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주일 미사 강론입니다.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19-02-25 조회수1,482 추천수0 반대(0) 신고

 

 

오늘 여러분과 묵상할 구절은 오늘 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께서 자비로우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한번 다시 따라 해보시겠습니까?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참으로 어려운 요구를 하십니다. 원수를 사랑하라. 이게 가능합니까? 정말 여러분, 미워하는 사람을 잘 해주고 나를 저주하는 사람 축복해주고 학대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해주고 하는 게 이게 됩니까? 어제 학생 미사에서 이런 질문을 하니까 초등학교 학생이 됩니다. 해서 최고다 최고라고 했죠. 참 이런 게 어렵죠. 어렵습니다.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합니까? 이건 우리가 죽을 때까지 해도 잘 못 할 것 같아요. 원수가 되는 그 사람에게 어떻게 내가 사랑을 할 수 있느냐? 그건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과연 그래서 제가 원수라는 대상이 뭔가 해서 어원을 한번 찾아봤습니다. 이 원수는 미움이나 증오에서 그 어원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미움이 쌓이고 증오가 쌓이면 그게 나중에 원수의 감정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원수라는 감정은 한순간에 가지는 그런 감정이 아닙니다.

 

정말 미워하는 마음이 극에 찼을 때 그때 그 사람이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근데 미워하는 감정이 극에 찼는데 어떻게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가입니다. 여러분, 미워하는 것도 우리의 감정입니다. 이 감정이 미워하는 마음이 쉽게 사실 돌아서지 않습니다. 사실 마음이 한번 상해버리면 그 사람 꼴도 보기 싫죠. 그래서 정말 다행히 우리처럼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 예수님께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셨고 네 뺨을 때린 사람에게 다른 뺨을 내밀어라. 말씀하시니 그래도 신앙을 가진 신자인데 그렇게 안 할 수도 없고 그렇게 하자니 마음이 도저히 허락이 되지 않고 그래서 우리는 뭐 합니까? 기도하죠. 기도합니다.

 

내가 저 사람을 용서하고 싶지는 않은데 용서하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하게 됩니다. 내가 저 사람을 미워하고 싶지 않은데 미워하지 않도록 기도를 하느 거죠. 내가 그 사람을 증오하는데 증오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신앙인이 된다는 것은 참 대단한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 참 대단합니다. 어떻게 신앙인이 아닌 사람들은 이거 그냥 포기해버립니다. 그렇지 않아요. 내가 왜 미워하는 사람이고 내 원수인데 그 사람을 용서해야 돼. 얼토당토하지 않는 말하지마 그러면서 확 돌아서버리게 되는 게 일반적인 일입니다.

 

근데 우리도 그러고 싶은데 안 되는 거예요. 괴로운 거예요. 정말 내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기도합니다. 이렇게 정말 어떻게 해서든 내가 신자로서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내가 조금 당하더라도 내가 조금 바보 같이 세상 사람들에게 보이더라도 우리는 이렇게 신앙인으로서 살려고 발버둥을 치는 이런 우리 자신의 모습을 하느님께서 보고 계시고 하느님께서 가지시는 그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그 하느님께서 가지시는 감정이 어떤 감정인지 그것을 우리는 두 자로 이야기합니다. 그것은 바로 자비입니다.

 

이 자비는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가지는 감정입니다. 자비라는 단어를 한번 찾아봤습니다. 라틴어로 미쎄리 꼬리디아. 라틴어인데요 이 미쎄리라는 이 단어는 불쌍하다, 꼬리디아 이 단어는 마음이라는 뜻입니다. 불쌍한 마음이죠. 우리가 미사 때 초반에 주님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라고 기도하죠. 여러분. 이 자비가 뭡니까? 바로 불쌍한 마음입니다. 어떤 불쌍한 마음이냐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을 보니까 그 인간이 당신에게 기도하는 겁니다.

 

그 인간을 처절하게 죽이고 싶은데 내가 용서를 하려고 하니 정말 용서를 못 할 것 같지만 용서를 하게 해달라고 이렇게 발버둥치면서 하느님 저는 기도합니다. 하느님 저 사람 정말 미워할 수밖에 없는데 저 사람 미워하지 않게 정말 해 주십시오. 라고 이렇게 처절하게 기도하는 인간이 하느님 보시기에 너무 불쌍한 거예요. 너무나 참담한 거예요. 하느님 마음이 무너질 것 같은 그 마음 그 마음이 자비입니다.

 

여러분들이 주님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라고 기도하는 것이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보실 때 그 기도하는 여러분을 바라보는 그 애틋한 마음을 하느님께서 불쌍하게 봐 주신다는 겁니다. 그렇게 해달라고 우리가 주님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하고 기도하는 것인 거죠. 하느님의 이런 마음이 우리 인간과 함께하시려고 하십니다. 하느님의 자비가 우리 인간에게 어떤 방식으로 드러나느냐면 그 아픔을 동참하는 방식으로 표현합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자비란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에 타인의 비참함을 마음으로 아파하는 것입니다. 타인의 비참함을 정말 아파하는 것입니다. 비참하게 있는 그 마음을 보면서 내 마음이 미워지는 그 마음이 무너지는 그 마음이 자비이다. 라고 성인은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자비가 그렇습니다. 우리 인간의 마음 이렇게 힘들고 고통스러워 할 때 하느님께서 같이 아파하신다는 겁니다. 그것이 하느님께서 자비를 드러내는 방식입니다.

 

어떤 형태로 드러났습니까? 바로 제 뒤에 있는 저 방식으로 드러났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는지 왜 십자가에 못 박히고 고통스러워 하셨는지 침 뱉음을 당하신 그 이유는 바로 여기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아픔에 동참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느님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이렇게 당신의 자비를 드러내셨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우리의 이웃의 고통과 아픔에 함께하는 게 하느님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우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는 길입니다. 타인의 아픔과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동참할 때 하느님의 자비는 나에게 있어서 실천되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하느님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고 하신 이 말씀을 이번 한 주 동안 묵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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