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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는 고기를 잡으로 가오' - [유광수신부님의 복음묵상]
작성자정복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6-04-20 조회수577 추천수5 반대(0) 신고

<나는 고기를 잡으러 가오.>(요한 21, 1-14)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이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 주는 말씀이다. 바로 이런 제자들의 모습은 하느님을 잃어버린 인간의 모습, 스승이신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이 스승을 잃어버렸을 때 무엇을 하고 있는 지를 보여 주는 모습이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때로는 하느님을 잃어버릴 때가 있다. 예수님을 따르던 많은 성직자 수도자들, 또는 나름대로 봉헌의 삶을 살아가던 이들이 예수님을 잃어버릴 때가 있다. 갑자기 예수님이 사라지신 것이다. 그동안 믿었던 하느님이 갑자기 떠나 버리신 것이다. 하느님의 부재하심을 온 몸으로 느끼는 순간이다.

 

 하느님이 계시는가? 계신다면 어디에 계시는가? 하느님이 계신다면 왜 나를 이 지경으로 놔두셨는가? 하느님은 나를 버리고 어디로 가셨는가? 라는 의문만 일어날 뿐 도저히 하느님의 현존을 아니 하느님께 대한 티끌만큼의 믿음도 없이 캄캄한 어두움이 엄습해 올 때가 있다. 바로 지금 제자들이 그런 상태인 것이다.


제자들은 그동안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는데 결국 십자가 죽음으로 끝장 나버렸다. 예수님은 죽으셨다. 죽으심으로서 모든 것이 끝장났다. 그동안 모든 것을 버리고 따랐던 예수님이 비참하게도 죽음으로 인생을 끝 마치셨다. 더 이상 예수님을 볼 수도 없고 물어볼 수도 없고 갑자기 엄마를 잃어버린 어린이가 된 셈이다. 고아가 되어 버렸다.

 

 제자들에게 남은 것은 허탈감과 실망, 절망, 슬픔과 분노뿐이다.

제자들 몇몇이 모여 있지만 무엇을 해야하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자기 자신들이 누구인지, 무엇 때문에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왔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는 상황이다. 오직 모여있지만 뾰족한 방법도 없고 그렇다고 그냥 모여있는 다는 것은 더욱 괴로운 일이다. 무엇을 하기 위해 모여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재미있는 일로 모인 것도 아니고 저마다 허탈감에 빠져 있는 그들이 한 자리에 그냥 모여 있다는 것은 더욱 괴로운 일이다. 아니 견딜 수 없는 고통이다.

 

 인간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함께 모여 있다는 것은 일종의 고문이다. 견디다 못해 성질 급한  베드로가 나서서 "나는 고기를 잡으러 가오." 하고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울화를 참다 못해 한마디 하였다. 공동체가 분열되는 모습이다. 각자 개인 플레이를 하자는 것이다. 너는 너대로 가고 나는 나대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각자 흩어져서 제 갈 길을 가자는 것이다.

 

 베드로는 예수님한테 하늘 나라의 열쇠를 맡긴 이로서 공동체의 책임자이다. 공동체를 예수님을 대신해서 추수려 나갈 책임이 있는 사람이다.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이 공동체가 가장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는 상황에서 함께 예수님한테 부여 받은 사명을 이루려고 노력하지 않고 오히려 "나는 고기를 잡으러 가오." 하고 제 갈 길을 가겠다고 제일 먼저 서두르고 있다. 베드로가 그렇게 말하자 다른 이들도 덩달아서 "우리도 함께 가겠소." 하고 따라 나섰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모습이다. 그놈이 그놈이다.


 이들은 모두 예수님으로부터 세상 복음화를 위해 불리움 받은 이들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게 하기 위해 그들을 부르시고 함께 생활하시면서 3년 동안 특별 교육을 시켜 오셨던 이들이다. 그리고 당신이 가시면서 그 일을 해달라고 간절하게 부탁했던 이들이다. 그런데 지금 그들이 무엇을 하러 나서는가?


"나는 고기를 잡으러 가오."라는 말은 예수님 한테 불리움을 받기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 가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예수님한테 교육 받았던 모든 것들을 다 버리고 원래의 자기 직업으로 돌아가겠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한 사람 한 사람 부르시어 열 둘을 세우시어 사람낚는 어부가 되도록 하나의 새로운 공동체를 만드시고 모든 정성과 사랑을 쏟아 교육시켜왔던 공동체이다.

 

예수님이 이 세상을 떠나시면서 당신이 하셨던 일을 계승해서 세상 끝날까지 해 나갈 수 있는 유일한 공동체이다. 그런데 지금 그들은 자기들의 사명이 무엇인지, 또 자기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이런 모든 것들을 다 잊어버리고 본래의 어부로 돌아가겠다고 나서는  것이다.

 

한 마디로 지금 이들의 모습은 예수님이 애써 일구웠던 공동체의 모습은 간데 온데 없이 사라지고 제각기 자기 살 길을 찾아 흩어지고 있는 모습이다. 이들은 자기들이 어디로 가야하는지 방향 감각을 잃어버렸고, 무엇을 해야하는지 자기들의 사명을 잃어버렸고, 누구를 의지하며 살아가야 하는지 삶의 버팀목을 잃어버렸다.

 

한마디로 방황하는 인간, 사명감을 상실한 인간, 자기만 살겠다고 나서는 이기주의적인 인간, 절망 속에 우왕 좌왕하는 인간의  모습이다.


"그들이 밖으로 나가 배를 탔지만 그 날 밤에는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다."는 것이 더욱 제자들을 절망 속에 빠뜨린다.

슬픔과 절망 속에 빠져 있던 그들이 유일하게 위로를 삼을 수 있고 희망을 갖을 수 있다고 믿고 나섰던 일들이었는데 그나마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다.

유일하게 캄캄한 어둠을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고 밤새도록 열심히 고기를 잡았는데 한 마디도 잡지 못했다는 것이 더욱 그들을 깊은 절망 속으로 빠져 들게 한다.

 

요한은 이런 제자들의 상황을 "그 날 밤에는"이라고 적었다.

그야말로 제자들에게 있어서 그날은 캄캄한 밤이었다. 무엇 하나 제대로 보이지 않는 밤이었다.


무엇이 이들을 이토록 캄캄한 밤에 헤메이게 하였는가? 누가 이들을 캄캄한 밤에 가두었는가? 예수님이 그러셨는가? 주위 환경이 그렇게 만들었는가? 이웃 사람들이 그렇게 만들었는가? 아니다. 자기들 스스로 캄캄한 밤 속으로 기어 들어간 것이다. 그것은 마음이 무디어져서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것을 알아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음이 완고해서 살아계셨을 때 이미 말씀하셨던 것을 믿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은 이미 당신이 말씀하셨던 일이요, 그리고 당신이 말씀하셨던 대로 이루워 지고 있는 일일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그 말씀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캄캄한 밤을 맞이한 것이다.

 

하느님을 잃어버린 인간, 믿고 따랐던 예수님을 끝까지 믿고 따르지 못한 인간의 모습이다. 인간이 믿고 따랐던 예수님을 잃어버렸을 때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되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모습이다. 신앙인은 끝까지 예수님을 놓치지 않는 사람이다. 신앙인은 예수님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 사람이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예수님을 따라 가는 사람이다. 그리고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올바로 알아 듣는 사람이다. 예수님이 하셨던 말씀을 믿고 따르는 사람이다.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을 때 우왕 좌왕하게 된다. 예수님을 놓쳐버릴 때 자기들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까마득하게 잊어버린다. 예수님이 하셨던 말씀을 올바로 알아듣지 못할 때 깊은 어둠 속에 갇히게 된다. 많은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들이 예수님을 끝까지 따르지 않을 때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모습이다.

 

예수님은 어떻게 잊어버린 이들의 사명감을 다시 되찾게 해주시는가?  예수님은 어떻게 흩어지고 있는 이 공동체를 다시 하나되게 하시는가? 예수님은 캄캄한 밤 중에 헤메고 있는 이들을 다시 빛으로 나올 수 있게 이끌어 주시는가? 예수님은 어떻게 당신을 잃어버림으로써 깊은 절망과 슬픔 속에 빠져 있는 이들을 위로해 주시고 다시 용기를 되찾아 주시는가?

 

즉 예수님은 죽어 있는 이들을 어떻게 다시 부활시키시는가?  "와서 아침을 들어라!"라는 책에서 이야기가 계속되고 있다. 보시오, 읽으시오, "와서 아침을 들어라"를.        

 

-유광수 신부  -

 

 

 

참고 = '와서 아침을 들어라' -요한 복음에 의한 성체성사 묵상-

1989년 - 성바오로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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