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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작성자이정임 쪽지 캡슐 작성일2012-08-13 조회수350 추천수1 반대(0) 신고

+샬롬(그리스도의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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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루카 1,37)

 

저는 바오로 사도를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그러기에 바오로 사도에게 관심이 많이 있습니다.

가끔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깊이 묵상하지는 않고 있었던 질문이 오늘

다시 떠올랐고 기회가 왔구나 싶어서 묵상을 해 본 주제가 있습니다.

 

주제는 예수님과 만난적도 없고, 그러기에 예수님의 가르침을 직접 듣지도 못했으며

그렇다고 예수님의 직제자들을 따로이 만나서 과외를 받은 것도 아닌데 어떻게 바오

사도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이해할 수 있었고 많은 분량의 서간을 쓰실 수 있었나?

 

갈라티아서에서 자신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부분은 이렇습니다.

바오로가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경위(갈라 1,11 이하 참조)를 보시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그 복음은 내가 어떤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고 배운 것도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도의 계시를 통하여 받은 것입니다.

 

내가 한때 유다교에 있을 적에 나의 행실이 어떠하였는지 여러분은 이미

들었습니다.

나는 하느님의 교회를 몹시 박해하며 아예 없애 버리려고 하였습니다.

유다교를 신봉하는 일에서도 동족인 내 또래의 많은 사람들보다 앞서 있었고,

내 조상들의 전통을 지키는 일에도 훨씬 더 열심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나를 따로 뽑으시어, 당신의 은총으로 부르신

하느님께서 기꺼이 마음을 정하시어, 내가 당신의 아드님을 다른 민족들에게 전할

수 있도록 그분을 내 안에 계시해 주셨습니다.

 

그때에 나는 어떠한 사람과도 상의하지 않았습니다.

나보다 먼저 사도가 된 이들을 찾아 예루살렘에 올라가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마스쿠스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나서 삼년 뒤에 나는 게파를 만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 보름 동안 그와

함께 지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도는 아무도 만나 보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형제

야고보만 보았을 뿐입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쓰는 이 글은 하느님 앞에서 말합니다

거짓이 아닙니다. 그 뒤 나는 시리아와 킬리키아 지방으로 갔습니다.

 

그래서 나는 유다에 있는 그리스도의 여러 교회에 얼굴이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한 때 우리를 박해하던 그 사람이 지금은 자기가 한때 그렇게 없애 버리려고

하던 믿음을 전한다.'는 소문만 듣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나 때문에 하느님을

찬양하였습니다."(갈라 1,11-24)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그 복음은 내가 어떤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고 배운 것도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도의 계시를 통하여 받은 것입니다."

이 사실이 얼마나 중요했으면 하느님 앞에서 말한다고

하느님을 증인으로 세우셨을까요?

 

그렇다면 바오로 사도는 복음을 어떻게 깨달았을까요?

바오로 사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제1차 전도여행을 떠나기까지의

공백기가 있는데 약 14년의 세월이라고 합니다.

그 기간동안 예수님과 어떤 만남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고백하시듯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를 통하여 가르침을

주셨다는 뜻인데 과연 그것이 어떤 것이고 어떻게 가능할까를 묵상한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일들이 우리들에게도 가능한가를 묵상한 것입니다.

 

먼저 예수님과 3년 동안 함께 살았던 제자들을 묵상해 보았습니다.

여기에서 묵상한 것은 예수님과 3년 동안 먹고 자고 따라다니며 모든 말씀과 가르침을

들었던 제자들이 결과적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들에게 희망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직접 뵙고 함께 살았던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온전히 깨달을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고 난 그 후입니다.

그러므로 바오로 사도께서도 그것이 가능하게 된 것이고 우리들도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그럼 어떻게 깨달았을까?

사람이 사는 모습은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같습니다.

같은 곳을 바라보고 산다는 사실입니다.

곧 참 행복을 위해서 산다는 것인데 바오로 사도는 인생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의 눈으로 보고 예수님의

마음으로 느끼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바로 구약 성경을 예수님 안에서 깊이 묵상하셨을 것입니다.

우리가 구약성경을 예수님 안에서 깊이 묵상할 수 있을 때 하느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으며 내 인생을 이해할 수 있는 힘도 생긴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계시하신 예수님을 통하여 바오로 사도께서는 예수님을 만난적도 없었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은 적도 없었으며 그렇다고 예수님의 직제자들을 만나 따로이

과외도 하지 않았는데 누구보다도 예수님의 말씀을 온전히 이해하셨고 그 복음을

전하셨다는 사실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들에게도 가능하다는 사실이 희망인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처럼 예수님과 함께 예수님 안에서 세상과 우리들의 인생을

예수님의 눈으로 묵상하고 예수님의 마음으로 묵상한다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나 혼자의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불가능한 일이 없으신 하느님께서 함께 하시기에 가능합니다.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 20)

이 약속의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에 가능한 것임을 고백합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안에서 행복하세요!

+샬롬(그리스도의 평화)

그러므로 우리들은 예수님께서 2천년 전처럼 육신의 옷을 입으시고
다시 오셔 주실 것을 희망해서는 안 된다는 묵상입니다.
당시 예수님과 함께 살았던 제자들이 그랬듯이 역시나 우리들도 그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함께 살았던 제자들이 말씀을 이해 못했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여기서 저기서 그리스도가 나타났다 해도
믿지 말라고 하시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의 희망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뵙고 변화된 삶으로 예수님을
증거한 사도들과 바오로 사도의 삶이 희망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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