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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떠나지 마라!(부활 4주 금)
작성자상지종 쪽지 캡슐 작성일2000-05-19 조회수2,238 추천수13 반대(0) 신고

2000, 5, 19 부활 제4주간 금요일 복음 묵상

 

 

요한 14,1-6 (길과 진리와 생명)

 

"너희는 걱정하지 마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내 아버지 집에는 있을 곳이 많다. 그리고 나는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러 간다. 만일 거기에 있을 곳이 없다면 내가 이렇게 말하겠느냐? 가서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같이 있게 하겠다.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

 

그러자 토마스가 "주님, 저희는 주님이 어디로 가시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묵상>

 

저는 80년대 중반에 일반 대학을 다녔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약간의 반골기질이 있던 저는 대학에 들어가면서 이 사회가 지닌 심각한 모순과 문제를 보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운동(Movement) 동아리와 과 학회(전공 공부를 하는 곳이 아니라, 사회 과학을 공부하던 곳이죠.) 에서 활동하였습니다.  1학년을 마칠 무렵, 동아리 선배가 저에게 제안을 하나 했습니다. Under Circle(U.C. 비공개 비합법 써클)에서 함께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지요. 두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내심 기뻤습니다. 선배로부터 인정을 받았다는 생각에서였죠.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당시 학생 운동의 실제 주축 세력은 Under Circle이었습니다. 물론 4학년이 주축이고 2, 3학년은 행동대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2학년 때는 주로 학습을 통해 이론적인 무장을 하고 다양한 실천을 병행합니다.

 

저는 선배의 제안에 기꺼이 응했습니다. 2학년 초에 U.C. 에 들어 갔습니다.  그런데 이 땅의 민주화와 민중의 해방을 위해 자신을 바치겠다는 풍운의 꿈을 가지고 들어갔지만,  두 달도 못 되서 나왔습니다. 저와 동기 2명을 책임지고 있던 3학년 선배와 심한 논쟁을 한 후에 말입니다. 논쟁을 벌인 이유는 종교 때문입니다. 선배는 제게 신앙 생활을 그만 두라고 했죠. 종교는 관념에 불과하고 운동가에 무익하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저는 마르크스의 사상과 정치경제학에 대해 심취해 있으면서도 저의 신앙을 절대로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아니 마르크스에 대해 알아갈수록 하느님에 대한 저의 확신은 더욱 굳건해졌습니다.  몇 번에 걸친 논쟁 끝에 저는 선배와 결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갈라선 후 한달 쯤 후에 선배가 성당으로 찾아왔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함께 하자고 말하더군요.  그러나 저는 마음을 돌릴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후 교회 청년 운동에 함께 하게 되었지요.

 

이상은  제 개인의 역사 안에서는 참으로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어찌보면 사제 성소의 첫걸음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가끔씩 그 때를 회상하게 되면 저를 붙잡아 주신 하느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가 만약 선배의 말에 따라 하느님을 떠났다면, 어떻게 되었을지를 생각해 봅니다. 학생 운동의 핵심이 되었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많은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참 세상을 일구려했던 마음을 뒤로 하고, 일상에 치여 살아가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많은 기성 세대처럼 치열하게 고민하고 부딪치던 그 때를 젊은 날의 한 때쯤으로 치부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저를 붙잡아 주셨고, 이 땅에 당신의 나라를 일구는 부족하지만 소중한 도구로 삼아주셨습니다. 지금도 본당의 청년들이나 이 땅의 참 평화와 정의를 위해 일하는 이들을 만날 때면, 20대의 다듬어지지 않는 열정보다 더 열정적으로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이 시간 앞날에 대해 장담할 수는 없겠지만, 바로 주님의 힘으로 변하지 않는 마음을 가지고 이 길을 걸어가겠다는 다짐을 새롭게 해 봅니다.  이렇게 다짐할 수는 있는 이유가 바로 '하느님께서 제게 주신 믿음'이며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저의 믿음'에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믿음이 주는 희망과 용기의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너희는 걱정하지 마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갈등을 느낍니다. 이러한 갈등안에 신앙도 포함됩니다. 그리고 많은 형제 자매들이 안타깝게도 신앙을 저버리고 자신의 길을 걸어갑니다. 조금만 더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인다면, 주님을 떠나지 않을텐데라는 아쉬움이 듭니다.

 

주님의 길과 나의 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길이 주님의 길에 포개어 질 때, 참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음을 생각하면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따를 때, 비로소 자신의 삶을 완성시킬 수 있다는 것을 갈등하는 신앙의 형제 자매들이 깨달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1요한 5,4)

 

주님 안에 사랑담아 여러분의 벗 상지종 베르나르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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