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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대림성탄] 성탄 전례의 어제와 오늘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9-07-02 조회수2,113 추천수0

[전례와 상징] 성탄 전례의 어제와 오늘

 

 

크리스마스! 우리 국민에게도 이제 낯설지 않은 즐거운 축제일이다. 거리의 성탄나무, 백화점의 네온사인, 산타클로스, 카드와 선물, 여행, 파티, 행사 등 황홀한 분위기 속에 저마다 바쁜 시기이다. 그러나 크리스마스가 그리스도교의 진정한 축제라고 할 때, 단순히 어린이나 청소년들의 들뜬 기분, 가정의 향응, 선물 교환, 축하 인사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고 하겠다.

 

성탄 축제의 신비를 파악하려면 먼저 교회의 성탄 전례에 대한 갚은 이해가 앞서야 한다. “빠스카 신비의 주년 경측 다음으로는 주님의 성탄과 그 초기 공현을 기억하는 것보다 더 오랜 교회 행사는 없다. 이 시기를 성탄시기라고 한다”(전례력과 축일표에 관한 일반 지침 32항). 누구나 자기 나름대로 크리스마스를 즐길 수 있다. 그러나 어떤 모양으로 즐기든 성탄 축제의 핵심은 하느님 아들의 지상 파견이고, 그를 통해 전달되는 하느님 사랑과 마음임을 깨닫는 일이다.

 

 

예수 성탄 축일의 기원

 

초기의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빠스카(부활) 축제만을 알고 있었고 예수 성탄을 경축한 흔적은 300년대 이후에나 나타난다. 오히려 주의 공현 대축일(1월 6일)을 동방 교회에서 먼저 성탄 축일로 경축하였으며 이에 관한 200년대의 기록도 남아 있다. 이 1월 6일 성탄 축일은 이딸리아 북부 밀라노와 프랑스(당시 갈리아), 독일, 스페인 등지로 퍼졌다.

 

로마 시에서 12월 25일을 예수 성탄 축일로 지냈던 가장 오래된 기록은 354년의 로마 주교와 치명자들의 사망 일지 명단(Depositio episcoporum)이다. 이 기록에 의하면, 로마 시에서는 이미 336년에 12월 25일이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 축일로 정해졌다. 그리고 354년경에는 교황 리베리우스도 성탄 미사를 지냈다.

 

왜 12월 25일이 예수 성탄 축일로 제정되었는지 이 축제의 기원과 연유에 대하여 연구해 온 학자들은 최근 다음 두 가지 가설을 제기하고 있다. 즉 호교사적인 가설과 월력계산상의 가설이다.

 

어쨌든 당시의 사람들은 이날 새로이 솟아오르는 태양과, 예수의 지상 생활 시작이 일치하는 점에서 복된 하느님의 섭리라고 생각하였다.

 

 

급속한 전파

 

이 새로운 성탄 축제가 교회도 많지 않던 4세기에, 서방과 동방에서 놀라우리만큼 빨리 전파된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즉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부인한 아리우스(Arius)의 유설(謬說)을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단죄한 데 큰 힘을 얻었고, 이에 적합한 성탄 축제를 이교도들이 보는 앞에서 전례적으로 더욱 힘있게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다. 니케아 신앙 고백은 추상적인 교리가 아니라 신자들의 모임과 미사 때마다 암송한 전례적인 고백이었다. “우리는… 한분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 곧 하느님의 아들을 믿습니다… 그분은 빛으로부터의 빛, 참 하느님으로부터의 참 하느님”이라고 외쳤다.

 

로마의 예수 성탄 축제는 곧 아프리카로 넘어갔으며, 독일어권 국가들은 813년 예수 성탄을 공식 축일로 규정하였고 10세기경까지는 동북부 유럽 전역에서도 크리스마스를 경축하게 되었다.

 

 

세 번의 미사

 

1970년의 새 미사경본 지침에는 모든 신부가 성탄 축일에 세 번의 미사를 바칠 수 있게 되었다. 즉 밤중미사, 새벽미사, 낮미사 등 셋이다. 이것은 6세기 중반까지 형성된 로마 교황 전례에로 소급된다.

 

중세기의 한 신비신학자(J. Tauler)는 세 번의 미사와 관련하여 세 번의 탄생을 이렇게 설명한다.

 

“첫번째 탄생은 천상 아버지께서 아들을 신인(神人)으로 보내심이다. 두번째 탄생은 여느 사람과 다른 순결한 동정녀로부터의 태어남이다. 세번째 탄생은 하느님께서 매일, 매시간마다 영신적으로 은총과 사랑을 통해 착한 사람에게 오심을 뜻한다.”

 

원래의 교황 성탄 대미사는 베드로 성전에서 12월 25일 9시에 한 번만 거행되었다. 그런데 5세기에 로마의 성모 설지전(Maggiore) 성당에는 밤중미사가 새로 생겼다. 이 성당은 마리아의 공경을 위하여 새로 증축되고 얼마 후 작은 지하 교회가 베들레헴의 성탄 동굴 모습으로 만들어졌다. 이 동굴 교회에서 교황이 밤중미사를 지냈다. 원래 400년경 예루살렘에서 1월 6일 밤에 성탄 축제를 지냈는데 이것이 베들레헴으로, 이어서 로마로 전해졌다.

 

6세기 중반에는 새벽미사가 여기에 첨가된다. 즉 비잔틴 제국이 로마를 점령한 후, 로마의 성 아나스타시아 교회는 제국의 궁정 교회가 된다. 이 교회는 동방 교회에서 높이 공경받는 치명 성녀 아나스타시아(Anastasia)를 주보로 축성되었다. 12월 25일이 이 성녀 축일이라 비잔틴 총독을 존경하는 뜻으로 교황은 궁중의 대신들을 위해 성탄 새벽미사를 집전하였다. 이 세 번의 미사가 점차 로마 밖으로 퍼져나갔다.

 

 

밤중미사

 

앞서 말한 대로 성탄 밤미사는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어 로마에까지 전해지면서 점차 많은 신자들이 참여하는 가장 성대한 미사가 되었다.

 

제1독서는 오늘 이룩된 메시아 대망에 관한 이사야 예언서 9장 2-7절이다. “어둠 속을 헤매는 백성이 큰 빛을 볼 것입니다.” 새 빛인 그리스도의 탄생을 통하여 인간 쇄신을 가져온다. 제2독서인 디도서는 하느님 구원의 은총이 첫번째 탄생에서 종말의 날까지 연장하여 희망을 불어넣고 있다. 그리하여 이 세상에서 우리 신자들은 “정신을 차리고 바르고 경건하게 살게 해준다.”

 

빛에 관한 상징은 본기도에서 반영시키고 있다. “참 빛의 광채로 이 거룩한 밤을 밝혀주신 천주여, 비오니 세상에서 이 빛의 신비를 깨달은 우리로 하여금, 천국에서 그 빛의 기쁨도 또한 누리게 하소서.” 또한 성탄 감사송에서는 주님을 ‘영광의 새 빛’으로 묘사하였고 봉헌기도에서는 성자를 통하여 인간성이 신의 본체에 합일되었음을 가르친다.

 

루가 복음이 성탄 밤미사와 새벽미사에서 낭독되는 이유는 그 내용이 역사적인 고증이나 자료를 제시하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전체 생애 즉 삶과 죽음의 중대 문제에 상응하는 역사 이전의 이야기를 드러내려는 것이다. 서정적인 전원 풍경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고 박해 시대에 생명의 위협을 받는 신자들에게 구세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격려와 용기를 북돋아주려는 데 핵심이 들어있다.

 

“오늘 밤 너희의 구세주께서 디윗의 고을에 나셨다. 그분은 바로 주님이신 그리스도이시다.”(루가 2,11). 여기서 ‘오늘’이란 일정한 날짜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이 인간으로 탄생하신 신비는 어느 날이나 시간에 연관된 것이 아니라, 성 금요일이나 부활 주일과 마찬가지로 어느 날이든 이룩될 수 있는 ‘구원 사건’을 나타내고 있다. 천사들의 알림 가운데 중대한 점은 예수가 메시아인 ‘구세주요 주님’이란 사실을 밝힌 것이다. 그리고 목자들이 기뻐하며 하느님을 찬양한 사실을 오늘의 신자들은 깨달아야 한다.

 

 

새벽미사

 

‘목자미사’라고도 불린다. 그것은 루가 복음(2,15-20) 내용에서 목자들이 그리스도를 구유로 맨먼저 찾아가 경배하였기 때문이다. 목자들은 단지 구원 사실을 보고 확인할 뿐 아니라 하느님을 믿고 찬양하였다. 예수님이 후에 말씀하신 대로 똑똑하다는 사람들에게는 감추시고 “어린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으로 주를 찬양하게 하시리라”(마태 21,16)는 실례를 보잘것없는 목자들에게서 실현하신 것이다.

 

빛의 상징은 밤중미사보다 더 강렬하다. 입당송에서 “큰 빛이 오늘 우리 위에 비치리니…” 하였고 본기도문에서는 “새로운 빛을 가득히 받았사오니 믿음의 빛이 행실에도” 드러나기를 바라고 있다.

 

제l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너를 구원하실 이가 오신다”(이사 62,11)고 예고한다. 사도 바오로는 디도서에서 구세주는 정의(正義)의 업적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에 힘입어 오셨다는 점을 밝힌다.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인간이 새로 탄생하여 구원을 받게 된다.

 

 

낮미사

 

제1독서는 이사야 예언서(52,7-10)이다. 유다 백성은 바빌론의 노예 생활에서 해방되어 돌아가리라는 부푼 갈망 속에 이 말씀을 듣는다. “들어라. 시온으로 돌아오시는 야훼와 눈이 마주쳐 모두 함께 환성을 올리는구나… 야훼께서 당신의 백성을 위로하시고 예루살렘을 도로 찾으신다.”

 

여기서 ‘시온’이란 예루살렘의 한 지리적인 위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제2독서인 히브리서(1,2-3)에서 지적한 ‘온 세상’과 ‘만물의 상속’으로 확대된다. 하느님의 아들은 창조주이시며 동시에 상속자시다. 그리스도의 인간적 탄생과 동시에 구원의 시간이 울린다. 요한 복음도 히브리서의 말씀을 확대하여 아들이 아버지와 공동 생명체이며 세상 창조의 공동작업자임을 나타낸다. 그리스도가 이방인으로서 세상에 등장한 것이 아니다. 온 세상은 영원으로부터 주님의 소유이다. 오늘 낮 복음은 ‘예수 성탄을 맞아 하느님의 아들이 당신 나라에 왕으로 행차하심’을 묘사하고 있다. 이런 내용은 연중 마지막 주일인 ‘그리스도 왕 대축일’ 예절과 상통하고 있다.

 

요한의 독특한 표현인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는 것은 예수 존재의 관계성을 드러낸다. 즉 예수는 “…에 의한 존재’이고 ‘…을 위한 존재’란 말이다. 이 ‘말씀’을 ‘아들’과 바꾸어 놓으면 관계를 쉽게 알 수 있다. 즉 그리스도는 온전히 ‘하느님에 의한 존재’이고 ‘인간을 위한 존재’이다. 말씀의 핵심은 ‘존재와 업적’ ‘품위와 행동’을 동시에 표현하려는 것이다.

 

우리는 하느님을 더 이상 하늘의 무한성에서 찾을 필요는 없다. 이제는 하느님이 우리의 땅에 사람의 아들로 탄생한 것이다(필립 2,6-8 참조).

 

[경향잡지, 1988년 12월호, 안문기 프란치스꼬(대전 선화동본당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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