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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6월4일(화) 聖프란치스코 카라치올로 님
작성자정유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3-06-03 조회수351 추천수0 반대(0) 신고



6월4일(화) 음 4/26

聖프란치스코 카라치올로


 


프란치스코 카라치올로(6.4)

성인명

프란치스코 카라치올로(Francis Caracciolo)
축일 6월 4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신부, 설립자
활동지역  
활동연도 1563-1608년
같은이름 방지거, 카라촐로, 프란체스꼬, 프란체스꾸스, 프란체스코,
프란체스쿠스, 프란치스꼬, 프란치스꾸스, 프란치스쿠스, 프랜시스



성 프란치스코 카라치올로(Franciscus Caracciolo)





 



귀족 집안 출신인 성 프란치스코 카라치올로(Franciscus Caracciolo, 프란체스코)
1563년 10월 13일 이탈리아 중부 아브르초(Abruzzo)
발라 산타 마리아(Villa Santa Maria)에서 태어나
아스카니오(Ascanio)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그는 22세 되던 해에 나병으로 여겨지는 중병에서 일어나기만 하면
하느님께 자신의 생을 바치겠다는 사적인 서원에 하였고,
기적적으로 회복되어 나폴리(Napoli)에서 공부하고 1587년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는 거룩한 죽음을 준비하도록 사형수들을 돌보는
'정의 백의 사제단'(Bianchi della Giustizia)에 가입하였으며,
1588년에는 요한 아우구스티누스 아도르노(Joannes Augustinus Adorno) 신부와
12명의 동료들과 함께 병원의 환자들과 죄수들을 위하여 일하고 사목하는
'작은 수행 성직자 수도회'(Ordo Clericorum Regularium Minorum)를 설립하였다.
이 회는 규칙은 그 해에 교황 식스투스 5세(Sixtus V)로부터 승인을 받았고,
아도르노 신부가 첫 번째 장상으로 선임되었다.
다음 해에 그는 종신서원을 하면서
아시시(Assisi)의 성 프란치스코의 청빈을 본받는 의미에서
프란치스코라는 수도명을 정했다.
그들은 나폴리에 수도원을 짓고,
그 다음에는 에스파냐로 뻗어나가려 했으나
에스파냐 정부 당국이 수도원 건립 허가를 주지 않아 미뤄지는 사이에
이 수도회는 이탈리아 전역으로 확장되었다.






1591년 아도르노 신부가 사망한 후에 총장직을 승계한 성 프란치스코가
에스파냐를 방문했을 때는 그전보다 훨씬 좋은 여건이었기 때문에
마드리드(Madrid)와 바야돌리드(Valladolid) 그리고 알칼라(Alcala)
수도원을 세울 수 있었다.
그는 7년 동안을 총장으로 봉사하다가 사임하고는
산타 마리아 마조레(Santa Maria Maggiore)의 원장 겸 수련장이 되었다.
그는 교황 바오로 5세(Paulus V)의 주교직 제의를 끝까지 거절하고
수도생활에 전념하다가 1608년 아뇨네(Agnone)에서 병이 들어 그
해 성체 성혈 대축일 전날인 6월 4일 세상을 떠났다.

그의 일생은 환시와 예언의 은혜가 충만하였다.
그는 1769년 6월 4일 교황 클레멘스 14세(Clemens XIV)에 의해 시복되었고,
1807년 5월 24일 교황 비오 7세(Pius VII)에 의해 시성되었다.
그리고 1838년에 나폴리의 수호성인이 되었으며,
1925년에는 아브르초에 있는 성체회의 수호성인이 되었다.
그의 유해는 처음에는 나폴리에 있는 산타 마리아 마조레 성당에 안치되었으나,
후에 몬테베르지넬라(Monteberginella) 성당으로 옮겨졌다.

*굿뉴스 자료집에서 발췌

 

 

 




중병에서 치유되는 은혜를 입고
사제의 길을 택했으며
환시와 예언의 은혜를 입으셨던 님

주교직을 끝까지 사양하고
죄수와 사형수, 어려운 환자와 이웃들을 돌보면서
수도원 건립에 전념하신
성 프란치스코 카라치올로 님이시여

영원의 천상 복락 가운데
저희를 위하여 축복의 기도를 보내 주옵소서!.....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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