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영적 갈망의 즐거움을 지니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 신부님 강론 말씀)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6-04-09 조회수580 추천수4 반대(0) 신고
2006.4.9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이사50,4-7 필리2,6-11 마르14,1-15






"영적 갈망의 즐거움을 지니고"


오늘 주님 성지 주일을 시작으로 하여
마침내 교회 전례주년의 절정인 거룩한 성주간이 시작되었습니다.

성주간을 맞이한 저의 색다른 소감을 소개합니다.
어제 부활 축하 카드에 서명을 하던 중
난데없이 내면 깊이에서 기쁨이 솟아났습니다.

대림시기 말고 사순시기 성주간에 이렇게 샘솟는 기쁨은 처음입니다.
문득 생각난 게 우리의 사부 베네딕도 성인의 말씀이었습니다.

“거룩한 사순시기,
자기 육체에 음식과 음료와 잠과 말과 농담을 줄이고
영적 갈망의 즐거움으로 거룩한 부활 축일을 기다릴 것이다(RB49,7).”

밤이 깊으면 부활의 새벽이 가까웠음을 뜻합니다.
성주간 넘어 주님 부활을 내다보기에
회색빛 우울함이 아니라 영적 갈망의 기쁨입니다.

문득 죽음을 앞두고도
이런 영적 갈망의 즐거움이 있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런 영적 갈망의 기쁨이 있기에
마르코가 전한 우리 주 예수 주님 수난기를
주님 부활의 빛 안에서 마음 깊이 새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삶은 외롭습니다.
오늘 주님 수난기를 묵상하던 중 퍼뜩 떠오른 생각입니다.

숱한 등장인물들이 있었지만 예수님은 혼자였습니다.
예루살렘 입성 시 열렬히 주님을 환영하던 군중들,
돌변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 부르짖습니다.

유다의 배반에 이어,
충성을 맹세하며 장담하던 수제자라는 베드로도 세 번 씩이나 주님을 부인했고,
죽음을 앞두고 처절히 주님 기도하시는 동안 동행했던 세 사랑하는 제자들도
잠에 떨어졌습니다.

마침내 주님 체포되는 순간 제자들은 주님을 버리고 모두 달아났습니다.
함께해도 결국은 혼자였던 예수님이셨습니다.

삶은 기도입니다.
삶의 외로움, 하느님 찾으라는 신호입니다.
기도할 때 텅 빈 외로움은 주님 사랑의 충만이 됩니다.
마음의 귀도 열려 주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우리가 볼 때 외로움이지
오늘 수난기에서의 주님에게서는 전혀 외로워하는 분위기를 감지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무한한 연민의 사랑만 느낍니다.

향유를 부은 가난한 여인을 두둔해 주셨고,
죽음을 예감 하신 주님은 당신 몸과 피를 제자들에 나누어 주심으로
극진한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배반자 유다에 대한 미움이나
세 번씩 자신을 부인한 베드로에 대해 원망하는 마음 추호도 없어 보입니다.
주님께는 모두가 연민의 대상일 뿐입니다.

열렬한, 끊임없는 기도만이
외로움의 텅 빈 내적 공간을 주님 현존의 사랑으로 채울 수 있습니다.
기도하는 이들, 주 하느님께서 도와주시어 결코 수치를 당하지 않습니다.

다음 예수님의 간절한 기도, 우리의 심금을 울립니다.
“아빠!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무엇이든 하실 수 있으십니다.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것을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십시오.”

결국은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아버지께 맡기는 기도가 으뜸입니다.
참으로 기도할 때,
아버지께서는 알게 모르게 최상, 최선의 길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삶은 순종입니다.
외로워 기도하게 되고, 기도해 사랑하게 되고, 사랑해 순종하게 됩니다.

사랑하기에 자발적 순종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지만
고난을 겪음으로서 순종을 배웠다는 말씀이
오늘 수난기를 통해 여실히 드러나지 않습니까?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타니?”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마지막 기도로 숨을 거두신, 참으로 장엄한 마지막 순종의 죽음입니다.
이에 감격한 초대교회 신도들,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셔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십자가상의 죽음과 동시에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두 갈래로 찢어졌다 합니다.

땅에서 하늘에 이르는 길이 활짝 열렸음을 뜻합니다.
이 틈새로부터 서서히 비춰오는 찬란한 주님 부활의 빛입니다,

순간 이런 전조를 예민하게 감지한 백인대장의 감동적인 고백입니다.
‘참으로 이 사람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
오늘 주님 수난기의 결론과도 같은 말씀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우리들, 나름대로 다 힘겨운 십자가의 길입니다.
그러나 주님 부활의 빛이 우리를 감싸주기에
용기백배하여 영적 갈망의 기쁨 중에 이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어제 오랜만에
참 어려운 환경에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어느 자매의 전화를 받는 순간
“아, 살아있었구나!”
탄성과 더불어 고마운 마음 가득하여 격려의 말씀드렸습니다.
“자매님, 살아있다는 자체가 기적이요 구원입니다.”

그렇습니다.
삶은 순종입니다.
잘살고 못살고를 떠나 요즘같이 힘든 시절은
살아간다는 자체가 하느님의 기적이요 구원입니다.

하느님께서도 십자가 순종의 길에 충실한 우리를 고마워하시고
분명 부활의 영광으로 갚아 주실 것입니다.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