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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극적으로 찾은 부부
작성자박용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3-05-25 조회수809 추천수0 반대(0) 신고

극적으로 찾은 부부

 

 포졸들이 덮치는 바람에 부부가 뒷산으로 도망가다 서로 헤어졌다. 비리버는 아내 데레사의 행방을 찾아 공주 감영까지 가서 관노를 하다가 붙잡혀온 교우 여인을 옥사장이 빼돌려 부부로 맺어준 신 마리아를 천안까지 데리고 나와서 돌려보내고, 비리버는 고모와 함께 옹기 장수로 변장하고 온양, 예산 둥지로 두루 다니면서 찾아보았으나 데레사를 만나기는 고사하고 그 소식도 들을 길이 없었다. 그러나 길에서 다시 만난 신 마리아에게 우연히 남편을 찾아주었다. (윤의병신부지음「은화」하권 47-57)

wngok@hanmail.net

 

비리버는 아내 데레사를 찾아 자기가 살던 둠벙골 근처까지 가서 동네마다 탐색하여 보았고, 하루는 둠벙골 앞산을 뒤져보기까지 하였다. 그것은 혹시 데레사가 어린것을 업고 어두운 밤에 산으로 도망가다가 어느 구렁텅이에 떨어져 죽지 않았나 하는 마음으로 그 시체라도 찾아보고자 함이었다. 그런 다음 수리치골에 들어가 옹기 파는 체하며 기색을 살폈으나 자기가 알고 있던 교우는 한사람도 만날 수가 없었다.

교우들은 모두 어디로 흩어지고, 교우들이 지어 놓은 곡식을 외인들이 거두어 먹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때 비리버는 공주 곰의 나루터에서 살려보낸 교우의 소식이 궁금하여 그 사람이 어디로 이사갔느냐고 물어 보았다.

“그 사람은 천주학 한다고 잡혀갔다가 놓여 나와서 그 이튿날 식구를 데리고 어디로 떠나고 말았소. 그런데 그 사람을 왜 찾으시오?”

하고 외인은 약간 이상하다는 눈초리로 비리버를 노려본다.

“허! 그럼 옹기 값은 또 떼였군…."

하고 비리버는 둘러대고 입맛을 두어 번 다시며 딴전을 피우다 되돌아오며 무사하게 된 것만도 다행스럽게 생각하였다.

비리버가 옹기 짐을 지고 관불산 뒤 고개를 넘으며 고모와 함께 데레사가 혹시 전에 살던 진천 땅에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거기에 가보기로 방향을 정했다.

길에 나선지 이틀 되던 날 신원이라는 동네 주막 근처를 지나다 보니까 노상에서 어떤 남자가 젊은 여자를 희롱하고 있다. 그 시대에 흔히 있었던 일이다.

’데레사도 어디서 저런 꼴을 당하지 않나…,’ 하고 무거운 걸음으로 그 옆을 무심히 지나는데

“아이고, 어쩌면 이제 오셔요!”

하고 여자가 반기며 소리를 지르고 비리버의 앞을 막아선다. 그가 고개를 들어 앞을 보니 그 여자는 바로 신 마리아였다. 비리버는 어리둥절하지 않고 민첩하게 대꾸하였다.

“거봐! 글세 좀 기다리지 못하고 달아나기는 왜 다라나. 늙으신 어머님 생각을 좀 해봐….”

비리버는 혀를 차며 길가에 옹기 짐을 내려놓는다. 뒤에 따라오던 그의 고모는 즉시 눈치채고

“아 어떤 놈이 길에서 젊은 여자에게 해괴한 짓을 하는 게야.”

소리를 지르며 남자에게 삿대질을 한다.

남자는 노파의 얼굴과 옹기를 내려놓는 비리버의 결기 있는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일이 좀 잘 못되었소. 너무 노여워 마시오.”

하고 중얼거리며 뒤도 안 돌아보고 길 옆 밭둑으로 들어서서 뺑소니를 친다.

그의 고모는 좀더 자세한 설명을 기다린다는 듯이 둥그런 눈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고 있다. 비리버가 턱으로 여자를 가리키며

“내가 지난번에 이야기한 바로 그 신 마리아입니다.”

하면서 너무나 신기한 듯 쭉 빨아들였던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들썩거리는 여자의 어깨를 바라보고 있다.

“어떻게 여기서 또 만나게 되었소?"

하면서 궁금한 듯이 대답을 기다린다. 신 마리아는 눈물을 씻으며 잠깐 생각하더니 입을 연다.

“그때 그 길로 내가 살던 곳을 찾아가 보았더니 집은 다 타버려 잿더미만 수북하고 그 근처 살던 교우들도 풍지박산 되어 종적을 알 수 없고, 더구나 제 남편의 행방을 누구에게 물어볼 데도 있어야지요. 그래서 밥을 벌어먹어 가며 남편이 들릴 만한 곳을 찾아 다녀 보았으나, 모두들 금시초문이라니 글세 이 일을 어찌한단 말이오. 다시는 더 찾을 길이 없어 진천 배티 친정에나 찾아간다고 나섰는데 그 몹쓸 놈을 만나지 않았겠습니까? 한참 곤란을 당하여 어찌 할 줄을 모르고 있던 판에 점잖은 양반이 고개를 숙이고 짐을 지고 와서 누군지 모르지만 마지막 수단으로 아는 체 소리를 지르며 덤벼들었지요. 아! 그랬더니 천만 뜻밖에 비리버 어른을 또 만났습니다. 참 당신은 나의 호수 천신 입니다.”

말을 맺지도 못하고 다시금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들썩거리며 흐느껴 운다. 신 마리아를 멍하니 바라보며 한마디라도 놓일세라 귀담아 듣던 노파는 드디어

“참, 모두 성모님의 은혜지….”

하고 중얼거리며 치마 끝을 눈물 글썽한 눈으로 가져간다.

비리버도 눈물이 글썽한 눈으로 먼 산을 바라보며 담배만 푹 빨아내다가

“자, 이러고만 있으면 수상하게 보일 수도 있고, 또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니 어서 갑시다.”

하면서 입에 물었던 담뱃대를 빼어 톡톡 길바닥에 털고 나서 꽁무니에 꽂더니 옹기 짐을 지고 일어섰다. 신 마리아의 가긍한 형편을 생각해서인지, 자기 아내 데레사를 생각하고 눈물을 글썽하였는지 모른다.

노파와 신 마리아도 그 뒤를 따라 섰다. 친딸을 만난 듯, 친정 어머니를 만난 듯 그들 사이는 말이 없어도 서로 통하였다. 그 동안 서로 지낸 이야기를 나누기에 피곤한 줄 모른다.

어디선지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온다. 누구든지 개 짖는 소리를 반갑게 듣지는 안지마는 특히 이런 일행에게는 언제나 꺼림칙한 일이다. 무슨 불행한 일을 당할 때는 개란 놈이 매번 위험 신호를 보내기 때문이다.

포졸들이 동네에 들어오면 온순한 빛은 볼 수가 없고 행패가 심하여 평화를 깨뜨리고 마는 것을 개란 놈들이 여러 번 목격하였기 때문이다.

고모와 여자는 종일토록 길을 걸었으니 퍽 고단할 것이므로 더 걷기도 어려운 형편이요, 젊은 여자를 데리고 밤길을 걷다가 도적이나 불한당을 만나는 것도 고려할 문제다. 이제 밤이 되었으니 객주집에서 쉬고 가는 것이 누가 보든지 수상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자, 그럼 여기서 자고 갑시다. 뭐 별수 있겠소."

이렇게 결정을 짓고 가장 조용해 보이는 객주 집을 골라 들었다. 노파와 신 마리아는 안채로 들어가고 비리버는 바깥 객실로 들어갔다.

저녁을 청하여 게눈 감추듯 달게 먹어치우고 담배 한대를 붙여 물고 벽에 기대어 두 다리를 쭉 뻗고 깊은 생각에 잠긴다. 이따금 한숨을 섞어가며 이런 생각 저런 생각에 골몰하고 있을 때 밖에서 인기척이 난다.

기침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더니 기골이 장대한 청년 하나가 성큼 들어서면서 곁눈질로 비리버를 훑어보고 윗목에 가 주저앉는다. 그는 주인을 불러 저녁을 청하여 먹으면서도 비리버를 향하여 연방 곁눈질을 하고 있다.

"수상하다. 또 무슨 일이 이 밤에 일어나려나…;"

약간 불안함을 느낀다. 비리버는 부지중 제 발을 들여다보았다. 버선은 신지 않았다. 그는 지난번에 버선코 때문에 봉변당한 이후로는 길에 나설 때는 언제나 버선을 신지 않고 감발을 하고 다닌다. 그러니 겉으로 무슨 단서가 될 것은 없으므로 마음을 놓아도 좋을 것이나 혹시 이놈이 무슨 기미를 알고 자기 뒤를 따라 나서지 않았는지 생각하면 저절로 조심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두 사람은 서로 상대방을 은근히 경계하면서 아무런 말도 없이 우두커니 앉아 있다. 방안의 분위기는 이상스럽게 무겁다. 비리버는 하도 답답하여 먼저 저편의 기미를 떠보려고 말문을 열었다.

“손님, 처음 뵈옵니다만 어디 사십니까?”

“예, 나는 천안 대거리에 삽니다. 그런데 손님은 어디 사십니까?”

“예, 나는 진천이 내 고향입니다.”

비리버는 이렇게 대답하고는

‘천안 대거리’는 신 마리아가 잡혀 은 동네이다. 그래서 비리버는 그 말을 유심히 들었고, 또 궁금한 바이다.

“그래, 동네는 다들 무고합니까?”

“왜, 거기 누구 아시는 분이 있습니까?”

“아니, 거기 아는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듣자니까 그 동네서 천주학꾼들이 잡혀갔다는 말이 있는데 그렇다면 혹시 싼 집이 하나 나온 것이 있을까 해서 물어 본 것입니다."

“예, 그렇습니까. 얼마 전에 천주학꾼들이 잡혀가긴 하였지만 그 후에는 조용하고 집이 나는 것은 없습니다.”

청년은 냉정하게 이런 대답을 간단히 하여 놓고는 또 비리버의 기색을 살핀다. 천주학꾼을 실어하는 기색도 없고 포졸을 원망하는 빛도 없이 어리벙벙하게 내놓는 이런 말에 비리버는 아무런 짐작을 할 수 없어 더욱 난처하다. 그래서 슬쩍 화제를 바꾸어 본다.

“그럼, 지금 어디를 가시는 길입니까?”

“예, 나도 진천 배티 내 처갓집에 다녀오려고 길에 나섰습니다. 노형께서도 진천이 고향이라니 반갑습니다 그려!”

이렇게 대답하는 청년의 얼굴에는 아무런 간교한 빛도 찾아볼 수 없이 순직하다. 비리버는 속으로 생각하면서 무심코 청년의 발을 보니 버선코가 납작하였다. 그는 무슨 큰 발견이나 한 듯 가슴이 후련해진다. 얼마 전 자기의 버선코가 납작한 것을 포졸이 보고 교우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교우들은 조석으로 무릎을 단정히 꿇고 아침기도와 저녁기도를 함으로 버선코가 유달리 납작하여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비리버는 청년을 향하여

“여보, 당신 교우지요?”

다짜고짜로 이렇게 물으면서 청년의 얼굴에서 무엇을 찾는다.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오?."

비리버는 나직한 ’소리로 자기도 군란 풍파의 희생자 중 한사람이라’는 것을 말하고 자기 과거를 약간 들려주고 나서 자기 본명까지 일러주고

“그래, 당신 본명은 무엇이오?”

하고 은근히 묻는다. 말마디마다 정이 뚝뚝 넘친다. 비리버의 표정을 유심히 살피면서

“예, 나도 교우입니다. 박 도마입니다.”

하고 눈물 글썽한 얼굴로 대답하고는 비리버의 손을 잡는다.

박 도마는 자기의 과거를 대강 말하고 나서 최근의 자기 신세가 어떻게 되었는지 말한다.

“하루는 산에 가서 나무를 한짐해서 지고 좀 늦게 집에 돌아오는 도중 그 동안 포졸이 동네를 습격하여 교우들을 잡아갔다는 말을 듣고, 나는 그 길로 동네에 들어설 수 없어서 나뭇짐을 뒷집에 맡겨놓고 근처를 슬슬 돌며 알아보니 내 아내도 잡혀갔고, 가산은 모두 적몰된 것이 분명하지 않겠습니까?”

그는 여기서 한숨을 크게 쉬고 나서 다시 말을 계속한다.

“그래, 공주읍으로 들어가 사실 여부를 알아보지 않았겠습니까. 그것도 돈을 써가며 사람을 놓아 포졸에게 알아보니까, 아 글쎄 그놈들이 내 아내를 죽였다는 구려!”

여기서 말을 딱 끊는 박 도마의 눈에는 쌍심지가 솟는다. 불끈 쥔 두 주먹은 부르르 떤다.

“거참, 안되었소. 그런데 부인의 성명은 무엇입니까?”

“신 마리아라고 하지요.”

라고 대답하고는 여전히 씨근거린다.

“그럼 부인께서 치명의 화관을 받으셨습니다 그려! 그 얼마나 거룩하고 장한 일입니까. 너무 애통하실 것 없으니 좀 진정하십시오.”

비리버는 한참 동안 이런 말 저런 말을 하던 끝에 얼굴에 간지러움을 누르면서 짐짓 이렇게 말을 건네 본다.

“과거는 과거로 생각하고 이제 당신도 앞길을 생각해야 되지 않겠소? 다른 게 아니라 내 매제 하나가 있는데 누가 보든지 얌전하다고 합니다. 어디 의지할 데를 지금 구하는 중인데 지금 내 고모하고 저 안에서 쉬고 있습니다. 내일 만나 보고 아주 부부가 되어 주었으면 어떻겠소?”

그러나 박 도마는 아직 그런 생각은 해보지도 않았고, 또 그 동안 그 일로 처갓집에 가보지 못한지라 약간 마음이 쓸리기는 하나 승낙은 아직 못하겠다는 것이다.

그 이튿날 비리버는 조반을 먹은 다음 안으로 들어가 신 마리아에게 조용히 아래와 같이 말한다.

“지금까지는 내가 당신의 호수 천신 노릇을 해왔지만 이제 더 든든하게, 더 미덥게 당신 호수 천신 노릇을 해줄 남 교우 하나를 얻었소. 지금 저 객실에 있으니 아주 지금부터 그를 따라 나서야겠소."

비리버의 표정은 엄숙했다. 신 마리아는 무슨 의미인지 몰라 벙벙한 중에 비리버의 독촉에 못 이겨 그의 고모와 함께 따라 나갔다. 비리버가 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어제 말한 그 사람이오!”

하면서 흥미 있게 양편을 번갈아 본다.

“아이고머니나!”

“아! 이게 누구여…."

박 도마 부부는 너무나 큰 감격의 충동을 받아 마치 금방 다른 세상이 창조된 듯 어쩔 줄을 모른다. 비리버는 턱으로 밖을 가리키며 너무 소란하게 굴지 말라고 주의시킨 후 그들의 마음이 진정되기를 기다려 다함께 길에 나섰다. 피곤한 줄도 모르고 가벼운 걸음을 옮기는 박 도마 부부가 부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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