫게 된다는 말씀이다. 그 말씀을 믿겠다고 이국의 종교인 그리스도교를 따라서 먼 동방의 작은 나라에 살고있는 나도 소속되어 있다. 그러므로 나는 진리 안에 머물고 있는 주님의 백성임이 분명하다. 신부님의 강론 마지막에 참진리 안에 머무는 것은 진정한 자유에서 온다고 말씀하셨다. 일상에서의 자유! 내 자신 안의 자유! 타인으로 부터의 자유! 남이 나를 어떻게 볼 것인가?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를 걱정하지 말고 하느님아버지께서 나를 어떻게 보시고 생각하실 것인가?를 고민하라는 말씀이셨다.

 

그런데....... 생뚱맞은 생각이지만 오랜지기인 순삼과 나눈 농담 반에 진담이 반이었던 진리가 떠 올랐다. 우리나라는 오랜 전통의 불교와 유교와 샤머니즘의 토속 신앙까지 짬뽕의 정신세계를 밑바탕으로 하여 그리스도교도 살고, 다른 종교들도 살고있다. 아무리 아무리 부정한다고 해서 부정되어질 성향의 것들이 아니며, 긍정한다고 해서 활성화 되어질 것들도 아닌, 그냥 살아 온 방식이요. 몸에 밴 습관인 것이다. 아마도 그리스도교가 정착하면서 준성사의 형식인 축성의 문화가 자연스럽게 정착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런 전통적 관습을 대용할 문화적 충족감의 우선에서 파급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 예로 나는 이사를 할 때면 반드시 새로 이사할 집에 십자가를 먼저 들인다. 그리고 성수를 뿌리고 나서 다른 이사짐을 옮기게 한다. 그런데 우리민족의 전통은 농경사회를 주체적 기반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이주나 이사를 쉽게 하는 민족은 아니었다. 현대의 산업문명이 자본을 추구하면서 이사라는 거대 행위가 보편화 되었지만 실제로 우리 민족은 너른 농토나 경작지의 주지는 물론 소작인들 조차도 그 땅을 떠나서 살기를 꺼려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사를 할 때면 잡귀를 몰아내는 붉은 팥 시루떡을 찌고, 가족공동체의 생존을 같이하는 가마솥 속에 요강을 담고, 그 요강 속에 무명실과 볍씨 같은 씨를 담고, 불씨도 넣었다고 하나 내가 자라서 기억한 후로는 불씨가 아닌 화랑 성냥과 초를 한 곽씩 담아서 안방에 놓고 빌었던 기억이 난다.

 

이와 마찬가지로 혼례에 있어서도 혼인성사라는 절대절명의 품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사주단자를 받는 절차와 함을 받는 절차에서는 아직도, 앞으로도, 성수 뿌리고 끝이 날 풍습은 아닌 것이다. 시대가 발달하여 사주단자와 함 받이용 시루를 주문만 하면 방아간에서 시간을 맞추어 김도 피어오르지 않은 뜨거운 팥 시루떡이 도착하고, 시모님이나 장모님의 한복 치마자락이 펼쳐질 때쯤이면 그 시루는 김을 피우며 뚜껑이 열린다고 한다. 돈만 있으면 참으로 좋은 세상임에는 분명하다. 내 기억으로는 언니들이 결혼할 때 어머니께서 시루를 찌느라고 정성을 드리던 모습이 선연한데...... 나는 짝궁이 가난하고 친정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한참 후라서 그럭저럭 혼인을 한터라 그런 절차도 없이 교회의 품인 혼인성사의 은혜만으로 모든 절차의 시작이요 끝이었지만! 요즘은 그런 옛 어머니들의 정성이 아니라도 풍습을 그대로 재연하고 실행할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럼 진리는 무엇이란 말인가?!

 

하느님을 믿으면서 토속의 풍습을 겸해서는 안된다는 말인가? 하느님을 믿더라도 좋다고 하는 민속의 행위는 다 실현해 보는 것도 정성의 일원이라고 인정할 것인가? 간혹은 주님의 말씀이라는 진리 안에서 가톨릭 교회가 공격을 받는 이유 중에 하나가 이런 전통적 풍습의 수용과 허용에서 기인되기도 한다. 제사도 그렇고...... 잦은 축성의 문화도 그렇고.......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면 분명히 미신적인 토속문화는 배척되어져야 하고, 그런 잡귀를 동행하지 않는 그리스도교 신앙으로 인하여 수 없이 많은 순교자들을 낳았다는 것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혹은 자기의 소원을 비는 내용을 작은 쪽지에 적어서 대성당의 은밀한 곳에 쑤셔 놓거나, 심지어는 아파트 당첨을 비는 쪽지를 적어서 감실의 틈에 끼워 놓았다가 청소당번에 의하여 처분 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사실은 참선의 경지인 불교의 법도 아니요. 예절의 법도인 유교의 경지도 아니며....... 오로지 장독대에, 부뚜막에, 감나무 밑에, 토방 위에, 곳곳에 잡신을 놓고 물 한 사발의 봉헌으로 빌어 온 우리 민족이 지닌 샤머니즘적 태생에서 나온 습관이 그리스도화 하게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그 기원의 대상이 온갖 잡신에서 감실의 성체로 전환 되었을 뿐이라는......! 그러나 그 행위의 방식은 잡신을 섬길 때나 그리스도의 성체를 섬길 때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 치성의 공로를 나무랄 자격이 있는 사람 또한 아무도 없다. 수 없이 많은 교우들 중에 그런 방법으로라도 그 정도의 열성을 드려서 은혜를 얻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 것인가?!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런 열정들이 결코 헛되지 않더라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는 사실이다.

 

심지어는 누구네는 아들을 얻으려고 돈을 얼마를 들여 로마에 가서 100일 치성을 드리고 왔는데 정말로 아들을 얻었다는 이야기도 헛소리는 아닐 것이다. 아들을 낳을 것인데 호들갑을 떨어서 그렇게 된 것처럼 보인다는 말도 있지만....... 어찌 되었든지 누구나 할 수 있는 치성은 아니기 때문에 <지성이면 감천이다.>라는 속담도 생겼을 것이다. 오늘의 복음서는 그리스도 예수를 따르는 길이야 말로 진리의 시작이요 끝이다 라고 알려 주신다. 그 진리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참된 진리라고 선포 하신다. 그리스도교를 믿는 사람은 모두가 그 사실을 <믿습니다.>해야만 진정한 그리스도인인 것이다. 그러나 말로는 <믿습니다.>라고 하면서도 우리는 하느님의 눈으로 내가 내 자신조차도 바라보지 못한다는 어리섞음을 인정해야만 한다.

 

하물며 타인을 바라 볼 때 조차 내가 하느님의 눈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느끼는지는....... 과욕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정도의 묵상을 하고보니....... 새삼 순삼씨의 명언이 얼마나 진국이었던지!

<언니!

  옛 말은 더 이상 진리가 아니예요.

  화장실은 멀어야 한다고 했는데요. 화장실은 안방에 있어야 해요. 오히려 밥을 먹는 주방이나 식당보다도 더 가까운데 있어야 하는게 화장실이예요.

  친정도 멀어야 한다고 했는데요. 친정은 옆구리에 꿰차고 있어야 해요. 그래야 친정엄마가 수시로 오셔서 청소해 주지요, 반찬 만들어 주지요, 생필품 사다가 넣어주지요, 아기 낳으면 아기 다 키워주지요, 돈 떨어지면 돈 빌려주지요..... 어휴~~! 셀 수도 없어요.>

 

거나한 묵상 중에 너무나 시시껄렁한 화재가 떠올라서 내 머리통을 한 방에 날려버렸다. 그러나 이 시대는 순삼씨의 그런 말씀이 타당하며 가장 합리적 사실로 실행되고 있다. 그런 속에서도 불변의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 진리는 주님의 복음인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살고, 그리스도와 함께 한다는 것은 시대의 행위는 인간 중심의 편리를 쫓아 변화 발전한다고 해도, 진정한 내면의 신앙적 본질은 상실하지 않아야 한다는 선포인 것이다. 그러나 살아보면 살아 볼수록 시대가 요구하는 합리적 사실을 인정하면서 신앙적 본질을 상실하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무거운 일인지는 누구나 겪는 신앙의 갈등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를 사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말씀이 참 진리임을 선포하며 살아야 하는 소명을 완수해야만 한다. 

 

최근에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나도 좀 부티가 나서 내가 마음 가는 이웃은 물론, 수녀님이나 신부님께 후원해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실 거대한 물질의 배경 앞에서 나는 초라 해지고, 한 쪽으로 비켜 앉게 되는 체험이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동기 부여를 한 것이다. 이러고도 내가 참 그리스도인인가? 라는 회의감에 눈물을 지어야 했었던! 나까지 돈이 많아서 설처대면 어쩌라고......??

ㅎㅎㅎㅎ!!!!!

 

ㅡ"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면 아브라함이 한 일을 따라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너희는 지금, 하느님에게서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이야기 해 준 사람인 나를 죽이려고 한다. 아브라함은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 그러니 너희는 너희 아비가 한 일을 따라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께 말하였다. "우리는 사생아가 아니오. 우리 아버지는 오직 한 분, 하느님이시오." 요한8,39ㄴ-41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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