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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보이지 않는 것으로 살아가는 우리들"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 신부님 강론 말씀)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6-04-07 조회수682 추천수9 반대(0) 신고
2006.4.7 사순 제5주간 금요일
예레20,10-13 요한10,31-42

                                         





"보이지 않는 것으로 살아가는 우리들"



바쁘고 힘들수록 하느님 찾고 기도해야 합니다.
좋은 때 기다려 하느님 찾고 기도하려다간 그런 때 결코 오지 않습니다.

영감 넘치고 기분 좋은 때 기다렸다가 강론 쓰려하다간
강론 한 편도 쓰지 못할 것입니다.
힘들고 바쁘기로 하면 예수님이나 예언자들보다 더한 사람들은 없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던 중 퍼뜩 떠오른 생각은,
우리는 보이는 것으로 살아가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으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당신은 진정 숨어계신 하느님,
이스라엘의 야훼시여 구원자시니이다(이사45,15).”

예레미야의 고백처럼,
숨어계신 하느님으로, 보이지 않는 하느님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하여 시편저자의 고백은 그대로 우리의 고백이 됩니다.

“이스라엘아,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 희망을 야훼께 두어라(시편131,3).”

“나의 힘이신 야훼여, 당신을 사랑합니다.(시편18,1).”

“야훼께 아뢰옵니다. 당신은 나의 주님, 당신만이 나의 행복이십니다(시편16,2).”

보이지 않는 주님과의 깊은 사랑의 관계가 진정 힘입니다.
하느님과의 관계 깊어지면서 믿음도, 희망도, 사랑도 깊어집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땅 속 깊이 뿌리내린 나무의 경우와 너무나도 흡사합니다.
온갖 시련과 고난의 비바람 폭풍우에도 뿌리 뽑히지 않고,
혹독한 가뭄에도 그 잎들 시들지 않습니다.

과연 보이지 않는 하느님과의 깊은 관계, 믿음의 뿌리입니다.
아무리 상처로 꺾이고 다쳐도,
믿음의 뿌리 건재한 한 백절불굴(百折不屈) 다시 일어납니다.

오늘 말씀 중 예레미야 예언자와 예수님,
똑같이 배척당한 고립무원의 처지입니다.

보이는 외적 환경은 아주 어둡고 절망적입니다.
그러나 예레미야 예언자 하느님과의 깊은 내적 관계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힘센 용사처럼 제 곁에 계시니
저를 박해하던 자들이 비틀거리고 우세하지 못 하리이다.”

내적 확신에 위로 받으며 즉시 주님을 찬양하는 예레미야,
과연 주님과 깊은 일치의 삶을 살고 있음을 봅니다.
새삼 기도의 중요성을 깨닫습니다.

“주님께 노래 불러라! 주님을 찬양 하여라!
그분께서 가난한 이들의 목숨을 악인들의 손에서 건지셨다.”

예수님 역시
아버지와의 깊은 내적 일치의 삶이, 그 능력의 원천이었음을 봅니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일들을 하고 있지 않다면 나를 믿지 않아도 좋다.
나를 믿지 않더라도 그 일들을 믿어라.
그러면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을 너희가 깨달아 알게 될 것이다.”

그렇습니다.
보이지 않는 아버지와의 깊은 내적 일치의 삶이 우리의 궁극 목표입니다.

이래야 어떤 외적 환경 중에도 내적 평화와 안정입니다.
아무리 어둡고 절망스런 외적 환경 중에도,
보이지 않는 하느님 중심에 닿아있기에 태양처럼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 복된 성체성사 시간,
보이지 않는 하느님께 깊이 뿌리내려
믿음과 희망, 사랑을 흡수하는 시간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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