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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가브리엘 신부님의 묵상글을 읽고서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19-03-02 조회수1,372 추천수0 반대(0) 신고

 

 

찬미예수님,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가브리엘 신부님의 묵상글을 읽고 느낀 소회를 한번 리메이크 해봤습니다. 신부님께서는 고 최인호 작가의 책을 통해서 신부님의 유년기를 떠올리시며 유년기 속에 녹아있는 아름다운 추억과 이런 추억 속에서 밤하늘 별들의 아름다움을 느끼며 미래를 위해 꿈과 희망을 가득 품고 있었던 시절을 추억하며 오늘 복음에 대해 묵상하신 단상을 말씀하시는 듯합니다. 오늘 복음에 누구나가 잘 아는 표현인 어린아이와 같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복음 말씀으로 전개를 하십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하느님 나라가 어떤 나라일지를 한번 생각해봤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과연 어떤 나라일까요? 한번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겠습니다. 다른 말로는 천국이겠죠. 같은 의미이지만 각각의 단어에서 풍겨지는 의미의 뉘앙스가 저는 좀 다르게 느껴집니다. 참 묘한 느낌입니다. 하느님 나라라고 하면 제가 느끼는 감은 뭔가 사람이 갈 수 없고 정말 하느님 같은 절대 지존만이 거하시는 곳처럼 감히 피조물이 범접할 수 없는 그런 이미지가 그려집니다.

 

근데 천국은 어떤 이미지가 연상이 되느냐 하면요 이건 인간이 가고 싶고 꿈에 그리는 동경하는 세계인 낙원의 세계이면서 마치 인간이 누려 보지 못한 신기함으로 가득 찬 신세계가 펼쳐지는 파라다이스가 상상이 되는 그런 뉘앙스를 느껴지는 곳입니다. 아무튼 하느님 나라든지 천국이든지 상관없이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라는 표현을 사용하시면서 이 나라의 속성을 어린이와 대비시키면서 하느님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말씀하십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느님 나라는 결국 인간의 몸으로는 갈 수 없고 설사 간다고 하더라도 인간은 살 수 없는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인간의 몸으로는 간다고 하더라도 적응해서 살 수 없다는 말씀으로 느껴집니다. 그러면 하느님 나라는 어린아이는 갈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어린아이는 사람 아닙니까? 그렇다면 예수님의 말씀이 모순이라는 말씀일까요? 물론 아니겠죠. 모순처럼 보이지만 모순이 아닌 것입니다. 결국 이 말씀을 다른 의미로 해석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 말씀이 논리적으로 맞고 또 퍼즐이 맞추어지려면 결국 어린아이는 사람의 속성이 없다는 전제가 성립되어야 예수님의 말씀에 논리적으로 하자가 없는 말씀이 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정리를 할 수 있겠습니다. 어린아이는 사람의 모습을 띠고 있지만 그 내면의 근본 바탕은 사람의 속성인 인성이 아니고 그 아이의 영혼의 상태가 어떤 다른 상태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한마디로 말하면 천진무구한 상태의 영혼을 가져야 하고 그런 시기는 유년기 시절입니다.

 

결국 하느님 나라는 어린아이처럼 천진무구한 영혼을 가진 사람만이 사람의 근본 속성에서 벗어나 하느님 나라에 가서 살 수 있는 자격이 되는 게 아닐까 하고 저는 묵상을 해봤습니다. 또 신부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는 꿈과 희망이 있는 사람이 가는 곳으로 말씀하십니다. 이런 꿈과 희망도 지금의 나의 존재가 이 세상에 있을 수 있도록 해 주신 십 개월 동안 자신을 어머니의 태중에 품어주신 어머니의 은혜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들이 갈 수 있는 나라라고 또한 힘주어 다시 한 번 더 강조하시는 것 같습니다. 결국 이런 부모님의 은혜도 무상으로 받았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이런 것을 무상으로 다시 이웃사랑으로 실현될 때 그런 나의 모습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 조건이 된다고 말씀하시는 듯합니다. 결국 이런 모든 일련의 일은 하느님께서 우리 사람을 창조하시면서 우리의 영혼에 하느님의 숨결인 하느님의 영을 심어 넣어 주셨기 때문에 우리의 몸속에 이미 하느님의 나라에 가서 살 수 있는 유전자가 숨어 있다고 저는 봅니다.

 

그래서 이 숨어 있는 하느님의 유전자는 밭에서 진주를 캐듯이 우리는 우리 영혼 속에 감추어진 하느님의 속성을 찾아내야 할 것이고 이걸 찾아야만 합니다. 저는 이렇게도 한번 생각해봤습니다. 하느님은 빛이시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 빛이 원래는 하느님께서 하느님의 숨결로 우리의 영혼에 보석처럼 빛나도록 심어 놓으셨는데 어찌하여 우리 인간의 영혼이 그만 타락하여 죄로 얼룩진 우리의 영혼이 그만 그 빛을 가리고 있는 듯합니다. 지금은 우리의 죄성인 욕망 아집 등으로 인해서 가려져 있지만 이런 인간의 욕망인 어둠의 장막을 탈피하려고 노력을 하게 되면 그때는 우리 몸속에 갇혀있는 하느님의 빛이 우리의 몸을 뚫고 하느님의 빛이 나와서 밝게 솟아오를 거라고 생각됩니다.

 

그때서야 비로소 우리 인간의 몸이 하느님 몸으로 변화를 입게 되어 하느님 나라에 가서 살 수 있는 몸이 되지 않을까 한번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이런 인간의 육신에 숨어있는 하느님의 영혼을 끊임없이 발견하고 찾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오늘 1독서에 나오듯이 우리가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이성을 가지도록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결국은 하느님께서 이런 것을 주셨지만 이런 것을 찾으려고 고군분투하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는 것 같습니다.

 

결국 이런 것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자기의 마음속에 있는 인간의 영혼을 병들게 하는 영혼의 쓰레기를 치워서 깨끗이 정화하려고 하는 사람만이 자신의 마음을 하늘나라의 옥토로 만들었을 때결국 하느님 나라에 갈 수 있는 합당한 조건이 되기 때문에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런 모든 것을 한마디로 말하면 바로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마음을 가지면 되는 것이 최고의 관건이 되는 조건이라고 하시네요.

 

저는 이런 관점에서 오늘 신부님께서 말씀하시는 표현 하나를 더 묵상을 해봤습니다. 우리는 어머니의 태중에서 어머니께서 우리를 품어주신 사랑을 무상으로 받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와 관련해서 불교에서 자주 사용하는 말 중에 보시라는 게 있습니다. 우리로 말하면 일종의 자선입니다. 저는 예전에 저희 집에 자주 오신 스님으로부터 이런 말씀을 들었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보시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 최고의 으뜸 보시는 무주상 보시라고 합니다. 이것은 보시를 했으면 어떤 댓가를 바라지 않고 그냥 그저 부처님의 대자대비한 마음으로 거저 베푸는 보시 이런 보시가 최고의 상등 보시라고 하시더군요.

 

결국 불교에서 말하는 무주상 보시가 우리가 말하는 자선과 같은 맥락일 겁니다. 또 우리도 복음에서 말하는 정신과 동일하다고 봅니다. 이런 것도 어린아이처럼 맑은 영혼을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이 되어집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신부님의 묵상 말씀을 보고 제 나름 신부님의 묵상을 토대로 저만의 묵상을 한번 해봤습니다.

 

그러니 신부님의 묵상을 제가 단지 참조해서 했을 뿐입니다. 신부님께 감사함을 전합니다. 저도 덕분에 좋은 것을 한번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주셔서 말입니다. 다시 한 번 더 신부님께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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