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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 고통을/묵주 기도 50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4-02-03 조회수351 추천수2 반대(1)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고통의 신비 1: 4/4]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피땀 흘리심을 묵상합시다.

 

어둠의 자식들이 휘두르는 폭력에, 인성을 바탕으로 한 이 모든 고통은 어머니 마리아에게서 물려 받으셨다.

성모님을 배제하고는 그 아들 예수님을 상상할 수가 없다.

어린이들을 사랑하시어 껴안으시며 볼에 축복하시는 예수님,

친구 라자로가 죽었을 때 눈물을 흘리시던 순수하신 그 모습,

병든 이들과 가난한 이들을 사랑하시던 그러한 인간적 모습은 늘 성모님과 함께 했다.

예수님의 일거수일투족에서 우리는 성모님의 마음 한 구석을 엿볼 수 있었다.

이러한 것들은 성모님께 대한 하느님의 헤아릴 수 없는 그 크신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렇지만 이제는 이 모든 것을 뒤로하고 성모님은 그 아들을 빛의 저편 어둠의 골짜기로 보내어야만 했다.

언제나 아들의 주위에 계셨던 어머니 마리아는 그 날 밤,

시메온이 일찍이 예언했던 그 시기가 다가옴을 예감하셨을 것이다.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성모님은 아기 예수의 예루살렘에서의 봉헌식 때 시메온의 찬미가를 잊을 수 없었다.

그는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로, 성령께서 그 위에 머물러 계셨다.

특히 성모님이 늘 가슴에 품어 둔 시메온의 그 한 많은 말이 그날따라 크게 떠올랐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

혈육의 모정을 넘어 신성을 지닌 하느님의 아들로 여겨온 자식이었지만,

가슴에 묻어 둔 혈육의 연결고리를 단번에 끊기는 너무 야속하기만 하였으리라.

따라서 성모님은 아들의 얘기된 이 고통을 늘 가슴속에 품고 계셨으리라.

이제 잡혀가는 그 아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성모님은 정원 그 어둠의 모퉁이에서 홀로 흐느끼고 계셨을 게다.

 

우리는 죽음을 앞둔 사형수의 그 처절한 몸부림의 고통을 수없이 보아왔다.

죄 많은 세상에 사는 우리 죄인의 모습이다.

믿음의 사람인 우리는 그분의 부름으로 와서 그분의 부름에 가는 몸이다.

그때가 오면, 우리야 큰마음 한번 단단히 먹고 그분께 온전히 의지하기만 하면 된다.

아무리 혹시나 해도, 그토록 믿었기에 그분의 뜻대로 되어 그분이 사시는 천국에 가겠지.’라고 생각하면,

죽음도 그리 두려울 게 없을 게다.

그래, 한번 죽으면 됐지, 두 번 죽느냐!’라고 단순하게 생각하면 된다.

 

사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 그 시각에 곤히 자고 있었다.

그분은 이 겟세마니에서 제자들과 떨어져 홀로 세 번이나 기도하셨다.

다가올 끔찍한 수난을 생각하면 정말 죽을 지경이셨지만

그분의 인간 사랑을 저버릴 수가 없었기에 피땀 흘리시며 기도하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스승 예수님의 이 절박한 상황을 눈치를 채지 못했다.

그 똑똑하다는 베드로와 요한, 야고보마저 졸았다.

모처럼 마련한 풍성한 만찬 뒤의 배부름에서 오는 신체리듬일 수도 있었다.

배부른 사람은 배고픈 사람의 아픈 마음을 모를 수도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왜 자고 있느냐? 이렇게 너희는 나와 함께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란 말이냐?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여라.’라고 하시며 꾸지람도 하셨지만 그 졸음을 어찌 외면할 수가 있으랴.

 

그러나 예수님은 태어남과 죽음을 미리 정해 두셨을 게다.

나자렛에서 임신되신 후 베들레헴에서 출생 신고를 해야 하고,

예루살렘의 골고타 언덕에서 십자가 처형을 당해야 함을 이미 알고 계셨다.

이것이 그분의 생사[生死]에 관련된 일정이다.

전지전능하신 그 하느님도

육신의 탈을 쓰신 예수님의 신분으로는 이 마지막 고통을 정말 감내하기가 어려우셨다.

죄 없이 사신 예수님도 그 죽음을 앞두고는

죄 많은 사람에게 당해야 하는 그 십자가 처형 앞에서는 별수가 있으랴.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 가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

 

이렇게 예수님의 탄생과 죽음은 그분에게는 예고된 것이었다.

특히 십자가 처형이라는 극형으로의 수난은 이미 시나리오에 포함된 것이다.

손수 작성하신 그 각본대로 나아가야 했다. 수정은 물 건너 간 거나 다름이 없었다.

이제는 영광의 길만이 남았기에 이 고통의 순간을 거역할 수가 없었다. 예수님의 마음은 정말 심란하였다.

그렇지만, 그분은 육신의 온갖 그 고통을 정신적인 기도로 뿌리치고 극복하시리라.

 

앞으로 반나절만 지나면

죄 없는 예수님은 죄인들의 손에 이끌려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로 향하시는 몸이 되실 게다.

그렇지만, 그분은 그곳에서도 비천한 인간이심을 거부하지 않으시고

부활과 승천이라는 영광의 길로 당당히 나아가시고자 의연하게 인내하시고 대담하게 대응하시리라.

이제 때가 왔다. 사람의 아들은 죄인들의 손에 넘어간다. 일어나 가자. 보라, 나를 팔아넘길 자가 가까이 왔다.”

그렇다. 끌려가는 예수님을 보는 우리는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서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서 피땀을 흘리시며 기도하신 그분의 인간 사랑을 깊이 묵상해야 한다.

다 우리를 위하여 겪으셔야 할 그분만의 고통이리라

우리를 위하여, 정말 죄 많은 우리를 위하여!

예수님, 오늘 이 금요일, 이 반나절만 잘 참아 주이소.

그러면 삼일 후 그날이 되면, 이 모든 것이 당신의 부활과 함께 새로 태어날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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