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며
작성자황인찬 쪽지 캡슐 작성일2000-05-17 조회수2,115 추천수10 반대(0) 신고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며

 

오늘 저녁나절 그 동안 미루어왔던 쓰레기를 치웠다. 피정의 집 앞에 보기 싫게 놓여있는 쓰레기 더미들이 늘 마음에 걸려왔기에 잠시 짬을 내서 큰마음 먹고 시작했다. 고무장갑을 끼고 봉투마다 가득 담겨있는 쓰레기를 쏟아 다시 분리하는 일이었다. 음식물, 종이, 병 그리고 깡통으로 분리하는 일은 한 시간 이상 걸렸다.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막상 쓰레기를 뒤지면서 일이 복잡해졌다.

쓰레기는 사제관과 피정의 집에서 주로 나온 것이다. 나는 평소에 쓰레기를 잘 분리해서 버린다고 했는데도 음식물이 여러 가지 쓰레기와 함께 뒤섞여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까 내가 미처 신경을 쓰지 않는 사이에 파출부 아주머니가 적당히 버린 것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성당 안에 마련된 피정의 집에 많은 손님들이 다녀가면서 버린 쓰레기였다. 음식 종이 비닐이 한데 뒤섞여 악취를 풍기며 구더기가 들끓는 것을 분리해서 쓰레기 봉투에 담는 일은 고역이었다.

평소에는 신자들이 잘 치워주니 미처 몰랐는데 요즘 농사철이어서 눈에 보이는 일은 당장 아쉬운 내 차지가 된다. 그 덕분에 나는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면서 이런 묵상을 할 수 있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아무리 죄를 짓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모두 죄인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그 동안 우리가 배운 죄에 대한 개념은 하느님과 사람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관계가 잘못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즉 주일미사에 빠지는 것, 기도를 하지 않는 것, 미신행위를 하는 것 등이 하느님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죄라면,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의 미움, 형제 자매 사이의 질투, 그리고 고용착취와 인권을 말살하는 행위들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생겨나는 죄라는 것이다. 우리는 고백성사를 보면서 주로 이런 죄들을 고백하고 용서를 청하며 신앙생활을 해왔다. 성사를 보기 위해 자신의 죄를 성찰할 때도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이런 죄의식은 너무 좁은 의미이고 소극적인 개념이다. 21 세기를 맞이하는 현대인들에게는 자신도 모르게 짓는 중대한 죄가 있다. 그것은 자연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죄이다. 내가 자동차를 몰고 다니면서 배기가스에서 나오는 공해가 하느님이 창조한 아름다운 자연을 얼마나 병들게 하는지 그 동안 미처 생각해 보지 못했다. 또 설거지와 빨래를 하면서 사용하는 세제가 강물을 오염시켜 얼마나 많은 생물들을 죽이는 죄를 짓는지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런데 쓰레기를 분리하면서 이 음식이 땅 속에 그대로 묻히며 얼마나 땅을 더럽힐 것인가? 이 비닐과 종이를 태우면서 얼마나 공기를 오염시킬 것인가? 이런 질문을 하면서 나는 "우리가 죄 없다고 말한다면 우리 자신을 속이는 것이며 우리 안에는 진리가 없습니다."(요한 1서 1,8)는 말씀이 생각났다.

먹거리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변명할 수도 있지만 음식쓰레기를 통해서 짓는 죄를 따지자면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 미워하는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또 주일 미사에 한 번 빠진 것과 도저히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죄를 짓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분리수거를 하지 않음으로써 그냥 땅에 묻혀 버린다면 연옥에 가지도 못하고 지옥으로 떨어질 대죄가 아닐까 생각된다.

편리하고 쉽게 살기 위해서 개발한 온갖 상품들을 사용하면 할수록 우리는 죄를 지을 수밖에 없다. 내가 살고 있는 농촌마을에도 농산물의 수확을 높이기 위해서 개발한 비닐 때문에 농토가 신음하고 있다. 앞으로 인간의 행복을 위해서 개발될 모든 문명의 이기들은 결국 우리가 의지하고 살아야 할 이 지구를 병들게 만들 것이 분명하다면 우리의 후손들이 살아갈 이 터전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 신앙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명약관화하다.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면서 내가 갖고 있던 죄에 대한 편협한 개념을 바꿀 수 있어서 감사하며 앞으로 쓰레기 분리수거라도 잘 해서 죄를 적게 짓도록 노력하련다.

 

@@@ 감사합니다. 대화성당 홈페이지(www.artchurch.or.kr)를 방문하시면 다른 묵상글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고견을 게시판에 남겨주십시요.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