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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저의 하느님,저의 하느님,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작성자박민화 쪽지 캡슐 작성일2006-04-08 조회수843 추천수9 반대(0) 신고

 

주님의 수난 성지 주일의 수난 복음중에 저의 하느님,저의 하느님,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라는 말씀을 먼저 묵상하고자 합니다.

 

먼저 지난주일 복음이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복음이였는데

밀알이 빻아져서 좋은 가루가 되어서 육의 양식인 빵이 되고 또 신부님께서 성령으로 축성하여

거룩한 생명의 양식인 성체가 되기까지는 밀알이 빻아질때 고통을 받는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이라는 것이며

 

예수님께서는 시편22,1 에 있는 말씀을 외우시는 것은 구약에 있는 율법,예언서,시편에 있는 모든 말씀이 예수님께 이루어졌다는 것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모든 인류의 흉악한 원죄와 본죄를 짊어지고 가시는 예수님을

성부 하느님께서 보시고 고개를 돌리시니까.

예수님께서 이런 시편을 읽으셨다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몸은 교회를 상징하며 하느님의 백성인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과

신약의 모든 성도들을 상징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러 오신 메시아.구세주라는 것을 모르고 예수님을

박해하고, 믿고 받아들이지 않고, 죽게 하니까. 예수님께서는 안타까워서 나의 육체인

나의 지체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버리십니까.하고

 

용서의 기도를 드리시는 것입니다. 신약의 백성인 성도들도 죄를 지을 때 마다 예수님께서는 성부의 오른 편에 앉아 계시면서  저의 하느님,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십니까.라고

용서의 기도를 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예수님께서는 이 고난의 잔을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무엇이든 하실 수 있으시니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나의 뜻대로 하시지 말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라고

아버지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신 것입니다.

 

공관복음의 관점에서는 수난 고통이 크나 영이 충만한 요한 복음 차원에서는

이 고통을 참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순교성인들도 수난 고통을 견디고 순교하시는 것도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순교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시관을 쓰신(요한19,5) 것도 묵상을 해보면 이 가시는 선악과 나무를 상징합니다.

민수기33,55을 보면 너희가 그 땅의 주민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지 않으면,너희가 남겨 놓은 자들이 너희 눈에 가시가 되고 너희 옆구리에 바늘이 되어,너희가 살아갈 그 땅에서 너희를

괴롭힐 것이다.

 

창세기에서도 카인은 창이라는 뜻입니다.아벨은 영이라는 뜻입니다.창이라는 죄가 예수님을 상징하는 의인 아벨을 죽이는 것입니다.즉 가시나,바늘이나. 못이나,창은 선악과 나무인 죄를 상징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의 죄를 상징 하는 가시관을 쓰셨는데 예수님의 성혈(보혈)로

우리들의 죄를 깨끗이 씻어 주시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죄라는 말은 헬라 말로 하마르티아 즉 원죄를 말합니다.

내가 죄를 지을 때 마다 예수님께 십자가에 또 다시 못을 박고 가시관을 씌우시게 해드리는구나

하고 묵상을 합니다.

 

군인 하나가 창으로  예수님의  옆구리(갈비)를 찌르는(요한19,34) 데도  큰 구원의 뜻이

있는 것입니다.아담의 갈비대(첼라으 라는 히브리 말은 갈비대 또는 골방,편등을 의미합니다.)

로 여자인 하와를 하느님께서 창조하셨으며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의 옆구리(갈비대)에서 나오는 성혈과 물로서 신부인 교회를 새 창조하셨던 것입니다.

 

교회는 하느님의 백성들을 상징하므로 예수님의 갈비대로 새로운 신약의 교회와 성도들을

새로 재창조하시는 것입니다.(에페소서5,31)

예수님의 뼈가 부러지지 않았다는(요한19,36) 뜻도 요한 복음에서는 예수님이 말씀이시기

때문에 말씀이 창세기에서 요한묵시록까지 성경의 맥이 끊어지지 아니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 말씀은 영(프뉴마)이고 생명(조애=영생이라는 뜻임) 인데 영의 뜻을 모르고

문자(의문)로만  풀게 되면 요한묵시록22,18~19에 가감하는 것이 됩니다. 

영의 글을 육으로 풀고 영의 글에다 육의 뜻을 가감하는 것이 영적으로 간음하는것이

되는 것입니다.

 

마리아 막달라여자 마리아가 예수님께 향유를 붓는 뜻도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과월절(파스카=유월절=해방절)의 어린양을 상징합니다.

 

"즉" 십자가상에서 희생제물이 예수님의 인성인 예수님의 몸을 말하는것입니다.

구약에서 제사장이나 예언자나 왕은 기름을 부어서 축성해서 세웠던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막달라 마리아를 통해서 예수님께서 멜기세덱의 번차를 따라 영원한 사제로 축성하고 임명하는 과정을 저희들에게 보여 주시며 구세주로 믿으라는 것입니다.(히브리서7,17)

 

그러나 이사야서6:9에서는 너희는 듣고 또 들어라 그러나 깨닫지는 마라

너희는 보고 또 보아도 그러나 깨닫지는 마라 라고 씌어 있습니다.

 

오늘 날도 성경을 보아도 깨달아 알지 못하는 소경들도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묵상을 많이 하면서 겸손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잘한다 못한다하고 원죄는 사함을 받았지만 선악과의 열매의 여독으로 남을 판단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마태7,1~2에서 심판하지 말라는 말씀에 의해서

말씀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요한12,48)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상의 희생제물이 되시고 대 제관이신 대사제가 되어서

율법을 완성 시켜 놓으시고 이제 부터는 예수님을 그리스도 구세주로

믿고 세례를 받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 세례로 첫째 부활에 들어(요한묵시록20:6)가는 사람은 더욱 말씀 읽고 기도하고 미사에

참여하여 현재부활에 들어가야 하며 현재부활 신앙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육신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즉 신령체부활 할 때까지 기쁘게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공관복음(마태.마르.루가.)에서 예수님의 수난 복음은 육신이 받은 고통의 관점에서 말씀을

하시고 요한복음에서는 마음과 심령의 고통을 관점으로 해서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신성과 인성이 있으시기 때문에 우리와 똑같은 수난 고통을 느끼는 것이지만

사랑하는 자녀들인 우리들을 구원시키기 위해서 기쁘게 참아내셨던 것입니다.

 

현재에는 피흘리는 제사(갈바리아 산)가 아니라 피흘림이 없는 무혈의 제사가 미사 때 이루어집니다.

매년 주님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체험하기는 하나 나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의 체험이 부족

할 때는 신앙 생활이 무거운 짐이 될 수가 있고 자유와 기쁨이 없는 것입니다.

 

마태복음25:31~46 에서는 이웃 사랑은 가장 소자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이 이웃 사랑이라고 말씀을 하시고는 마태26장~28장에서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로 구원을 완성하시는 것입니다.

 

금년 은총의 사순시기에는 가장 보잘 것없는 사람으로 오시는 예수님이 누구인가를 묵상합시다.

 

저의 자매와 함께 서울서 미사를 보고 소래라는 포구에 점심을 먹으러고 갔었는데 마치

옆좌석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그러나 무심코 회를 시켜서 막 먹으려고 하는데

옆자석에 앉아있는 젊은 운전기사 옷을 입으신 분이

어머니로 보이는 어르신과 부인과 자녀을 데리고 와서 식사를 하시다가 우리를 보시고

자기 어머니 한테 죄송해요 회를 사드리지 못해서요 하는 말을 듣고 있으니까.

저의 자매는 나 한테 고마워요라고 말을 하시더군요.

 

그러나 나는 순간 나의 마음에  너는 이웃 사랑이라는 것은 상대방의 입장으로 가주는 것인데 너만을 생각하고 너만 잘먹는구나 하는 마음이 들어서 주님 죄송합니다.

제가 또 나만을 생각했습니다.

 

또 소자로 오신 예수님의 현존을느끼지도 깨닫지 못했습니다.하고 한 참 걸어서 나오는데

어린 두자매 소녀 아마 언니는 4학년 쯤 보이고 동생은 1학년으로 보였던 같습니다.

나는 생선을 파는데 길가에서 붕어 빵을 구워파는 아이도 다 있구나 하고 걸어 나가는데

마음에서 붕어 빵을 다 사주어라 하는 마음이 들어서 붕어빵을 다사줄 때 고맙게도

저의 자매도 아무 말도하지 않고 있어서 다 사니까 어린 동생이 언니 빵 하나를 더드려 하는

것이었습니다.이 어린 아이를 통해서 하느님의 현존을 느꼈습니다.

우리부부는 그 붕어 빵을 운전하면서 먹고 집에 와서도 먹으면서

여러가지로 묵상을 했습니다

 

이 어린 자매는 가정에 어려운 십자가가 있을 것이다.

부모가 없거나 부모가 병이 들었거나 하고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이 어린 자매 안에 현존하는 예수님을 영접했구나  이것도 다 주님의 은총이라고

생각을 하고는 늘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예수님은 갈바리아 산에서 스스로 자청해서 희생제물이 되시고 영원한

대사제가 되어서 십자가의 제사로 율법을 완성하시고,구원의 길을 마련해 놓으신 것입니다.

이것이 새 계약의 제사입니다.오늘날에는 갈바리아산의 제사가 미사중의 무혈의 제사로

옮겨져서 새로운 계약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집에 와서는 파견미사로서 나의 삶에서 새계약의 새 계명인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면서 살아가는것이 수난과 죽음과 부활이라는 것으로 묵상이 됩니다.

 

이번 사순절에도 주님은 헐벗고,굶주리고,목마르고 병들고,감옥에 가있는 소자에게 해주는

것이 나에게는 작은 희생이지만 이 희생을 가지고 내가 평신도 사제직으로서  미사에 참여하고 집에 와서 삶으로 살아가는 것이 파견  미사라고 묵상하면서 이런 작은 일이 나에게는 수난과 죽음과 부활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시는

주님께 감사와 찬미와 영광을 드립니다. 아멘.아멘.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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