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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어제 중요한 거 하나 알았습니다.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19-05-31 조회수1,356 추천수0 반대(0) 신고

 

 

어제 중요한 걸 하나 발견했습니다. 하느님과는 끊임없이 뭔가 계속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는 번호를 정리하면서 생각한 단상입니다. 오랫동안 연락을 하지 않으면 그 핸드폰 전화번호가 변경이 되어 다시 연락을 취하려고 해도 연락을 할 수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얼마 전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10주기 추도식이 있었습니다. 벌써 세월이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저는 그때 노사모는 아니였지만 사고 다음날부터 봉화마을에서 발인까지 봉사를 했습니다. 그때 봉사를 하면서 수원에서 온 누나가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다 보니 짧은 기간이었지만 친하게 되었습니다. 친하게 된 건 바로 같은 생각으로 봉사를 하였기 때문입니다. 나이 차이는 좀 나는 누나였지만 서로 연락하며 지내자고 해서 전화번호를 교환했습니다.

 

그리고 봉화에서 헤어진 후에 한 번 제가 먼저 생각나서 전화 통화를 하고는 그후로는 어쩌다 보니 전화를 하지 않고 지내다가 이 앞전에 추도식이 가까워오자 제가 전화를 한번 해봤는데 딴 남자가 받았습니다. 아마 전화번호를 바꾼 모양입니다. 그때 봉화에서 보고 딱 10년이 흘러서 기억이 희미합니다. 그래도 어렴풋이 누나의 모습이 기억납니다. 참 아쉽습니다.

 

그리고 2002년도에 마지막으로 본 원공 스님 전화번호가 제 폰에 아직 있는데 이것도 예전 번호입니다. 얼마 전 스님 이야기를 쓰기 위해 검색해봤지만 스님 얼굴 사진 몇 장과 스님에 관한 몇몇 일화만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17년 동안 한 번도 전화를 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살아계신지 그것도 불투명합니다. 아마 워낙 도보를 많이 하셔서 건강한 체질이라 살아계실 거라고 추측은 합니다만 잘 모르겠네요.

 

가톨릭 굿뉴스에 광고가 하나 나오더군요. 청년들 위주로 해서 dmz을 걷는 행사가 있는 모양입니다. 정말 나이 조건만 된다면 한번 2002년도에 스님과 일본 신부님과 걸었던 추억도 있고 해서 예전 추억을 되살리고 싶었지만 조금 아쉽습니다.

 

또 하나는 초등학교, 중등학교 때 동창 친구입니다. 이 친구는 저와 둘도 없는 친구입니다. 목사를 하는 친구입니다. 원래 기독교 집안입니다. 지금 연예인이 된 초등학교 친구가 있습니다. 김여진이라는 친구입니다. 여진이는 바로 배우인 여진이입니다. 바로 이 친구랑은 초등학교 4학년, 5학년을 같이 보낸 친구입니다. 여진이라는 친구와 목사인 친구랑은 친하게 지낸 친구입니다.

 

우연히 제가 가톨릭 밴드에서 활동하다가 여진이가 가톨릭 신자라고 누가 말을 해 줘서 제가 여러 경로를 통해 검색을 해봤습니다. 마산 성지 여중고를 나왔습니다. 성지는 가톨릭 제단입니다. 저는 추측하기로 혹시 성지학교를 다니면서 세례를 받았는지 생각했는데 어느 날 인터넷에서 자기가 올린 글을 보고는 초등학교 때 이미 세례를 받은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성극이라는 내용의 글을 올려서 그렇게 유추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초등학교 때 세례를 받았다면 속지주의 원칙상 지금 제 본당에 다녔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우연히 알았습니다만 저희 본당과 좀 떨어진 본당에 다녔다는 걸 알았습니다.

 

목사 친구를 이야기하다가 삼천포로 흘러갔네요. 저는 이 목사 친구는 중학교도 같은 학교를 다녔는데 또 중학교 동창 중에 한 친구가 신부가 된 친구가 있습니다. 신부가 된 친구 이야기는 언제 한번 이야기를 할 때가 있을 겁니다.

 

이 목사 친구가 95년도에 병원에 입원을 해서 그때 병문안을 가서 보고 그 후로는 가끔 전화 통화를 하며 지냈는데 어느 날부터 소식이 끊어졌습니다. 이 친구는 종교를 떠나서 정말 친구로서 만나고 싶어 여러 가지로 수소문을 해봤지만 요즘은 개인정보 보호를 하는 측면에서 이 친구가 있는 교단을 근거로 해서 알아봤지만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이 친구가 어려서부터 다닌 교회를 언제 한번 찾아가려고 합니다. 지금 서울에서 아마 목회를 하고 있을 겁니다. 사실 이 친구도 보고 싶지만 이 친구의 어머니 소식도 궁금합니다. 어려서 이 친구 어머니께서는 제가 집이 불교 집안인데도 불구하고 이 친구랑 교제하는 데에 있어서 전혀 종교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보면 수원에 사는 누나, 스님, 초등학교 친구의 경우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다 소식이 끊어져서 지금 소식을 알고 싶어도 알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원인은 딱 한 가지 이유입니다. 지속적으로 계속 연락을 취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지속적으로 연락을 취했더라면 변경된 전화번호를 알 수가 있었을 겁니다.

 

저는 어제 이런 사실에서 하나 깨달았다고 하면 좀 이상하지만 배운 사실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신앙생활도 이와 마찬가지라는 사실입니다. 바로 하느님과 서로 소식을 주고받을 수 있는 기도생활을 말하는 겁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그냥 단순히 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성당에 다니는 걸로만 봤을 때 이런 것도 아예 냉담하는 신자와 비교를 한다면 나은 신앙생활을 한다고도 할 수가 있지만 신앙은 누구랑 비교해서 잘한다 못한다를 따질 그런 상황은 아니라고 봅니다.

 

바로 하느님과 자신의 관계가 중요한 거지 다른 사람과 비교를 해서 신앙의 우열을 가린다는 것도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이야기입니다. 지속적인 연락을 취하지 않으니 끝내는 소식을 알고 싶어도 알 수가 없는 것처럼 우리의 신앙생활 속에서 하느님과 자신과 일종의 연결고리라고 할 수 있는 수단이 바로 기도인데 성당을 다니더라도 기도생활을 하지 않으면 육적으로는 교회에 몸담고 있는 듯하지만 영적으로는 완전히 하느님과 동떨어진 신앙생활을 하는 신자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번 해봤습니다.

 

우리는 영적인 세계는 모르지 않습니까? 워낙 그건 신비에 가까운 일이라서 말입니다. 진짜로 만약 만에 하나 이런 일이 실제로 제가 생각했던 것처럼 육 따로 영 따로 완전 따로 국밥처럼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기는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하는 착각 속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니 정말 아찔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영적인 세계는 잘 모르지만 이런 생각이 완전히 터무니없는 그런 생각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을 한번 해봅니다. 아무튼 이런 저의 생각이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부분도 한번 생각해보면 좋을 듯합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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