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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와서 아침을 먹어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 신부님 강론 말씀)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6-04-21 조회수615 추천수5 반대(0) 신고

2006.4.21 부활 팔일 축제 내 금요일

 

사도4,1-12 요한21,1-14

 

 

 

 

 

 

"와서 아침을 먹어라”

 

 


어제 미사 중의 깨달음 나눕니다.

“아, 수도원에는 오직 하느님만이 현존하시는 구나.

우리 수도승들은 하느님 안에 숨겨져 보이지 않고

드러나는 것은 하느님뿐이구나.  

 

하느님만이 수도승들의 비전이구나.

하느님의 집인 수도원,

하느님의 일인 기도,

하느님을 찾는 사람인 수도승,

아예 하느님  빼놓고는 완전히 무의미한, 허무한 삶이겠구나.

참 비전, 참 삶의 의미이신 하느님을 잊어버려

비전 없다 불평불만이구나.

아무리 거룩한 수도원도 하느님 잊어버리면 그대로 세속이 되어버리겠구나.

하느님 아니면 바라볼 것이 뭐가 있나?”

생각과 더불어 마음에 드리운 허무의 안개 말끔히 걷히는 듯 했습니다.
문득 떠오르는 코헬렛 말씀입니다.
“허무로다, 허무!
코헬렛이 말한다.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코헬1,2).”

제행무상(諸行無常), 하느님 빠진 인생이 도달하는 귀착점 허무입니다.
아마 예수님 돌아가신 후 실의에 빠져

옛 생활로 복귀한 베드로와 제자들의 심정도 이와 흡사했을 것입니다.

 

삶의 비전으로 추종하던 스승 예수님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는 허무감만 제자들의 가슴에 가득했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고기를 잡으러 가겠네.”
베드로와 제자 일행들, 밖으로 나가 배를 탔지만

그날 밤에는 아무것도 잡지 못했다 합니다.

대신 그 가슴들 허무감만 가득 했을 것입니다.

 

바로 이 과정을

뒤에서 밤새 물끄러미 바라보고 계셨던 부활하신 주님이셨습니다.

동터오는 아침과 더불어 물가에 서계신 부활하신 모습 얼마나 반가운지요.

 

다음 묘사가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 같습니다.
‘어느덧 아침이 될 무렵, 예수님께서 물가에 서 계셨다.’

이어 전개되는 대화도 감동적입니다.
“예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
“못 잡았습니다.”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져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물을 던졌을 때,

고기가 너무 많이 걸려 그물을 끌어 올릴 수 없었다합니다.

“주님이십니다.”
주님의 사랑을 받던 제자의 말에

조건반사적으로 호수에 뛰어든 베드로입니다.

아마 베드로 다음의 시편 127장 말씀을 절감했을 것입니다.
“주께서 집을 아니 지어 주시면, 그 짓는 자들 수고가 헛되리로다.
주께서 도성을 아니 지켜 주시면, 그 지키는 자들 파수가 헛되리로다.
이른 새벽 일어나 늦게 자리에 드는 것도,

수고의 빵을 먹는 것도 너희에게 헛되리로다.
주님은 사랑하시는 자에게, 그 잘 때에 은혜를 베푸심이로다.”

무엇을 해서 은혜가 아니라,

하느님 사랑하시는 자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잠잘 때에도 은혜를 베푸신다는 내용이 긴 여운을 남깁니다.

주님 없는 세상은 허무의 세상 바다요,

부활하신 주님께서 함께하는 세상은 의미 충만한 세상임을 깨닫습니다.

 

진정 하느님을 믿을 때

삶의 허무(虛無)는 하느님 현존(사랑)의 충만(充滿)으로 바뀝니다.

이런 부활하신 주님의 체험 있었기에

베드로는 더욱 확신에 넘쳐

사도행전에서 다음처럼 주님을 고백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분 말고는 다른 누구에게도 구원이 없습니다.

사실 사람들에게 주어진 이름 가운데에서

우리가 구원 받는 데에 필요한 이름은 이 이름밖에 없습니다.”

삶의 허무와 무의미가 물밀듯이 밀려올 때, 가만히 뒤돌아보십시오.

부활하신 주님이

우리 삶의 어둠을 환히 비춰주고 계심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와서 아침을 먹어라.”
오늘도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과 함께 우리를 성찬의 식탁에 초대해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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