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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제 4 회 가톨릭평화방송 평화신문 신앙체험수기공모작 (구원의 부르심)
작성자김효령 쪽지 캡슐 작성일2016-12-26 조회수3,655 추천수0 반대(0) 신고

 

제목     구원의 부르심

 

 

   저는 경기도 용문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와 어머니, 3살 연상, 연하의 형제들이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교회에 열심히 다니며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항상 기쁨이 가득하여 성탄 때에는, 누구보다도 먼저 교회에 나가, 예수님의 탄생 축하를 드리고자 하는 평범한 소녀였습니다. 아버지는 직업군인이셨는데 집에 가끔 오시거나 노름빚을 많이 지어서 엄마와 아버지는 자주 다투곤 하셨습니다. 저의 불행한 가정환경은 타인들에게 숨기고 싶은 치부였으며 친구들을 집에 데리고 올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설상가상, 강원도 원통의 초등학교에서는 친구들의 따돌림으로 집단폭행을 당하여 이유도 모른 채 학교 운동장에서 맞아야했습니다. 방과 후에는 동네 이웃집 언니와 동생과 함께 종이인형 놀이와 소꼽놀이를 하며 외로운 초년 시절을 보내야했습니다.

강원도 춘천으로 이사와 여자 중학교에 입학하여 열심히 학교를 다니던 어느 봄날에 학교교정에서 처음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교실은 휴식시간이었고 몹시 시끄러웠으며 저는 무언가 알 수 없는 신비로운 힘에 이끌려 학교 뒷뜰 장미동산으로 한걸음에 뛰어내려갔고, 구세주이신 빛의 하느님께서 계신 하늘 아래 바로 서서 빛의 하느님께 감사드렸습니다. 그동안 있었던 불행한 가정환경과 초등학교 친구들의 이유없는 따돌림 등의 억울한 사건들이 한꺼번에 치유되는 듯 했습니다.

  

   당시 저는 천주교도 알지 못하였고 성당에도 가본 적이 없었으나,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하느님의 신비로운 부르심으로, 부르심의 신자가 된 것입니다. 중학교 1학년 1학기 중간 무렵, 저희 집은 다시 경기도 광명시로 이사를 했으며 친구의 전도로 순복음 교회에 다니게 되었으며 학생회 성가대 활동과 주보 만들기 등의 봉사활동을 통하여 신앙생활의 열매의 기쁨과 교회 2층 다락방에서의 친한 자매와의 사귐 등은 잊을 수 없는 주님 안의 참사랑이었습니다. 밤새도록 손뼉을 치면서 부르던 찬양과 소리를 크게 지르며 주여 주여부르던 통성기도, 새벽어둠이 채 가시기 전에 나지막히 들려오는 주님의 목소리를 의지한 채 캄캄한 골목길을 더듬어 새벽기도를 드리러 교회에 나가던 일, 지하 성전에서의 목소리 읊조려 기도드리던, 어린 나이에 알 수 없던 인간굴레의 고통스러움... 그 모든 신앙의 체험들은 저에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신앙의 첫 열매였습니다.

  

  어느 날, 철야기도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였습니다. 사탄의 악한 세력이 엄마에게 스며들었는지, 엄마는 저에게서 성경책을 빼앗아 불태우고 교회에도 나가지 못하게 하였으며 끝내 학교를 서울로 전학시키기에 이르렀습니다. 저는 이제껏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예수님의 처음 사랑에 경도되어 신앙에 맛들이려 하는데 엄마의 돌연한 박해가 예수님으로부터 저를 떼어내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정든 교회와 정든 학생회 친구들과 헤어져 서울이라는 낯선 도시로 이사를 해야만 했습니다. 여고 3학년 때, 아버지께서 갑작스럽게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 해 봄에 아버지는 집을 나가서 몇일 동안 돌아오지 않고, 유언의 내용이 담긴 편지만 집으로 보내졌습니다. 편지내용 중의 "미안해. 미안해." 라는 부분을 잠깐 보았을 때, 엄마는 편지를 부여잡고 통곡을 하였으며 매년 4월이 되면 아버지를 기억하시듯 제사를 지내셨습니다. 당시 저는 고3의 수험생이었으나, 아버지의 죽음과 가정환경의 가난 등의 이유로 대학진학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갑작스런 아버지의 죽음으로 혼자가 되신 어머니의 고통에 도움이 되고자 휴학을 하게 되었으며 1년 동안, 지방 버스 안내일을 하며 가정의 경제적 어려움에 보탬이 되도록 하였습니다.

 

  저는 하느님께서 제 앞길에 놓으신 십자가를 마땅히 지기로 마음먹었으며 제게 지금 어떠한 고난과 어려움이 있더라도, 그것은 주님께서 주시는 시련이라고 생각하며 달게 받고자 했습니다. 그것은 올무가 되어 저를 속박하거나 멸망시킬 수 없었으며 저는 구원받으리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1986년 전문대에 입학하여 2학년 때에는 휴학을 하였으며, 1년 동안 밤무대 가수로 활동하며 반짝이는 스팡클의 짧은 무대복을 입고, 얼굴에는 흰분칠을 하고 유명가수들의 노래를 리메이크해서 불렀습니다. 윤수일님의 황홀한 고백조용필님의 여행을 가요등의 노래를 부르며 팝송가수인 동료 언니와 함께 무대에 서기도 했습니다. 학교에 복학했을 때, 인생의 자괴감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세상 연락에 물들어 주님께로부터 멀어져서, 병든 죄인이 된 저는 다시, 오직 주님만을 섬기며 열심히 기도하며 찬양을 드리던 예전의 저로 돌아가고만 싶었습니다.

  

  그러나 사탄의 유혹은 계속되었고 저는 피신하듯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19901, 남편은 저보다 4살 연상으로 모든 일에 있어서 너그러운 성격의 사람이었습니다. 결혼 후, 한 명의 남아를 낳았으나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다른 가정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함 속에서, 95년에 또다른 전문대에 입학하였고, 1998년 곧 남편과 이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알 수 없는 정신적 혼란 속에서 피신하듯 선택한 결혼이 저에게 맞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갑작스런 부모의 이혼으로 엄마와 이별을 해야 하는 아이의 억울함과, 특별한 잘못도 없이 이혼을 하게 된 남편의 황당함을 생각하며 저의 경솔한 결정을 곧 후회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불안함과 우울증으로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1999, 세상은 지구의 종말론으로 어지러웠고 저는 무작정 집을 나와, 강원도 속초에 도착하였습니다. 세상의 부조리함속에 느끼는 소외감과 가족과의 이별의 고통은 저를 매우 혼란스럽게 하였으며 정신분열상태에 이르게 하였습니다. 그때 하느님께서 저를 불러주시지 않았더라면 저는 지금 저 세상의 사망의 어둠 속에 웅크리고 앉아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그때에 대자대비하신 주의 부르심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 일은 바오로님의 회심과도 같은 대사건이었으며, 저는 속초 어느 길목에서 무릎을 끓고, 주께 온전히 의탁하기를 원하였습니다. 과거의 나의 모든 죄와 잘못을 뉘우치며 보속을 구하였습니다. 하늘문이 열리고 수많은 새떼가 전깃줄에 가득 내려 앉아 앞날에 일어날 큰 사건을 암시하는 듯 했습니다.

 

  이윽고 저는 이웃의 도움으로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1999년 있었던 부르심의 사건 이후, 저는 교회를 열심히 다니기 시작하였습니다. 두어 곳의 교회에서의, 모든 신도들과 함께 받은 성령의 은혜는 잊을 수 없는 기적이었습니다. 저는 주님 안에 보잘 것 없는 죄인이나 하느님의 도움으로, 예수님에 대한 신뢰로, 이별의 고통을 참아가고자 했습니다.

 

  20032, 순복음 여의도교회에 다니고 있을 때였습니다. 구정을 가족과 함께 보내고 저녁에 집(마포근처)에 돌아와 성경책을 읽고 하느님께 저의 소망을 기도드리고 일찍 잠자리에 들어 다음날 일어났을 때였습니다. 주님봉헌대축일인 22일 아침, 저는 침대에서 내려와 몇 발자국 걸었을 때, 신비로운 주 하느님의 권능의 힘에 위해 공중으로 들어 올려져, 주의 영광 속에 환희의 기쁨에 가득 차 성령축복의 은총을 받았습니다. 하느님의 찬란한 강생의 빛 속에 마치 루가복음의 성모님의 성령강림의 계시와 같은 크신 하느님의 힘이 태양같이, 비둘기같이, 찬란한 빛의 인치심의 축복 속에 이어졌습니다. 구원의 예수님과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안식 안에 오래도록 감사봉헌을 드렸습니다. 저의 온몸과 영혼은 하얀 성령체로 변화하여 하나의 완전한 이데아의 존재로 빛의 하느님께 의탁된 것입니다. 주의 자비와 부르심의 은혜로 저는 원죄를 사함받고 구원받은 백성으로, 춤을 추며 뛸 뜻한 기쁜 마음으로 집에서 나왔습니다. 집에서 나왔을 때 저는 인간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빙의상태의 성령체가 되어 마치 공중에 둥둥 떠다니듯 거리를 걷고 있었습니다. 거리 역시 온통 하얗고 건물들도 온통 하얗게 변하여 천국에 온 듯 했습니다.

 

  저는 그러한 상태로 우연히 친구를 만났고 친구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와 평안히 안식에 거하였습니다.

저의 생활은 도둑처럼 임하신 주님의 부르심과 축복의 기쁨 속에서, 부르심에 더욱 열심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순복음 여의도교회를 다니며 놀라운 주의 구원사건을 간증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는 우연하게 신대방동에 있는 성당에 가게 되었고 천주교 신자가 되기 위하여 입교신청을 하게 되었으며, 곧 엄마가 살고계신 면목동으로 이사를 하고 예비자 교리반을 통하여 2004124일 면목동성당에서 세례성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성모님의 성명인 마리아로 세례를 받았으며 축복일은 성모님의 탄신일인 98일로 하였습니다. 세례를 통하여 가톨릭 신자로 거듭 태어나 가톨릭 성인성녀들과 순교성인들을 본받아 이웃에 봉사하며 영원히 주님의 나라에 살고자 원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수도성소의 표징을 간직하고 보존하며, 다시는 주님을 떠나지 않고, 예수님의 새 계명의 말씀을 따라 하느님을 먼저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성모님을 공경하며 서원생활 하기를 원하였습니다.

 

  그 이후에 또 한 번 주님의 거룩한 부르심이 있었습니다.

   2005326, 경기도 구리시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혹시 길에서라도 아이를 만날까 해서였는데 우연히 헤어진 남편과 만나게 되었고, 잠시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무언의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한순간 아이의 사랑스러운 얼굴이 떠올랐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혼을 한 것은 매우 잘못된 일이고, 아이를 위해서라도 남편과 헤어져서는 안 되며 혼인성사를 해서라도 가정을 지켜야한다고 생각했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마르코복음에서와 같이 하늘이 갈라지며 저는 갑작스럽게 앞으로 달려 나가 하느님께서 계신 하늘 아래 무릎 꿇고 두손을 모았습니다. 오묘하신 하느님의 섭리 안에 이 세상이 아닌 천국에서, 검은 머리수건을 쓴 수녀의 모습으로 변화하여, 성령님께서 비둘기같이 임하심에 기쁨이 충만한 가운데 하느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이윽고 예수님께서 저의 머리와 이마 부분에 둥근 인장을 찍어주었으며, 얼마 후, 다시 하늘에서 검은 머리수건을 내려주심으로 앞으로 일어날 언약의 일을 계시해 주었습니다. 또한 성당에서 수녀복을 입고 제단봉사를 하는 저의 모습이 환상으로 보인 뒤, 성령의 모습으로 변화하신 예수님께서 환하게 웃으시며 저를 맞아주시는 것이었습니다. 몇일 후인 4월에는 이별한 아이와 만나, 식당에서 식사를 하던 중,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남녀수도예복을 성령의 힘으로 입혀주고 축복해 주심에 사랑의 주님께 감사드릴 뿐이었습니다. 면목동 집에서 묵상 중에 무염시태의 성모님의 성결하신 영경 안에서 저는 다시 한 번 수녀의 모습으로 변화하여 무한하신 주께 감사드렸습니다. 2005년 여름에는, 아이와 또다시 만나게 되었고, 우리는 둘 다 성령의 변화를 받아 마치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에서처럼 아이는 머리에 흰베일을 감고 흰 수도복을 입었으며, 저는 머리에 흰 머리수건을 하고 옷은 사복을 입은 채, 이스라엘에 존재하듯 거룩하신 주께 감사드렸습니다.

  

  200511월 경북 영주에 봉쇄관상수녀원에서 한 달 간 수련생활을 하였으며, 같은해 12월에 넓은 곳으로 떠나라는 원장 수녀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제주도에까지 내려가게 되었고 그곳, 이시돌목장 금악성당 근처에서는, 하느님께서 기상의 기적체험을 주시었습니다. 글라라 성녀님의 사라젠느 사건과 같은 기적이 일어나, 제가 서 있는 곳은 따뜻한 햇살이 가득한 천국인데, 1000미터 전방은 눈서리가 매섭게 몰아치는 지옥으로 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곳에, 심술궂게 보이는 수녀님이 눈보라의 폭풍속에서 세찬 바람을 거슬러 제가 있는 쪽으로 오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주님의 샤론의 향기가 가득한 화관과도 같은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화되어 잠시 곰곰히 생각하였습니다. 다음해인 20061, 제주도에서 저는 계속 혼자 기도생활을 하였으며, 22일 금악성당에 미사를 드리러 가던 뒷산 커다란 언덕 위 벌판에서는 하느님께서 저를 하늘로 들어올리시어, 저는 하늘 위 높은 곳에서 흰 드레스 옷차림을 하고 휴거들림의 영생체험을 하였으며, 요한묵시록의 주의 신부처럼, 주님께서 오시기를 기원하며 주의 위대하심과 천국의 영화로움, 거룩함 속에 오래도록 영원 속에서 하느님을 뵈었습니다. 이때 어둠의 무리가 어디서인지 나타나 저를 피해 뒤에 숨고, 뒷쪽에서 어떤 남자 분이 제가 서 있는 영계를 모두 보고 있다는 듯이 사과하는 듯 고개를 숙인 것이 보였습니다. 서울로 올라와서 한 직업소개소에서는 어떤 자매와의 만남 중에 또 한 번 기적의 예수님께서는 회색의 수도예복을 입히시고 영적인 환상으로 보여주시며 앞날을 축복해 주셨습니다. 같은 해인 2006, 6월 명동성당 앞과 근처 길에서 두 가지의 기적을 주셨는데 하나는, 하얀 움 같은 곳에서 제가 나온 듯, 움이 보이고 이윽고 성령님의 보호로 온몸이 하얀 영성체로 변화하여 이마에 "성가소"라는 글씨가 씌어졌으며 길에서는 마찬가지로 눈사람처럼 하얗고 커다란 성령체로 변화하여 허리굽혀 하느님께 감사드렸습니다.

 

  2007716일에는, 전라도 광주 장성의 한 분식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하느님께서 저를, 영체의 수녀님의 모습으로 변화하게 하시어, 친히 성별해주시고, 몇일 뒤 그 분식집에서 나와 장성 기차역 앞에서 또다시 부르심을 주셨습니다... 마치 이 세상이 멸망한 듯 사방이 어둠의 사망 속에서, 생명있는 것은 하나도 없는 듯 하였습니다. 저는 영문을 몰라, 한 자리에 오롯이 서서 허리를 굽힌 채 하느님께 절하였습니다. 주님의 거룩하신 부르심 속에 저는 죽은 사람처럼 되어 주님께 귀 기울였습니다. 주님의 언약의 궤와 몰약, 언약의 약속에 대한 응답이 이어지고, 성삼위일체의 지성소 안에서 주님나라의 일꾼으로 두세 종류의 수녀복을 입은 표징을 주셨습니다. 구약 레위기에 등장하는 성소로의 부르심을 받은 레위가 주님의 명령에 순종함 같이, 저를 구원하신 주 하느님과 그리스도 왕을 따르며, 비둘기같은 성령의 어머니인 성모님의 사랑 안에 한없이 감사드렸습니다.

 

  2007, 2008년에는 두 어 군데의 수녀회에서의 수련생활을 하였으며 2009년 봄에는 서울의 어느 성당에서 하느님께서 저에게 수녀의 표징을 입히시며 영복 축복을 주시고, 얼마 후에는 필리핀 마닐라 어느 수녀원에서 넉 달 동안 수련생활을 하였으며, 한국에 돌아와서 성소식별에 대해 신중하게 성찰하게 되었습니다. 부르심 이후 저의 이러한 성소식별에 대해 반성하였습니다. 저에게 모자란 점이 많이 있었고, 성소 부르심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자로서 입회하기가 그리 쉽지 않았습니다. 저는 우물 안 개구리 같았으며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에 대해서도 무지하였습니다. 한국에서 입회를 하려면 꼭 이스라엘을 다녀와야 할 것 같았고, 부르심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이라면 누구나 성지 이스라엘을 찾아가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201211월에 저는 꽤 큰 듯한 가방을 구하여, 가진 짐을 모두 챙겨 이스라엘로 배낭여행을 떠났습니다. 구예루살렘 성은 마치 만화 속의 고성처럼 크게 웅장하고 높을 것이라는 평범한 상상과는 달리 성내의 구조적인 특징이 있었습니다. 좁은 골목과 상점, 그 사이사이에 조그만 수도원들... 화려하고 아름다운 성들이 많이 있을 것 같은 구예루살렘 성을 처음 돌아보았을 때, 잠시 실망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세상 풍파로부터 많이 단련되어 풍화된 듯한 수도원 건물의 외관의 모습들이 오랜 이스라엘 역사의 무게를 침묵으로 지키고 있었습니다. 무덤성당과 다윗성의 성모영면성당, 호모엑체수도원 등에 성모님과 예수님을 찾아 공경하고자 하는 세계 지구촌신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골고타 사건 속의, 커다란 십자가를 끌고 가는 외국인 여행객들의 종교행사는 매우 인상적이었으며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심을 되새기게 하였습니다. 벼룩시장의 각 상점마다 전시된 예루살렘 성소의 성물과 각종 예물, 예복은 먼 나라에서 이스라엘을 찾아온 신자들의 마음에 친근감을 주었습니다. 호모엑체 수도원에서 외국인 형제자매들과 함께 스페인어 미사를 드리고 시온수녀회의 수녀님과 함께 올리브 동산의 겟세마네성전과 주님의 기도성전에 들려 하느님께 감사드렸으며 옛교회, 옛성 구석구석의 낡아 바래진 곳을 보면서 구예루살렘 성안에 떠도는 수많은 수도자들의 한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텔아비브 라트란 수도원 손님방에서 머무르며 트라피스트 엄률시토회의 엄숙한 장엄미사에도 몇일 동안 참여하며 하느님의 부르심을 통하여 전 세계인이 이렇듯 함께 모여 주를 경배하게 하심에, 크신 주께 감사찬미드렸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기쁨은 잠시뿐, 12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한국에 도착한 저는 이스라엘 여행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저에게 처한 암담한 현실의 벽만을 실감할 뿐이었습니다. 저는 이스라엘에서도 시온수녀회, 베네딕틴수도회의 수녀님과 트라피스트수도회의 수사님들과 성소상담을 나누었습니다. 그러나 잘 통하지 않는 언어의 장벽을 느낄 뿐이었으며, 대성지인 이스라엘에서도 '부르심을 받은 지 10년된 성소자'를 선뜻 받아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크게 실망하였으나 주님께 구원받은 사람으로서 넉넉한 마음으로 이해하기로 하였습니다. 이제 2017년을 맞이하는 시점에서 신앙체험수기를 공모하게 된 것은, 하느님께서는 모든 주의 백성과 비신도, 살아있는 모든 것, 모든 생명체를 사랑하는 분이며 죄인들의 죄를 모두 잊어주고 씻어주는 분이며 용서하는 분, 끝까지 기다려주고 우리들의 잘못을 끝내 묻지 않으며 깨끗게 하는 분이심을 함께 나누고자 함입니다... 부르심을 받은 지 14년째를 보내며, 내년 정유년에도 '성소입회'를 위해 더욱 열심히 노력하며 주님께 가까이 가게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주님! 모든 일이 주님 뜻대로 이루어지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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