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겸손
작성자김종연 쪽지 캡슐 작성일1999-12-20 조회수2,337 추천수4 반대(0) 신고

우리가 성모님에게서 배울 것이 참으로 많겠지만 우선 겸손한 자세를 들 수 있겠다.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간단해 보이는 이 말 속에는 이미 주님을 위해서 죽을 수도 있다는 단호함이 있는

것이다.

그 당시에는 처녀가 임신을 하면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돈을 던져도 말리는 사람이

없었고 죽기까지 했다고 하니 말이다.

매번 묵주기도를 시작할 때는 바로 이 대목에서 시작한다.

무엇을 빌든 이런 겸손한 자세로 임해야 한다는 것일 것이다.

 

나는 또다시 배운다. 아하즈의 말에서…

 

"아닙니다. 나는 징조를 요구하여 주님을 시험해 보지는 않겠습니다."

 

주님께 의심을 품지 않는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가 않다.

나약한 인간으로서는 확실한 답변, 확실한 징조를 찾기 마련이다.

아하즈는 주님이 징조를 보여달라고 청하라 했음에도, 주님의 허락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시험해 보지 않겠다고 한다.

이런 믿음이 참으로 부럽다.

 

언제나 남과 나를 비교하고는 힘들어 하곤 한다.

왜 내게는 저 사람에게 있는 것이 없을까.

비단 물질적인 것만은 아니다.

그 사람의 성품, 의지, 혹은 믿음에서도 그런 비교를 한다.

어떻하면 이런데서 자유로와질 수 있을까.

 

이솝 우화에서 강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덤빈 강아지 생각이 난다.

입에 고기를 물고 가다가 강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자기인지도 모르고

자기보다 더 큰 고기를 든 개를 보고 짖다가 그만 입에 있던 고기마저 잃어버린

강아지 얘기 말이다.

이렇듯 우리가 비교하는 대상들도 허상일지도 모른다.

그 사람의 입장에 온전히 놓여보지 못하면서 단면만 보고 부러워 하는 것은 어쩌면

이런 강아지와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자격지심은 또 다른 일면에서 보면 나는 무엇이든 다 갖추고 남보다 더

잘나야 한다는 교만에서 나온다.

손에 보석을 쥐고 있어도 그 값어치를 모르고 감사할 줄 모르면 남의 손에

쥐어진 동전 한닙이 더 귀한 것으로 보이는 어리석음을 범할 수도 있다.

 

어리석은 강아지가 될 것인가, 아하즈처럼 겸손 속에 완전을 얻을 것인가는 바로

나의 마음가짐에 달려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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