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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454) 코팩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6-04-04 조회수578 추천수2 반대(0) 신고

2006년4월4일 사순 제5주간 화요일 성 이시도로 주교학자 기념 허용 ㅡ민수기21,4-9;요한8,21-30ㅡ

 

     코팩

           이순의

 

 

어멈이 여자로 보이지 않는 탓인지? 아니면 어멈의 인생이 여자같을 수 없었던 탓인지? 남들이 사는 일상들이 그 사람네 집에서는 하나의 사건이 되고야 말았다. 시대가 변하고, 일용품들이 바뀌고, 초 마다 다른 신상품의 시대를 살아야하는! 의식이 다른 시대를 살아 온 어른들에게는 적응이 되는 것도 있지만 적응을 하고 싶지 않은 것도 있다. 그저 자기 몸에 바르고 치장하는 것을 아껴온 어멈은 신세대를 사는 아들에게는 또 시대를 따라서 허용하는 융통성이 확실하다. 그러나 아범의 생각은 달랐다. 그렇게 아까워하는 제 어멈을 생각해서라도 아들의 쓰임새도 아뜰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하루는.......

학교에 다녀 온 아들녀석이 어멈에게 코팩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래서 어멈은 속으로 생각했다. 낮에 학교에서 아들녀석이 코팩에 관한 화재거리 속에서 머물다 왔다고! 그리고 물어 보았다.

<왜?>

<응, 엄마! 친구들이 그러는데 코팩을 바르면 코에 붙어있는 여드름 찌꺼기들이 다 빠져버린데. 엄마가 이렇게 잘생긴 아들에게 그거 하나 사 주라. 응~? 엄마~?>

덩치는 말만 하고 소만 한데 부리는 애교는 울타리 안의 노랑 병아리 수준이다. 그래도 주간에는 학교에 다녀야 하니까 주말에나 생각해 보자고 얼렁뚱땅 받아 넘겼다.

 

그런데 학교에 가지 않는 토요일은 늦잠 삼매경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아들녀석이 아침밥을 먹자고 졸랐다. 어멈은 몇 일 전의 코팩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아깝디 아까운 자식의 아침밥상에 집중 하였다. 얼마 만에 아침밥 다운 밥을 먹는다는 말인가?! 대충 국에 말아서 겨우 몇 숟가락 떠 넣고 다니던 때움식(食)이 제대로 된 조식(食)으로 채워진 것이다. 어멈의 마음은 어떠하든지 간에 잘 먹어주는 그 옹골진 모습에 또 홀딱 반해서 아무런 기억도 아무런 의식도 없이 흡족하였다. 그런데 밥상을 물리고 어멈이 상을 정리하기도 전에 아들녀석이 또 울타리 안의 병아리처럼 애교를 부린다.

 

<엄마. 우리 설거지 끝나는 대로 백화점에 가자.>

그때서야 어멈은 생각했다. 몇 일 만의 조식이 때움식이 아니었던 이유는 코팩을 사기 위한 아들의 수완이었다고! 모든 어멈의 생각들이 다 그러하겠지만 쓴 입맛에 이른 조반을 먹고 학교에 가는 자식을 본 어멈의 마음은 아침을 잘 먹어준 아들에게 기분이 좋아져 있다. 자식은 또 기분이 좋은 어멈을 구술려서 제 목적하는 바가 기분이 좋게 성사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남의 집 엄마들은 맛사지도 잘 하고, 취미생활도 잘하고, 멋쟁이에, 품위 유지까지 한다는데 제 어멈은 도무지 그런 모습을 본적이 없었으니....... 팩도 모르는데 코팩은 또 어찌 알겠는가?!

 

기분 좋게 외출을 하여 백화점의 마트에서 코팩을 샀다. 그런데 어멈도 얼굴팩을 붙여 본 기억이 있었다. 신혼 시절에는 얼굴에 팩을 붙이고 누운 적이 종종 있었다. 그리고 그 얼굴팩의 용기에 더 이상 내용물이 없어진 뒤로는 돈을 들여서 사 보지 않았다. 새삼 들어버린 나이에 얼굴팩 하나 쯤 사서 붙여보는 것도 아들 덕택에 해 보는 호사일 것 같았다. 코팩 하나랑 얼굴팩 하나랑 사서 귀가를 했다. 백화점까지 나간 쇼핑치고는 너무나 시시한 것 같았지만 그래도 행복한 어멈과 아들이었다. 돌아오는 대로 아들은 세안을 하고, 어멈은 그런 아들의 얼굴에 얼굴팩을 펴 발라 주고 코팩까지 붙여 주었다. 여자인 어멈은 눕지 못했다. 미용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마냥 신기해 하는 아들의 보조자가 되어 주었다.

 

<이렇게 붙이고 다 마를 때까지 한 숨 자고 나면 떼어줄께.>

그리고 어멈은 모니터 삼매경에 빠져 들었다. 저 맛사지가 끝나면 아들의 차지가 되기 전에 잠깐 들려 본 것이다. 그런데 그 꼴을 지켜보던 아범의 눈에는 그게 참 못마땅하기 이를데가 없었다. 신혼시절에 각시가 붙이고 누웠는 꼴을 본 적은 있었지만 아무리 시대가 변했기로서니 황소만한 아들녀석이 계집아이들이나 붙이고 누웠을....... 번들거리고 찐덕찐덕한 붙인게를 덕지덕지 붙이고 누워있는 꼴이 눈꼴이 시려웠던 것이다. 그리고.......

<에끼 이놈! 사내자식이 이게 뭐냐? 요새 반까(중성의 옛 전라도 사투리)가 많다더니 너도 하아무개 될라고 그러냐? 어쩌냐?>

 

순간 모니터 삼매경이던 어멈이 긴장을 하기 시작했다. 저건 분명히 아빠의 편견이고 실수인 것이다. 크는 아이들의 입장인 아들의 반발이 어떻게 나올지를 모르는 일이었다. 더구나 아들은 하아무개를 신이 내려주신 질서를 파괴했다고 해서 그냥 싫어하는 정도가 아닐 만큼 싫어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외로 아들의 반응은 없었고 조용했다. 어멈은 수시로 아들의 얼굴을 들여다 보며 건조 상태를 살피고 있었지만 아범은 계속 그런 모자가 못마땅한 눈치였다. 그래도 아들의 반발이 없어서 어멈은 어멈대로 안심은 하고 있었다.

 

아들의 얼굴에서 꾸둑꾸둑 마른 팩은 광택이 나고 탱탱해졌다. 어멈은 누운 아들의 얼굴에서 탈피를 시작했다. 첫경험인 아들은 소리를 질렀다.

<아이쿠. 나 죽네.>

아프기는 아팠나 보다. 밀착된 얼굴팩을 뜯는 첫 기분은 나에게도 잊혀지지 않는 신비감과 탈피되는 순간의 뜯기는 촉감도 너무나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얼굴의 가장자리에 남아 붙은 팩 찌꺼기들을 떼고 스킨을 바르라고 일러주었다. 아들은 화장실로 들어갔다. 평온했다. 스킨을 바르고 나온 아들은 모처럼의 한가한 토요일 오전의 자유를 누릴 것이고, 아범은 낮잠을 잘 것이고, 어멈은 평화로울 것이다.

 

그러나 그 평화는 순간에 지나지 않았다.

<아빠, 제가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일어나서 앉아보세요.>

화장실에서 나온 아들은 돌변해 있었고, 아범은 엉겁결에 일어나 멍하니 아들을 처다 보았다. 어멈은 둘의 눈치를 살피며 어느 쪽의 기를 우선적으로 살려야 할지를 저울질 해야만 했다.

<아빠, 제가 술을 마셨어요? 담배를 피웠어요? 아니면 사고를 쳤어요? 어떻게 아빠가 되어가지고 아빠의 자식을 하아무개에게 비교를 해요? 요즘 아이들은 다들 맛사지 정도는 한다는데 맛사지 한 번 했다고 하아무개 될래 하는 아빠가 온전한 아빠예요? 그 말씀 만큼은 취소하세요?!>

 

우와~! 논리적으로 이치적으로 아들의 말이 승리다. 그런데 아범의 반격은 어떻게 나올 것인가?

<이놈아. 사내놈은 되는대로 사는 것이지 등치는 하마만 한 놈이 코딱지에다 붙이고 누웠는게 그럼 온당한 짓거리냐?>

어멈이 보아도 그 반격은 열세에 몰려있음이 확실했다. 아들의 반격이 다시 시작이 되었다.

<아니요. 아빠. 요즘은 남자들도 성형도 하고 화장도 하고 그래요. 저는 절대로 그런짓은 안할거거든요. 그런데 여드름찌꺼기는 고민이 되어서 코팩 한 번 했는데요. 내 아빠가 저한테 하아무개 될래 하는 것은 꼭 취소해 주세요. 저는 코팩 한 번 했다고 내 아빠한테 트랜스젠더 취급 받는 것은 절대로 억울 하거든요. 그러니까 당장 취소 해 주세요.>

 

아범이 참패다. 벽에 등을 기대어 앉아서 신세대 아들이 쏘는 반격에 눈 지그시 감고 콧김을 씰룩씰룩 거리며 입을 앙당물었다. 어멈이 보니 고혈압 환자라면 혈압이 터지기 일보 직전이다. 어멈의 절충이 불가피 하다.

<이놈아. 너 아빠한테 그게 무슨 버릇없는 짓이야? 아빠는 시대를 그렇게 살지 못해서 하는 소리신데 너가 그만한 일로 아빠를 몰아세울 자격이 있어? 진짜로 비싼 돈 들여서 학교에 보냈더니 코팩이나 배우러 다니는 것 같은 너의 모습을 엄마도 이해를 못 하겠는데, 엄마니까, 여자니까, 그거 해 보아도 별거 아닌 걸 아니까, 그럼 해 보라고 한 것인데, 코팩 하나에 아빠한테 대드는 짓거리 할 줄 알았으면 애시 당초 사 주지를 않았다. 이놈아! 아빠의 입장에서 너를 한 번만 바라봐봐. 이놈아. 사내놈이 벌건 대낮에 코딱지에 이상한거 붙이고 누웠는 꼴이 생산적으로 보일 것인지를?! 빨랑 아빠 한테 사과 안해?>

 

아들은 아빠더러 앉으라고 할 때 보다 흥분되어 있고, 아빠는 헐떡헐떡 숨을 몰아쉬느라고 눈을 감았다. 그래도 어멈의 절충이 아빠쪽으로 쏠리기는 했지만 찰라의 생각은 동원을 했을까? 아들은 눈물이 그렁하고.....

<우리집에서 부부는 한 통속이고 나는 왕따야.>

어멈은 또 방향을 전환했다. 아들의 맘도 풀어 줘야 하는 것이다.

<여보. 당신이 세상을 다시 배우든가? 아니면 아예 침묵을 하든가? 해야지 모처럼 즐거운 토요일 오전을 이런식으로 마무리를 해서 되겠어요? 코팩 그거 아무것도 아니예요. 여자만 하는 것도 아니구요. 남자도 하고요. 아저씨나 할아버지도 하는 것이라구요. 속된 말로 당신 아들이 너무나 잘 생겼는데, 영화사에서 스카웃 하겠다고 제안이 오면 화장하니까 안된다고 반대하실거예요? 오늘은 당신이 하아무개 될래 한 말은 저도 소화가 안되요. 우리는 주님을 믿고 사는 사람들인데 할 말이 있고, 안할말이 있지요. 당신이 아들한테 사과 하세요.>

 

아들은 아들의 방으로 가서 눕고, 아범은 일어났던 그 자리에 다시 눕고, 어멈은 모니터 삼매경을 접고 얼마 전에 사다가 손질하여 냉동실에 둔 오징어를 꺼냈다. 부자가 한 숨 자고 일어나면 김치 부침개에 둘러 앉아 맛나게 먹고 웃을 일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김치 송송송, 파 어슷어슷 썰고, 오징어는 물에 담궈 녹힌 다음에 가는채를 썰고, 감자랑 양파도 얇게 저며서 넣고, 계란 탁탁탁~! 밀가루 풀어서 반죽하여 한 국자씩 지져낸다. 세대차이! 참, 별것도 아닌데서 분란이 발생하고 보니......!? 그 아들은 제 아들에게 세대차이 느끼지 않는 아빠되어 있을까? 진짜로 코팩 그거 아무것도 아닌데! 히~~!

 

ㅡ그때에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에게 이르셨다. "나는 간다. 너희가 나를 찾겠지만 너희는 자기 죄 속에서 죽을 것이다.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요한8,21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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