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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십자가의 요한성인의 어둔 밤 싯귀를 깨달음
작성자최종환 쪽지 캡슐 작성일2006-11-26 조회수763 추천수0 반대(0) 신고

십자가의 요한성인의 어둔 밤 싯귀를 깨달음

  

   나는 무슨 일로 인하여 나 자신에 대하여 실망하는 마음이 되어 침대에 누워 있는데 눈엔 눈물이 가득 고여 왔습니다. 그런데 그때 볼 수는 없었지만 하느님께서 옆에 오셔서 스며들 듯 팔베개 하시고 나를 끌어 안아주시는 것을 영적으로 체험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실망하는 마음도 사라져 버리고 왠지 십자가의 요한성인의 어둔 밤 싯귀의 온갖 풀이가 이제는 만사 땡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어둔 밤 싯귀 내용들을 자세히 살펴 보니 싯귀 일곱째 노래에서 ‘고요한 당신의 손으로, 자리게 내 목을 안아 주시니, 일체 나의 감각은 끊어졌어라.’에서

   즉 아가서 2장 6-7절 ‘왼팔을 베게 하시고, 오른팔로 이 몸을 안아 주시네. 들판을 뛰노는 노루 사슴 같은 예루살렘의 아가씨들아, 이 사랑이 잦아들기까지 제발 방해하지 말아다오. 흔들어 깨우지 말아다오.’ 하였듯이 또 아가서 8장 3-4절에서도 ‘왼팔을 베게 하시고, 오른팔로 이 몸 안아 주시네’ ‘이 사랑이 잦아들기까지’ 하고 똑같은 말을 되풀이 하였듯이 이 사랑이 잦아들기까지는 얼마나 세월이 흘러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십자가의 요한성인의 어둔 밤 싯귀가 풀린 것만은 분명히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십자가의 요한성인의 어둔 밤 책에서 처럼 하느님과의 합일을 그렇게까지는 체험한 적은 없다지만 비유를 들어 설명해 보자면 우리가 인간적인 사랑의 관계에서도 아! 내 낭군이 팔베게 하시고 나를 끌어 안아 주시면 만사 땡이지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그리고 싯귀 여덟째 노래에서는 ‘하릴없이 나를 잊고’ 즉 달라고 보채고 그다지 청할게 없는 그저 하느님께서 끌어 안아 주시니 ‘님께 얼굴 기대이고’ 즉 우리가 이성간의 사랑에서도 그 안에 무슨 잡다한 것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물며 하느님의 사랑에서야 그저 그대로 ‘하릴없이 나를 잊고 / 님께 얼굴 기대이니 / 온갖 것 없고 나도 몰라라 / 백합화 떨기진 속에 / 내 시름 던져두고.’인 시름은 가신 그대로가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십자가의 요한성인은 이러한 것을 우리 인간편에서 제 스스로 능동적으로는 할 수 없다고 수동적인 밤을 이야기하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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