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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가브리엘 신부님 묵상글을 읽으면서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19-03-11 조회수1,108 추천수0 반대(0) 신고

 

 

옛날 농경사회에는 서로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는 항상 서로 협력 관계를 형성하여야 하는 문화였다고 언급하십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처지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자신도 남의 도움을 받아야 되는 그런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오늘날 시대가 첨단 디지털 문화로 인해서 하루하루가 급변하게 변하는 시대일지라도 인간이 모여 무리를 형성해서 협력해나가야 하는 그런 시대에도 여전히 인간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따뜻한 인간애는 변함없이 존재해야 할 겁니다.

 

사람 냄새가 나는 사회의 근본 틀은 계속 이어져야 황량하고 메마른 사막처럼 되지 않을 겁니다. 이런 모습이 이웃사랑으로 확산되어 나간다면 우리 모두가 하느님 사랑으로 가득 넘칠 것 같습니다. 우리 주위에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종교의 틀을 떠나서 어쩌면 인류애라는 넓은 개념으로 생각해야 할 겁니다.

 

우리 주변에 힘없고 나약한 사람 속에 그 사람들의 벗이 되어 주고 위로해 주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그 사람들 속에 계신다면 바로 우리는 진정 사순시기에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며 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는가를 묵상하며 보내는 거룩한 사순시기인 만큼 예수님께서는 약자와 가난한 자의 벗이 되어 이 세상에 진리의 등불을 들고 세상의 부조리와 몸소 맞서 싸우시면서 진리를 전하시다가 끝내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인류의 죄를 한몸으로 다 받으시고 십자가상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 위해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뒤에 있는 예수님의 삶을 바라봐야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바로 우리의 사랑과 관심이 절실하게 필요한 자신의 주위에 있는 사람이 바로 우리가 바라봐야 할 또다른 예수님일 겁니다.

 

우리는 사순시기 뿐만 아니라 기도할 때 십자가상에 매달리신 예수님을 보면서 예수님의 삶도 묵상도 해야 되겠지만 진정으로 예수님의 수난과 십자가상의 죽음이 나와는 다른 예수님만이 당하고 그건 예수님만이 걸어가셔야 하는 길이고 나와는 상관없는 길이라고 생각한다면 결국 우리는 미사 때 성체로써 예수님을 영할 때가 우리가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에서 맞이하고 모시는 거라고 할 수 있는데 물론 미사 때 신부님의 축성으로 하나의 제병이 성변화되었다고는 하나 그게 예수님의 몸을 받아들일 수 있는 그때의 저희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으로 변화가 되지 않은 상태라면 설령 성체를 영하였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몸에서는 마치 물과 기름처럼 서로 융화가 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번 해보게 됩니다.

 

결국 성체를 영하여도 자신의 삶이 예수님의 삶과 일치를 이루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건 결국 예수님의 몸을 욕되게 하는 것과 진배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지금은 아직까지는 신앙적으로 많이 부족하지만 두 달 전에 이청준 하비에르 신부님으로부터 성체 특강을 진주 하대 성당에서 들었는데 그때 정말 성체특강 강의를 듣고 소름이 끼칠 정도로 많이 각성했습니다.

 

우리는 성체를 그냥 영하면 영할수록 좋다고 생각하지만 정말 성체를 영할 때 자신의 삶이 예수님의 삶과 동떨어진 삶을 살면서 영한다고 한다면 이건 문제가 심각하다고 하셨습니다. 미사 때 마지막에 신부님께서 성체를 거양하시고 기도를 하신 후 성체를 쪼개시면서 예수님의 몸을 나누시고 분배를 해 주시는 걸 한번 생각해보게 되면 예전에는 몰랐는데 제가 한날 복사를 서면서 늘 듣는 소리였지만 하루는 정말 가슴이 무너져내릴 정도로 아픈 날이 있었습니다.

 

맨날 복사를 설 때 무심코 들은 소리였지만 그날은 성체를 쪼갤 때 나는 소리가 마치 예수님께서 골고타를 오르시면서 채찍에 살점이 떨어져나갈 때 그때 예수님께서 신음하시는 고통의 소리 같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 있었습니다. 정말 그날 그런 생각을 하니 정말 가슴이 아팠습니다. 요즘에는 마이크 성능이 좋아서 마이크로 잘 전달되는 경우도 있지만 제가 영세를 받고 복사를 설 때는 그때는 제대 주위에서만 간신히 들릴 그 정도였습니다. 참 그때 제가 느꼈습니다. 얼마나 성체를 그냥 아무 생각없이 그동안 영했는지를 말입니다. 그날 참 많이 반성했습니다.

 

아무 생각없이 성체를 영했을 때 그때 예수님의 심정이 어떠했을지를 생각을 해보니 정말 아찔했습니다. 만약 그때 정말 예수님의 몸은 그렇게 쪼개져서 우리의 몸속으로 들어온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예수님의 몸을 받아들이기에 영적으로 순결한 처녀가 된다면 예수님께서는 아마 모르긴 몰라도 우리의 순결한 마음에 들어오시기 위해서 그런 아픔이 동반된다고 하시더라도 정말 기꺼운 마음으로 그런 고통도 고통으로 생각하시지 않고 사랑으로 우리를 감싸안아 주실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그게 저희를 사랑하고 그렇게 하시는 게 예수님께는 또 하나의 기쁨이지 않을까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정말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예수님께 마치 2000년 전에 십자가에 예수님을 못 박는 고통을 또 안겨드리는 것과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면 정말 무시무시한 일입니다.

 

결국 이런 자신의 모습이 예수님을 고통 속으로 몰아가는 일을 하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저의 생각입니다. 결국 이처럼 성체로써 예수님과 만날 때 엇박자가 나는 삶이 되지 않으려면 사실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봐야 할 예수님은 십자가 고상에 매달려 계시는 예수님이 아니고 정말 우리 주위 모든 연약하고 힘없는 사람들 속에 있는 예수님을 바라봐야만이 진정으로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건 단지 우리는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길을 예수님과 함께 수난에 동참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수난을 먼 발치에서 방관하는 방관자나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2000년 전 예수님이 못 박히는 장면을 구경하는 사람과 똑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점을 생각한다면 정말 반성을 할 부분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만약 오늘날 예수님께서 잠시 휴가차 지상에 오셔서 한 말씀하시고 가신다면 저는 이런 말씀을 하시고 가실 것 같습니다. 성전이나 제대 위에 있는 나도 중요하지만 난 너희 주위에 있는 가까운 부모 형제 또 더 나아가서는 교회 내에 있는 소외된 형제자매에게 한 번 더 따뜻한 눈길과 애정을 쏟아주기를 바란다. 이게 나의 진심이다. 알겠니? 나의 아들, 딸들아!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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