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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희망의 노래를 부르자(마리아의 방문 축일)
작성자상지종 쪽지 캡슐 작성일2000-05-31 조회수2,559 추천수8 반대(0) 신고

2000, 5, 31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 복음 묵상

 

 

루가 1,39-56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하다. 마리아의 노래)

 

그 무렵 마리아는 길을 떠나 걸음을 서둘러 유다 산골에 있는 한 동네를 찾아가서 즈가리야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문안을 드렸다.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문안을 받았을 때에 그의 뱃속에 든 아기가 뛰놀았다. 엘리사벳은 성령을 가득히 받아 큰 소리로 외쳤다. "모든 여자들 가운데 가장 복되시며 태중의 아드님 또한 복되십니다. 주님의 어머니께서 나를 찾아 주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문안의 말씀이 내 귀를 울렸을 때에 내 태중의 아기도 기뻐하며 뛰놀았습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으셨으니 정녕 복되십니다."

 

이 말을 듣고 마리아는 이렇게 노래를 불렀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며 내 구세주 하느님을 생각하는 기쁨에 이 마음 설렙니다. 주께서 여종의 비천한 신세를 돌보셨습니다. 이제부터는 온 백성이 나를 복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 일을 해 주신 덕분입니다. 주님은 거룩하신 분, 주님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는 대대로 자비를 베푸십니다.

 

주님은 전능하신 팔을 펼치시어 마음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권세 있는 자들을 그 자리에서 내치시고 보잘것없는 이들을 높이셨으며 배고픈 사람은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요한 사람은 빈손으로 돌려 보내셨습니다.

 

주님은 약속하신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의 종 이스라엘을 도우셨습니다. 우리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대로 그 자비를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토록 베푸실 것입니다."

 

마리아는 엘리사벳의 집에서 석 달 가량 함께 지내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묵상>

 

요사이 햇살 가득한 하늘을 보면, 몸과 마음 모두 화사해지는 듯 합니다. 그런데 이 땅의 축복받은 계절을 보내면서도, 따사로운 햇살과 푸른 초목과는 어울리지 않는 허탈감과 안타까움을 마음 한 구석에서 지울 수 없습니다.

 

IMF가 물러나고 이제 살만해 졌다고 하지만, 영세 업체에 다니는 노동자들의 삶의 조건은 더욱 열악해졌고, 요사이 시민 운동 세력을 포함한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부도덕한 행태나 사회 곳곳에 만연한 부정과 부패가 여전하기 때문입니다. 아니 이처럼 눈에 보이는 상황보다도 우리의 가난한 이웃들이, 우리 자신이 주어진 상황 때문에 혹시나 삶의 희망을 잃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밤이 깊을수록 새벽은 다가온다고 했지만, 다가올 새벽을 보지 못하고 어둠 속에서 헤매는 것이 치열한 현실을 살아가는 이웃들의 삶은 아닌지, 그러기에 '누군가 다시금 희망을 노래해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희망의 노래!

누가, 왜, 어떤 내용의 노래를 어떻게 부를 것인가?

 

엘리사벳을 방문한 동정 마리아의 노래에서 답을 찾아 봅니다. 처녀가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생명을 담보로 하는 모험이었습니다. 동정 마리아는 기꺼이 이 모험을 강행했습니다. 두려움 없이 말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굳은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여기에 머무르는 것이 아닙니다. 엘리사벳을 찾아갑니다.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나이에 아이를 가진 엘리사벳에게 동정 마리아는 가장 반가운 벗이었습니다. 엘리사벳은 반가운 벗을 맞이하면서 이렇게 외칩니다.

 

"주님의 어머닊께서 나를 찾아주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주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으셨으니 정녕 복되십니다."

 

동정 마리아는 이에 응답하면서 기쁨에 찬 희망의 노래를 부릅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며 내 구세주 하느님을 생각하는 기쁨에 이 마음 설렙니다. 주께서 여종의 비천한 신세를 돌보셨습니다."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이 도저히 자신 안에만 가두어 둘 수 없는 기쁨을 주기에, 동정 마리아는 이 기쁨을 엘리사벳에게 나눕니다. 처녀의 몸으로 아이를 잉태한 것은 죽음을 각오하는 것이기에 현실의 고통을 동반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고통 속에서도 기쁨을 노래할 수 있었던 것은, 주님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이며, 또한 주님에 대한 믿음으로 주님께서 베푸실 내일을 희망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마련하실 내일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요? 마리아의 노래는 이를 알려줍니다.

 

"주님은 전능하신 팔을 펼치시어 마음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권세 있는 자들을 그 자리에서 내치시고 보잘것없는 이들을 높이셨으며 배고픈 사람은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요한 사람은 빈손으로 돌려 보내셨습니다. 주님은 약속하신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의 종 이스라엘을 도우셨습니다. 우리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대로 그 자비를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토록 베푸실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봅니다. 우리는 참으로 보잘것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주님께 대한 믿음이 있으며, 이 믿음은 희망을 낳습니다. 우리는 참 희망을 찾기 어려운 이 시대에, 주님께서 들려주시는 희망의 노래를 이웃에게 불러주어야 할 사명을 지닌 신앙인들입니다.

 

우리는 우리 마음대로 우리 식대로 희망의 노래를 지어부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참된 믿음이 있다면, 그리고 이 믿음을 가지고 희망을 살아간다면, 우리의 입과 마음, 그리고 온 몸으로 주님께서 주시는 희망의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아니 불러야만 합니다.

 

성모님께서 엘리사벳에게 몸소 찾아가 가슴으로부터 벅차오르는 기쁨과 열정으로 노래했듯이, 우리 역시 희망을 잃고 힘겨워하는 이들에게 몸소 먼저 다가가 희망의 노래를 불러주어야 합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1요한 5,4)

 

주님 안에 사랑담아 여러분의 벗 상지종 베르나르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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