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19일『야곱의 우물』- 부활은 완전한 기쁨의 시작이자 전부
작성자조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06-04-19 조회수742 추천수11 반대(0) 신고
     
    부활 팔일축제 내 수요일-부활은 완전한 기쁨의 시작이자 전부   
    
    
    [루카 24,13­-35]
    
    
     (필자가 묵상한 구절을 중심으로 싣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아, 어리석은 자들아!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데에 마음이 어찌 이리 굼뜨냐? 
    그리스도는 그러한 고난을 겪고서 자기의 영광 속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 
    
    그리고 이어서 모세와 모든 예언자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 걸쳐 당신에 관한 기록들을 그들에게 설명해 주셨다.
    그들이 찾아가던 마을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예수님께서는 더 멀리 가려고 하시는 듯하였다. 그러자 그들은 “저희와 함께 묵으십시오. 저녁때가 되어 가고 날도 이미 저물었습니다” 하며 그분을 붙들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묵으시려고 그 집에 들어가셨다. 그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그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그들에게서 사라지셨다.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
    그들이 곧바로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와 동료 들이 모여, “정녕 주님께서 되살아나시어 시몬에게 나타나셨다” 하고 말하고 있었다. 그들도 길에서 겪은 일과 빵을 떼실 때에 그분을 알아보게 된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야곱의 우물』冊에 나오는 《매일성서묵상》내용입니다.※
    
     
                        - 문호영 신부(예수의 성모관상수도원) - 
    
    
    부활의 특징 중에 중요한 것은 기쁨과 환호입니다.오늘 전례의 본기도도 
    “하느님, 해마다 주님의 부활을 경축하며 기뻐하게 하시니, 저희를 
    주님의 나라에 들게 하시어, 영원한 파스카의 기쁨을 충만히 누리게 
    하소서”라고 합니다.
    
    주님의 부활은 객관적으로 보아서 기쁨의 사건이고 축하하고 경하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는 부활의 기쁨을 누리고 환호하면서 기쁨의 참되고 내적인 의미를 잘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님의 기쁨은 언제나 영원하고 절대적이며 변하지 않는 기쁨이지만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느끼고 누리는 기쁨은 모두가 일시적 이고 제한적이고 변하는 기쁨입니다.
    또한 그것은 주님의 기쁨에 부분적으로 참여하는 기쁨이며, 주님의 영원한 기쁨을 차지하기 위한 준비와 기대의 기쁨일 뿐입니다.
    기쁨의 반대인 슬픔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에 절대적인 슬픔은 없습니다. 이 세상 슬픔이 아무리 커도 그것은 모두 제한적이고 부분적이며, 일시적인 것일 뿐입니다.
    오히려 이 세상의 슬픔은 바로 기쁨을 알려주고 보여주기 위한 전 단계일 뿐입니다. 슬픔이 없다면 기쁨도 없기 때문입니다. 슬픔을 체험했기 때문에 다음에 오는 기쁨이 더 생생하고, 더 강하게 다가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기쁨이 아무리 커도 그것은 영원하고 참된 기쁨이 되지 못하므로 지나치게 들뜰 필요가 없고, 또한 세상 슬픔이 아무리 커도 그것은 곧 사라지고 말 것이기 때문에 지나치게 좌절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부활의 기쁨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참 기쁨은 오직 하나이며 이 세상에서 영원한 슬픔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희망을 가질 수 있고 이 희망이 우리를 더욱 부활의 완전한 기쁨으로 인도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슬픔 중에서도 기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이것을 가능하게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부활이 참으로 기쁜 것입니다.
    
    “부활의 기쁨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참 기쁨은 
    오직 하나이며 이 세상에서 영원한 슬픔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희망을 가질 수 있고 이 희망이 우리를 더욱 부활의 완전한 기쁨으로 인도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슬픔 중에서도 기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이것을 가능하게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부활이 참으로 기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에게는!...
    영원한 슬픔도 없으며,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영원한 기쁨도
    없습니다. 주님외에 그 무엇이 그 기쁨을 대신 할 수 있을 것이며
    주님외에 그 무엇이 그 슬픔을 대신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을 생각하면... 그 어떤 슬픔도 다 녹아내릴 수 있습니다.
    그 어떤 기쁨도 주님이 주시는 이 완전한 기쁨에 다다를 수가 없음을 느즈막히 깨달아갑니다...
    제가 좋아하는 말 중에... '다 좋을 수는 없다!'라는 말을 기억하시는지요...
    '쉰'이라는 삶의 고개에서 살아온 날들을 되돌아보니... 하나가 좋으면 분명 하나가 나쁜 것이 곁들여지더군요. 그러나, 하나가 나쁘면 또한 하나가 좋은 것이 있음을 보았습니다... 삶의 굽이굽이를 돌아온 앗! 나 아지매가 남기는 말이지요..
    낭떠러지로 굴러가는 것 같지만... 주님이 함께 계시기에, 마지막까지 가지는 않더이다.
    하지만, 이 세상의 기쁨을 하냥 누릴 수 있도록 두시는 분도 아니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분의 안중에 있기에, 아무리 떠날려고 해도 붙잡고 놔주지 않으시는 분!
    "부활은 완전한 기쁨의 시작이자 전부"라는 제목만으로두 가슴이 울컥해옵니다.
    오늘 복음은 부활 이후에 나오는 말씀 중에서,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는 말씀 다음으로 좋아하는 묵상 구절입니다. 그래서 몇 구절 잡아봅니다.
    
    그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그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
    그들이 곧바로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와 동료 들이 모여, “정녕 주님께서 되살아나시어 시몬에게 나타나셨다” 하고 말하고 있었다. 그들도 길에서 겪은 일과 빵을 떼실 때에 그분을 알아보게 된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벗 님들!
    성체를 모실 때마다 눈이 열려지는 것이 느껴지십니까.
    마음이 열리고,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이 느껴지시는지요..
    
    삶의 어떤 슬픈 사연들도... 밀떡을 받아들며 영할 때에, 다 녹아지는 것을 느끼십니까.
    이 세상이 주는 기쁨들이... 주님이 주시는 그 기쁨과는 비교할 수 없음이 깨달아지시나요.
    성서를 읽을 때,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습니까.
    가슴이 뜨뜻해지면서... 그만 눈물이 뚝뚝뚝 떨어지는 체험을 하시는지요...
    말씀이 아니고서는... 그 무엇이 그 모든 것을 대변해 줄 수 있겠습니까.
    말씀이 아니고서는... 인생사가 이해가 가지를 않습니다.
    말씀만이 내 슬픔을 위로해줄 수 있음이요, 말씀만이 내 기쁨을 무엇이라 설명해 줄 수 있습니다.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의 모습은... 바로 우리가 주님을 떠나서 세상으로 향하는 길이겠지요..
    부활하신 주님 안에서... 참된 기쁨을 찾으며, 이 말씀을 붙잡습니다.
    
    세상의 기쁨이 아무리 커도 그것은 영원하고 
    참된 기쁨이 되지 못하므로 지나치게 들뜰 필요가 없고, 
    
    또한 세상 슬픔이 아무리 커도 그것은 곧 사라지고 말 것이기 때문에 지나치게 좌절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분명 세상사는 힘겹고 고통스러운데...
    얼굴에서는 남들이 알아볼 수 없는 미소가 있음은 웬일인지요...
    
    이 세상 것들이 아무리 좋다고 한들, 부활하신 우리 주님이 주시는 내적인 기쁨과는 비교도 안되지요!
    우리 모두가 빵을 떼며 눈이 뜨여져서... 부활의 주님을 만났음을 외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기를 바래요..
    오늘은 복음성가에서 어우러지는 곡을 골라보았습니다. 하하, 야곱이는 앗!나의 정성둥이입니다. ((*^_ _ _^*))
    
    ♬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 ♬ [복음성가]
    
    
    엠마오 마을로 가는 두 제자 절망과 공포에 잠겨 있을때
    주예수 그들에게 나타나시사 참되신 소망을 보여 주셨네
    
    이세상 사는 길 엠마오의 길 끊없는 근심이 앞길 막으나 주예수 우리에게 나타나시사 새소망 주심을 믿사 옵니다
    
    
    
    
소스입니다.*^^*

<ul><img src=http://www.cdmb.co.kr/pds/004/10/j013.jpg>
<pre><FONT color=black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b>부활 팔일축제 내 수요일-부활은 완전한 기쁨의 시작이자 전부 </b>  
<pre><FONT color=red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3pt">
<b>[루카 24,13­-35]</b>
<pre><FONT color=black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0pt">
 (필자가 묵상한 구절을 중심으로 싣습니다.)
<pre><FONT color=black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아, 어리석은 자들아!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데에 마음이 어찌 이리 굼뜨냐? 
그리스도는 그러한 고난을 겪고서 자기의 영광 속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 
<br>
그리고 이어서 모세와 모든 예언자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 
걸쳐 당신에 관한 기록들을 그들에게 설명해 주셨다. 
<br>
그들이 찾아가던 마을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예수님께서는 더 
멀리 가려고 하시는 듯하였다. 그러자 그들은 “저희와 함께 
묵으십시오. 저녁때가 되어 가고 날도 이미 저물었습니다” 
하며 그분을 붙들었다. 
<br>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묵으시려고 그 집에 들어가셨다. 
그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그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br>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그들에게서 사라지셨다. 
<br>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 
<br>
그들이 곧바로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와 동료
들이 모여, “정녕 주님께서 되살아나시어 시몬에게 나타나셨다” 
하고 말하고 있었다. 그들도 길에서 겪은 일과 빵을 떼실 때에 
그분을 알아보게 된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pre><FONT color=black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b>※『야곱의 우물』冊에 나오는 《매일성서묵상》내용입니다.※
<pre><FONT color=black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 
                    - 문호영 신부(예수의 성모관상수도원) - </b>
<pre><FONT color=black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부활의 특징 중에 중요한 것은 기쁨과 환호입니다.오늘 전례의 본기도도 
“하느님, 해마다 주님의 부활을 경축하며 기뻐하게 하시니, 저희를 
주님의 나라에 들게 하시어, 영원한 파스카의 기쁨을 충만히 누리게 
하소서”라고 합니다.
<br>
주님의 부활은 객관적으로 보아서 기쁨의 사건이고 축하하고 경하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는 부활의 기쁨을 누리고 환호하면서 기쁨의 참되고 
내적인 의미를 잘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br>
주님의 기쁨은 언제나 영원하고 절대적이며 변하지 않는 기쁨이지만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느끼고 누리는 기쁨은 모두가 일시적
이고 제한적이고 변하는 기쁨입니다. 
<br>
또한 그것은 주님의 기쁨에 부분적으로 참여하는 기쁨이며, 주님의 
영원한 기쁨을 차지하기 위한 준비와 기대의 기쁨일 뿐입니다. 
<br>
기쁨의 반대인 슬픔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에 절대적인 슬픔은 
없습니다. 이 세상 슬픔이 아무리 커도 그것은 모두 제한적이고 
부분적이며, 일시적인 것일 뿐입니다. 
<br>
오히려 이 세상의 슬픔은 바로 기쁨을 알려주고 보여주기 위한 전 
단계일 뿐입니다. 슬픔이 없다면 기쁨도 없기 때문입니다. 슬픔을 
체험했기 때문에 다음에 오는 기쁨이 더 생생하고, 
더 강하게 다가올 수 있는 것입니다. 
<br>
그러므로 세상의 기쁨이 아무리 커도 그것은 영원하고 참된 기쁨이 
되지 못하므로 지나치게 들뜰 필요가 없고, 또한 세상 슬픔이 
아무리 커도 그것은 곧 사라지고 말 것이기 때문에 지나치게 
좌절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br>
부활의 기쁨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참 기쁨은 오직 하나이며 
이 세상에서 영원한 슬픔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br>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희망을 가질 수 있고 이 희망이 우리를 더욱 
부활의 완전한 기쁨으로 인도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슬픔 중에서도 기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br>
예수님의 부활이 이것을 가능하게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부활이 참으로 기쁜 것입니다.  
<ul>
<img src=http://www.cdmb.co.kr/pds/004/10/j064.GIF>
</ul>
<pre><FONT color=brown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b>
“부활의 기쁨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참 기쁨은 
오직 하나이며 이 세상에서 영원한 슬픔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br>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희망을 가질 수 있고 이 희망이 
우리를 더욱 부활의 완전한 기쁨으로 인도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슬픔 중에서도 기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br>
예수님의 부활이 이것을 가능하게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부활이 참으로 기쁜 것입니다. </b>
<pre><FONT color=#005e77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그렇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에게는!...
영원한 슬픔도 없으며,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영원한 기쁨도
없습니다. 주님외에 그 무엇이 그 기쁨을 대신 할 수 있을 것이며
주님외에 그 무엇이 그 슬픔을 대신할 수 있겠습니까!...
<br>
주님을 생각하면...
그 어떤 슬픔도 다 녹아내릴 수 있습니다.
<br>
그 어떤 기쁨도 주님이 주시는 이 완전한 기쁨에 
다다를 수가 없음을 느즈막히 깨달아갑니다...
<br>
제가 좋아하는 말 중에...
<b>'다 좋을 수는 없다!'</b>라는 말을 기억하시는지요...
<br>
'쉰'이라는 삶의 고개에서 살아온 날들을 되돌아보니...
하나가 좋으면 분명 하나가 나쁜 것이 곁들여지더군요. 그러나,
하나가 나쁘면 또한 하나가 좋은 것이 있음을 보았습니다...
삶의 굽이굽이를 돌아온 앗! 나 아지매가 남기는 말이지요..
<br>
낭떠러지로 굴러가는 것 같지만...
주님이 함께 계시기에, 마지막까지 가지는 않더이다.
<br>
하지만, 이 세상의 기쁨을 하냥 누릴 수 있도록
두시는 분도 아니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분의 안중에
있기에, 아무리 떠날려고 해도 붙잡고 놔주지 않으시는 분!
<br>
<b>"부활은 완전한 기쁨의 시작이자 전부"</b>라는 
제목만으로두 가슴이 울컥해옵니다.
<br>
오늘 복음은 부활 이후에 나오는 말씀 중에서,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는 말씀 다음으로
좋아하는 묵상 구절입니다. 그래서 몇 구절 잡아봅니다.
<pre><FONT color=red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
그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그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b>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b>
<br>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b>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 </b>
<br>
그들이 곧바로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와 동료
들이 모여, “정녕 주님께서 되살아나시어 시몬에게 나타나셨다” 
하고 말하고 있었다. <b>
그들도 길에서 겪은 일과 빵을 떼실 때에 
그분을 알아보게 된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b>
<pre><FONT color=#005e77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벗 님들!
성체를 모실 때마다 눈이 열려지는 것이 느껴지십니까.
마음이 열리고,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이 느껴지시는지요..
<br>
삶의 어떤 슬픈 사연들도...
밀떡을 받아들며 영할 때에, 다 녹아지는 것을 느끼십니까.
<br>
이 세상이 주는 기쁨들이...
주님이 주시는 그 기쁨과는 비교할 수 없음이 깨달아지시나요.
<br>
성서를 읽을 때,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습니까.
<br>
가슴이 뜨뜻해지면서...
그만 눈물이 뚝뚝뚝 떨어지는 체험을 하시는지요...
<br>
말씀이 아니고서는...
그 무엇이 그 모든 것을 대변해 줄 수 있겠습니까.
<br>
말씀이 아니고서는...
인생사가 이해가 가지를 않습니다.
<br>
말씀만이 내 슬픔을 위로해줄 수 있음이요,
말씀만이 내 기쁨을 무엇이라 설명해 줄 수 있습니다.
<br>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의 모습은...
바로 우리가 주님을 떠나서 세상으로 향하는 길이겠지요..
<br>
부활하신 주님 안에서...
참된 기쁨을 찾으며, 이 말씀을 붙잡습니다.
<pre><FONT color=brown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b>
세상의 기쁨이 아무리 커도 그것은 영원하고 
참된 기쁨이 되지 못하므로 지나치게 들뜰 필요가 없고, 
<br>
또한 세상 슬픔이 아무리 커도 그것은 곧 사라지고 
말 것이기 때문에 지나치게 좌절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b>
<pre><FONT color=#005e77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분명 세상사는 힘겹고 고통스러운데...
얼굴에서는 남들이 알아볼 수 없는 미소가 있음은 웬일인지요...
<br>
이 세상 것들이 아무리 좋다고 한들,
부활하신 우리 주님이 주시는 내적인 기쁨과는 비교도 안되지요!
<br>
우리 모두가 빵을 떼며 눈이 뜨여져서...
부활의 주님을 만났음을 외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기를 바래요..
<br>
오늘은 복음성가에서 어우러지는 곡을 골라보았습니다.
하하, 야곱이는 앗!나의 정성둥이입니다. ((*^_ _ _^*))
<pre><FONT color=black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b>
♬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 ♬ [복음성가]</b>
<pre><FONT color=black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엠마오 마을로 가는 두 제자 절망과 공포에 잠겨 있을때
주예수 그들에게 나타나시사 참되신 소망을 보여 주셨네
<br>
이세상 사는 길 엠마오의 길 끊없는 근심이 앞길 막으나
주예수 우리에게 나타나시사 새소망 주심을 믿사 옵니다
<pre><FONT color=005e77 face=돋음체 style="FONT-SIZE: 9pt">
<A href="http://cafe.daum.net/Coreansanctus" target=blank>
<IMG height=70 src="http://cafe210.daum.net/cafeimg-proxy?
 grpcode=Coreansanctus&imgType=logo&time=1127253570000"
 width=230 align=absMiddle border=0><FONT color=red><FONT size=3>
<br>
<UL>103위 한국순교성인</A></UL></FONT></ul>
<EMBED style src=mms://218.156.35.199/hymn12/562.wma 
width=300 height=40 autostart="true" loop="true" volume="0" 
AllowScriptAccess="never" invokeURLs="false" hidden="true">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