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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Fr. 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6-03-31 조회수667 추천수6 반대(0) 신고
2006년 3월 31일 사순 제4주간 금요일

 


Simone Martini(c. 1284-d. 1344)
The Carrying of the Cross

 

제1독서 지혜서 2,1ㄱ.12-22

 

복음 요한 7,1-2.10.25-30

 

 

이제 성지에 웬만한 공사는 모두 다 끝났습니다. 약간의 정리와 나무에 칠만 하면 마무리가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성지 공사를 하면서 봉헌초 함을 기존의 위치에서 바닷가 쪽으로 옮겼답니다. 그곳에 위치시키는 것이 훨씬 깔끔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다른 사람들도 그곳이 가장 좋은 자리라고 말들을 합니다. ‘그래, 네가 있을 곳은 바로 이곳이야.’라는 말을 할 정도로 가장 적합한 자리임에 분명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는 것이에요. 그것도 보통 큰 문제가 아닙니다.

가장 적합한 자리이고, 성지를 더욱 더 예쁘게 만들어줄 위치이지만, 아주 결정적인 단점이 하나 있었는데요. 바로 바닷가에 위치하다보니 바람이 너무 세게 불어서 촛불을 켤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봉헌초라는 것은 타서 없어져야 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바람 때문에 켜는 것조차도 쉽지 않으니 봉헌초의 의미가 있을까요? 이 자리 외에는 다른 자리가 없을 정도로 딱 보기에 정말로 적합한 자리였습니다. 하지만 바람에 의해서 켤 수가 없는 자리라면 최악의 자리가 아닐까요?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늘 보이는 것이 진리인 듯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보아도 이 선택은 옳은 것이라고 큰 소리를 칠 지 모릅니다. 하지만 누가보아도 올바르다고 했던 그 선택이 최악의 선택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봉헌초를 보면서 깨닫게 되네요.

하긴 예수님을 거부했던 이스라엘 사람도 그렇지 않았을까요? 그들이 자신의 선택에 대해서 틀리다고 생각했을까요? 아닙니다. 그들 모두가 예외 없이 자신의 선택이 올바르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느님과 동격이라고 말하는 예수님은 신성모독을 하고 있는 큰 죄인이었고, 또한 사람의 병을 치유해주는 것은 마귀 두목의 힘을 빌어서 하는 것이라고 큰 소리로 주장했습니다. 더군다나 자신들에게 가르침을 주고 있었던 종교 지도자인 율법학자와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따라서 그들은 자신들의 판단에 대해서 전혀 의심이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예수라는 사람은 제거 대상 1호에 올라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의 이러한 판단이 옳은 판단일까요? 아니지요. 가장 최악의 선택이며 최악의 판단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들에게도 계속 기회를 주고 계시지요. 그래서 오늘 복음에도 나와 있듯이, 당신의 신원에 대해서 다시금 말씀하시면서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기회를 주십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눈이 가려졌습니다. 대신 사랑이 담겨져 있지 않은 대다수의 판단을 더 올바른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예수님을 잡아넣을 기회만을 엿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들의 모습을 잘 보면 계속해서 우리들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그토록 사랑하라고 했는데 대신 철저히 남을 미워하고 있습니다. 또한 제대로 판단을 내리라고 겉으로 보이는 것만을 진리라고 착각하지 말라고 했는데, 끊임없이 그릇된 판단으로 내 이웃을 단죄하고 있습니다.

이제 2000년 전의 이스라엘 사람과 같은 그런 죄를 또다시 반복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예수님처럼 철저한 사랑으로 무장을 해야 합니다. 그때서야 더 이상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게 될 것입니다.

 

 

           판단에 사랑이 없다면 올바른 판단이 아닙니다.

           사랑을 가지고 판단하도록 합시다.



 
모든 것을 잃은 뒤에('좋은 생각' 중에서)


 

 

배 한 척이 이틀 밤낮 동안 계속된 폭풍우에 휩쓸리다 무인도에 난파되었다.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살아 있는 것에 감사했다.

하지만 배는 망가졌고, 무인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사람들은 나무를 베어 임시 거처를 만들고 배에 남아 있던 음식을 나눠 먹으며 하루 하루를 버텼다.

사람들의 하루 일과 가운데 빼놓울 수 없는 것이 바닷가에 서서 수평선을 바라보며 구조선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어느 날 누군가의 실수로 통나무 집에 불이 나고 말았다.
그 바람에 집 안에 있던 먹을거리며 물건들이 모두 불타 버렸다.
사람들은 이제 구조선을 기다릴 희망마저 잃었다며 그를 원망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그렇게 기다리던 구조선이 왔다.
절망과 굶주림에 지쳐 쓰러져 있전 사람들은 기뻐하며 구조선에 올랐다.

그때 한 사람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선장에게 물었다.
"우리가 여기 있는 걸 어떻게 알고 오셨습니까?"

"어제 섬에서 연기가 나던데 무인도에서 구조신호가 아니면 연기가 날리 없지요."


Steve Barakatt - Pure Sm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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