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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453)흐르는 세월을 돌아서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6-04-03 조회수826 추천수3 반대(0) 신고

2206년4월3일 사순 제5주간 월요일 ㅡ다니엘13,1-9.15-17.19-30.33-62;요한8,1-11ㅡ

 

       흐르는 세월을 돌아서

                            이순의

 

 

창문에 드는 햇살도 따사롭고, 오시는 봄비의 촉감도 보드랍고, 살랑이는 바람 끝도 온화한 게 작은 바구니 하나 옆에 끼고 고향마을의 저수지 뚝방에 서고 싶습니다. 조그만 칼끝에 묻어 나오는 여린 새싹의 나물들을 잘라 낼 적에는 그 자리에 또 무엇이 자라랴 싶었지만 봄 내내 캘 것이 많았던 공동의 소유지가 아니었던가?! 나도 캐고, 동무도 캐고, 언니도 캐고, 할머니도 캤던 그 도란도란의 땅에 가고 싶습니다.

 

이맘때 쯤이면 겨울 동복들 모아서 커다란 대야에 담았습니다. 한 대야는 모자라서 두 대야도 담고, 세 대야도 담아 언니랑 부엌 식구들이랑 다 같이 머리에 이고 저수지 뚝방에 오릅니다. 커다란 떡돌이 어느게 평평하고 편안할까 물색을 하여 가만히 가만히 다가섭니다. 위에서 내려다 본 것처럼 질펀하니 자알 생겼으면 머리에 이고 온 대야를 내리고, 생김이 모가 나 있으면 한두 번 더 자리를 옮겨 대야를 내립니다.

 

마른 때 가득한 빨래를 한 장씩 한 장씩 물에 적셔 돌틈에 놓고, 작은 양말이나 속옷들은 떠 내려 가지 않게 모난 돌덩이 위에 걸쳐 놓습니다. 담아 온 대야는 양말짝 하나나 걸래에 비누칠하여 깨끗이 닦아 물 빠지라고 한 쪽에 비스듬히 엎어 놓습니다. 촉촉히 물 불은 빨래는 큰 것 부터 차근히 차근히 비누칠을 하고, 기운을 보태어 비벼 빨고, 방망이 질도 쿵쿵쿵 두둘겨 가며 행굼질을 반복합니다. 때 담근 비눗기가 맑은 향기되어 폴폴폴 물냄새 나면 저수지 물가에서 허리 한 번 쭉 펴며 저수지 물속에서 빨래를 건집니다.

 

물 먹은 빨래는 창공을 가르고 무거운 물은 다시 돌아서 저수지가 되는! 시원했습니다. 꼭꼭 비틀어 짜야지요. 그런데 큰 겨울 빨래는 잘 비틀어지지 않습니다. 빨래가 너무 큰지? 아니면 제 손이 너무 작은지는 모르지만 무겁고 힘들고 커서 그냥 대충 접어 엎어 놓은 대야 위에 올려 놓습니다. 때로는 이불 호청이나 케시미어 담요처럼 큰 물건들은 저수지 언덕에 펼쳐 놓아 빨래가 끝날 때 쯤이면 반은 말라서 덜 무거운! 빨래를 빨때는 큰 빨래부터 시작하라고 가르쳐 주시지는 않았지만 엄마가 그렇게 하시고, 언니도 그렇게 하여서 따라해 본 이유는 아마도 꼭꼭 힘주어 짤 수 없기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빨래의 크기가 작아지면 꼭꼭꼭 짤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많은 겨울 빨래가 다 빨아질 때면 가는 제 손가락이 동아줄 처럼 굵어져 있습니다. 퉁퉁퉁 불어서 손가락이 굽어지지도 않지만, 마디마디가 어른어른하고 멍먹허고 무거운 느낌은 아프다고도 말할 수 없습니다. 손가락 아픈 통증은 물 먹은 빨래 대야를 다시 머리에 이고 돌아올 적에 심해집니다. 대야 가득한 빨래는 물을 먹어서 수 곱절은 더 무거운데, 가는 목뼈가 그렇게 큰 무게를 지탱하려면 손으로라도 단단히 잡아 줘야 하는데, 오랜시간 젖은 손마디에 솔솔 바람이라도 불어와 스치고 지나가면 시리고 아려서......아~! 아픕니다.

 

그만 차가운 대야에서 손을 놓고 싶어 집니다. 그런데요. 손을 놓으면 공들여 빨은 빨래는 땅에 내동댕이 처질 것이고, 집에 가서 펌프질을 하여 다시 행굼질을 해야 합니다. 부엌 식구들은 점심 준비로 바빠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제 아픈 손으로 작두질을 하여 물을 퍼 올리기는 더욱 싫습니다. 더구나 펌프샘의 작두 손잡이는 차가운 쇠로 되어 있어서 얼마나 시려운지요?! 별 수 없이 한 손, 한 손, 바꿔가며 호오 입김 불어 대야를 잡습니다. 아~~! 진짜로 아려옵니다. 마디가 깨지는 듯이 손가락이 아픕니다.

 

집에 돌아 오면 커다란 대야를 여럿이서 함께 들어 내려 줍니다. 물론 저수지에서 빨래 대야를 머리에 일 적에도 혼자는 들지 못합니다. 먼저 부엌식구들의 대야를 제 두 손으로 도와서 머리에 올려드리고, 그 다음 언니 대야를 올려 주고, 마지막에 제 대야를 이울적에는 한 손으로는 머리에 인 대야를 잡고, 한 손으로는 제 대야를 잡아 빙 둘러서서 들어 올려 줍니다. 무거운 대야를 머리에 이고도 허리를 굽혔다가 펴며 제 머리에 올려진 수건 한 장의 또아리가 밀려나지 않게 올려 줄 때는 그게 신기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저도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토방가에 나란히 놓인 대야의 빨래를 널어야 하는 몫은 저의 몫입니다. 마당을 가로질러 길게 처진 빨래줄은 가운데에 긴 장대를 고여 놓았습니다. 장대를 당겨 비스듬히 누이면 빨래줄은 제 눈높이 만큼 내려와 기다려 줍니다. 차근차근히 털고 펼쳐가며 한 장 한 장의 만국기를 꾸밉니다. 색색의 다른 모양들이 줄에 가득하면 다시 장대를 잡고 반대로 쭈욱 밀어 줍니다. 빨래줄은 장대의 높이 만큼 높아져 햇살가득한 하늘 가운데서 만세를 부릅니다.

 

잘 빨아진 빨래가 머금은 물빛은 다이아몬드 처럼 부시게 반짝였다가 후두둑 후두둑 떨어집니다. 그 섬광이 뽀시시한 만족을 선사하며 마당에 물그림자를 그립니다. 그 물그림자가 마를때 쯤이면 빨래도 가슬가슬하게 마르고 하루 햇님은 뉘엿뉘엿 서산에 걸터 앉겠지요. 새삼 이 사순시기의 후반을 보내며 가버린 세월이 그리워졌습니다. 수도꼭지에 목숨걸지 않았던 그 시절에는 자연이 주는 정화능력을 잘 몰랐습니다. 그 자리에서 빨아도 빨아도 물이 맑았었던!!!!

 

지금은 수도꼭지의 한계도 있지만 세탁기의 빨래는 한 번 빨고 물을 버리고, 한 번 행구고 또 버리고..... 그 버려진 물은 또 대단위 하수처리장에서 걸러야 하고....... 그러고도 맑아질 수 없는....... 참! 물 따라서 사람의 마음도 변하지 않았는가 돌아봅니다. 변해 있습니다. 참으로 많이 변해있습니다. 아무리 걸러보려고 해도 걸러질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수도꼭지에 갖힌 물이 하늘을 담근 저수지의 물과 같을 수 없듯이, 제 자리에서 빨아도 빨아도 맑았던 그 떡돌 옆의 물과 세탁기 속에서 화학세제의 도움없이는 불가능한 물과는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가슴으로라도 흐르는 세월을 돌아서 가보고 싶습니다.

지금도 고향마을의 저수지 뚝방에는 바구니 옆에 끼고 나물캐는 동무 있을까요?

 

 

 

 

 

ㅡ예수님께서 몸을 일으키시고 그 여자에게, "여인아, 그자들이 어디있느냐? 너를 단죄한 자가 아무도 없느냐?"하고 물으셨다. 요한8.10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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