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자선에는 조건이 없다.
작성자김영범 쪽지 캡슐 작성일2012-12-17 조회수350 추천수1 반대(0) 신고

 "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

( 마태 1,1~17)


 자선주일을 맞이해서 자선의 의미를 되새겨 봅니다.

자선은 조건 없는 자발적 사랑의 행위입니다.

예수님의 족보를  읽다보면 느껴지는 하나의 감정이 생깁니다.

바로 그것은 조건 없는 하느님의 사랑이 대를 이어 관통하고 있다는 사실 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베푸듯이 우리도 이웃에게 계산적이지 않은 자

비로운 마음으로 다가서야 겠다고 생각 합니다. 
 

자선이란 부를 가난한 자에게  베푼다는 의미로

권력이 부를 강제로 나누게 하는 공산사상과는 전혀 다른 자발적 행위입니다.

그러나 이 점을 심하게 이용하여 자선을 베푸는데는 조건(재산이 많아야)이 있다고 생각

이 들게 만드는게 지금 세상의 논리 입니다.

돈이 많아야 베풀고, 충분한 재원이 있어야만 복지국가가 가능하다는 논리가 설득력 있

게 들립니다.

그러나 이는  흔히들 잘못 알고 있는 이론 입니다.


' 곡간에서 인심 난다' 는 속담이 있듯이

부란 자선과 나눔을 떠나서는 그 의미가 퇴색 됩니다. 


양로원의 어떤 할머니께서 몇년째 계속 양로원비를 내지 않았습니다.

알고 보았더니 이 할머니께서는 자신의 아들에게 천억원이나 되는  재산을 상속한

갑부였는데 그렇게 자신의 쓸돈은 남겨두지 않고 모두 상속하다 보니 양로원비 조차  내

지 못하고 아들은 그런 어머니의 상황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무엇을 의미 할까요? 

 할머니가 양로원비를 내지 못하는 근본 원인이 무엇일까요?

낼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낼 의지가 없어서입니다.


돈이 없어서 자선을 베풀지 못한다는 논리는 무엇이든 이 세상을 돈과 결부시키는 가치

관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조건없는 사랑, 자선, 나눔의 행복 같은 것은 자신의 세계와는 영원히 다

른 세상인 것입니다.

돈이란 행복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목적을 오로지 '행복'이란 가치 하나에 두어야 돈과 행복의 상관관계가 헷갈리지 않습니

다. 

어떤 사람이 돈을 많이 벌어서 행복하다고 칩시다.

그사람이 행복한 진짜 이유는 그만큼 남에게 베풀 여유가 충분하기 때문이지

남보다 돈이 많아져서가 아닙니다.

비교는 결국 불행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좀 어려운 이야기지만 에덤 스미스의 <국부론> 을 들어 설명 해 보겠습니다.

" <국부론> 에서 시장의 ' 보이지 않는 손' 이 이익을 산출 할 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행복

까지도 증진 시킬 수있다고 자신있게 주장 할 수 있었던 데는 이기심과 자기애를 제어하

며 타인과 더불어 행복하고자 하는 존재라는 인관관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

( 김수연- 한겨레 교육 강사) 

이 말은 곧 이익을 산출하는 자본의 논리 원천은

바로 인간의 이기적 천성 외에도 분명히 존재하는

 이타적인 천성이 만든 인관관이 바탕이였다는 말입니다.


흔히들 <국부론> 하면 성장을 합리화시키는 대명사로 인식 하지만

그 밑바탕에는 엄연히 평등을 이념으로 하는 인간관이 있었다는 사실을

왜곡된 현대 자본 주의가 애써 외면  하였습니다.

<국부론>에서 말하는 국부는 생활 필수품과 편의품의 총량인데

여기서 사치품은 엄연히  제외된다는 사실을 아시는 분은 드물 것입니다.

그런데도 '국부...' 하면 누구나 다  어떤 특이하게 값비싼  재산을 떠올립니다.

고도 성장주의가 낳은 오류입니다.

돈이 많아야 베풀 수 있고, 재원이 충분해야 복지가 가능하다는 논리를 퍼뜨리는 자는 

다름아닌 세상의 탐욕에 시들어가는 우리 자신일 것입니다 .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