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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연중 제7주일. 2019년 2월 24일)
작성자강점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9-02-22 조회수1,455 추천수0 반대(0) 신고

 

연중 제7주일. 2019224.

루가 6, 27-38.

 

오늘 복음은 내 말을 듣고 있는 너희에게 내가 말한다.”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예수님이 당신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이라는 말입니다.  신앙인은 이 세상의 관행 따라 살지를 않습니다. 신앙인은 세상의 관행을 넘어서 신앙을 동기로 한 실천을 한다는 말씀입니다이 세상의 관행을 따라 살지 않기에 신앙인은 불편을 겪기도 하고 불이익(不利益)을 당하기도 합니다그래서 복음은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고 말합니다.

 

오늘 복음에는 먼저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이 있었습니다원수는 우리가 사랑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예수님은 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잘해 주고,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에게 축복하며, 너희를 학대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에게 잘해 주면, 나는 계속 피해만 입을 것입니다우리를 저주하는 사람을 축복하고, 학대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것도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네 뺨을 때리는 자에게 다른 뺨을 내밀라.”는 말씀도 있었습니다그러나 그대로 하다가는 둘밖에 없는 뺨이 남아나지 않을 것입니다.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이 안나스 대제관 관저에서 심문 당하실 때대제관의 하인 하나가 그에게 손찌검을 한 일이 있었습니다예수님은 다른 뺨을 내밀지 않고, 항의하셨습니다.  “내가 틀린 말을 했다면 증거를 대시오. 그러나 올바로 말했다면 왜 때리오?”(요한 18,23).  오늘 복음은 네 겉옷을 가져가는 자는 속옷도 가져가게 내버려 두라.”고도 말했습니다겉옷 뺏어가고 속옷마저 벗겨 가면, 유대인은 알몸입니다.  “달라고 하면 누구에게나 주라.”고도 말했는데, 달라는 대로 주면, 나를 위해서는 무엇이 남겠습니까?

 

예수님의 이런 말씀들은 우리가 지켜야 할 법()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법을 만들어 주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율법에 얽매여 살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셨습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생겼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생기지는 않았다.”(마르 2,27)고도 말씀하셨습니다사람을 도와주는 율법이지 그것을 지키기에 정신을 빼앗기지 않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오늘 복음의 말씀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하느님의 자녀 되어 살려는 사람들에게 하신 권고입니다하느님이 자비롭고용서하고베푸시는 분이라우리도 그렇게 실천하여하느님의 자녀로 살라는 말씀입니다오늘 복음은 우리의 관행도 나열합니다우리는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하고, 우리에게 잘해 주는 사람에게만 잘해 주고, 되받을 가망이 있을 때만 꾸어 줍니다그것을 조금 고상하게 표현하면 상호주의(相互主義) 원칙에 입각해서 행동한다는 말입니다. 우리 자신과 우리가 가진 것을 안전하게 지키는 것을 제일(第一)순위(順位)로 한 행동 원칙입다.

 

예수님이 믿은 하느님은 당신 스스로에게 골몰하는 분이 아니십니다사랑은 자기 자신을 소중히 보존하려 하지 않습니다예수님은 하느님이 사랑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이 세상에 헌신적(獻身的) 사랑이 있는 것은 하느님이 사랑하는 분이시기 때문이라고 예수님은 믿으셨습니다하느님은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해를 떠오르게 하시는 분”(마태,5,45)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세상이 밝은 것은 태양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헌신적 사랑이 있는 것은 하느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하느님이 우리 사랑의 원천(源泉)이십니다사랑은 자비와 용서로 나타납니다. 당시의 유대교 당국이 예수님을 제거한 것은 그분이 사랑이신 하느님을 가르쳤기 때문이었습니다유대교의 지도자들은 인간을 기준으로 하느님을 상상하였습니다그들은 하느님이 사랑이라는 사실을 거부하면서 하느님을 잃었습니다결국 그들은 무자비하게 행동하면서 자기들의 권위(權威)만 찾았습니다.

 

하느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자녀는 아버지의 생명을 삽니다그 생명은 사랑입니다.  “나는 사람이 아니고 하느님이다.”(호세 11,9)라는구약성서의 말씀이 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와 전혀 다른 분이라는 말씀입니다.예언서는 하느님을 인간과 전혀 다른 분이라고 말하면서,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하느님은 사람이 불쌍해서 간장이 녹는 분, 아무리 노여워도 분을 터뜨리지 않는 분”(호세 11,8)이라는 것입니다그래서 하느님은 사람이 아니십니다오늘 복음은 그분께서는 은혜를 모르는 자들과 악한 자들에게도 인자하시고...자비하시다.”고 말하였습니다.  하느님은 당신 자신을 지키고 당신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남을 배척하지 않으십니다그래서 하느님은 사람이 아니십니다.

 

예수님이 가르친 하느님을 믿고, 그 하느님의 일을 실천하는 사람이 그리스도신앙인입니다우리는 우리 자신을 지키고 보존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하느님이라 흔히 상상합니다.  우리가 기도를 잘하면우리 편이 되어서 우리를 도와주시고우리가 잘 바치면 바친 이상으로 우리에게 갚아주시는 분이라고 상상합니다. 우리가 현세에서 그분과 교섭을 잘한 그만큼내세에서 갚아주실 것이라고도 상상합니다그 하느님은 우리의 관행(慣行)에 준해서 우리가 상상하는 하느님입니다우리와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소위 민속(民俗)종교들이 상상하는 신()들도 우리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그 신들은 음식도 대접받고돈도 탐내며, 많이 바치는 사람이 하는 청을 더 잘 들어 주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신을 후하게 대접하면, 많은 혜택을 받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예수님으로 말미암은 그리스도신앙은 그런 하느님을 말하지 않습니다우리의 관행에 준해서 상상하는 하느님이 아닙니다하느님의 생명이 하시는 일, 곧 사랑과 자비와 용서를 우리가 실천하여 하느님의 자녀 되라고 그리스도신앙은 권합니다.

 

오늘 복음의 말씀들은 우리가 지켜야 하는 행동강령(行動綱領)이 아닙니다하느님의 생명이 하시는 일을 우리도 실천하라는 초대입니다우리 각자가 자유롭게 실천하라는 초대입니다우리가 하느님의 생명이 하시는 일을 실천하면,  “지극히 높으신 분의 자녀가 될 것이라.”는 오늘 복음의 말씀입니다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것은 그 하느님의 생명을 살겠다는 고백이고, 약속입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생명이 하시는 일이라우리에게는 쉬운 실천이 아닙니다.

 

어떤 작가(作家)는 이렇게 말합니다.  “살고 사랑하고 웃어라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삶은 아무것도 아니다이것이 우리가 이곳에 존재하는 이유이다." 용서하고 자비롭게 베푸는 것이 살고 사랑하고 웃으며 살 수 있는 길입니다그러나 그겻은 우리가 쉽게 실천할 수 없는 일입니다그것은 우리에게 모험이기도 합니다. 삶은 하나의 모험이고, 그 결과가 보장되지 않은 모험입니다많은 연습과 실패 후에 서툴게 조금 실천할 수 있는 일입니다그리스도신앙이 하느님을 전능(全能)하시다고 말하는 것은 자비와 용서와 사랑에 전능하시다는 말입니다우리는 그런 일에 무능하지만, 하느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신앙인은 그 실천에 초대되었다는 오늘 복음의 말씀입니다.

                                                                        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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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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