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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죽은척하는 신부
작성자박용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3-06-07 조회수800 추천수0 반대(0) 신고

죽은척하는 신부

 

공소 회장은 마을 사람에게 양고자를 잡으려고 포졸들이 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신부님을 어떤 집으로 보냈다. 그런데 어떤 노파가 잡혀서 고문에 못 이겨 신부의 행방을 발설해서 포졸이 온 것이다. 신부가 숨어있는 집에선 방에 벽을 자리로 가리고 아들과 며느리는 머리를 풀고 흐느껴 울었다. 포졸들은 재수가 없다며 마을에서 떠나갔기 때문에 신부는 붙잡히지 않고 무사했다. (윤의병신부지음「은화」하권 67-70)

wngok@hanmail.net

 

“그런데, 양고자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글쎄, 그게 무슨 말일까? 자네 그런 말 어디서 들었나?”

“소인이 오눌 아침 볼일이 있어서 저 아래 주막거리에 갔습지요. 거기서 포졸 몇 놈을 만났는데 그중 한사람은 소인과 친한 터이지요. 그놈들이 지금 우리 동네로 양고자를 잡으러 오는 길인데 주막에서 해장을 하고 온다고 합니다.”

“응 그래. 그러나 자네도 알다시피 우리 동네에 어디 양가라는 성을 가진 사람이 있나. 그러니 염려할 것 없네."

“그런게 아니라 눈이 쑥 들어가고 코가 큰 사람을 양고자라고 한답니다.”

“눈이 들어가고 코가 크다 할지라도 그게 무슨 죄가 되겠나. 저 아래 복돌이란 놈이 우리 동네에서 코가 제일 크다고 할 수 있지만 자네도 알다시피 그놈은 황소처럼 먹고 일이나 하는 순진한 총각 아닌가. 그러니 착한 백성을 코가 크다는 죄목으로 잡아갈 리가 있겠나. 아무걱정 말고 가서 일이나 하게.”

회장은 이렇게 시치미를 떼고 어수룩한 최 서방을 돌려보내 놓고 생각하니 일은 심상치 않다.

이 동네로 양인을 잡으러 오는 것이라 하면 벌써 이 동네에 양인이 있다는 말을 듣고서 오는 것임에 틀림없다. 대체 이 말이 어떻게 나왔는지 알 수 없으나 만일 신부가 발각된다면 자기의 세력으로도 어찌 할 수 없을 것이요, 또 양인을 자기 집에 숨기지 않았나 하는 의심이라도 받는 것은 앞으로 크게 불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회장은 그대로 서서 잠깐 궁리하다가 담뱃대를 빼어 탁탁 털어 버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방에 들어가 신부께 조용히 그 소식을 아뢴 다음 신부를 모시고 다른 교우 집에 가서 어떻게 하라고 분부하고 다시 돌아와 사랑방에 앉았다. 조금 있자니까 과연 포졸들이 동네로 들이닥친다. 그중 몇 놈은 먼저 회장 집에 오더니 뜰 아래 서서 굽실굽실 인사를 한다.

“거, 무슨 일로 이렇게 왔느냐?”

회장은 뜻밖이라는 표정으로 물었다.

“예, 다름 아니라 며칠 전에 양인 하나가 이 동네로 왔다는 말이 있어 잡으러 왔습니다.”

“양인이 무엇 하러 이런 동네에 올 리가 있나. 혹 동네 앞으로 지났는지 모르지만…, 네 그런 말을 어디서 들었단 말이냐?”

“어제‘새양골’에서 천주학 하는 노파 하나를 잡았는데 그 입에서 토설했습니다."

“응, 그려! 여하간 양인이 참말로 와 있다면 잡아야지, 여부가 있나. 그럼 내 집부터 뒤져보아라.”

회장은 벌떡 일어서더니 방문과 벽장까지 열어 놓고 보라 하였다. 그리고 밖으로 나와 포졸에게 어서 안으로 들어와 찾아보라고 하였다. 포졸들은 황송한 태도로,

“이건 참 죄송스럽습니다마는 원체 나라에서 명하는 일이라 그대로 갈 수는 없으니 한 번 둘러보기나 하겠습니다."

“우리 동네가 망할 징조야. 그래, 양인이 들어 왔다는 말을 듣게 되다니. 참 해괴한 일이군….”

회장은 약간 불쾌한 기분으로 그들 앞에 다니며 방문, 부엌문, 광문까지 다 열어 보이며 어서 찾아보라고 독촉하였다.

“참 죄송스럽습니다.”

하고 대문을 나서는 포졸들을 향하여

“참, 별일 다 보겠다. 이놈들 내 동네서 양인을 잡아내지 못하면 성한 몸으로 돌아가지 못할 터이니…….”

하고 흥분한 소리로 엄포를 놓고 사랑 문을 탁 닫으며 들어갔다. 사랑에 들어가 앉아 있자니 마음이 불안하여 견디기 어렵다. 자기가 계획한 대로 된다면 천만 다행이지만 만일 실패한다면 대체 무슨 방책을 써야 하겠는가. 회장은 우두커니 앉아 속으로 주 성모님께 향하여 기구를 드리고 있으나 혹시 포졸들의 고함소리가 나지 않을까 하여 정신은 밖으로 쏠리고 있었다.

그 동안 포졸들은 이집 저집 뒤지다가 정말 신부가 숨어있는 집에 이르렀다. 아는 집 들어가듯 서슴지 않고 들어가서 부엌, 나뭇간, 변소까지 모두 살피고 나서 방문을 확 열었다. 윗목에는 자리를 치고 그 앞에 주인 내외가 머리를 풀고 꿇어앉아 있다.

“어이구, 이 집은 초상집이군……, 거 누가 죽었소?”

“우리 아버지께서 오늘 새벽에 그만 세상을 떠나셨어요!”

여자는 혹혹 흐느끼며 겨우 대답한다.

“허, 이거 오늘 재수 없군."

포졸들은 입맛을 쩍쩍 다시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밖으로 얼른 나간다. 그들은 동네를 다 뒤져보았으나 양인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러니 이 동네에 더 머뭇거리다가는 아까 회장한테 들은 말이 있는지라 무슨 경을 칠지 알 수 없으므로 슬금슬금 도망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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