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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의 은총과 부르심에 합당한 생활 (히브리서 12:18-29)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19-02-07 조회수1,349 추천수0 반대(0) 신고

 

 

하느님의 은총과 부르심에 합당한 생활

(히브리서 12:18-29)

18 여러분이 나아간 곳은 만져 볼 수 있고 불이 타오르고 짙은 어둠과 폭풍이 일며 19 또 나팔이 울리고 말소리가 들리는 곳이 아닙니다. 그 말소리를 들은 이들은 더 이상 자기들에게 말씀이 내리지 않게 해 달라고 빌었습니다. 20 “짐승이라도 산을 건드리면 돌에 맞아 죽을 것이다.” 하는 경고를 견디어 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21 그 광경이 얼마나 무서웠던지, 모세는 나는 두렵다.” 하며 몸을 떨었습니다. 22 그러나 여러분이 나아간 곳은 시온 산이고 살아 계신 하느님의 도성이며 천상 예루살렘으로, 무수한 천사들의 축제 집회와 23 하늘에 등록된 맏아들들의 모임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또 모든 사람의 심판자 하느님께서 계시고, 완전하게 된 의인들의 영이 있고, 24 새 계약의 중개자 예수님께서 계시며, 그분께서 뿌리신 피, 곧 아벨의 피보다 더 훌륭한 것을 말하는 그분의 피가 있는 곳입니다. 25 말씀하시는 분을 거부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땅에서 지시하시는 분을 거부할 때에 저들이 벌을 피할 수 없었는데, 하물며 하늘에서 지시하시는 분께 등을 돌릴 때에야 우리는 더더욱 그 벌을 피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26 그때에는 그분의 소리가 땅을 흔들었지만, 이제는 내가 한 번 더 땅만이 아니라 하늘까지 뒤흔들리라.” 하고 약속하셨습니다. 27 “한 번 더라는 말은 흔들리는 것들 곧 피조물들이 치워져 흔들리지 않는 것들만 남는다는 사실을 가리킵니다. 28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으려 하고 있으니 감사를 드립시다. 감사와 함께 존경과 경외로 하느님 마음에 드는 예배를 드립시다. 29 우리의 하느님은 다 태워 버리는 불이십니다. 아멘

 

언뜻 보면은 똑바로 안 살면은 소멸하는 하느님, 소멸하는 불이신 하느님이 우리를 다 태워버릴 거다. 그런데 여기서 대비가 되는게 뭐냐면 시내산과 시온산이죠 시내산의 모세의 이야기 그리고 시온산의 예수의 이야기예요. 그래서 시내산은 말이 떨어지는데 그 말이 떨어질수록 사람들이 견디지 못하는 율법의 산이죠? 그래서 '말하지 말게 하라' 라는 말이 나오는 거예요 거기서. 출애굽기에 보면 거기서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죠? '말하지 말게 하소서' '하느님 우리에게 말하지 말게 하소서' . 말씀이 구약에서는 말씀이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인간들의 어깨에 짐이 얹혀지는 거기 때문에 그래요. 그런데 신약의 시온산은 골고다가 선 산이에요. 십자가가 선 산이 시온산이죠?

 그래서 거기에 보면은 24절 보세요. 24 새 계약의 중개자 예수님께서 계시며, 그분께서 뿌리신 피, 곧 아벨의 피보다 더 훌륭한 것을 말하는 그분의 피가 있는 곳입니다. 그죠? 뿌린 피! 뿌린 피가 있는 시온산이란 말이죠.

그러면서 뭐라 그러냐면은 25절에 25 말씀하시는 분을 거부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땅에서 지시하시는 분을 거부할 때에 저들이 벌을 피할 수 없었는데, 하물며 하늘에서 지시하시는 분께 등을 돌릴 때에야 우리는 더더욱 그 벌을 피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땅에서 경고한 이는 모세입니다.

 

율법으로 이제 이스라엘에게 이야기를 전했던 하느님의 말씀을 전했던 모센데 그 어린 짐승과 다 죽었다 얘기하는 거죠? 그런데 시온산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어떤 말씀이 전해져요? 예수님이 말씀으로 오셨죠. 말씀으로 오신 예수님의 피가 말씀으로 떨어지는 곳이죠. 그러니까 그 피를 믿지않는 자들은 '확실히 죽는다' 이런 뜻이에요. 그게 이제 예수님의 피를 거역하는 일을 '하늘로부터 경고하신 이를 배반하는 우리' 라고 이렇게 이야기 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장자들의 대회' 라고 말을 거기서 하는데 거기 쭉 나오는 게 다 뭐냐면은 이 땅의 모형으로 주어진 것과 하늘에 실제 존재하는 것! 이렇게 이야기를 하죠.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산 시내산이 아니라 시온산이다. 시내산은 두렵고 떨리는 곳이었다 불이 소멸하는 불이 임하였던 곳이잖아요 그죠? 그래서 너희들이 이른 곳은 시내산이 아니다. 율법의 산이 아니라 예수님의 피 십자가가 선 시온산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거고. '살아계신 하느님의 도성이 하늘의 예루살렘' 이라 그러죠. 그럼 이땅의 예루살렘은 뭐겠어요. 율법주의의 總和그죠? 성전이 있는 곳! 산 위의 동네 폴리스!

 

그리고 '장자들의 모임과' 장자들의 모임 이 땅에 이스라엘이라는 하늘의 장자들이 있었죠? 이는 내 장자들이다 그러잖아요 모형이라 그러잖아요. 모형이라 그러는 거예요. 하늘에 진짜 장자들이 있다 이런 뜻이에요. 교회 그 교회 진짜 참 교회 카톨릭 처치를 얘기하는 거예요 묵시 속의 보편적 교회. 이 땅의 교회를 묵살하는 단어에요. 만유의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과'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느님' 우리를 사랑하고 우리를 도와주시는 하느님이 아니라 심판자이신 하느님이 계신 곳이라고 그래요.

 

'온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과' 이 땅에서는 불완전하지만 의인의 영들 이 땅에서의 의인이라고 하는 것들은 다 인간의 행위로 의인이다 아니다 이렇게 판단하지만.. 히브리서의 내용 전체가 네러티브가 뭐예요. '예수의 의로 우리가 의로워진다' 가 히브리서의 전체가 네러티브니까. 그죠? 온전하게 그리스도의 피. 멜기세댁의 반차를 좇아오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온전하게 된 그런 의인들의 영들. 그리고 ''! 언약의 피! 새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 예수의 피! 그 피에 우리가 이르른 거다 라는 거죠. 그런데 인간들은 어떻게 해요? 계속해서 자기들의 행위를 율법주의 안에서 행위를 의지하여 의에 이르려고 하는 거죠? 이게 히브리서의 전체의 내용인 거잖아요 이것이.

 

그러니깐 거기에 뭐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바로 그 앞에 뭐 있어요. 징계의 내용이 있었잖아요? 아들 만들기. 그러면 아들 만들기의 징계의 내용이 뭐라는 거예요? 예수의 피를 믿게하고 의지하게 하는 그 과정에 들어있는 모든 게 다 아들 만들기 징계라는 뜻이에요 그것이. 그래서 이제 그렇게 징계가 우리에게 떨어지게 되면 우리는 '~ 어린 양의 피! 그거 거역하면 안되는 거구나?' 이렇게 우리가 알게 된다는 거죠? 그런데 왜 '시내산은 진동하는 곳이고 시온산은 진동치 못할 나라' 라고 하냐면 이 세상의 진리란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내가 진리다' 라고 하신 것처럼 예수의 피 밖에 없어요

 우리의 행위는 어때요? 행위는 시간이 가거나 아니면 내가 자라가거나 성숙되어 지는 정도에 따라 행위는 늘 변하죠? 진동한단 말이에요. 그건 안된다는 거죠. 나중에 보면은 하느님께서 '마지막 한번 더' 라는 뜻인데 확 진동시킨대요. 진동시킬때 뭐만 남기냐면 진동치 않는 것만 남긴다 그래요. 그게 뭐냐면 예수 붙든 자만 남긴다는 뜻이에요.

 

인간들의 행위나 뭐 이런 진동할 것 때나 상황에 따라 늘 변하고 이런 거 이런 걸 갖고 있던 자들은 하느님이 마지막에 확 진동시킬때 (그게 마지막 땐데) 그럴때 다 소각당하고 그래서 하느님이 소멸하는 불이라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하느님이 소멸하는 불이라는 건 지금 우리가 이 땅에서 그 불을 만나요 성도는. 그 불을 마지막에 소멸하는 불이 우리에게 미리 내려와서 그때 확 태워버렸을때 인간들의 행위나 이런 것들이 다 타면 그 존재 자체가 타 버리듯이 쓰레기로 타 버리잖아요 마지막에. 그걸 地獄이라 그래요. 그래서 지옥의 이름이 '게헨나' 라 그랬죠? 게헨나가 뭐라 그랬어요? '힌놈의 골짜기' 거기는 쓰레기 배설물을 태우는 곳이잖아요. 그런데 사도바오로가 자기의 모든 의로운 행위를 뭐라 그랬어요 (예수 만나기 전의 행위를) 배설물이라고 그랬잖아요. 그게 확 타버리는 게 게헨나 지옥이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 인생 속에서 여러분이 바로 그 배설물에 불과한 그 행위 여러분의 자아를 묵살당하고 이렇게 해체당하는 도륙당하는 그런 지옥을 경험하는 거예요. 그래야 마지막에 진동치 못할 나라 그거만 남는 거 예수만 남는 거예요. 그래서 마지막에 하느님이 확 진동시켰을 때 그 사람만 딱 거기 서는 거죠. 그게 천국이에요. 예수만 붙들고 있는 게. 그래서 산상수훈 맨 마지막이 하느님께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내려오셔서 이제 율법의 진의를 설명해 주고 마지막에 뭐라 그러냐면 그 전체가 다 예수라고 그랬어요 산상수훈 내용이.

 그래놓고는 모래 위에 지은 집 그리고 '와디' 라고 그랬죠? 모래위가 그냥 모래가 아니라 (이스라엘에 가면은 건기가 되었을때 마차가 다니고 이런 단단한 단단하게 보이는 길 을 의미) 그런데 거기가 우기가 되면은 물길이 된다고요 그 길이. 비가 오면 겉으로 보기에는 딴딴하고 제일 안전한 것처럼 보이는데 진짜 마지막에 소멸하는 불로 확 내렸을때 보면 거기가 멸망의 자리라는 거예요 그 와디! 인간들이 볼 때 굉장히 근사하고 멋지게 보이는 그런 것들이 결국 마지막에 가서는 와디로 변하는 거죠 그죠? 그래서 '모래 위에 지은 집 반석 위에 지은 집' 이거로 대조를 하는 거예요.

 

거기보면 반석 위에 지은 집을 뭐라 그러죠? 하느님이 교회를 어디다 세우셨다 그래요? '사도와 예언자들의 터 위에 세웠다' 그러죠. 터가 뭐예요? 사도와 예언자들이 뭘 증거해요? 말씀, 예수를 증거하는 거란 말이죠 그들이 믿었던 거. '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이다' 그게 주만! '당신만이 우리를 그리스도인 되게 합니다' 라고 이야기하는 게 우리의 신앙고백이잖아요.

당신이 주니까 내가 주인이 아니라. 이걸 고백하는게 사도와 예언자들의 터라고 하는 거예요. 그리고는 성경이 또 그 를 뭐라 그러냐면 '예수 그리스도다' 라고 이제 예수 그리스도가 모퉁이 돌이고 사도들 예언자들의 터가 말씀의 터 예수의 터라고 얘길 한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예수 위에 세워진 그 집만 마지막에 소멸하는 불이 팍 내려왔을때 안타는 거예요. 그런데 이제 다른 것들은 싹 다 날라간다는 거죠.

 

우리의 인생이 바로 그런 어떤 행위나  어떤 자존심 챙기기 이런 삶을 부수고 들어오는 인생이 되는게 맞는 거예요. 그러니까는 참 이런 말씀을 또 누가 듣겠어요? 듣기 불편하고 사실 그런데 성경은 아무리 봐도 그 이야기 밖에 없어요! 그게 '역사 속 예수가 모형의 역할을 한다' 라는건 그 분이 하느님의 아들이 아니다 라는 게 아니라 하느님의 아들이죠 예수님이... 십자가 이 전의 예수님도 하느님의 아들이라니깐요?

루가복음에 보면 족보가 쭉~ 그 꼭대기로 올라가면 하느님이잖아요 족보의 처음이~ 루가복음에.  '하느님의 아들이에요 예수님이. 그런데 무슨 역할을 했냐면 죄인으로서 '없음' 으로 죽어야 하는 우리의 그 역할을 하러 오셨기 때문에 그 신성을 한번도 안 쓰셨기 때문에 그 분은 죽어야 할 예수고 하느님에 의해 '살림' 을 받은 그 분이 이제 그리스도가 됩니다' 이렇게 설명했는데 그걸 이해를 못하고...

그러니까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 아니다' 라고 우기는 사람들. 그 사람들은 뭐만 붙들어야 돼요? 역사 속 예수만 붙들어야 돼요. . 본받아야 될 롤 모델이니까예수는 본받아야 될 롤 모델이지 하느님의 아들이 아니기 때문에 역사 속 예수를 꼬옥 붙들수 밖에 없는 거예요.

  

 성경에 나오는 차자들이 자꾸 장자권을 이어 받는 거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 땅은 장자들의 지옥이에요. 차자로 살아야 돼요 장자들이. 그래서 야곱의 이야기도 우리가 장자들의 대회예요. 장자권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걸 히브리서가 이야기 하고 있죠? 지금. 그런데 그 장자권을 바로 그 앞에서 뭐라 그러냐면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팔아버린 에사오의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장자권이라는 게 그렇게 중요한 건데 그런데 그 장자권이 어떻게 주어져요? 야곱에게. 장자권은 에사오가 가지고 있는 그런 됨됨이나 열심이나 노력이나 그가 가진 특기나 이런 것으로 주어지지 않잖아요. '아버지가 별미를 만들어 와라' 분명히 아버지가 좋아하는 별미가 있어요. 있어야 돼요. 그거 가지고 가야 돼요 우리가~맨손으로 덜렁덜렁 가는 게 아니라.

그런데 그 아버지가 좋아하는 별미가 뭔지를 아는 어떤 분이 있죠? 성령이에요. 아버지의 뜻을 감찰하시는 저 속 깊은 뜻을 아시는 분은 성령 밖에 없다고요. 그러니까 리브가가 성령의 역할을 하는 거예요. ~! 아버지가 성부 하느님이 뭘 좋아하는지 어머니는 아는 거예요. 그러니까 알고 어머니가 만들어 주는 거예요. 성령께서 만들어 주는 거예요. 우리에게 뭘 줘요? 믿음을 줘요. 뭐에 대한 믿음? 예수의 피에 대한 믿음을 준다구요.

 

그런데 예수의 피에 대한 믿음이 뭐냐면 내 것을 갖고 가는 게 아니라 내꺼는 다~ 부정 당하고 예수의 피만 뒤집어 쓰고 가는 거예요. 그걸 요한묵시록에서 '흰 옷'이라고 하잖아요. 야곱과 에사오의 이야기는 그 흰 옷의 이야기란 말이에요. 그런데 그 흰 옷은 뭐냐하면 어린 양의 피에 빤 옷이라 그러죠. 그럼 내가 만든 옷이 아니에요. 어머니가 나에게 만들어준 옷인데 그 어린 양의 눈에는 하늘의 진짜 맏아들이에요 장자란 말이에요. 그 맏아들의 옷을 입혀서 보냈더니 아버지가 '야 진짜 내가 원하는 별미를 니가 갖구 왔구나' 라고 인정해 주는 걸 '구원'이라 그러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건 야곱이 갖는 것도 아니고 야곱에게서 나온 것도 아니에요. 그냥 야곱은 (리브가에게 하느님이 언약하셨죠) 그 약속 안에 있었어요 그냥. 그러니까 로마서 8장에 보면 내가 야곱은 뱃속에서부터 사랑했고 에사오는 뱃속에서부터 미워했다  이미 역사 속에  갈라져서 나오는데 그 미리 정하신 그대로 그들이 삶을 살게 돼요.

 에사오는 장자처럼 맏아들처럼 살아요 이 세상에서. 아버지가 좋아하는 거 이런 것들을 지 힘으로 막 만들어서 갖다 바치면은 칭찬받고 세상 사람들에게도 칭찬받고. . 야곱이 도망갔을 때 에사오가 끝까지 아버지 모시고 살았단 말이예요. 효자죠.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다하죠. 아버지가 원하는 거 다 만들어 오죠. 능력자예요. 능력자! 그런데 야곱은 맨날 거짓말이나 시키죠. 이게 진짜 장자들의 모습이에요. 이 땅에서 지 것으로 가져갈 수 있는 걸 하나도 못 챙기는 그런 인간이에요.

그런데 하느님이 내가 너와 함께 있을 거라고 하면서 어떻게 놔두냐면 그가 뭐 단풍나무 신풍나무 이용해갖고 그냥 임기응변 권모술수로 이 세상의 것을 많이 모으게 도와주세요. 그런데 도와주는 게 어떤 의미로 도와주냐면 '이게 아무것도 아니다' 라는 걸 알게 하기위해 도와줘요.

그렇게 도와줬는데 결국 거지되어 애굽으로 가잖아요. 먹을 게 하나도 없어요 거지예요 그거는. 그 기근에 뭐 하나 양식거리를 만들어낼 수 없는 그런 인간으로 하느님이 확 내던져 버리시는 거예요. 다 털어버리는 거예요. 그래놓구는 얍복강 가에서 환도뼈까지 치세요. 그거는 전인의 죽음이에요. 전 존재 환도뼈가... 환도뼈는 남자의 씨가 담긴 그릇이라는 뜻이 있다 그랬죠? 읽어보면은 히브리어에 파자해보면 그런 뜻이에요 남자의 씨가 담긴 후손이 담긴 그릇. 그러니까 후손이 담긴 그릇이 뭐냐면 질그릇 안의 말씀 보배를 가진 우리 이야기한 거예요. 그걸 치는데 그걸 치면 누가 죽느냐면 그 안의 보배가 죽는 거예요. 예수의 십자가 이야기하는 거예요

 예수님이 죽고 그 죽음에 야곱 이스라엘이 연합되어 같이 죽는 거예요. 그게 우리 인생이라는 거예요 다 털리는 거... 그리고는 지팡이 하나 의지하여 하느님의 지팡이 하느님의 인도하심 은혜의 인도하심 왕노릇이라고 그러죠? 그거를.. 바오로는 은혜의 왕노릇. 끌려가는 거예요. 은혜! 여기도 나오잖아요. 그러므로 '우리가 은혜를 받자' 그래요. 은혜를 받자! 다른 게 아니라 '은혜를 받자' '은혜를 받자' 라는 건 '니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어' 라는 뜻이에요. 이게 히브리서 12장의 결론이에요.

 

하느님은 소멸하는 불이니까 그런 거 갖고 너희들의 행위같은 거 갖고 뭔가 쌓아서 하느님 앞에 가려고 하지마 다 태워 버릴꺼야 하느님이! 고린도전서 3장의 그 얘기예요. 공력 태워 버리는 게 아니고 다 태워버릴거야~! 그러니까 은혜를 받자! 이게 히브리서 12, 거기에 징계도 아들 만들기라는 개념도 사용이 되는 거고 다 그 이야기예요 이게~ 그래서 12장 처음이 믿음의 주! 온전케 하시는 믿음의 시작과 끝은 예수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쭉 설명해 나가는 거예요. 믿음은 우리는 그 앞에서 그냥 온~~히 부정되는 거예요. 하늘에 이미 완료돼 있는 어떤 것을 역사는 설명하고 사라지는 거란 말이에요. 그래서 소멸되는거예요. 그러니까 '베레쉬트' 예요 '() 아르케' 라고....

 

 성경 전체의 그 맥을 많이 읽어 보셨잖아요 성경. 보통 열번 이상은 읽었잖아요 ㅎㅎ 찔려...  그러니까 그걸 머리 속에 다 떠올려 보세요. 그러면 성경이 일관성있게 그냥 쫙 뚫려요 그런 관점으로 보기 시작하면. 나는 어디를 하라고 해도 이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시간만 조금 주면. 굉장히 고민했거든요?

 인간들의 깨달음이라는 것 조차도 불안해요 흔들려요. 진리는 예수 밖에 없어요. 어린 양의 피 밖에.. 그러니까 하늘의 그런 어떤 결정이 있었다 라는 것 그것 자체를 인간들이 인정하기 싫으니까 계속 바벨탑을 쌓는 거죠. '하느님이 죄 속에 우리를 가뒀다' '사망에 가뒀다' 그러는데 인간들은 '아니다 우리는 살았다' 는 것을 증명하는 거.. 성도도 여러분 죽어 있는 거예요 지금~ 역사 속에 있는 한 모든 건 다 죽어 있는 거예요. 내 안에 있는 예수 말씀만 살아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말씀이 증거되기 위해 '내가 죽은 자' 라는 것 '사망에 죄에 갇혀있다' 라는 것이 끊임없이 자각이 되어야 돼요. 그래서 엄밀히 말해서 우리의 어떤 변화나 성숙이나 우리가 행한 어떤 선한 일이나 이런 거는 사실 하느님에게는 관심 밖의 대상이에요 그거는요. 아무리 생각해도 그래요. 하느님은 그거에 아무런 관심이 없어요. 그러한 우리의 도덕과 윤리가 양심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강박일 뿐이지 사실 하느님은 거기에 관심이 있는게 아니라 '니가 진짜 예수를 아니? 내 은혜를 아니?' 이걸 묻고 계세요 끊임없이.

 

시내산 위에 불이 붙었는데 아래서 봤을 때는 이게 올라가면 다 죽어요. 다 타죽어요 거의. 그래서 하느님이 못 올라오게 하는 거예요. 짐승도 못 올라오게 했잖아요.다 타 죽인다~ 다 타 죽는다~ 그러니까 아래에서 위를 볼 때 어떡하겠어요. '아 저거 모세 어떡하냐 이제~?' 가까이 가기만 해도 다 타죽는데 '쟤는 아예 그 속에 들어가 있으니 저거 어떡하면 좋으니?' 그런데 모세는 그 위에 말씀과 함께 있었죠! 말씀과 함께 아래를 봤을 땐 어떻게 보였겠어요? '어우 저것들이 다 죽었네. 저거 어떡하냐?' 이렇게 되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우리가 베드로도 그러고 사도바오로도 그러고 '불같은 시험 맹렬한 불' 이런 거에 우리가 계속 탄다고 그러잖아요 우리의 인생이. 우리의 인생만 그래요! 그렇게 타야 저 밖이 죽음이라는 걸 우리가 깨닫게 되는 거란 말입니다.

 

 힘든 거예요. . 그 말씀.. 칼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우리를 포를 떠서 그렇게 예수만 의지하는 은혜만 의지하는 자로 만들어 가는게 맞기 때문에 그 말씀을 마음에 담은 자들은 그대로 반드시 살게 돼요. 다른 사람 기대하지 마세요. 우린 이렇게 그냥 끌려가다가 아휴 이제 진짜 더 이상은 못 견디겠다고 '하느님 제발 좀 살려주세요' 그럴 때 이제 예수님이 손을 쑥 내밀때 기쁘게~ 그냥 기쁘게~ 안 그러면 그 예수님 우리가 사랑할 수 없어요 어떻게..

우리는 분명히 그런 삶을 살게 될 것이고 그렇게 이끌려 갈 것인데 그때 너~무 힘들어 하지 마시고. 모든 성도는 반드시 필연적으로 그런 삶을 살게 된다는 걸 잊지 마시고 잘 견뎌내세요. 그러면 정말 좋은 날이 올 거예요 정말 좋은 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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