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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 사람의 열 걸음(이냐시오 기념일)
작성자상지종 쪽지 캡슐 작성일2000-08-01 조회수2,525 추천수10 반대(0) 신고

 

2000, 7,31  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 사제 기념일 복음 묵상

 

 

마태오 13,31-35(겨자씨의 비유,누룩의 비유,비유로 가르치신 예수)

 

그 때에 예수께서 비유를 들어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하늘나라는 겨자씨에 비길 수 있다. 어떤 사람이 밭에 겨자씨를 뿌렸다. 겨자씨는 모든 씨앗 중에서 가장 작은 것이지만 싹이 트고 어느 푸성귀보다도 커져서 공중의 새들이 날아와 그 가지에 깃들일 만큼 큰 나무가 된다."

 

예수께서는 또 다른 비유를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여자가 누룩을 밀가루 서 말 속에 집어 넣었더니 온통 부풀어올랐다. 하늘나른 이런 누룩에 비길 수 있다."

 

예수께서는 이 모든 것을 군중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것도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리하여 예언자를 시켜, "내가 말할 때에는 비유로 말하겠고 천지창조 때부터 감추인 것을 드러내리라." 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었졌다.

 

 

<묵상>

 

공동체 생활이나 조직 생활에 단련된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심각하게 고민해보았을 만한 물음이 하나 있습니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냐 아니면 "한 사람의 열 걸음"이냐 라는 물음이 그것입니다. 공동체나 조직의 특성이나 상황에 따라 택할 수 있는 길은 다를 것입니다. 그러나 아마 대부분은 "열 사람의 한 걸음"을 선택하지 않는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공동체나 조직이 단 몇 몇 사람에 의해 움직이지 않고 구성원 전체의 일치 속에서 성장해야 한다는 애초의 취지에 비추어보면 당연한 선택일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지금까지 학교나 노동조합, 교회 청년 운동을 해 오면서 "열 사람의 한 걸음"을 주장했었습니다. 그러나 과연 이 것만이 올바른 길인지 회의가 들 때도 많이 있습니다.

 

왜 "열 사람의 한 걸음"을 중요시하는 것일까?

일치 때문에, 더디 가더라고 하나되어 더불어 가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뒤쳐진 이들을 보듬어 가야하기 때문에,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앞으로 달려가는 것보다 그것을 이루어가는 과정이 중요하기 때문에,...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과연 그런가? "한 사람의 열 걸음"은 "열 사람의 한 걸음" 앞에 항상 뒤로 밀려야 하는가? 라는 물음이 이내 제기됩니다. '하나임'을 내세워 '한 사람의 가치'를 평가절하하는 것은 아닌가? 정녕 혼자서라도 올바른 것을 위해 당당하게 나서기가 두려워 다른 이들 사이에 묻혀 대충 대충 살아가자는 암묵적인 합의는 아닌가? 질풍노도와 같이 주저하지 않고 나아가는 이들에 대한 질투와 시기 때문에 억지로 그 사람의 가치와 노력을 깎어내리려는 불순한 의도는 없는가?

 

물론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어찌보면 평생을 살아가면서 풀어헤쳐나가야 할 문제인지도 모릅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문득 "한 사람의 열 걸음"이 지닌 가치를 지금까지 외면해오지 않았나 하는 반성을 하게 됩니다.

 

어느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는 작은 씨앗이 공중의 새들이 깃들만큼 커다란 나무를 품에 안고 있고, 밀가루 속에 흩뿌려져 자신의 존재를 완전히 상실한 것처럼 보이는 누룩이 밀가루 반죽 전체를 변화시킬만큼 커다란 힘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생각해 봅니다. 드러내지 않고 함께 하면서도 자신의 고유한 가치와 힘을 맘껏 발산하는 작은 씨앗과 누룩의 모습에서 "열 사람의 한 걸음" 동참하면서 굳건하게 "한 사람의 열 걸음"을 추구하는 근성을 봅니다. 이 근성을 가지고 주님의 도구가 되어 세상 안에서 맘껏 나래를 펼치고 싶습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1요한 5,4)

 

주님 안에 사랑담아 여러분의 벗 상지종 베르나르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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