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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시련과 인내 (히브리서 12:4-13)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19-02-06 조회수1,457 추천수0 반대(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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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제4주간 수요일 제1독서에서~~~

시련과 인내

(히브리서 12:4-13)

4 여러분은 죄와 맞서 싸우면서 아직까지 피를 흘린 일은 없습니다. 5 하느님께서 마치 자녀들에게 하시듯이 여러분에게 격려하신 말씀을 잊었습니까? '아들아, 너는 주님의 견책을 가볍게 여기지 말며 꾸짖으실 때에 낙심하지도 말아라. 6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자를 견책하시고 아들로 여기시는 자에게 매를 드신다.' 7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견책하신다면 그것은 여러분을 당신의 자녀로 여기고 하시는 것이니 잘 참아 내십시오. 자기 아들을 견책하지 않는 아버지가 어디 있겠습니까? 8 자녀는 누구나 다 아버지의 견책을 받게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이런 견책을 받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서자이지 참 아들이 아닙니다. 9 우리를 낳아 준 아버지가 견책해도 우리가 그를 존경한다면 영적인 아버지께 복종하여 살아야 한다는 것은 더욱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10 우리를 낳아 준 아버지는 잠시 동안 자기 판단대로 우리를 견책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이익을 주며 우리를 당신 처럼 거룩하게 만드시려고 견책하시는 것입니다. 11 무슨 견책이든지 그 당장에는 즐겁기보다는 오히려 괴로운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견책으로 훈련을 받은 사람은 마침내 평화의 열매를 맺어 올바르게 살아 가게 됩니다. 12 그러므로 여러분은 힘없이 늘어진 손을 쳐들고 쇠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십시오. 13 그리고 바른 길을 걸어 가십시오. 그러면 절름거리는 다리도 뒤틀리지 않고 오히려 낫게 될 것입니다. 아멘

 

 믿음의 옛사람들의 이야기를 쭈욱 나열한 다음에 갑자기 왜 징계(견책) 이야기를 하는가. 우리가 보기에 그 징계라고 하는 것은 죄에 대한 벌의 개념으로 우리가 알고 있죠. 징계! 그러면 그렇게 알잖아요. 죄 지으면 벌주고 그리고 그 벌은 항상 우리에게 해가 되고 악한것이다 이러한 개념이 우리에게 있단 말이죠. 그런데 여기에서의 징계는 '파이데이야-자식 만들기' 란 뜻이거든요분명 그 자식만들기의 내용은 '아픔'이예요 '고통'입니다. 그래서 여기 뭐 '채찍질'이란 말도 나오고 '꾸지람' 이런말도 나온단 말이죠. 아픈거예요 사실. 징계 파이데이야예요.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그 믿음의 조상들이 다 그 징계를 받은 사람들이다 란 뜻이겠죠? 왜냐면 아들이니까. 아들들은 다 징계를 받게 돼있어요.

 

이사야서 53장을 보면 '그 아들이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다' 이런 말이 나오잖아요? '채찍' 같은 말이거든요. 아들이 채찍에 맞은 그 것이 지금 성도가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채찍에 맞는 그것을 그대로 먼저 사신거예요 그죠?

그리고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분들은 아들의 그 삶을 先驗하여 산거고, 우리는 그 아들의 삶을 이제 그대로 또 다시 살아내는 거고 그러니 모든 성도 아들들은 그 아들에게 속하여.. 아들이 이 세상에서 산 삶을 그대로 실제화하여 살아낸다는 뜻이예요. 그러면 아들이 채찍에 맞고 십자가에 매달린건 지금 하느님이 우리를 채찍으로 패는게 진정한 아들로 만들어 내기 위해서 그러니까 우리가 육을 입고 있는 우리의 육을 벗겨내기 위해서거든요.

하느님께서 아들을 십자가에 매달으신것은 매달게 하신것은 우리의 죄를 위해서예요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지만 한편으로는 그 아들을 진짜 죽여버리기 위해서 ....육을 갖고 있는 그 아들을 죽여버리고 하느님의 능력으로 새로운 아들로 이렇게 부활시키기 위해서 팬거예요.

 

육의 예수는 여러분 마음속에서 죽여야 할 존재예요. 우리가 4복음서에서 나와 있는 그 예수만 이렇게 산상수훈이니 뭐니 그 분에게서 나온 말씀을 그냥 곧이곧대로 이렇게 듣게되면 부활하시기 이전에 그 옛 성전의 예수를 붙드는꼴이 되는거예요. 그래서 어떻게보면 여러분이 알고 있는 지금까지 배운 예수를 마음속에서 죽여내지 않으면  진짜 예수를 못 만나게 돼요. 그런데 우리는 그냥 성경에 나와 있는 표피적 4복음서에 나와 있는 그 예수만 알고 있는 것 같예요 부활하셔서 우리에게 들어와 우리를 우리 안에서 율법을 완성하신.. 그런 예수에 대해서는 글쎄 별로 관심들이 없어요. 왜냐면 여전히 전부 '' 에 대해서만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면 안돼요. 요한복음 663절 보세요. 63 육적인 것은 아무 쓸모가 없지만 영적인 것은 생명을 준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적인 것이며 생명이다.

잘 보세요. 살리는 것은 영이다 그래요. 육은 무익하다. 그럼 거기서의 무익은 무엇에 대한 무익이겠어요. 생명에 대한 무익이란 말이예요. 이 땅에 온 인간들은. 먹을거 입을거 뭐 마실거. 그 내 보람 명예 가치 이런것들로 자기의 생명을 유지할수 있고 지킬수 있다 라고 믿죠?

시간을 모아서 생명을 자기들이 창조해 낼려고, 역사 전체가 다 생명 만들기 작업인거예요 인간들의. 나 만들기 나를 구축하기 위해 시간을 사용하는 거란 말이예요. 역사에게 나를 올인시키는거잖아요그런데 우리가 그 신앙생활 하면서 착하게 살려고 하고 그리스도를 본받아 살려고 하는 것 물론 우리 안에 성령이 일으키시는 지향성으로 나오는것 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이 죄송한 말씀이지만 ...대부분이 인간들의 그 생명 창조 작업에 연장선상에 있는거예요 그렇게해서 '괜찮은 사람' 이 되고 싶은거예요.

그런데 성경은 肉은 無益하다라 그래요. 살리는 것! 생명을 줄수 있는건 영이다! 성령이란 말이예요. 그리고 그걸 뒤에서 바로 말씀이다 라 그러죠. 말이 내 말이 영이요 생명이다라고 그러잖아요. 말씀! 예수가 생명이지..여러분이 이 세상에서 이 육신을 갖고 뭘 해내는 이런것들이 여러분을 존재되게 하고 사람답게 하고 하는게 아니라는 거예요.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인간들의 생명 만들기 작업은 그들의 행위를 근거로 하여 평가가 돼요?  '죄인 선 악 선인' 뭐 이런걸 뭘로 나누죠? 그 사람이 뭘 했느냐로 나누죠. 예수가 오시기 전에 죄가 뭐예요? 그 사람이 한 행위를 죄라고 하잖아요. 율법을 지켰냐 안지켰냐 이런걸로. 그럼 예수가 온 이후의 죄는 뭐예요?....성령이 오신 이후의 죄는 예수 안 믿는게 죄예요  그래서 '성령이 오시면 죄에 대하여 책망한다' 라고 하는건 ....율법 아래 구약 아래에서 너희들이 죄라고 했던거 인간의 행위를 근거로 요즘도 우리는 그렇게 이야기 하잖아요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사람들의 행위를 보고 '저 나쁜 놈! 죄인 저건 선한것 이건 악한것' 우리는 그 나타나는 현상을 보고 악하다 선하다를 가른다 말이예요. 그런데 성령은 뭐라고 그러냐면 .....예수 믿는게 선, 안 믿는걸 악 이라 그래요. 그러면 이제 죄의 대한 개념이 바뀐거예요.

그럼 복음을 안다 라고 하는 이들은 이제 그 전까지 아담안에서 선악과 입에 문자의 그 선악 판단의 그 자리에서 내려와야 되는 건데 ...우리는 여전히 지금도 사람들 뒷담화에~ 뭐 평가에~ 판단에~ 단죄에~ 다 뭘 보고 하냐구요. ...그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말 행위 이런거 보고 한단 말이예요. 그건 여전히 아담이예요그거 죽어야 할거라니까요.

 그래서 하느님이 징계 아들 만들기라는 채찍을 들고 성도안에 찾아와서 하시는 일이 뭐겠어요? 바로 그 육을 죽여 내는 거예요. 그게 아들 만들기예요. 그게 자식 만들기라니깐요. 그래서 아프다라고 하는 거예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선악과를 먹지 말라 그랬고 생명나무 열매를 먹으라고 그랬어요. 선악과를 먹었더니 인간들이 열심을 부리기 시작했죠. 하느님처럼 되자! 바벨탑을 쌓기 시작했단말이예요. 생명나무 열매는 뭐예요? 예수잖아요! 묵시록에 가면 열두가지 열매가 맺혀있다고 그러죠? 아들이예요 그거요 예수예요.

 그 열매을 먹어야 사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오늘날 예수를 믿고 복음을 안다고 하면서 여전히 "선악과 먹자!” 하고 있는 거예요. 여기 보시면 '예수를 바라보라' 라고 한단 말이예요. 생명나무 열매로만 살 수있다는 얘기예요 그거는. 그런데 선악과 먹어 우리가 선악으로 선악과 먹고 선악으로 판단해 놓은 그 선에 힘쓰고 악을 버리자를 그냥 그리스도교의 울타리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나쁜거 고쳐야죠.

징계중의 하나가 뭐냐하면, 하느님이 자식만들기 위해 채찍으로 쓰는게 뭐냐면, 자식 죄짓게 놔두는 거예요. 성도는 그때 제일 아파요. 그런데 여기 뭐라고 그러냐하면 징계는 '사랑에서 발현된다' 그래요. 그러니깐 징계.  우리가 죄짓는것도 하느님이 사랑해서 죄짓게 놔두는 거예요. 그때 제일 아프다니깐요. 그리고 인간들은 하느님의 백성은 그 죄를 통과하면서 반드시 유익을 얻게 돼있어요. 하느님을 바라보게 돼 있다니깐요.

 

그리고 하느님을 떠나 만을 위해 나의 쾌락을 위해서만 사는 삶이 얼마나 처절하고 어둡고 고통스러운건지 반드시 깨닫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성도의 삶에 일어나는 모든게 다 '' 이다 그러는 거예요. 합력하여 선이 된다는건 그 재료들이 다 선이라는 거거든요. 그런데 모든것이 그러하다 라는건데 우리가 한 착한 일만 합력되어 선이 되는게 아니라 우리에게서 나오는 모든게 선이라니깐요 성도가 맞다면요.

아 하느님은 오히려 많은것을 회복시켜 주고 계셨구나. 그런데 우리가 ''를 생각하고 '' 만에 집중해 있으니까 그 모든걸 다 고통으로만 감지하고 있었구나 사실은 그거 아닌데. 하느님이 그렇게 깨달음을 주시더라구요. 이 말씀안에 나오는 우리 인물들 보면 정말 우리는 상상할수도 없는 그런 고통을 받았죠.

고린후서1116-17절 보세요. 16 거듭 말해 두지만 아무도 나를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마십시오. 만일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생각되거든 그런 사람으로 쳐 주어도 좋습니다. 그러면 나는 어리석은 사람으로서 좀 자랑을 할 수 있겠습니다. 17 물론 내가 지금 하는 말은 주님의 명령을 받고 하는 말은 아닙니다. 이렇게 장담하며 자랑하는 것은 내가 어리석어서 하는 짓입니다.

자랑을 해요. 왜냐면 그 앞에서 고린도서가 사도의 그 사도성을 믿어주지 않고 인정해주지 않는 그런 지가 개척한 교회 사람들한테 저거 사도 아니다이렇게 조롱을 당하고 모함을 당하고 그랬단 말이예요. 그래서 인제 자랑 하는 거예요. “나 사도 맞어그러고 자랑을 하는데 뭐라고 자랑하냐면 고린후서1119-20절 보세요

19 그 어리석은 사람들을 그렇게도 잘 받아 주니 여러분은 어지간히도 똑똑합니다! 20 누가 여러분을 종으로 삼아도 그만, 잡아먹어도 그만, 착취해도 그만, 깔보아도 그만, 뺨을 쳐도 그만, 여러분은 그저 참아 주기만 하니 말입니다.

 

이거 보세요. 요즘 사람들 교인들을 열심과 행위를 강조해서 그래야 그들이 교회를 열심을 부려셔 교회가 유지되고 운영되고 부흥하게 되거든요. 그게 이제 피를 빨아먹는거란 말이예요. 왜냐면 그렇게 열심을 부리게 할려면 좋은 얘기를 해줘야 되고 행위를 독려해 줘야된다고요. 그래야 열심히 먹여야 그 나중에 훌룡한 고기가 나오잖아요.

원래 세상은 그런거예요. 인제 큰 놈들은 대 기업들이 다 먹겠다고 대 기업들이 쓰레기 수거 뭐 조그마한 커피샵 아니면 카 센터 여기까지 대기업들이 다 치고 들어왔죠? 지금요. 그걸로 겨우 먹고 살던 사람들은 인제 다 죽었어요 한국은 이제. 카센터도 못 해먹어요. 대기업들 치고 들어 왔대요 그거까지. 쓰레기 수거까지. 그러니 큰놈은 계속 커지고 그냥 이 서민들은 다 죽어요. 상위 1프로를 위해서. 이게 마귀의 세상이거든요. 나머지들이 열심히 피 빨려서 그 사람들 부자 만들어 주고 생명을 만들어 주는 거거든요.

   

고린후서1121-27절 보세요 21 부끄럽게도 나는 너무 약해서 그런 짓까지는 하지 못하겠습니다. 이것은 물론 내가 어리석은 사람이라 치고 하는 말입니다. 22 그들이 히브리 사람들입니까? 나도 그렇습니다.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들입니까? 나도 그렇습니다. 23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들입니까? 미친 사람의 말 같겠지만 사실 나는 그리스도의 일꾼으로서는 그들보다 낫습니다. 나는 그들보다 수고를 더 많이 했고 감옥에도 더 많이 갇혔고 매는 수도 없이 맞았고 죽을 뻔한 일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24 유다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를 감한 매를 다섯 번이나 맞았고 25 몽둥이로 맞은 것이 세 번, 돌에 맞아 죽을 뻔한 것이 한 번, 파선을 당한 것이 세 번이고 밤낮 하루를 꼬박 바다에서 표류한 일도 있습니다. 26 자주 여행을 하면서 강물의 위험, 강도의 위험, 동족의 위험, 이방인의 위험, 도시의 위험, 광야의 위험, 바다의 위험, 가짜 교우의 위험 등의 온갖 위험을 다 겪었습니다. 27 그리고 노동과 고역에 시달렸고 수없는 밤을 뜬 눈으로 새웠고 주리고 목말랐으며 여러 번 굶고 추위에 떨며 헐벗은 일도 있었습니다.

보세요. 형제들이 항상 배반하고 거짓말로 모함하고 이거를 사도 바오로가 다 겪었는데 누가 겪은거예요? 채찍에 맞고 항상 풍랑 이는 배만 타고 맨날 돌로 두둘겨 맞고 이거 다 예수님이 겪은거거든요. 이 이야기가 신명기 28장에 나와요. 한 번 보세요 신명기 28장 다른데도 뭐 다 그렇고 16-17절 한 번 보세요. 16 너희는 도시에서도 저주를 받고 시골에서도 저주를 받으리라. 17 너희 광주리와 반죽 그릇이 저주를 받으리라.

떡 반죽 그릇과 광주리 저주를 받는다는 건 배 고플거라는 거예요. 그리고 시내에서 광야에서 저주받았다 그러죠. 여기 고린도 후서에서 뭐라고 그랬어요똑 같이 마을에서 광야에서 내가 두둘겨 맞았다고 그런다고요. 그럼 이 신명기 28장에 나오는 저주가 예수와 바오로에게 그대로 떨어졌다는 얘기에요.

 

사도 바오로가 그 단어 그대로 갖다가 쓰는거라니깐요. 신명기 28장의 저주. 율법을 안 지키면 받는 자들에게 떨어지는 그 저주의 내용을..... 그게 나에게 떨어졌다는 뜻이예요. 이게 무슨 말이겠어요? 왜 하느님의 뜻에 의해 끌려가며 하느님의 일꾼으로 사는 자가 왜 신명기 28장의 복의 내용이 아니라 왜 저주의 내용을 그대로 삶으로 살아내냐구요. 사도 바오로가 왜 그 신명기의 그 단어를 그대로 끌어다가 '그 저주가 내게 임했다' 라고 얘기 할까요? 예수가 그 삶을 살았어요

우리가 말씀을 잘 지켜서 복을 받겠다 라고 하는건 육을 의지하는 거예요. 육의 목숨! 생명을 내가 생산 해 내고 그걸 확산시키고 확대하겠다 라는 아담적 욕망... 자기 구원의 욕망 그건 죽음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육을 가진 예수를 하느님이 죽여버리는 거예요. ? 이렇게 니네 죽일거라는 말이예요. 그래야 '산다!' 라는 것입니다.

선악과을 먹으면 이 육의 목숨은 유지가 되는데 생명 영원한 생명과는 관계 없는자가 되는거란 말이예요. 그래서 선악과 입에 문 그들에게서 그 에너지를 뽑아내는 거예요. 육을 죽여 버리는거예요. 선악과를 빼 버리면 배고파 죽어요. 육이 굶어 죽어요. 그래야 하느님의 영 '하이네피시하야-생령' 이 살아나는거예요 우리가요.  창조의 하느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그래서 여러분의 삶속에 징계라는 거 아들 만들기라는 하느님의 간섭이 가입하는 거예요.

 

 성령은 우리에게 오셔서  능력이나 아니면  기도나 이런것들을 채워주고 성취시켜주는 그런 일을 하시는 분이 아니예요. 영은 말씀이라니까요. 창조가 무엇인지를 여러분 안에 가르쳐내는 거예요. 나의 천국 나의 구원을 위해 예수를 믿는다 라고 하면 그 사람은 를 믿는 거지 예수 믿는거 아니예요.

그런데 우리는 다 예수 믿는다고 그래요. 왜 믿어요? 내 구원 위해서 믿잖아요? 내 천국 위해서. 그건 나 믿는 거라닌까요. 그것 까지도 홀랑 벗겨내는것. 그러니까 죄는 행함의 유무가 아니예요. 얼마나 구조속에 들어가있는가. 그러니까 아담안에 들어있는 모든 자를 예수안으로 옮기는 걸 구원이라고 그래요.

 그렇다고 그래서 이 역사 속에서 그 들이 속해있는 구조가 바뀌었다고 해서 본질이 바뀌지 않아요. 예수안으로 들어간다는 건 우리가 부정되고 부인됐다는 뜻이지 예수안에 들어가갖구 대단한 성자가 됐다는 말이 아니란 말이예요. 그게 중요한게 아니라 아담안에 있었을 때나 예수안에 있었을 때나 나는 불가능하고 부족한 똥덩어리 맞는데 어떻게 예수 안에 들어왔는데 하느님의 아들이 됐다라고 하는 거지  아 이게 하느님의 사랑이구나이걸 배우는 거지 예수안에 들어갔다고 해서 여러분이 성자가 되고 금방 예수같은 삶을 사는 그런 자 가 되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하느님은 어디서든 침 삼킬동안도 쉬지 않고 일을 하세요. 우리를 위해서. 우리 아들만들기 위해서 하신다니깐요. 그게 예수가 율법의 완성이다 라고 하는 거예요. 그런데 율법을 하나하나 보다 보니까 뭐 똥 누러 갈때는 삽 가져가서 반드시 덮고 와라 이거까지도 있어요. 그리고 여자들은 월경을 하게되면 뭐 제물을 갖고 가서 만약에 자다가 남자들 몽정 하면은 진 밖으로 나갔다가 해진 다음에 들어와서 또 제사 드리고 이게 다 율법이거든요. 예수님이 이걸 하나하나 다 예수님이 월경을 했겠어요 뭘 했겠어요. 이걸 다 지키고 갔단 말이예요? 예수가? 그말은 아니란 말입니다.

 

 

다 지켰다라는 건 세목을 하나하나 완전히 그냥 하나하나 지나면서 다 지켰다란 말이예요. 다 지켰다는 건.... 율법을 완성하셨다 라는 의미에서 다 지켰다라는걸 표현하는 건 오케이. 그러나 그걸 그냥 세목을 다 지켜서 우리가 다 지킨걸로 해주고 갔다 라고 설명하는 거가 안된다라는 거예요 (아멘!)

하느님은 그거 다 지키고 간게 아니라 일단 하느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떨어지면 육을 입고 있는 우리에게 율법으로 와요. 이말씀이 전체가 구약도 다 예수인데 이거는 율법이고 신약은 예수고' 가 아니라 구약도 예수예요. 율법이잖아요. 율법을 예수라고 그러잖아요 성경이.

예수인데 왜 구약과 신약으로 나누냐하면 일단 육을 갖고 있는 우리에게 말씀이 떨어지면 인간은 반드시 먼저 율법으로 받아들이게 돼있어요. 그 율법을 그래서 예수가 율법아래 오는 거예요. 그리고는 지켜내는 거죠. 그런데 결국은 그러한 것들로 생명이 오는게 아니다.... 그래서 율법을 다 지키다가 예수님이 죽어버리는 거예요.  아니 다 지키고 살아야지요. 거는 너희들에게 생명주는거 아니야! 이게 요한복음 623절 이예요. 살리는 것은 영이다라는걸 가르쳐주기 위해 ...율법을 지켜라를 주는거라니깐요.

그 뭐 이상구 박사던가 그 사람이 뭐 그 안식교 교리 갖구 와서 건강 세미나 하고 다니는데 지두 암 걸렸잖아요. 그런거 아니란말이예요. 하느님이 우리에게 뭐 맛있는거 건강한거 잘 골라먹어서 암 걸리지말고 건강하게 살다가 오라 ㅎㅎㅎ 그걸로 성경줬겠어요? 아이구 난 한심해서 정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육을 완전히 빼앗김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이 생명을 주신거 이것이 바로 율법이 너희들에게 얘기할려고 했던 거야 가 ....예수님이 율법과 예언자를 완성했다 라고 하는 거란 말이예요.

그래서 산상수훈 뒷쪽으로 가면 율법과 예언자라는 얘기가 또 나오고 그걸 예수님이 다 하셨다 라고 하는거예요. 그리고 그 안에 그 사이에 뭐가 들어가 있어요?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어쩌구 저쩌구 율법을 다시 재해석 해준다고 그러는데 재해석 해 주는거 아니예요. 원래 진짜 살인이 뭐고 진짜 간음이 뭐고 그 진의를 니들이 모르니까 다시한번 이야기 해 준다. 왜냐면 구약에서는 십계명 하느님에 관한 계명까지는 설명이 붙어있죠. '우상을 섬기지 말아라 남의 다른 신을 섬기지 말아라' ...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여기에는 설명이 안 붙어있어요. 그거를 산상수훈에서 예수님이 그 부분부터 다시 설명해 주는 거예요 다른게아니라. 그런데 이거를 율법과 예언서 내가 완성하러 왔다 그리고 그 다음에다가 율법과 예언서는 이렇게 완성....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니라 그러죠. 샌드위치를 딱 닫아서 그거 내가 다 이루었다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게 산상수훈이라구요 예수 설명해주는거.

 그러니까 간디처럼 무슨 산상수훈을 읽으면서 '~ 이거 뭐 세상 최고의 도덕과 윤리가 적혀있는 책이다' 이거는 정말 잘못 본거예요. 그런데 그리스도인이 똑같이 간디처럼 성경을 볼라고 그래요. 그거 여러분에게 지키라고 얘기하는거 아니예요. 그거 뭐 우리 내 이 눈알 두개 다 뽑고 팔 다리 짜르고 이러고 가야 되는거잖아요? 그게 산상수훈에 들어 있는거잖아요? 그런 부분에 가면 또 에이 꼭 그러라는건 아니지또 이래요 또 ㅎㅎ그거 뭐 지들 맘대로 성경을. 아니 하라는거 다 해야죠. 왜 그런거는... 그런데 가서는 에이 사실은 하느님이 그렇게까지 얘기 하신거겠어?” 라고 이렇게 또 얘기한다고요.

 

성경은 그냥 전체가 다 예수 이야기 하는거예요. 그래서 이스라엘을 열심히 쫓아다니면서 야곱을 이스라엘이 야곱이죠 뭐. 쫓아다니면서.... 결국 다 뺏아버리고 아주 그냥 육신까지 다 죽여버리는 거예요. 그러니깐 결국 입에서 '~ 나그네 인생길 참 험악한 인생이구나' 이 고백을 들어내는 거예요. '죽는게 맞는거구나' 이거. 이스라엘이 마지막 한 고백이에요 그게요.

그래서 하느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으로도 보내보고 바벨론으로도 보내보고 가나안에 들어가서 가나안처럼 살게도 하고 그러는 거예요.

하느님이 죄 짖도록 애굽의 종으로 보내는 거예요. 불순종에 가두었다가 그 말이예요. '죄의 종으로 보냈다' 마찬가지예요. 우리는 죄의 종이라며요 우리가. 애굽으로 보낸거예요 하느님이. 보내서 죄 지어봐 ....그리고 그게 뭔지 ....정말 그게 어떻게 우리를 죽여내는지 경험해 봐' 라고 줬더니 그냥 속으로는 좋아서 어쩔줄 모르면서 겉으로만 아닌척 하고 앉아있는거예요 다들. 그러니까 예수께 감사가 나오는게 아니라 예수앞에 자랑만 나오는거에요 

하나 하나 조금씩 조금씩 잘라내는 거예요 세상에 대한 집착.... 사랑 관심. 그게 우리의 인생에 나타날때 감사하세요 오히려. 하느님이 다 털어버린거 ~ 내가 더 많이 털렸네 하느님 어떻게 나한테 이럴수 있어요?” 가 아니라 내가 더 많이 털렸네 하느님이 나를 더 많이 사랑하시나봐이게 이기는 거예요.

 "어떻게 해서든지 그냥 여기에서 빠져나가서 행복을 쟁취해야 되는데~" 이건 아닌거예요. 아이고 진짜 내가 저 인간만 없으면 내가 더 행복할텐데~” 우리는 항상 거기에 그런 생각으로 가게 돼있어요 사실은. 오늘도 털리고 맞으며 행복한 하루들 되십시요.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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