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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나눔으로써 소유한다.(연중 17주일)
작성자상지종 쪽지 캡슐 작성일2000-08-01 조회수2,641 추천수9 반대(0) 신고

 

2000, 7, 30  연중 제17주일 복음 묵상

 

 

에페소 4,1-6 (일치를 호소함)

 

형제 여러분, 주님을 위해서 일하다가 감옥에 갇힌 내가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불러 주셨으니 그 불러 주신 목적에 합당하게 살아가십시오. 겸손과 온유와 인내를 다하여 사랑으로 서로 너그럽게 대하십시오. 성령께서 평화의 줄로 여러분을 묶어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신 것을 그대로 보존하도록 노력하십시오.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이며 성령도 하나입니다. 이와 같이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당신의 백성으로 부르셔서 안겨주시는 희망도 하나입니다. 주님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고 세례도 하나이며 만민의 아버지이신 하느님도 한 분이십니다. 그분은 만물 위에 계시고 만물을 꿰뚫어 계시며 만물 안에 계십니다.

 

 

요한 6,1-15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

 

그 때에 예수께서 갈릴래아 호수 곧 티베리아 호수 건너편으로 가셨는데 많은 사람들이 떼를 지어 예수를 따라갔다. 그들은 예수께서 병자들을 고쳐 주신 기적을 보았던 것이다. 예수께서는 산등성이에 오르셔서 제자들과 함께 자리잡고 앉으셨다. 유다인들의 명절인 과월절이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때였다.

 

예수께서는 큰 군중이 자기에게 몰려오는 것을 보시고 필립보에게 "이 사람들을 다 먹일 만한 빵을 우리가 어디서 사올 수 있겠는냐?" 하고 물으셨다. 이것은 단지 필립보의 속을 떠보려고 하신 말씀이었고 예수께서는 하실 일을 이미 마음 속에 작정하고 계셨던 것이다. 필립보는 "이 사람들에게 빵을 조금씩이라도 먹이자면 이백 데나리온 어치를 사온다 해도 모자라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제자 중의 하나이며 시몬 베드로의 동생인 안드레아는 "여기 웬 아이가 보리빵 다섯 개와 작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습니다마는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그것이 무슨 소용이 되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사람들을 모두 앉혀라." 하고 분부하셨다. 마침 그 곳에는 풀이 많았는데 거기에 앉은 사람은 남자만 약 오천 명이나 되었다.

 

그 때 예수께서는 손에 빵을 드시고 감사의 기도를 올리신 다음, 거기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달라는 대로 나누어 주시고 다시 물고기도 그와 같이 하여 나누어 주셨다. 사람들이 모두 배불리 먹고 난 뒤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조금도 버리지 말고 남은 조각을 다 모아들여라." 하고 이르셨다. 그래서 보리빵 다섯 개를 먹고 남은 부스러기를 제자들이 모았더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

 

예수께서 베푸신 기적을 보고 사람들은 "이분이야말로 세상에 오시기로 된 예언자이시다." 하고 저마다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그들이 달려들어 억지로라도 왕으로 모시려는 낌새를 알아채시고 혼자서 다시 산으로 피해 가셨다.

 

 

<묵상>

 

[* 어제 그제 이틀 동안 제 컴퓨터의 LAN선에 이상이 생겨서 굿뉴스에 들어올 수 없었습니다. 오늘 오전에 수리를 해서 이제 다시 이렇게 들어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제, 어제, 오늘 복음 묵상을 한꺼번에 올리게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나눔'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주는 것'일 뿐만 아니라 '가지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나눔'이 지니고 있는 이러한 면을 보지 못하기에 갈수록 나누기를 꺼립니다. 인정이 메말라가고, 서로가 자신을 것을 챙기려고 바둥거리는 모습이 안쓰럽게 다가오는 요즈음 오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의 기적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예수님의 기적이 곧 나눔의 기적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기적은 빵 한 개를 백 개로 만들고, 물고기 한 마리를 천 마리로 부풀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기적은 '내 빵'을 '네 빵'으로, '내 물고기'를 '네 물고기'로 내어놓을 수 있도록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었습니다. 닫혀져 있던 마음을 열고, '나'와 '너'라는 울타리를 깨부수어 하나의 '우리'로 묶어 세우신 것이 바로 예수님의 기적입니다.

 

예수님의 기적에 함께 한 사람들은 이제 하나가 되었습니다. 나는 너의 것이고, 너는 나의 것임을 체험하였습니다. 이 체험은 세상이 주는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너무나도 아름답고 감미로운 것이었기에, 사람들은 "이분이야말로 세상에 오시기로 된 예언자이시다." 라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외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기적, 이 체험, 나눔으로써 얻어진 소유는 결코 세상에서 말하는 소유, 인간적인 욕망에 따른 소유와는 전적으로 다른 것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들이 달려들어 억지로라도 왕으로 모시려는 낌새를 알아채시고 혼자서 다시 산으로 피해 가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의 삶 안에서 오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의 기적에 초대받고 있습니다. 서로를 나눔으로써 서로의 소유가 되라는 초대를 받는 것입니다. 이 소유는 지배를 뜻하지 않습니다. "겸손과 온유와 인내를 다하여 사랑으로 서로 너그럽게 대하는" 소유입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무슨 소유야? 이런 소유는 필요 없어.' 라고 말입니다. '소유'를 '지배'와 동일시하는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체를 받아 모심으로써 예수님의 소유가 된 신앙인들은 이러한 편견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예수님의 자기 나눔은 성체 성사를 통해 절정을 이룹니다. 예수님게서는 성체와 성혈로 자신을 완전히 나누어주심으로써 우리를 당신의 소유물로 만드십니다. 성체를 모심으로써 우리는 예수님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나눔, 예수님의 소유는 곧 우리의 삶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완전한 나눔을 통해 완전한 소유를 이루어야 합니다. 내 자신을 다른 이들에게 나누어줌으로써 '나'와 '너'가 하나가 됩니다. '나'와 '너'가 하나가 되는 것이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완전한 소유, 겸손과 온유와 인내와 사랑이 담긴 완전한 소유입니다. 성령께서 평화의 줄로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신 아름다운 소유입니다.

 

참 신앙인이라면 우리 자신을 벗들을 위하여 내어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내어놓음으로써 서로를 소유해야 합니다. 서로를 완전하게 가지면 가질수록 우리는 주님의 놀라운 기적을 세상에 드러내는 살아있는 표지가 될 것입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1요한 5,4)

 

주님 안에 사랑담아 여러분의 벗 상지종 베르나르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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