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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兄弟愛 (히브리서13:1-6)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19-02-08 조회수1,337 추천수0 반대(0) 신고

 

오늘 제1독서를 묵상하며~~~

兄弟愛


히브리서13:1-6

1 兄弟愛를 계속 실천하십시오. 2 손님 접대를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손님 접대를 하다가 어떤 이들은 모르는 사이에 천사들을 접대하기도 하였습니다. 3 감옥에 갇힌 이들을 여러분도 함께 갇힌 것처럼 기억해 주고, 학대받는 이들을 여러분 자신이 몸으로 겪는 것처럼 기억해 주십시오. 4 혼인은 모든 사람에게서 존중되어야 하고, 부부의 잠자리는 더럽혀지지 말아야 합니다. 불륜을 저지르는 자와 간음하는 자를 하느님께서는 심판하실 것입니다. 5 돈 욕심에 얽매여 살지 말고 지금 가진 것으로 만족하십시오. 그분께서 나는 결코 너를 떠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겠다.” 하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6 그러므로 우리는 확신을 가지고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도와주는 분이시니 나는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사람이 나에게 무엇을 할 수 있으랴?” 아멘

 

여태까지 하느님은  우리를 징계하시고 은혜를 베푸셔서  하느님의 백성으로 만들어 내신다. 이렇게  예수의 공로로 말미암아 우리는 이렇게 사는 것이다 해놓고 13장에서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실천하고' 이렇게 나오죠? 여기에서 그렇게 인간들의 행위를 강조하는 그런 내용이 나와 버리면 안 되잖아요. 그럼 도대체 이게 무슨 내용일까..

우리가 우리 안에 진짜 생명의 씨가 심겨있다고 한다면 우리의 가치관이나 세계관이 분명히 바뀌게 돼 있어요. 행위가 바뀐다는 말이 아니라 분명히 예전에 아무런 불편함 없이 행했던 모든 것들이 많이 불편해지고 어떤 지향성 삶의 지향성 같은 것들이 생기죠.

그러니까 그런 거예요. 사랑을 은혜를 진짜  받아 본 사람의 그 삶속에서 분명 예전에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그런 어떤 변화같은 것들이 본인에게도 감지가 되고 그렇게 되어 있어요.

우리 안에 진짜 하느님께서 우리 마음에 하느님의 법을 심으셨다 그러죠. 하느님의 법이라는 건 말씀이잖아요. 말씀이라는 건 예수 그리스도 창조의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건데 그 예수 그리스도가 심겨졌다라는 건 은혜를 안다라는 그런 뜻이거든요  그런데 너무 많은 이들이 예수를 믿는다고는 하지만 그 은혜를 받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이에요. 그래서 그런 어떤 삶의 지향성이나 이런 것들을 인위적으로 만들어서 내는 그런 데에는 아주 익숙한데 그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그런 익숙한 그런 것들이 전부 이제 자기의 자랑이나 공로로 쌓이게 되는 거예요.

 

하느님은 분명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 그래요순종이라고 번역된 말이 들음이에요 그게.  듣는 거. 말을 듣는 거. 올바른 말씀이죠. 예수를 듣는 것이  제사를 드리는 것보다 낫다. 이게 better가 아니라. 제사는 아니고 듣는 거 순종순종이라는게 상대방의 말을 듣는 거 잖아요

내 말을 들어야지 니들이  몸으로 하는 희생제사는, 하느님이 그러잖아요. '내가 무슨 고기 타는 냄새가 구수해서 니들한테 제사 지내라고 그러는게 아니면 내가 그걸 먹겠니 난 이미 질렸어~ ' 그러셨잖아요. 그러니까 그런 제사의 행위는 하느님이 그 속에 담긴 담아 놓으신 말을 들으라고 준건데 사람들은 그걸 계속 행함의 차원으로 이해를 하는거죠.

그러니까 은혜를 이렇게 이해하고 받아보면 사람이 굉장히 무기력해지고 연약해지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보여요왜냐면은 그 전에 그렇게 막 목숨걸고 나의 자존심을 지킬려고 하고 나의 가치를 지킬려고 했던 그런 것들이 인간 보편의 욕망이잖아요그런데 이제는 그런 것들이 별로...

 

그런데 사실은 보세요. 사랑하세요  용서하세요  나그네를 대접하세요 그러죠 이게 누가 한 거예요. 하느님이....  사랑이신 하느님이 우리에게 ^사랑^을 보냈죠 .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그러잖아요. ...당신의 뜻 아가페 이게 존재적 기능이란 말이에요. 그 아가페,  당신을 담아서 아들의 아들 안에 담아서 우리에게 보낸 거죠. 그래서 우리가 그 사랑 말씀을 받아 들이게 될때 그걸 우리가 '사랑 받았다' 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사랑을 받았어요. 우리가 사랑받았고 (하느님이 먼저 사랑했다 그래요. 요한일서에 보면),  하느님이 우리를 용서하신 거잖아요. 용서라는 게 창조의 개념이에요. 뭐 죄를 짓고 그래서 죽어야 할 자들인데 그 죄를 짓고 죽어야 할 자라는 게 제가 '예수 밖' 이라는 '은혜 밖' 이라는 개념이고 거기에서 '예수 안' 으로 끌어들이는 걸 창조라고 하는데. '없음'이니까 그죠?   '창조' 라고 하는데 그걸 '용서' 라는 단어로 개념으로 표현하는 것 뿐이라구요.

 

하느님이 우리를 '용서' 하셔요. '창조' 하신 거란 말이에요 용서가 내게 내려와야 우리에게 창조가 일어나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보고 누구를 '용서하라' 라는 말은 너희들 가갖구 니들이 그냥 용서의 권한을 내가 줬으니까 가서 사람을 막 용서하고 다녀라  이게 아니라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다음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서 '~ ' 하고 숨을 내쉬면서 '성령을 받아라' 그러죠. 성령을 받아라 그래놓구 뭐라 그러냐면 너희들에게 평화가 있을지어다 그래요.

가라! 그래놓고 뭐라 그러냐면 '너희들이 용서하는 자는 하늘도 용서하고 너희들이 용서하지 않는 자는 하늘도 용서하지 않는다' 그래요. 그 말은 용서하시는 권한을 줬다는 말이 아니라 '그 용서가 무엇인지를 내가 너희들 마음에 두어서 이제 너희들의 삶으로 입으로 그 은혜 십자가 구원을 이렇게 이야기하고 살게 할 것인데 내가 완성해 놓은 샬롬 완성해 놓은 자들은 그걸 받아 들이게 될 것이다' 가 용서한다. ! 나는 용서받은 거구나~! 그걸 전해 주는 거지요? 그게 '용서'한다는 뜻이에요. 그런데 선택을 받지 못해서 귀가 막힌 이들은 못알아 듣잖아요. 그러니까 사랑을 못받는 거예요 .

 

우리에게 어떤 용서할 수 있는 권세가 주어졌다는 게 아니라 뭐 바꿔서 말하면 권세가 주어진 거나 마찬가지죠. 왜?. 말씀이 들어왔으니깐요. 그리고 그걸 전할 수 있게 해서 내가 통로가 되어서 말씀 예수가 전해졌을 때 그걸 또 누군가 듣고 받아들이는 게 내가 '용서' 하는 거예요. 내가 용서하는 게 아니라 하느님의 용서를 전해주는 거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삶은 '사랑' 하는 거고 말씀을 사랑을 던지는.. '용서' 하는 거예요 그죠? 용서를 전하는 거니까. '하느님이 우리를 이렇게 창조하셨어요! 사랑하셨어요! 용서하셨어요!'

 

나그네를 대접한 것도 마태복음 7장에서 뭐라 그래요. 예수님이 '내가 너희들에게 대접받기위해 먼저 대접했다' 그 단어 똑같은 단어거든요.  어떻게 대접했냐구.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다 율법을 완료하시면서 테 텔레스타이 다 이루었다 라고 완료하시므로 우리를 '대접' 했잖아요. 우리가 나그네라면서요 그죠. 나그네를 대접한 분이 누구예요? 예수란 말예요. 그러니까 그 나그네를 대접한 예수를 전해주는 거. 이 세상에 나그네로 살고 있는 하느님의 백성들 그들에게 '우리가 하느님으로부터 어떤 대접을 받았는줄 아세요?' 라고 전해주는 게 나그네를 대접하는 거란 말예요. 그냥 지나가는 나그네들을 그냥 대접해 가지구   혹시 그중에 하나 예수가 있으면 오케이 뭐 없어두 이건.. 이런 게 아니란 말이에요.

 

나그네 대접이라는 게 여기서 이제 일차적으로 가리키는 게 아브라함과 롯이겠죠. 부지 중에 나그네를 대접했는데 나그네를 대접한다는 건 당시 고대시대 때는 나그네라는 건 지나가면 안 올 사람이에요. 그런데 그 나그네를 대접한다 라는 것 자체가 내가 부정되는 거예요. 나그네를 대접하는 건 고대시대 때는 내가 불편해지는 거거든요? 그런데 롯과 아브라함이 어떻게 나그네를 대접했어요? 나그네가 찾아간 거란 말이에요 그 집에. 그 양반들이 뭐가 잘 나서가 아니라 나그네가 찾아가서 그 나그네를 영접하게끔 만드는 거예요. 그 중에 하나가 누구예요? 야훼의 사자 예수입니다. 예수! 그러니까 예수님이 찾아가서 먼저 그들에게 대접을 해줘요. 믿음을 심어주면 그들이 예수님을 '대접' 하는 거예요. 그게 나그네를 대접이예요.

 

음행이라는거, 혼인이라는거 이 이야기도 뭐냐면? 하느님과 혼인을 한 이들이  예수님이 우리가 아담이 하와를 있게 할 때에 그게 이제 묵시 속에서 일어난 일을 모형해서 베레쉬트하는 거잖아요 보여주는 거잖아요그러니까 하느님 나라에서 우리는 이미 하느님의 아내가 된 거잖아요 호세아가 고멜과 결혼한 것처럼. 그런데 우리는 다 고멜같은 인간들이 이 역사 속에서.. 그런데 그런 아내는 버려야죠 백번이나 그죠? 그런데 고멜같은 우리를 신랑이 끝까지 안버린게 음행 안한 거예요. 그러니까 음행을 안한 거는 예수예요.

이혼하지 말라 이 말은 뭐냐면 예수님이 우리와 백 번 천 번 이혼해야 마땅한데 예수님이 이혼 안했단 뜻이지 우리에게 뭐 너네들은 절대 무슨 일이 있어도 이혼하지 말어 이런 얘기가 아니란 말예요. 그러니까 예수께서 먼저 우리를 대접하고 음행하지 않고 사랑했고 용서했고 다 한 거예요. 그걸 우리가 이해를 하고 "아 그렇게 해서 우리에게 구원이 일어났구나!" 라는 것을 다른 이들에게 전해주는 것이 바로 음행하지 않는 거요 나그네를 대접하는 거요 용서하는 거요 사랑하는 거요 그런 거란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5절 보세요. 5 돈 욕심에 얽매여 살지 말고 지금 가진 것으로 만족하십시오. 그분께서 나는 결코 너를 떠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겠다.” 하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말이 왜 들어가 있겠어요 여기에. '이거 해야 돼' 이게 끝이라면 이 말이 여기 들어가면 안되죠. 니네들이 이걸 법으로 받아서 법으로 지켜낼려고 하면 그게 곧 죄라는 거예요그런데 내가 너희들을 징계 자식 만들기 그 과정을 통과시키면서 예수가 너희에게 행한 이 진짜 섬김 진짜 사랑 진짜 용서를 할 수 있게 만들겠다라는 거예요. 말씀을 전하게.... 예수를 나타내는 빛으로 살게 만들어 내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너희를 떠나지 않을 거라는 거죠.

 

우리는 이런 것들을 보면 금방 이걸 법으로 받아 들여요. 율법으로 받아 들인다니까요? 그래서 '해 봐야지~ 할까?~' 뭐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먼저 이걸 하다보면 우리는 우리를 너무 기특하게 생각하게 돼요. 그래놓고는 그 진짜 예수의 사랑과 섬김과 나그네 대접과 용서를 자꾸 잊어버린다니깐요? 그러니까 하느님이 그걸 우리에게 깨닫게 해주기 위해 일단 법을 우리에게 주시고 그 법을 그 법으로 말미암아 너희들이 진짜 살 수 있는가를 경험하게 해 주신 다음에 결국은 '아니지? 니들은 예수 믿어야 되는 거지?' 니들이 뭘 하라는게 아니라 예수께서 행하신 그 행위를 믿으라는 거란 말이에요

그런데 그걸 믿게 되면 그렇게 그런 세상의 그 어떤 짐들 있잖아요. 그런 것으로부터 조금씩 벗어나게 돼요. 그냥 내가 마음속에 꼭 붙들고 있던 요런 것들 내 마음이 가 있는 그런 것들이 많을수록 그게 나에게 짐이 되잖아요. 자식에게 내 마음이 가 있으면 내 생명이 되고 돈에 내 마음이 가 있으면 그게 또 내 생명이 되고 또 내 명예나 자존심 이런 게 내 생명이 되고 또 나의 업적과 공로.

그러니까 그런 것들로부터 사실 하느님이 마음을 끊어내 주시는 것이 그게 예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멍에예요. 멍에! 왜냐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그렇게 살았거든. 하늘의 모든 권세를 다 차압 당하는 삶을 사시고는 결국 아버지의 말씀대로 그냥 완전히 죽어 버리는 삶을 사셨단 말이에요.

 

그런데 그게 진짜 하느님 아들의 삶이다를 보여주는 십자가 이후에 하느님이 진짜로 그를 살려버리는...예수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그래놓구 뭐라 그러냐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고' 라고 이야기를 해요. 마음이 쉼을 얻는다는 건 '니들 마음이 가 있는 그것들을 내가 끊어준다' 라는 거예요. 그래서 내 멍에라고 하는 거예요.

. 예수님 그때 당시의 멍에는 둘이 같이 지는 멍에 거든요 항상 두 소가. 그러니까 베쎄메스로 가는 두 암소처럼 젖 내놓는 암소처럼 예수님이 가신 그 길을 멍에를 너와 같이 지고 내가 끌고 가겠다는 뜻이란 말예요 그게. 그럼 그게 짐이 더 무거울 것 같은데 예수님은 그래야 짐이 가볍다고 그래요. 그러면서 내 짐은 쉽고 가벼우니 라고 이야기한단 말입니다. 그게 진짜 쉬는 삶이고 그게 진짜 자유에 이르는 삶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좌우에 양날 선 칼이라고 하는데 그 양날 선 칼이 우리 안으로 헤집고 들어오는 게 말씀을 듣는 거거든요? 그게 마구 들어와서 나를 후벼파고 찢어내야 그래야 '예수님의 은혜 그 성혈로 수혈받지 않으면 나는 죽는 거구나' 를 알게 되지 그 말이 떨어지면 계속해서 막 기가 살고 '그래 맞아 나는 잘 하고 있는거야~ 비젼을 갖고 야망을 갖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우리는 분명히 우리의 뜻대로 뭔가를 성취하고 이뤄낼 수 있어~' 말씀을 듣고 그렇게 되면 안되는 거죠.

 

생활지수라는 게 있고 행복지수라는 게 있죠? 생활지수라는 건 돈이 많아지면 생활지수가 높아져요 경제학에서 하는 이야긴데. 생활지수가 높아지면서 반비례하여 행복지수가 낮아진다라는 거 아세요? 대한민국의 GNP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국민소득이 뭐 30,000$ 이상이 인제 돼요.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생활지수는 높아지고.. 윤택해지고 편안해져요. 그래서 그런 어떤 편의주의나 실용주의 이런 것에 익숙한 사람들은 그런 것들이 행복인 줄 알아요. 근데 전체적인 행복지수를 재 보면 행복지수는 그거와 반대로 뚝뚝뚝 떨어져요.

미국의 행복지수가 100위 밖인가 그래요 전 세계에. 그러니까 여기는 편안한 곳이에요 그죠? ~ 웬만한 사람들 다 자동차 가지고 다니고 아무 때나 물틀으면 따듯한 물 쓸수 있고 그렇게 아무 때나 물을 틀어서 그 물을 마실수 있고 또 그 따듯한 물로 목욕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전 세계에 3% 밖에 안돼요. 적어도 우리는 그 3% 안에 들어있는 사람이죠. 먹을 거 없으면 다운타운에 나가서 줄만 좀 시간투자만 하면 빵도 주고 밥도 주고 수프도 주고 뭐 여기선 굶어 죽을 일은 없어요 사실. 근데 그거 이외에 더 다른 또 다른 그게 공허하니까 또 다른 쾌락을 쫓아서 그걸로 술 먹고 마약하고 이러니까 사람들이 죽는 거지.

우리는 이미 하느님으로부터 충분한 양식을 받았어요. 그리고 아무도 굶어죽지 않을 수 있고 모든 사람이 다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그런 조건을 하느님이 우리에게 제공해 줬는데 우리의 이 악마성이 나만 행복할거야 저이 보다는 상을 내가 더 받을거야 쟤보다는 내가 더 행복해야 돼 이게 결국 지옥을 만들어 내는 거예요.

예수께로 가는 거예요. 하느님께로 은혜로 가야지 절대로 내가 기특해지고 내 가치가 챙겨지는 그 곳으로 가면 실패하는 신앙인거예요. 그러니까 우리의 삶 속에서 그러한 어떤 예수님이 당하신 우리를 사랑하고 용서하고 대접하고 음행하지 않고 한 게 예수님이 다 자기 존재를 그냥 부정당한 상태에서 했던 거잖아요

 

사랑이라는 건 예수 자체를 우리에게 목숨을 줘 버린 거고.. 용서도 마찬가지 예수가 무한이신 그 분이 유한으로 관입되어 내려와서 예수가 죽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창조된 거니까. 예수가 머리가 됐다라는 거 자체가 유한의 영역에 머물겠다 라는 하느님의 의지였으니까 그게 신의 죽음이란 말이에요. 그게 피란 말이에요 피. 대접! 마찬가지잖아요.

그리로 우리가 끌려가는 게 어떤 모양으로 나타나겠어요. 계속 당하는 거예요. 배신 당하고 고통받고 핍박받고. 그런 거를 피해가면서 지식으로만 그걸 알고 있는 걸 귀신들도 갖고 있는 믿음이라고 그래요. 야고보서에서 행함이 있는 믿음이라는 건 항상 예수의 십자가의 행함 그 행함이 우리의 삶속에서의 에르곤. 이 일로 분명히 나와야 되는데... 그것도 안 나오면서 ,,,,그런 자기부인 십자가의 삶이 행함으로 나오지도 않으면서 '나는 십자가 알아요. 성혈 알아요' 이건 아니라는 거예요.

말씀이 나를 잠식해 들어오면 이 내 안에 있는 생명이 자라면 자랄수록 엄마가 망가지죠그게 맞는 거예요. 그런 어떤 삶의 지향성이 우리의 삶속에서 하느님의 이끄심으로 말미암아 진짜 우리 삶에서 나타나야 돼요. 그래서 우리도 그렇게 많이 사람들에게 오해 받고 손가락질 받고 핍박 받고, 식구들로부터도 '너 니가 무슨 예수야? ' 이딴 소리나 ㅎㅎ 듣게 되고 그런 길을 겪게 될 거예요. 그러니까 잘 감수하시고 쉬세요 말씀 안에서. 그런데 참 그 말씀 안에서 그 상태에서 행복할 수 있다 라는 게 이건 정말 기적인 거예요. 잘 배우시고 진짜 그러한가 또~ 말씀을 상고하시고 하느님과 그 삶을 잘 살아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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