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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일 저녁 강론(예수님께서 왜 유혹을 받으셨는가?)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19-03-11 조회수1,261 추천수0 반대(0) 신고

 

 

먼저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옵니다. 오늘 주일을 지키지 못할 뻔했습니다. 정말 1년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하는 그런 경우입니다. 정말이지 오늘은 성당 가기가 싫었습니다. 솔직히 고백합니다. 단순히 가기 싫어서 가기 싫은 게 아니고 정말 몸 상태가 말이 아닐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몸 상태가 엉망일 때는 그날이 마침 주일일 때는 정말 하느님이 싫어서가 아니라 몸 상태가 너무 힘들다 보니 솔직히 가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정말 교중 미사 때는 이미 저녁 미사에 참례하려고 계획을 세웠기 때문에 쉬었지만 정말 시간이 갈수록 몸이 천근만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정말 마음에 유혹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정말 성당 가기 싫어서 가기 싫어하는 게 아니고 정말 몸 상태가 천근만근이다 보니 하느님께서도 이 정도는 주일을 어겨도 봐주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그래도 죽을 만큼 힘들어서 도저히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가 아니라면 주일을 지켜야 되지 않느냐는 생각이 서로 제 마음속에서 싸웠습니다.

 

몸은 힘들 대로 힘든데 이런 상태에서 이런 걸로 또 제 마음이 고민을 해야 되니 참 이래저래 힘든 하루였습니다. 또 시기가 시기인 만큼 사순이라 더더욱 고민이 됐지만 결국에는 힘은 들지만 사우나 갔다가 가야되겠다고 마음먹고 겨우겨우 미사에 참례를 했습니다. 정말 이점에서만큼은 천주교가 개신교보다 정말 보이지 않은 힘이 크다는 걸 느낍니다.

 

만약 개신교에 다녔더라면 확실합니다. 오늘 주일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사실 개신교에 다닐 때는 주일을 지켜야 되는 건 확실하지만 천주교에서처럼 고해성사도 없고 또 주일을 지켜야 하는 건 분명한 사실이지만 설사 지키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지금 제가 성당에 다니는 입장에서 과거를 한번 되돌아보니 죄책감이 개신교에 다닐 때가 들 들었던 것만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사실 제가 지난 이야기이지만 제가 예비자 교리 막바지 무렵에 수녀님께로부터 고해성사에 대한 교리를 듣는 날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 고해성사 교리를 듣고 사실 고민을 정말 많이 했습니다. 제가 제 성격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주 사소한 것도 양심에 가책을 느끼는 성격이라서 만약 성당에서 영세를 받으면 허구한 날 고해소를 가야 될 것 같다고 생각을 하니 한동안 영세를 받아야 되나 받지 말아야 되나를 두고 고민을 엄청 했습니다. 그런 고민을 했지만 결국에는 영세를 받고 이렇게 성당을 다니고 있습니다. 아무튼 정말 이런 게 보이지 않는 천주교의 힘인 것 같습니다.

 

오늘도 개인 사정이 있어서 이웃 본당에서 주일을 봉헌했습니다. 혹시나 어쩌다 이 본당에서 제가 미사를 드리면 한 번씩 마주하는 저희 본당 자매님을 오늘 혹시 마주치지 않을까 기대를 했는데 오늘은 마주치지 않았습니다. 이제 자정을 넘어 30분을 향하고 있습니다. 이젠 어제가 되겠군요. 마침 오늘 오후에 이 본당을 다시 와야 됩니다. 오늘 이 본당에서 마산교구 지속적인 성체조배회의가 있는 날입니다. 그리고 오늘 이 회의에 마산가톨릭 교육관 관장님이시고 지속적인 성체조배회 지도신부님께서 미사도 하시고 강의도 있는 날입니다.

 

제가 지난번에 한번 간단하게 이 신부님 강의 일부만 올려드렸는데요 정말 표현이 좀 그렇지만 쇼킹한 강론이 하나 있습니다. 정말 이 강론은 천주교 신자라면 꼭 들어야 하는 강론이라고 생각합니다. 영성체에 대한 강론입니다. 제가 이 강론 한번 올려드리겠습니다. 작년에 이 본당 회의부터 제가 회의에 참석을 했으니까 감회가 조금 새롭기는 새롭습니다.

 

이청준 하비에르 신부님이신데요 이 신부님은 누가 강의하는 거 유튜브에 올리는 거에 대해 민감하신 분이라서 저는 글로써 올리는 건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겁니다. 저도 한번 교육관에 향심기도 피정 들어가기 전에 이분이 혹시 어떤 분인지 알고 싶어서 한번 인터넷 검색해보니 유튜브에 나오시길래 한번 들어봤죠. 처음에 동영상을 보고 어찌나 많이 웃었던지. 저도 경상도 사람이지만 경상도 말투에다 또 전형적인 쌀집 아저씨, 세탁소 아저씨 같은 분위기라 많이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무튼 이분 강론 중에 정말 늘 같은 누구나가 아는 그런 내용이 아니고 좀 이색적이고 정말 귀기울여 들어야 되는 그런 내용의 강론은 제가 올려드리겠습니다.

 

오늘은 제가 어제 들었던 이웃 본당 주임 신부님 주일 저녁 강론 말씀입니다. 지난번에도 이 신부님 강론 말씀 한 번 올린 적이 있는데요 나중에는 제가 이 신부님 한번 찾아 뵙고 신부님 강론 말씀 올려도 되는지 허락을 받아야 될 것 같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강론 말씀을 전해드리겠습니다. 강론 주제는 유혹입니다.

 

여러분 오늘은 유혹에 대한 내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복음에 예수님께서는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시어 40일 동안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유혹이라는 수화가 있습니다. 수화도 보면 한 동작 한 동작이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동작과 유사한 동작이 있습니다. 수화도 한 동작 한 동작 의미가 있는 게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혹시 유혹이라는 수화를 아시나요? 어제 초등학생한테 물어보니 이렇게 하는데( 손으로 오라는 표시) 웃음~~~~ 이리와, 이리와. 유혹이라는 수화는 양손 약지를 갈고리 모양으로 해서 눈꼬리를 잡아서 당기는 겁니다. 당기면 어떻게 됩니까? 쭉 따라 가죠. 이게 유혹하다는 내용의 수화입니다. 재미있죠.

 

그죠. 맛있는 게 있거나 예쁜 아가씨가 지나가면 따라가죠. 이렇게 눈길을 끄는 눈길만 끌겠습니까? 지금까지 자신의 생각과 마음도 끌고 나가죠. 바로 이게 유혹입니다. 유혹을 히브리어로 페이라죠 라고 하는데( 제가 이 부분은 정확히 모릅니다. 제가 히브리어를 몰라서 그냥 음만 전해드립니다) 뜻은 유혹을 받다, 시험을 받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로 가시어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이 유혹은 예수님께서 유혹을 받고 시험을 받으셨다 라는 말씀입니다. 누구에게 입니까? 악마에게 입니다. 그러면 누가 악마에게 시험을 받도록 예수님을 데리고 갔을까요? 다시 한 번 더 말씀드릴까요?

 

예수님께서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로 가시어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누구입니까? 성령입니다. 근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다른 누구도 아닌 성령은 성부, 성자, 성령 하느님의 영이신데 그 성령께서 예수님을 유혹을 받으시도록 광야로 이끄셨다는 거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유혹을 받도록 하는 주체가 악마가 되어야 하는데 왜 성령이 했는가 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왜 그렇게 하셨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왜 이 땅에 오셔야만 했는가?

 

아기의 모습으로 왜 이 땅에 오셨는가? 그냥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실 때 딱 세상에 왕의 모습으로 힘이 센 사람의 모습으로 예수님 뒤에는 백만 천사들이 내려와서 세상을 싹 쓸어버리면서 하시면 모든 게 깔끔하게 끝날 텐데 왜 이 세상에 아기의 모습으로 내려오셨을까? 이 질문과 같은 맥락입니다. 왜 그랬을까라는 질문은 바로 하느님의 뜻이 어디에 있을까 라는 것입니다.

 

왜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광야로 내보내셔서 유혹을 받게 하셨을까 하는 내용과 똑같다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우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정말 약하고 쉽게 유혹당하고 또 죄를 짓고 다시는 죄를 짓지 말아야 되지라고 생각하면서도 또 죄를 짓는 이렇게 나약한 인간의 모습으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을까? 그것은 바로 이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의 모습으로 유혹을 당했을 때 예수님께서 그 유혹을 이겨내고 극복하고 승리하는 선례를 남기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유혹을 이겨낼 수가 있는가 하는 이 방법과 노하우를 예수님의 선례를 통해서 우리는 알 수가 있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스스로 길이라고 하셨습니다. 길은 무엇입니까?

 

길이라는 건 항상 어떤 목적지를 염두해두고 있습니다. 그러면 길을 내는 사람이 뺑뺑뺑 돌아가면서 길을 내겠습니까? 아니죠. 가장 빠르고 안전한 길을 내겠죠. 제가 오래전에 지리산을 등반한 적이 있는데 여러분 지리산 많이 가보셨죠. 천왕봉에 일출을 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장터목 산장에서 하룻밤을 자죠. 새벽에 일어나서 천왕봉으로 올라가서 천왕봉의 일출을 보게 됩니다. 때는 겨울이었습니다. 천왕봉에 가려고 아침에 일어나니까 눈이 와 있는 거예요. 눈도 그냥 눈이 아니예요. 밤새 눈이 와서 엄청 쌓여있는 눈입니다.

 

해도 아직 안 나왔으니까 캄캄하죠. 랜턴 하나 들고 가려고 하는데 겁이 나는 거에요. 제가 뭐 길을 알겠습니까? 아 이거 어떻게 하지. 길을 잘못 들면 어떻게 됩니까? 산에서. 다행히 제 보다 앞에 간 사람의 발자국이 있었습니다. 그걸 보니 너무 반가운 거예요. 그래서 랜턴으로 그 발자국을 보며 무사히 천왕봉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때 장관인 일출도 봤습니다. 우리가 앞서 간 사람의 발자국을 따라 가면 가장 편하고 안전한 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러셨습니다. 당신도 인간처럼 똑같은 처지의 상황에서 유혹을 받으셨고 그 유혹을 이겨냄으로써 우리가 어떻게 하면 그 유혹을 이겨낼 수가 있을까 하는 그 선례를 남기셨던 것입니다. 그것이 하느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유혹은 어디서 왔을까 입니다. 유혹은 어디서 왔습니까? 우리가 묵상하는 성경구절에 나와 있습니다.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로 가시어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누구에게 입니까? 바로 악마입니다. 이 악마가 우리에게 유혹을 합니다. 그런데 그냥 유혹이 아니라 그냥 우리가 쉽게 넘어갈 수밖에 없는 가장 극복하기 힘든 유혹을 가지고 우리를 유혹하죠.

 

예수님께서는 그런 유혹을 오늘 복음에서 보는 것처럼 받으셨습니다. 돌을 빵으로 만들어봐라. 이 무슨 유혹입니까? 물질에 대한 유혹입니다. 돈에 대한 유혹입니다. 참 쉽지 않죠. 이 돈에 대한 유혹. 사람들을 바라보는 기준이 돈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자기의 가치관이 물질에 매여 있는 것이죠. 오래전 이야기이지만 초등학교 애가 저한테 신부님 질문이 하나 있어요 해서 그래 뭐냐 하면서 솔직히 신부님되기 위해서 뭐 하면 되냐요 이런 질문일 줄 알았는데 신부님 월급 얼마 받아요? (웃음)

 

두 번째 악마는 예수님을 높은 곳으로 데려가서 세상 모든 것을 보여줍니다. 이거 다 너 것이다. 나를 경배하면 이 말이 무엇을 말합니까? 명예죠.

 

명예 이거 참 쉽지 않습니다. 직장 생활에서도 여러 곳에서도 자리에 대한 유혹을 많이 받죠.그걸 위해서 평생을 바치는 사람도 있습니다. 바로 정치인들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예수님은 어떤 유혹을 받느냐하면 악마가 예수님을 성전 꼭대기로 데려갑니다. 예루살렘이 있는 성전 꼭대기입니다. 그것은 무엇에 대한 유혹입니까? 바로 믿음에 대한 유혹입니다. 아 정말 하느님이 있을까? 내가 기도하면 기도 들어주실까? 참 우리 신앙인으로서 그런 유혹 많이 받죠.

 

정말 이거 극복하기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당하셨던 그 유혹들이 우리가 그런 똑같은 유혹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그럼 악마가 우리를 이런 욕구들을 유혹해서 얻는 게 무엇입니까? 그건 하느님과 연을 끊으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동안 받았던 은총 은사 이런 걸 아주 무디게 만들어서 하느님과 연을 끊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게 끊으면 어떻게 될 수 있습니까? 첫 번째, 정말 내 마음속 깊이 가두어두었던 상처가 아물어가는 그런 곳을 건드리게 됩니다. 그래서 무엇이 일어나냐 하면 죄책감이 일어납니다.

 

내가 왜 그랬을까? 내가 왜 이런 실수를 했을까? 내가 정말 죄인이야. 그런 것들을 자꾸 끌어냅니다. 그리고 불안을 조성합니다. 결국 나를 어디로 데리고 갑니까? 벼랑 끝으로 몰고 갑니다. 그래서 아무것도 못하게 포기하게 만들고 자책하게 만들고 부끄럽게 만들고 좌절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두 번째 우리에게 허황된 꿈을 꾸게 만듭니다. 유혹에 넘어가서 그 욕구를 채우게 되면 세상 모든 것을 얻는 뿌듯함과 환상을 가지게 만듭니다.

 

그리고 세 번째 그 모든 것들을 내 힘으로 내 능력으로 할 수 있어. 이런 자만감을 가지게 됩니다. 이런 걸로 인해서 자신이 그동안 진실되게 가져왔던 관계도 끊어버리고 오직 나에게 필요한 사람, 유익한 사람, 나에게 도움이 될 것 같은 사람들만 찾아다니게 됩니다. 정치인들은 권력에 결국 순종하게 되고 불의를 보면서 눈을 감게 됩니다. 그러면 이런 유혹들을 어떻게 내가 이겨낼 수가 있을까 입니다. 제가 강론을 시작하면서 하느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가 라는 것을 제가 말씀을 드렸죠.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두고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이 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가신 그 길 그 선례를 따라서 가며 유혹을 이겨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선례는 무엇이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하느님 중심으로 판단을 하셨습니다. 하느님 중심으로 결정했습니다.

 

하느님 말씀을 기록한 성경을 인용하시기도 하고요 당신 자신을 이끈 그 영에게 당신 자신을 온전히 위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걸 하느님 중심으로 판단을 하십니다. 우리가 하느님 말씀인 성경 말씀을 허투루 듣지 않고 새겨듣고 또 성경을 공부하는 이유도 바로 거기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이유도 거기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길을 걸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선례를 남기셨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죠. 이번 한 주 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하느님 중심으로 생각하고 결정하고 판단하신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께서 남기신 그 선례를 따라서 이번 한 주 살아봤으면 좋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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