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전례/미사

제목 [미사] 성찬 기도의 각 부분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9-07-02 조회수1,975 추천수0

[전례 해설] 성찬 기도의 각 부분

 

 

삼중 기도 대화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모두 안녕하십니까?” “신부님, 안녕하세요?” 이것이 기쁨의 인사요, 대화의 시작이다. 사람은 만나는 존재요, 나누는 삶을 살아간다. 미사는 깊은 만남이다. 기도와 축복, 사랑과 희생의 만남이다. 미사 중의 만남이기에 전례 인사, 성서 말씀, 하느님 축복을 서로 나눈다.

 

감사송에 앞서 이런 삼중의 대화를 나눈다. 그것은 ‘기도의 대화’이다.

 

+ “주께서 여러분과 함께.”

? “또한 사제와 함께.”

 

무슨 일에나 주님의 도움이 필요하다. 큰 감사를 드릴 때에도 주님의 도움은 필요하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요한 15,5). 그래서 주님을 부르고 그분의 현존을 기원한다.

 

+ “마음을 드높이.”

? “주를 향하여.”

 

땅이냐 하늘이냐, 세속이냐 주님이냐. 일상 생활에 묻힌 사람들이여, 세상의 근심 걱정. 희노 애락을 잠시 떨쳐 버릴 수 없는가. 그래서 마음을 저 푸른 하늘 높이 떠올려 주고 싶다. 바오로 사도처럼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천상의 것들을 추구하십시오.”(골로3,1)라고 권고하고 싶다.

 

+ “우리 주 천주께 감사합시다.”

? “마땅하고 옳은 일입니다.”

 

나와 너, 형제 자매, 세상 만물, 행복과 영생은 하느님의 창조와 구세주의 구원 사업 덕택이다. 그래서 생각하는 사람은 감사할 줄 안다. 감사와 찬미는 진정 마땅하고 옳은 일이 아니겠는가.

 

 

감사송(Praefatio)

 

감사송이란 단어의 뜻은 서문, 서언, 입문이지만 실상은 성찬 기도의 여덟 부분 중 첫 부분인 감사 기도라는 의미이다. 사제는 모든 교우들의 이름으로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며, 구원의 업적에 감사드리고, 그 날과 그 축일과 시기에 내포된 특수한 이유 때문에 감사드린다. 따라서 현재는 감사송이 성찬 기도의 핵심 요소가 되었다.

 

감사송은 모두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즉 서문, 본문, 결문이다. 서문은 대화와 감사 내용을 연결하는 연결문이다. 성부께 감사드림은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구원을 준다는 내용이다. 다음 본문에서는 감사의 이유를 제시한다. 하느님의 창조와 구원 업적을 선포하며 감사드리려 한다. 결문은 ‘거룩하시다’로 이어 주는 연결문으로 천사와 성인들과 함께 구원을 찬미하는 내용이다.

 

 

거룩하시다

 

예언자 이사야가 부르심을 받기 전 어느 날 야훼 하느님께서 높은 옥좌에 앉아 계심을 보았다. 여섯 개의 날개를 가진 천사 ‘세라핌’이 시중을 들면서 이렇게 외쳤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온 누리의 주 천주, 하늘과 땅에 가득한 그 영광”(이사 6,3).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였다. 많은 사람들이 겉옷을 벗어 길에 펴놓는가 하면 나뭇가지를 꺾어 들고 환성을 올렸다. “호산나! 다윗의 후손!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미 받으소서. 지극히 높은 하늘에서도 호산나!”(마태 21,9)

 

미사에 참여한 모든 신자가 보이지 않는 천상의 천사들과 성인들과 함께 환호하는 노래가 ‘거룩하시다’이다. 이 환호는 성찬 기도의 일부로서 모든 교우가 사제와 함께 외치는 기도이다. 앞의 성서에 나온 두 가지 내용을 한데 합친 것이다.

 

호산나(hosanna : 아람어, hosianna : 히브리어)는 원래 ‘도와주십시오’ ‘구원하소서’란 뜻이지만 교회 예절(전례)에서는 하느님 또는 구원자에 대한 환호 소리이다. ‘거룩하시다’란 찬미 노래는 미사 중 비슷한 다른 성가로 대치될 수 없다.

 

 

변화 기원

 

빵과 포도주가 살과 피로 된다는 것은 큰 변화요 기적이요 신비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요술이나 마법이 아니다. 하느님의 창조요, 그리스도의 말씀이요, 성령의 은혜란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미사 전례는 감사송에서 즉시 성체 축성으로 들어가기 전에 간단한 연결 기도를 한다. 선자들이 봉헌한 예물을 하느님께서 축성해 주시기를 바라고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이 되도록 기원하며 그를 받아 모시는 신자들이 구원을 얻도록 간청한다.

 

 

성체 축성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먹으라, 이는 너희를 위하여 바칠 내 몸이니라.” 이미 네 가지 성서의 만찬 기사에 관한 설명(본지 1992년 3월호 102쪽 참조)에서 보았듯이 예수님이 최후 만찬 당시 빵과 포도주 잔을 주시면서 하신 말씀과 동작을 지금도 그대로 실천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당신의 살과 피를 성부께 봉헌하시고, 사도들에게 먹고 마시라고 주셨으며, 동일한 신비를 영구히 계속 거행하라는 명령을 남기셨다.

 

축성의 기본 요소인 “그리스도께서 최후 만찬 때에 제정하신 제사는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위로써 이루어진다.”(미사 지침 55항 d, 성체 제정 서술과 축성)는 사실이다. “받아 먹으라, 이는 내 몸이다.” “받아 마셔라. 이는 내 피다.” 이 성찬 음식을 통하여 그리스도는 사도들과 또한 우리와 하나가 되려는 의지를 드러내고 계신다.

 

예수님은 빵과 포도주 안에 어떤 방식으로 현존하시는가? 요한 복음(6장)에서 예수님은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 “내가 줄 빵은 곧 나의 살이다.”고 하셨다. 그때 유다인들은 “이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내어 줄 수 있단 말인가?’ 하며 서로 따졌다.

 

중세기에 이를 설명하기 위하여 실체 변화(transsubstantiatio)란 말을 사용하였다. 즉 빵과 포도주의 형상은 그대로 남아 있고 그 본질인 보이지 않는 실체만 변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현대의 신앙인들을 위하여는 오해를 가져올 염려가 있어 사용을 자제하는 편이다.

 

새 신학은 성체 신비에 대하여 ‘의미 변화’(transsignification)와 ‘목적 변화’(transfinalization)란 단어로 좀더 분명하게 설명하려 한다. 즉 빵과 포도주는 사람을 위한 자연의 식품으로서 그것을 섭취하여 생명을 보존하고 강화한다. 빵은 성체 변화로써 그리스도와 신자의 일치를 위한 매개물이 된다. 따라서 이 자연의 식품은 새로운 의미와 목적을 갖게 되었다. 빵과 포도주의 변화는 단지 육체적 음식일 뿐 아니라 주님의 현존을 구현하는 표정이다(Schneider의 설). 그러나 성체성사는 여전히 인간의 머리로 다 파악할 수 없는 ‘신앙의 신비’이다.

 

왜 성체와 성혈을 축성 후 높이 들어 보이고 경배하는가. 성체 축성 기도 후에 성체를 높이 들어 보인 것은 1200년경부터이다. 중세기 신자들은 축성된 성체를 봄으로써 특별한 축복을 기대하였다. 성작을 높이 들어 올림은 비교적 늦게 실시되었고 비오 5세 때에(1570년) 일반화하였다. 비오 10세는(1927년) 보고 경배하라는 뜻으로 “내 주시요 내 천주시로소이다.”라는 말까지 속으로 외웠다. 현재는 이런 동반 기도가 없고 큰절로 흠숭을 표하도록 되어 있다.

 

 

환호 : 신앙의 신비여

 

신부의 노래 솜씨는 이곳에서 여지없이 드러난다. ‘신앙의 신비여’를 선창할 적에 정말 손색 없이 잘 부르는 신부는 많지 않다. ‘거룩하시다’에서 주의 기도까지는 1967년 이전만 해도 사제 홀로 작은 소리로 읽었다. 그러나 새 미사 경본은 성찬 기도를 자국어로 크게 낭독하며 특히 환호의 노래를 부르도록 하였다.

 

이에 대한 신자 공동체의 응답 양식에 세 가지가 있다. 다소의 차이는 있으나 성체 축성 기도에서 표현한 주의 죽음과 부활을 선포하며 신앙을 고백하는 환호이다(1고린 11,26 참조). 이 신비는 신자 공동체 전체의 일임을 분명히 가르쳐 준다.

 

 

기념, 봉헌, 일치, 전구

 

“나를 기념하여 이 예식을 행하여라.”(루가 22,19)는 주님의 명령이 계속 실현되고 있다. 교회는 사도 시대부터 실천하며 주의 수난과 부활과 승천을 기념한다.

 

특히 미사 중에 그리스도를 제물로 성부께 봉헌한다. 신자들은 자기 자신을 봉헌하며 하느님과의 일치, 신자들 간의 일치를 도모한다. 교회는 살아 있는 신도들뿐 아니라 죽은 연옥 영혼과 성인 성녀들과도 일치를 이루며 미사를 봉헌하고 필요한 은혜를 청한다. 주님은 산 이와 죽은 모든 이를 위한 구원의 제물임을 표현한다.

 

 

끝 영광송과 아멘

 

사제는 성체 성반과 성혈이 담긴 성작을 높이 들어 올리고 기도 (또는 성가)를 한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부 성자 성령께 영광을 드리는 가장 오래된 영광송의 하나이다. 수난과 부활로 구원된 인간이 영광을 드림은 지극히 당연하다.

 

‘과연 그렇습니다’가 아멘이란 응답으로 되었다. 아멘은 큰소리, 우렁찬 노래일수록 좋다. 성 예로니모(+420년)는 로마 대성전에서 신자들의 아멘 소리가 마치 하늘에서 울리는 천둥 소리와 같았다고 하였다.

 

[경향잡지, 1992년 6월호, 안문기 프란치스꼬(천안 봉명동본당 신부)]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